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다는 감각

by 이틀

나의 우울증 체감지수가 정량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간혹 쇼핑리스트를 보면, '아, 내가 지금 우울하구나' 혹은 '조심해야 할 때인가보다'라는 걸 직감한다.


우울할수록 사고 싶은 것이 많아지고, 실제로는 결제버튼을 누른다. 집에 이미 넘쳐나고 있는 물건인데도, 싸니까, 쿠폰을 받았으니까, 1+1이니까 하는 쇼핑몰의 동기부여 마케팅이 나의 손가락을 움직여준다. 쇼츠와 릴스에서 보여주는 아름다운 냄비와 접시에 마음을 빼앗겨 나도 모르게 쇼핑몰을 들락거리며, 살까말까에 대한 고민을 수십번 하고 있다. 그냥 막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이들 교육비로 이번달 가계부도 이미 마이너스인 상황이라 쉽게 마음을 먹지 못한다.


꼭 필요한 걸까?

사지 않으면 후회하려나?

내일 가격이 올라가면 어쩌지?

품절되면 어쩌지?

더 싼 곳은 없을까?

할인하는 카드는 없나?

쿠폰을 더 나누어주는 곳은 없나?

만약 사면 그것들은 어디에 놔두지?

이미 좁은 주방에 물건들이 가득 차 있는데?


이렇게 시간을 흐려보낸다. 사실 없어도 사는데 지장없는 물건들도 많다. 다만 조금 불편할 뿐, 다만 조금 예쁘지 않고 낡은 물건을 가지고 있을 뿐. 그리고 이미 산 것들 중 잘못샀다고 판단 된 것들이 있다. 그럼에도 반품도 귀찮아서 그냥 끌어안고 있는, 어쩌면 미래에 쓸 지도 모르는 물건들을 가지고 있다.


명절을 지나면서 외로움과 우울감이 좀 몰려왔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커피를 많이 마시다보니 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상태가 몇일 지속되었다. 그러다보니 쇼핑을 하게 되었다고 핑계를 대본다.


우울감은 왜 쇼핑을 부르는 걸까.


AI에게 물어보니 이 증상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무언가 갖고 싶고, 소유하고 싶다는 것은 무기력감과는 다른 의미로 좋은 징조라고 볼 수도 있다고.


내가 관찰한 나는, 무기력하고 우울할때 쇼핑이 증가한다. 그러나 마음껏 하지도 못한다.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니까. 재정적으로 여유롭다고 느꼈던 때가 있었나?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없다고 느끼겠지?


우울할때 쇼핑을 하는 이유는 잠깐의 도파민을 느끼기 위해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내 인생에서 나도 선택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잠깐의 자유를 선사한다. 새 물건을 받거나 없던 물건이 생기면 내 생활에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즉, 새 마음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조그만 파동을 느끼고 싶은 나의 무의식 아닐까. 이런 느낌을 쇼핑 말고 다른 곳에서 느끼면 좋을텐데.


다른 것들은 너무 어렵다. 무기력이 나를 지배할 때는 특히 더 그렇다. 글쓰기도 어렵고, 운동도 어렵고, 돈을 버는 것도 어렵다. 왜 더 나은 상태로 가려고 하는 것들은 다 어려운가.


고르고 골라서, 장바구니에 며칠째 담아놓고 결심이 섰을 때 산 쇼핑물품이 현재 배송 중이다. 그럼에도 나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무엇이? 내가, 내 생활이.


예뻐서 사고 싶은 물건 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사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면 사는 걸로.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하는 걸까? 그 시간동안 아마 쿠폰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최저가가 품절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괜찮다. 기다려도 괜찮다고 나에게 말한다. 없어도 괜찮은 것이라고 억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라고. 그 시간을 좀 써도 괜찮다고. 돈은 부족하지만, 시간은 있으니까. 시간을 좀 쓰자고, 나에게 말한다.


우울이 지나간 자리에 아직 그 마음이 남아있다면, 그때는 더 밝은 마음으로 기쁘게 살 수 있을테니까.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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