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과 자괴감

by 이틀

생각보다 약발이 잘 받는 것 같다.

입마름은 심하지만, 그건 물을 마셔서 해결하는 중이다.

겨울이라 건조하니 립밤도 열심히 바르는 중이다.


오늘은 죄책감과 자괴감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어릴적 성당에 다닌 적이 있다. 이런 기도문이 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어떻게 보면 양심적인 말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치명적인 말이기도 하다.


나는 어떤 일이 잘 안되거나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자괴감에 빠져든다.

멍청해서 이런 일에 빠졌구나,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바보같이.

물론,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다만, 그 생각에 오래 머무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다.

나는 꽤 오래 머물며, 깊게 머문다.

마치 맑은 물 아래에 가라 앉아 있는 진흙처럼, 평소엔 괜찮다가 누가 돌을 던지면 아래에 있던 흙탕물이 한꺼번에 올라와 다시 가라앉을 줄 모르는 상태라고나 할까.


요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가 많이 회자 되고 있다.

사람들은 김부장을 보며 공감하지만 웃는다. 그 웃음은 비웃음이다. 대기업에 오래다니는 안일함, 승진만 바라는 욕심, 잘못된 판단으로 상가분양에 투자하는 바보. 내가 만약 그 상황이라면, 난 아마 다시 우울증에 걸렸을 것이다. 내가 잘못했다는 자괴감과 함께 사람들의 비웃음, 비난, 이런 것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내가 바보같고, 잘못한 것을 잘 아는데, 누군가 나에게 손가락질 하면 그 무게를 어찌 감당할 수 있으려나.


이번에 내가 우울증에 빠지게 된 이유도 경제적인 이유 중 하나였다. 과거에 잘못된 선택을 했고, 게을렀고, 빠릿빠릿하지 못한 결과로 이 상황에 이르게 된 내가 너무 한심해서 미칠 것 같았다. 돈에 대한 압박은 계속 다가오고 손해가 나는 상황이 뻔한데,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우울했다. 나 때문에, 내가 잘못해서, 나는 왜 이런 멍청한 머리와, 이재에 밝지 못한 성격을 타고 났을까. 삶이 지루해졌다. 재미있는게 하나도 없었다. 마치 게임에서 나만 아이템이 하나도 없는 느낌이랄까.


나는 어릴때부터 ‘네 탓’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엄마는 나 때문에 불행하다고 했다. 너희들만 없었으면 아빠랑 헤어지고 혼자 살 수 있는데, 너희들때문에 내가 어디 도망가지도 못하고 이러고 산다고. 불행하다고.

나는 엄마의 불행이 나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4남매의 맏딸이라 동생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혼났다.

동생들 잘 건사하지 못했다고, 잘 돌보지 못했다고. 첫째인 네가 잘해야 엄마가 나가서 돈을 벌지 않겠느냐고. 너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한참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을때, 나는 불행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제자리이고, 뭔가 열심히 공부해서 선택했는데 늘 사지선다형을 빗겨 나갔다. 누구는 철저하게 공부하지 않아도 막 찍어도 잘 맞던데. 주식도, 부동산도, 회사 승진도.


100%노력해도 이 자리인데,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120%, 200% 노력해도 제 자리일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우울증에 걸렸다.


돌이켜보니…

미래는 그렇게 속단하는 것이 아니었다.

꼭 밝으리라는 법은 없지만, 미래도 항상 같을 것이라는 가설도 성립하지 않는다.


엄마의 불행은 나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선택한 불행이었다. 그 당시 여자가 이혼을 하면 어떤 삶을 살지 알 수 없었으니 엄마로서는 불행하더라도 계속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외모적으로 4남매중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 거의 판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마도 엄마는 나를 키우며 아버지의 데자뷰를 보지 않았을까? 나의 어떤 부분이, 어떤 실수가, 엄마그 그렇게도 싫어하는 아버지의 어떤 모습과 닮아 있어서 엄마를 미치게 했을 수도 있다.


가끔 내가 아이들의 모습과 행동에서 남편과 부딪쳤던 성격과 습관이 나올때마다 걱정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니 이제야 말할 수 있다.

‘내 탓이 아니로소이다, 내 탓이 아니로소이다, 내 큰 탓이 아니로소이다.’


나라고 해서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내 모습도 보이니까. 그래서 많이 노력한다. 아이들에게 자괴감과 죄책감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되는 행동이, 나는 몹시 에너지를 쓰고, 머리를 굴리고, 생각을 해야 할 수 있는 행동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이번 생에 내가 해야 할 노력이라면 기꺼이.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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