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보고서 글이 뜸해졌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내 우울증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계절이 겨울로 안착이 되어서인지, 운동을 계속 해서인지, 약을 먹어서인지,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이 도움이 되었는지, 지금은 정서적으로 좀 안정이 된 상태다.
졸로푸트 복용한지 3주째다.
입마름은 심한데, 이게 겨울이라 건조해서 그런건지 약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약때문이라고 명확하지 않은 것 보면 이 약이 어느 정도 나에게 맞는게 아닌가 싶다.
이번주에는 병원에 가서 약을 좀 더 받아올 예정이다.
약을 먹고 가장 좋은 점은 내가 감정적으로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령 육아에 있어서 사춘기 아이를 대할 때 좀 더 객관적이고 침착하게 대응하게 되더라.
아이가 학원 숙제가 너무 많아서 하나를 쉬겠다고 했다. 하나 줄이면 다른 숙제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몰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래서 하나를 줄였다. 그런데 결과는 같다. 아이는 학원 하나 줄인 시간에 친구들과 밖에서 놀거나 유튜브나 넷플릭스로 시간을 보낸다.
- 그래, 쉬는 시간도 있어야지.
나는 긍정회로를 돌린다.
아이는 숙제를 늘 밀리거나 하지 못한다. 학원에서 숙제를 하지 않으면 클리닉을 받아야 하니 그런 숙제는 그 전날 미친듯이 해내고, 조금 만만한 과외는 늘 미완인 채로 수업에 참가한다. 수업시간에 숙제를 푸는 것 같은데, 가성비로 치면 아주 좋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모른 척 하기로 했다. 아이의 인생이고, 아이가 어떠한 선택을 하든, 나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대로 행동한다.
이전 같으면 불같이 화를 냈을 것이다. 그렇게 불같이 화를 내고, 닦달해도 아이는 내 말을 어차피 듣지 않을텐데, 내 감정이 나를 넘어서는 순간, 관계의 끝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부모님에게 당했듯이. 그 관습을 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데, 항우울제나 우울증을 인식하고 고치려는 노력이 크게 도움되는 것 같다.
요즘 외모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아이는 파마를 시켜 달라고 했다. 8만원이었다. 카드를 내주고, 파마를 한 아이를 보며 조금은 씁쓸했다.
퇴사 이후, 돈이 아까워서 미용실에 가지 못한 것이 한 3년 된 것 같다. 출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외출도 가끔이니 머리에 쓰는 돈이 아까웠다. 그 아까운 미용실 값을 선뜻 내어주었다. 자식이 무엇인가 생각하나 이내 긍정회로를 돌렸다.
아이는 매일 학교에 가니까. 누군가한테 잘보이고 싶으니까. 나는 아니니까. 정말 내가 미용실에 가고 싶다면, 가면 되는 거니까. 미용실에 가지 못하는 게 아니라 가지 않은 것, 그건 내 선택이었으니까.
그리고 희망회로는 돌리지 않았다. 희망회로는 희망고문을 동반한다. 우울증 환자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은 매우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쓸데없는 희망은 품지 않는다. 덕분에 자식에 관한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이것이 어쩌면 축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이건 긍정회로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