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가장 많이 중점을 둔 것은 소통이었다. 아이가 고민을 이야기 하고 같이 들어주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이미지, 엄마를 멘토로 생각하는 아이, 얼마나 멋진가. 이런 꿈은 그저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걸 아들을 키우며 알았다. 물론 사춘기가 오기까지 그들은 제법 조잘거리며 말을 잘 했다. 누가 아들 낳은 엄마들을 불쌍하게 보는 거야? 우리 애들 이렇게 말도 잘하고 귀여운데! 라는 우월감이 있었다. 그러나 곧 그 우월감은 사춘기 호르몬과 함께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사춘기가 되자 그들은 방문을 닫았고, 필요한 말만 했다. 나도 대화를 부드럽게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일명 대문자 T라 할 말만 하고, 결론만 말하는 스타일이었다. 누군가는 나보고 답정너(답이 정해져 있는 너)라고 까지 했다. 그러니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들과 이야기가 잘 될리가 없었다.
아이를 키워본 집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엄마표 학습을 시도해봤을 것이다. 엄마표 학습의 가장 큰 장점은 소통이라고 했다. 워킹맘 생활을 하면서 그나마 아이들과 잘 소통했던 것은 이 엄마표 학습 덕분이었다. 아이들에게 매일 일정 분량의 수학문제를 풀게 했고, 퇴근 후에는 피곤해도 잠자리 독서를 해주었다. 아이들도 내가 읽어주는 책을 좋아했다. 책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엄마가 읽어주는 행위자체를 좋아했던 것 같다. 한 권만 더 읽어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에게 "엄마 피곤해, 오늘은 그만~"이라는 말을 하며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니, 하면서 말이다. 역시 내 아이들은 달라, 하는 우월감이 이때도 있었던 것 같다.
부모가 되면 많이 겸손해진다고 했던가. 큰 아이는 사춘기가 되자 책을 멀리했다. 이미 유튜브나 인터넷에 많은 정보가 있는데 굳이 책을 통해 정보를 얻어야 하느냐가 아이의 논리였다. 공부 계획도 아이에게 스스로 체크하도록 유도했지만, 아이는 “어차피 계획은 틀어지게 되어 있는데, 왜 계획을 세워야 해? 그리고 어떻게 할 건지는 다 내 머릿속에 있어”라고 말하며 내 의도와는 점점 다르게 자랐다. 그렇다고 공부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공부에 관심이 없으면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아이는 엄마도 대학을 나왔으면서 왜 자신에게는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되느냐고 말하느냐며,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는 잔소리만 들었다. 그냥 내 말을 듣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대학을 가든, 가지 않든 그건 자신의 인생이니 엄마는 끼어들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전해져왔다.
그건 맞는데...나는 왜 아이를 못 믿는 걸까.
아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름대로 시험을 치루고,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결국 나는 아이의 습관이나 인생 방향에 대해 조언을 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인간이 된 것 같았다. 아들에게 엄마 멘토? 지나가던 개가 비웃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대화의 단절 조짐은 초등학교때부터 있었다. 그들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 하지 않았다. 아이와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다른 질문도 던져 봤다. 오늘 담임 선생님이 무슨 옷을 입고 오셨는지, 옆에 친구는 오늘 어떤 옷을 입었는지. 이 질문에 당황하는 아이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모르겠는데?”
아이의 얼굴은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가 있지?'라는 의문 가득한 얼굴이었다.
"아니, 하루 종일 교실 안에서 같이 있는 담임선생님과 짝궁의 옷 색깔도 몰라?"
"그걸 어떻게 알아?"
하기사 엄마 헤어스타일이 바뀐 것도 모르는 아이들 아니었던가. 내가 너무 나갔다.
반대로 내가 그들의 세계에 발을 들이밀려고도 노력해보았다. 남자아이들은 소통하려면 엄마도 게임을 좀 해야 한다고 해서 로블록스를 핸드폰에 깔았다. 둘째는 로블록스를 설치하는 나를 보며 또 어떤 감시를 하려고 그러느냐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너네가 하도 재미있어 하니까 얼마나 재미있는지 엄마도 한 번 보려고.”
