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어야 한다고 해서 꼭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직장인으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 이 질문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나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당시엔 취업이 먼저였다. 마치 대학입시에서 중요한 것은 나의 적성보다는 점수에 맞추어 대학이라는 입시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 먼저였듯이,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때, 입사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 먼저였다. 적성은 그다음 문제였다. 내 기억 속에 대학이라는 입시 관문을 통과하고 나서 한동안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내 적성이 무엇인지, 그때부터 생각을 했으니까. 직장에 입사하고 나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었다. 상사가 힘들 때마다, 일이 힘들 때마다, 동료가 힘들 때마다, 매일 아침 출근하기 싫을 때마다, 불쑥 '적성에 맞지 않아'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생각은 어쩌면 도피하기 위한 핑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직장인 1년 차에 투잡이라는 걸 했다. 주말에 길거리에서 옷을 팔았다. 팔면서 깨달았다. 나는 장사나 사업체질은 아니라는 것을. 갑질 하는 고객에게 웃으면서 대하기도 어려웠고,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다 보니 자리 텃세도 장난이 아니었다. 옷이 잘 팔리는 날에는 신났지만, 옷이 잘 팔리지 않은 날에는 우울했다. 기분과 감정이 폭이 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옷을 고르는 안목이 나에게 없었다. 잘 팔리는 옷을 골라야 하는데, 나에겐 잘 팔리는 옷을 고르는 재주가 없었다. 미적 감각 제로, 패션 감각 제로인 내가, '사업'이라는 욕심으로 시작을 했으니 장기적으로 재미있을 리가 없었다. 이것도 훈련으로 극복할 수 있다면 할 말이 없지만, 훈련을 견디는 노력도 결국은 어느 정도 내가 견디겠다는 의지가 필요하 것이다. 나는 돈을 왕창 벌 욕심만 있었을 뿐, 직업에 대한 의식은 없었다.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회사로 돌아와 1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사원에서 차장으로 승진을 했고,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낳았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직장인이다. 평일에 내가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낸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을 하고, 결정을 하고, 프로그램을 만든다. 18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끔 이상한 상사를 만나서 힘들고, 일이 힘들 때도 있고, 밑도 끝도 없이 회사가 힘들게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나는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처음엔 생계로 그만 둘 생각을 하지 못했고, 익숙해져서 그만 둘 생각을 하지 못하다가, 이제는 직장이 내 운명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끔 직장인으로 산다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 자기 계발서나 자본주의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직장인은 자본주의의 노예 혹은 독립할 용기가 없어서 안주하는 캐릭터로 비추어지곤 한다. 나 또한 한동안 내가 정말 그러한가? 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런 고민이 아니더라도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위기는 여러 번 왔다. 다행히 타의가 아니라 자의에 의해서 그만두려는 의지가 발휘되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몇 번의 혼란기를 거쳐 지금 생각하는 직장인으로 산다는 의미는 그냥 삶이다. 삶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누군가는 사업가로서의 삶, 장사꾼의 삶을 살기도 하고, 누군가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산다. 나는 직장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각자 선택한 삶이고, 남의 삶이 내 옷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직장인이라고 해서 모두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직장 밖에서 내 능력을 발휘하는 것보다 직장 내에서 내 능력을 더 잘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서 시키는 것만 했던 적도 없다. 대부분 내 노동의 가치가 회사에서 인정해주는 가치보다 높다고 판단될 때,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물론, 나도 그랬던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세상 밖으로 나가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인정해주는 가치를 얻기는 쉽지 않다. 내가 선택한 세상이 직장인지, 직장 밖인지 다를 뿐, 내 능력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건 똑같다는 이야기다.
꿈이 있다면, 직장인으로 산다는 것에 좀 더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꿈은 처음부터 밥벌이가 되지 못한다. 직장인의 좋은 점은 사회 초년병에게 밥을 먹여줄 월급이라는 것을 준다는 것이다. 꿈만 꾸었다가는 꿈을 포기할 확률이 높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꿈을 이루기 위해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 꿈을 이루기까지 버티기 위한 돈. 그 돈을 직장이라는 곳에서 준다. 일을 함으로써. 꿈을 이루기까지 훌륭한 현금흐름을 발생시키는 곳이 직장이라는 곳이다. 직장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아니다. 직장과 나는 협업하는 관계다. 인생의 협업. 나는 직장에 노동을 제공하고, 직장은 나를 키운다. 나의 꿈도 키운다. 그런 면에서 직장은 훌륭한 조력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