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로부트 복용 일주일이 넘었다.
새벽에 선잠 깨는 것은 여전하지만, 감정적으로 안정되어 가는 느낌이다. 이 느낌이 무엇이냐면, 누군가 내 감정을 건드려도 같이 화내지 않는 참을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특히 육아에 있어서 그렇다.
사춘기 남자아이 두 명을 키우면서 나의 감정이 폭발했던 때를 떠올린다.
갱년기로 나 또한 감정기복이 심했고,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한번 감정이 폭주하면 멈출 줄을 몰랐다. 그들도 나처럼 유전적으로 세로토닌이 분비되지 않을까? 무척 두려운 유전이다.
별거 아닌 말싸움이 폭력으로 번지기도 했다.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다른 몸들이 부딪쳤고, 감정적으로 폭발해서 플라스틱 컵을 둘째에게 던졌는데(정확히는 아이에게가 아니라 아이 근처 바닥으로) 플라스틱 컵이 깨지며 아이 얼굴에 튀어 눈 위 눈썹을 길게 찢고 지나갔다. 아이 얼굴에서는 피가 흘렀다. 나는 그제야 놀라 싸움을 멈추었고, 남편이 뛰어나와 나를 밀쳤다. 그리고 말했다.
미쳤어? 너 우울증이야?
그때 나는 약을 먹고 있지 않았다. 한동안 잠잠했다고 생각했었지.
감정이 잦아들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곰곰이 되짚어 봤다. 아이와의 말싸움은 의심의 시작이었다. 게임을 몰래 했다는 정황을 파악했고, 그걸 아이에게 추궁하다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말싸움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지금도 아이의 눈썹엔 그날의 흉터가 길게 남아있다. 볼 때마다 미안하다 이야기해 준다. 아이는 괜찮다고 말하고. 아이는 부모를 쉽게 용서한다.
그날, 의심을 그냥 묻어둔 채로 넘어가도 되었을 텐데. 아이는 몇 번 몰래 게임을 하겠지만, 오랫동안 한 것도 아니었다. 나를 속였다는 의심이 나를 괴롭혔다. 아이가 나를 바보처럼 여기고 있어, 나를 얕잡아 보고 있어, 나를... 이런 의식의 흐름이 나의 뇌 회로를 타고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나는 통제의 욕구가 강하다.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마음이 편안하다. 심지어 미래까지. 나의 불안, 강박증은 그렇게 내 안에 계속 머물고 있다.
얼마 전 큰 아이와 또 부딪쳤다. 주말이었다. 남편과 김장하고 집에 10시쯤 돌아왔다. 둘째만 혼자 집에 있었고, 큰 아이는 집에 없었다. 둘째에게 물어보니 형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친구를 만나러 나간 것 같다고. 또 밖으로 나갔구나, 친구를 만나러 나갔구나 싶었다. 괘씸했다. 나는 아이가 밤에 나가 친구와 만나는 것이 못마땅했다. 밤에, 사춘기 소년들이, 공원에서... 그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불안하고 싫었다. 내 아이가 마치 비행청소년이 되는 것 같은 이미지랄까.
10시 30분이 넘어가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불안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문자를 했다. 집에는 10시 이전엔 들어왔으면 좋겠고, 동생을 혼자 남겨두지 말았으면 좋겠고, 밖에 친구를 만나러 나갈 거면 먼저 이야기는 하고 나갔으면 좋겠다고.
11시까지 기다려도 들어오지 않아 결국 포기하고 잠을 청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카톡 알람이 하나 도착했다. 큰 아이 영어과외선생님이었다.
-어머님, OO이 오늘 좀 늦게까지 공부했어요. 방금 출발했습니다.
아...
나는 무엇을 한 것인가.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의심을 했던가.
메시지를 지우기 위해 핸드폰을 뒤적였지만, 이미 전송된 문자를 취소할 수는 없었다. 아이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일단 아이와 부딪치지 않기 위해 자는 척을 했다. 다행히 아이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문자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잠을 대충 잔 것 같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니 아이에게 폭풍 문자가 와 있었다. 나를 괴롭히는 문자들. 그도 호르몬의 지배를 받아 폭발한 증거들이 남아 있었다.
다행히 아침에 다시 화해를 했다.
엄마가 미안하다고. 오해해서. 의심해서.
아이는 지금 중요한 시기이니 필요한 것 이외에는 감정적을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이미 스트레스가 많다고 했다.
알았다고, 무조건 미안하다고 말해주었다.
두 사건을 뒤돌아보니 나는 아이들을 믿지 못했다. 너희의 선택을 존중해,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선택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보고 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잘 개척해 가는 중인데, 나는 통제하고 싶은 것이다. 바보처럼.
사춘기. 그들은 이제 그들의 인생을 스스로 통제하는 법을 배워가야 하는데, 나는 그 기회를 뺏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엄마인 내 인생도 제대로 통제 못하는데, 누구의 인생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단 말인가.
오늘부터 나는 다짐한다.
아이들을 믿자.
아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고.
잘해나갈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