한때 스타크래프트에 푹 빠져 지냈던 터라, 그깟 게임 뭐 어려울 거 있겠나 싶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게임을 하는 것도, 게임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도 실패했다. 로블록스는 한 가지 게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게임 플랫폼이었고, 게임 속 화면 자체가 정신없어서 무엇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랐다. 그 뒤에 브롤스타즈라는 게임이 또 유행했지만, 그것도 접근하는데 실패했다. 순발력 있게 쫓아가기엔 내 시간도, 열정도 모자랐다. 아이들 뒷바라지만 하면 좋겠지만, 나도 내 일이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먼저인 엄마라 게임에 시간을 소비하면서까지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아이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당장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니,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 위로하면서.
그러나 반전이 있었다.
사춘기 아이와 가장 대화가 잘 되는 공간은 차 안이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각자 앞을 본 채로 이야기를 하면 의외로 속마음을 잘 이야기 했다. 캠핑을 가면서, 아이 학원 라이딩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아이에게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 수행평가에서 아쉬운 결과를 받았다는 것, 친구랑 문제가 있었는데 속상했다는 것, 가고 싶은 학교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는 것 등, 깨알같은 정보를 아이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내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서 아빠를 만났고 결혼에 이르렀는지, 엄마의 학교 생활은 어땠는지, 회사 생활은 어땠는지 등, 그런 것을 이야기 해주면서 지금 점수가 좀 안 좋다고해서 아주 실패는 아니라는 것, 앞으로 너의 미래에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걸 넌지시 전해 줄 수 있었다. 식탁에서 이야기하면 꼰대소리 들었을지도 모를 그런 이야기를, 아이는 묵묵히 들으며 차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에 잠겼다는 뜻이었다.
엄마표 학습은 실패했고, 딸을 가진 엄마들만큼 소통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자신의 마음을 엄마에게 전달했을 것이라 여긴다. 아이와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소통 방식의 문제였지 소통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소통이 된다는 것은 아이를 그만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고 신뢰를 쌓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나는 불안해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와 소통되지 않으니 아이를 신뢰할 수 없었고, 아이도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아무 문제가 없으면 그 생활도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학교와 공부, 입시라는 트랙에 올라서는 순간 소통과 신뢰와 관계가 한꺼번에 맞물려 돌아가며 누구의 잘못인지도 모른채 서로를 원망하게 되었다.
아이는 갑자기 중2 겨울에 특목고를 가고 싶어했다. 해봐서 나쁠 것 없으니 도전하자 싶었고, 내심 기쁘기도 했다. 그러나 내 기쁨은 잠시뿐, 곧 아이와 엄청난 불화가 시작되었다. 스스로 동기부여를 받았으니 열심히 하겠지 싶었지만, 그런 기대는 접었어야 했다. 우리가 매년 다이어트를 결심하면서 치킨을 물리치지 못하는 것처럼, 아이도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지만 놀고 싶은 유혹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게임과 각종 유튜브에 유혹 당하고, 자괴감을 가지곤 한다. 자괴감도, 실패도 본인 몫인데,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속이 탔다. ‘너 그렇게 하면 이번 시험 망할 것 같은데?’ 이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내려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참다 못해서 “그만둬라”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한 것 같다. 아이는 “해라”도 듣지 않았지만 “하지 마라”도 듣지 않았다. 자신은 끝까지 도전할 거라고 했다. 아이는 몇 번의 부침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끝까지 밀어부쳤다. 첫 번째 원하는 학교에는 탈락했지만, 두 번째로 원하는 학교에는 합격했다. 그동안 내가 해라마라 했던 과정보다 본인이 스스로 선택한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갔다.
그 과정을 거치며 아이도 성장했지만 나 또한 엄마로서 많이 성장했다. 아이 학업에 대해 욕심이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러니 엄마표 학습이다 뭐다 책도 사서 봤을테니까. 나도 모르게 욕심을 내세워 아이를 재단하고 평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부모의 모습 속에 내가 있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끝까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어떻게 키워도 아들은 자신의 인생대로 크겠구나 싶었고, 마음을 많이 내려놓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들의 힘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학원 라이딩을 해주며 아이가 말했다.
“내가 갑자기 특목고 가겠다고 해서 엄마가 바빴네. 그치?”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다행히 운전을 하고 있어서 눈물을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아이는 둘러 말한 것이다. 수고 했다고, 엄마의 수고를 알고 있다고,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다고.
우리의 소통은, 이렇게 에둘러 돌아간다. 그래도 좋다. 아이의 선택에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어서. 그럼 된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