여자가 남자보다 세심한 이유
오래간만에 회식을 했다. 직급이 어릴 때나 직급이 높아질 때나 여전히 어려운 것은 회식이다. 회식비라고 해봤자 요즘은 경비절약 차원에서 1차만 하고 헤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지만, 남자 부하직원들을 두게 되면, 더군다나 우리나라 IT 특성 상 협력업체 인원들을 많이 고용하게 되면 회식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간단히 저녁이나 먹을 예정이었다가 갑자기 곱창이 먹고 싶은 바람에 팀원들을 이끌고 곱창집으로 갔다.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오가다가 다들 여자가 개발팀 리더라서 경계를 많이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직업 특성상 대부분이 남자라서 남자들의 경우 여자 부하직원을 두기도 꺼려할 뿐 아니라 여자 상사를 모시기도 꺼려하는 편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 면으로 소통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들의 이야기였다.
막상 일을 하면서 '여자니까'라는 생각으로 일을 한적은 없는 것 같은데, 사적인 자리에서 남자 동료나 부하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아직도 우리나라 사회는 '여자'라는 존재는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여러 이야기를 왁자지껄 하다가 협력업체 대리 한 명이 고백할 것이 있다고 했다.
"사랑고백이면 안 받아 줄건대~ 나 유부녀야~"
"아, 그런 건 아니고..."
"이런 이야기하면 성희롱으로 고소당할라나? 하하~"
한껏 취기가 올라 농담으로 받아쳤다. 그 대리급의 고백 이야기는 좀 신선하지만 내심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지는 일이기도 했다.
작년 11월인가? 그 대리의 아기 돌이었다. 나도 아기를 키워본 엄마로서 첫아기의 돌이 얼마나 소중하고 기쁜 행사인지 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돌 전날 회사 근처 마트에서 내복을 사서 선물을 했었다. 좀 친한 동료들은 나보고 개발자 내복까지 사다 바치냐면서 지나가는 농담으로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나는 대답했다.
"요즘 실력 있는 개발자 뽑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모시고 살아야 돼~" 하면서 우스갯소리로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거야 정말 우스개 소리였고, 그냥 그 개발자의 아기를 생각하면서 내복을 선물했는데, 그 개발자는 깜짝 놀라기도 하고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일하면서 상사가 리더에게 이런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시점에... 그 개발자에게는 고민이 많았단다. SI 특성상 다른 대기업은 다른 협력업체에서 개발자를 연결해주어 일을 하는데, 그 협력업체와 개발자 간 말썽이 생길 경우 나의 뜻과는 무관하게 좋은 개발자와 일할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그 개발자의 경우도 협력업체 회사와 트러블이 많았고, 사표를 고민하던 중, 예전에 알던 동료가 월급을 더 줄 테니 같이 일하자고 제안을 해왔다고 했단다. 집도 가깝고, 월급도 더 받고... 예전 동료에게 가겠다고 대답까지 해 놓은 상황. 내 눈치만 보면서 언제 이야기를 해야 하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단다. 그런데 내가 아기 내복을 선물한 것이다.
나의 내복 선물을 받고서는 모든 고민을 접었다고 했다. 여러 개발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일하면서 관리자한테 선물을 받기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내복을 집에 들고 갔더니 와이프까지 놀랐다고 했다고 하니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선물하는 것이 흔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그 고백을 들으면서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개발자 그만두었으면 큰일 날뻔할 만큼 우리 파트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인재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내가 내복으로 지출한 돈은 겨우 2만 원도 안 되는 금액이었지만, 이후 나는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큰 것을 얻었다. 바로 사람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일 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아무리 파트너십을 가지고 일을 한다고는 하지만, 일을 대충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소스까지 다 까보고 내 스타일대로 맞추면서 일하도록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는 많이 달라진 것이 느껴진다.
일을 좀 못해도, 비난이 아니라 잘할 수 있도록 격려도 할 줄 알게 되었고, 사람을 볼 때, 일과 실력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한 아버지, 누군가의 한 아들이겠거니 하는 인간적인 면을 생각할 줄 아는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그 대리의 첫아기의 첫돌이 얼마나 소중하고, 기쁜 행사인지 알기에 선물까지 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던 것이고, 프로젝트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인재 한 명을 얻었다.
남자들의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는 굳이 남성 리더십이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자들의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는 굳이 '여성'이라는 단어를 붙여 여성 리더십이라 한다. 뭔가 다르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남자들이 짠 판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한 여자들을 위한 타이틀 같은 것이기도 하다.
여성 리더십도 좋지만, 거기에 덧붙여 엄마의 눈길로 사람들을 다루다 보면 미운 사람보다는 협력할 사람이 더 많이 보이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을 아줌마 리더십이라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