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큰 아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나의 이름은 <가족 구성원 중 서열 1위> 였다. 아이가 사춘기가 오기 전, 아이들 스마트폰을 모두 내가 제어하고 있었다. 일정시간만 허락해주고,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을 제한 했다. 게임은 주말에만 할 수 있었다. 그런 제한은 가족 구성원중 한 명이 관리자가 되는 것이고, 대부분 내가 담당했다. 이런 나를 두고 큰 아이가 가족 구성원 중 서열 1위라고 지칭한 것이다.
처음 그 이름을 발견했을 때 나는 웃으면서 조금은 자랑스러워했던 것 같다. 남편을 제치고 내가 서열 1위라니! 내가 가장 무서운 존재이면서 가장 의지가 되는 존재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물론 이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어쩌면 그때 아이는 나를 약간은 조롱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열 1위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 드는 사람, 엄마라는 이미지보다는 통제하려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이 더 컸을 것이다.
아이가 내 키보다 훌쩍 커질 무렵부터 아이는 내 물음에 “왜 안되는데?”가 자주 등장했다. 내가 통제하던 스마트폰의 울타리를 하나하나 무너뜨려 그의 울타리를 세우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의 서열1위도 무너졌다. 그것을 사춘기 반항이라고 보기엔 좀 억울한 면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도 아닌 나에게만 더욱 예민하게 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동생이었다. 남편에게는 함부로 덤비지 않았다. 아이와 한바탕 하고나면 내가 이 집안 샌드백인가 싶고, 별것 아닌 실수로 동생을 쥐잡듯이 하는 걸 보면 내 속이 다 뒤집어졌다.
남자아이들의 세상은 서열에 민감하다. 그것은 다소 본능적인 면도 있는 것 같다.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들보다 게임에 더 심취한다. 게임은 이기는 즉각적인 서열을 보상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직장생활 할때 여자보다는 남자들이 더 많은 조직에서 일을 했었다. 그때 내가 파트리더가 되며 아랫사람으로 프리랜서를 고용했는데, 상사가 나보다 나이많은 사람은 뽑지 말라고 조언해주었다. 나보도 컨트롤 하기 힘들지 않겠냐고 했는데 나는 괜찮다고, 일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오판이었다. 내 밑으로 들어온 나이많은 프리랜서는 내 말을 곧잘 무시했다. 자신이 경력이 더 많다는 뉘앙스를 수시로 내비쳤고, 잘못한 점을 지적하면 무시하느냐는 말을 했다. 그리고 다른 부하 직원들을 꼬셔서 나를 왕따시키는데 앞장섰다. 내가 팀원들과 갈등으로 고전을 하고 있을때 상사가 나섰다. 결국 이러저러하게 인원 조정이 끝났을 때 나의 상사는 내가 조언하지 않았느냐고.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보다 어린 여자를 리더로 모시는 걸 싫어한다고 했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한 건 뭔가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만큼 그 말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같은 목표를 가지고 일을 하는데 그런다고? 이런 나의 생각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새로 영입한 프리랜서가 있었는데 같이 프로젝트 리뷰하는 첫 자리에서 여러 번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그런데 그 반대의견이 합리적이라기 보다 다소 우기는 편에 가까웠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속으로 자신감이 넘치거나 혹은 잘난체를 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했다. 결국엔 프로젝트 매니저가 크게 화를 냈다. 내가 생각하기에 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화를 냈다.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은 맞는데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싶었고, 회의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그 개발자는 결국 입을 다물고 회의는 잘 끝났다. 그런데 나중에 술자리에서 프로젝트 매니저가 하는 말이 충격적이었다.
“그 사람 나 간 본 거야. 만만하게 볼 상대인가 아닌가 알아보려 했던 거지. 그럴때는 밟아줘야 해. 다시는 넘보지 못하도록.”
내가 눈치가 없고 조직에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 그런지, 여자라서 그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아들들을 키우면서 이 두 에피소드가 때때로 생각난다. 물리적으로 힘이 본격적으로 세지기 시작하는 사춘기에 들어서며 가장 만만한 대상은 엄마인 나였다. 아이가 나에게 반항할 때마다 ‘아, 아이가 나를 간 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가 나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구나, 반항하고 있구나가 느껴졌다. 힘의 논리로 보면 간은 보나마나였다. 아들의 반항을 맞받아치려다 늘 싱겁게 나의 패배로 끝나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의 모든 의견을 남편을 통해 아이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내 말은 일단 반항부터하는 아이였지만, 남편의 말이라면 곧잘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반항의 시기가 다가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아이와 갈등을 처음 일으킨 날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매번 말했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
남자 아이의 사춘기가 좀 더 격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 이 서열의 붕괴때문이 아닐까. 그렇다고 우리가 권위주의적인 부모라는 생각은 없었지만, 아이의 무시는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절한 훈육이 어려워지는 시점이 사춘기였다. 많은 것을 내려놓고 아이에게 질 줄도 알아야 하는 시기였다.
이 서열의 문제는 부모뿐만이 아니었다. 형제간의 서열도 쉽지 않은 것이었다. 대부분의 남자 형제들은 형을 어려워한다. 나이 차이가 많건 적건, 몇 달 혹은 몇 년 먼저 태어난 형이 발달도 빠르며 할 줄 아는 것도 많은 것은 사실이다. 자신보다 잘하는 것이 많고, 덩치가 크면 그들은 함부로 덤비지 않는다. 그러나 사춘기가 되면서 각자의 발달 상황은 달라진다.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시기라고나 할까. 성격도 다르고, 생긴 것도 달라진다. 그러나 둘은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하며 자란다. 형은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동생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런저런 조언을 한다. 자신이 실수를 했으니 너는 실수하지 말라는 애정어린 말이 뒤따르지만, 그렇다고 둘째가 고분고분하게 형의 말을 듣는 것은 또 아니다. 형에 대한 감정을 쌓아 놨다가 한번씩 터지면 싸움이 되는 것이다. 말싸움으로 끝나면 다행인데, 감정이 격해지면 주먹다짐까지 갔다. 결국 중간에 말리지 않으면 큰일나겠다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나는 공평하게 판단을 내리려고 하지만, 둘은 언제나 억울해한다.
남자아이들을 키우며 기준점이 된다는 것이 무척 어렵다고 매번 느낀다. 그들이 나의 권위에 도전해도 고민이고, 도전하지 않아도 고민이다. 어차피 세상은 경쟁과 서열이 중심인 세상 아닌가. 그들이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고, 사회인으로 잘 크려면 서열 의식을 가지는 것이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들의 서열 의식을 일부러 깨거나 내가 서열 1위로 다시 등극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다만 남자들이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되, 그들의 서열의식이 또다른 열등감이나 우월감으로 자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핸드폰 속에 저장된 서열 1위는 곧 사라졌지만, 위로받고 싶을때 연락하고 싶은 1위는 빼앗기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