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약을 복용한지 4개월째다.
아직까지 부작용 없이 잘 먹고, 잘 적응하고 있다.
명절을 지나면서 살짝 우울증이 다시 올라오는가 싶더니, 시간이 지나니 괜찮아졌고, 약발이었는지 생각보다 감정의 기복없이 잘 보냈다.
어릴때부터 명절을 좋아하지 않았다.
설을 지내고 오면 아이들마다 설에 세뱃돈을 얼마 받았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자랑을 했는데, 나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설에 세뱃돈을 주는 어른도 없었고, 가족들끼리 모이지도 않았다. 맏며느리였던 엄마는 어떤 연유인지, 시가에 발길을 끊었다. 명절엔 나와 아버지만 시골에 내려갔다. 크면서는 나도 내려가지 않았고, 명절이란 그저 달력에 빨간색이 칠해진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난한 집의 명절의 모습은 얼마나 쓸쓸한지… 명절에 TV에서 방영 해주는 주말 영화가 유일한 낙이었다.
결혼 후, 나는 무의식적으로 감추며 기대했던 것 같다. 나의 어린시절 명절을 감추고, 내가 꿈꾸던 명절의 모습을 가꿀 수 있으리라 착각했다. 남들처럼 지내는 명절의 모습을 내심 기대를 했던 것일까? 아니면 내 아이들에게 내가 원했던 명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말 없이 전을 부치고, 나물을 하고, 장보기를 하고, 새벽에 일어나 차례상을 차렸다. 사람들 북적북적하고, 아이들이 뛰어놀면, 나의 명절이 좀 덜 쓸쓸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결혼후의 명절은 쓸쓸함을 넘어 나에게 폭력처럼 느껴졌다.
말없이 시키는 것을 모두 해내니, 명절에 일하는 며느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 고개를 들어보니 동서지간에도 일 시켜먹기 딱 좋은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걸 깨닫고 명절 노동을 거절하기 시작했다.
거절하니 명절이 간소화 되었다. 명절 두 번 중 한번은 식사만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걸 보고 친한 친구가 말했다.
“야, 그거 일할 사람 없으니까 그만하는 거잖아.”
일할 사람이 결국은 나였다는 것인데, 친구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왜 이 세상은 모두 그렇게 폭력적인가. 왜 그렇게 나약한 나를 이용하지 못해서 안달들인가.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나의 나약함 때문인것 같아 자괴감이 들곤한다.
게다가 친정쪽도 나에게 기댈지언정 무언가를 베푸는 쪽은 아니라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는 것은 어릴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명절에 살뜰한 보살핌을 어디서도 받지 못하니 나는 늘 외로움을 느낀다. 어릴적 그저 빨간날에 불과했던 명절에 지하 셋방 구석에 앉아 TV채널만 돌리던 어린 내가 아직도 마음 속에 웅크리고 있는 기분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냥 그런 상황이었고, 이미 지나간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명절이면 그 외로운 아이가 튀어 나온다.
우울증 환자의 명절이라는 제목을 달고 보니, 내가 정말 환자가 된 기분이다. 겉으로 보기엔 정말 멀쩡한데.
그냥 약을 먹고 있을 뿐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외로움은, 말해봤자 해결되지 않는 외로움이라는 것을 아니 그냥 버틸 뿐이다.
우울증 환자라기보다는 그냥 버티는자…라고 해야 할까.
나는 약을 끊을 수 있을까?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 걸까. 빈 마음은 절대 메꾸어질 것 같지 않은데, 약 없이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