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약을 먹지 않는 것이 다행인걸까

by 이틀

항 우울제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먹어야 한다.

졸로푸트는 매일 오전 일정한 시간에 먹어야 하는데, 간혹 아이들 아침 챙기고, 집안 일하다가 먹는 걸 깜박할 때가 있다.


졸로푸트는 반감기가 다른 약보다 짧다. 24~26시간 이라고. 그러니까 하루를 건녀면 48시간이니 그 안에 내 안의 감정을 건드리는 어떤 일이 생기면 아주 골치아파지는 것.


지난 주말엔 가족들이 날 무시한다는 생각에 또 버럭했다. 식구들에게 버럭 해 놓고 한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동생과 햄버거를 나누어 먹으라는 나를 무시한 큰 아이도 밉고, 내가 사준 신발이 별로라고 말한 남편도 짜증나고, 밥 먹으라고 불러도 오지 않는 둘째도 싫었다. 결국 볶음밥을 하다가 후라이팬을 던지듯 식탁에 내려놓고 “내가 동네 북이야?” 라고 말했다. 식구들이 나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감정 컨트롤이 되지 않을때는 혼자 있어야 한다.

방에서 한동안 나오지 않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약을 먹지 않았더라. 그것도 이틀이나 깜박한것.


겨우 이틀 안 먹었다고 이러기야?

푸록틴은 한 일주일 안 먹어도 끄덕없던데. 졸로푸트는 넘 짧구나, 느꼈다.


먹는 시간을 좀 당겨야 할 것 같다.

8시는 너무 바쁜 시간이다.


얼마전 갱년기 우울증을 앓는 지인이 고민을 털어놓길래 우울증 약을 한번 먹어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그녀도 사춘기 아이때문에 힘들고, 남편 지병때문에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는 우울감때문에 힘들어했다.


약을 먹으면, 잠깐 반짝하면서 힘을 낼 수 있다고,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고, 그러면서 나도 이미 먹고 있다고 고백도했다. (지인에게는 왠만하면 약을 복용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지인은 깜짝 놀라면서 그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럼 다행이고.

내가 할 말은 그것 밖에 없었다.

독약을 권한 것도 아닌데, 놀랄 일인가 싶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항우울제는 막다른 골목에서 복용해야 할 것인지도 모르니까.


그러다 얼마전 그 지인과 이야기를 다시 나눌 기회가 있었다. 갱년기 우울증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면서, 무엇보다 우울증 약을 먹지 않고 그 시기를 지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약을 먹으며 그 시기를 지나는 것과, 약을 먹지 않고 그 시기를 지나는 것이 이렇게나 크게 차이날 일인가? 스스로 그 시기를 이겨냈다는 것은 칭찬할만한 일이지만, 약을 먹지 않고 견뎌냈다는 것이 훈장은 아니지 않을까.


감기 걸렸는데, 약 안먹고 온전히 끙끙 앓아낸 사람과, 약 먹고 견뎌낸 사람이 있다고 치자. 약을 먹지 않고 감기를 이겨냈다고, 정말 장하다고 말할 일일까.


아직도 우울증 질환이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인식되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였다.


브런치에 우울증 보고서를 쓰기는 하지만, 내 지인들은 몰랐으면 좋겠다. 나를 나약하게 바라보고 측은하게 바라보며 동정하는 모습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졸로푸트 먹으며 나대로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으니.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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