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18년간 지속해온 비결

성실함은 자괴감을 넘어섰다

by 이틀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18년간 하는 비법


몇 년 전 회사는 기술지향적인 회사로 변모를 꾀했다. 첫 번째로 바뀐 변모는 회사 내 기술시험 제도를 만든 것이었다. IT 회사답게 각종 언어와 시스템설계 시험 제도를 마련했다. 그에 맞추어 다양한 교육제도를 마련해 직원들을 교육했고, 시험 점수를 연봉 제도와 연동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그 후 매년, 직원들은 직급을 가리지 않고 기술시험을 치렀다. 사원에서부터 팀장까지, 정년퇴임을 얼마 앞두지 않은 부장님들도……. 예외는 없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회사에서 기술시험을 치렀고, 그 결과가 나왔다. 시험은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였다. 시험과목은 개발 언어와 시스템 설계였다. 오전, 오후로 나누어진 시험에 점심도 굶고 치렀지만, 뭐 예상대로 점수는 바닥이었다. 점수만 보고 화면을 닫았다. 시험 결과에는 왜 틀렸는지, 나의 답은 무엇이 문제였는지 세세하게 알려주었지만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연봉에 영향을 주는 평가점수와 연동된다고 하니 아마도 좋은 평가 받기는 글렀을 거다. 시험 잘 본다고 연봉을 얼마나 높여 받으려나 싶은 마음도 있다.


제도가 시행되고 첫해에는 결과가 나오면 자괴감이 들었다. 이 실력으로 지금까지 IT 밥을 먹었나 싶기도 했다. 여태까지 내가 설계한 시스템들은 무엇인가 싶기도 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사용하는 시스템인데,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싶었다.


기술시험이라는 제도가 생기고 가장 첫 시험이 어려웠다던데, 난 첫 시험 이후로 계속 점수가 하락세였다. 다시 높아질 줄 알았으나, 역시 나의 실력은 바닥이었다. 왜 계속 점수가 낮아지는지 모르겠다고 하니 누군가 알려주었다.


"시험공부를 안 하니까 그렇죠. 시험은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거예요."


그렇다. 난 시험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 시험공부할 시간도 없었을뿐더러 시험공부하기도 싫었다. 시험공부라면 학창시절부터 죽어라 하기 싫던 분야다. 그러니 회사에서 일하면서 육아하면서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내가 대학을 가고 대학원을 간 것은 기적이었다. 기술점수를 보니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것도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수는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게 낮았다. 기적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 어려운 IT 분야를, 적성에도 맞지 않으면서 용케 18년이나 버텼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스스로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어려운 걸 20년 가까이했단 말이야? 이걸로 밥도 먹고 아이들도 길렀단 말이지? 난 정말 대단해.'



성실함은 자괴감을 넘어섰다


참 무식하게 성실했다. 남들이 1시간이면 짜는 코딩을 하루 종일이건 며칠이건 걸려서 해내긴 했다. 남들이 하루 만에 이해하는 코딩 방식을 인터넷 찾아가면서 어쨌든 해결을 해내긴 했다. 한 번은 며칠 동안 풀지 못했던 코딩을 코딩 천재의 도움을 받아서 반나절 만에 해결한 적도 있었다. 며칠 동안 헤매던 것을 한 방에 해결하다니…….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런 자괴감에도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나는 다시 출근을 했다. 나의 성실함은 자괴감을 넘어섰다.


프로그램 설계에는 능력이 없었지만, 성실하게 버티는 능력 하나는 타고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낮은 점수에도 갑자기, 나 자신이 한없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어려우면 도망갈 법도 한데, 도망가지 않았다. 내가 코딩한 시스템을 실제 운영환경에 반영할 때마다 긴장했다. 시스템이 오픈할 때마다 가슴 떨리곤 했다. 혹시나 내가 개발한 시스템에서 에러가 날 까봐 스트레스가 많았다. 대형 시스템을 오픈할 때는 한 달 전쯤부터는 스트레스에 잠도 설쳤다. 그럼에도 18 년간 버틴 이유는 스트레스보다 돈 없는 것이 더 무서웠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18 년간 한 비법은 '돈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회사를 성공하기 위해서 다니기보다 아직도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딱 잘리지 않을 만큼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렇다고 회사가 싫다거나 일이 싫은 건 아니다. 일하는 것도 좋고, 회사도 좋다. 회사가 나를 사랑하던 말던 나는 회사가 좋다. 언젠가 버림받아 실연당한 여자처럼 길거리에서 울고불고 할지라도 지금은 회사가 좋다. 가난해지지 않을 만큼 적당한 돈을 주니까.


회사의 밀당, 나의 밀당


20여 년간 회사는 계속 변화해왔다. 어느 날은 컨설팅의 이미지를 내세워 고객 가치를 추구했고, 어떤 날은 융합 기술을, 어떤 날은 관리 기술을 내세웠다. 18년 동안 변하는 회사의 모습에 나는 지루할 틈이 없었다. 회사는 고객의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회사가 고객의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회사는 고객의 사랑의 크기만큼 돈으로 돌려받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회사도 무조건 고객에게 퍼주는 사랑은 하지 않는다. 너무 퍼주어도 오히려 매력은 떨어진다. 회사도 고객과 밀당을 한다.


나도 적당한 선에서 회사에 나의 애정을 보이고 있다. 사랑하는 회사이니까. 사랑은 밀당 아니던가. 회사와 적당히 밀당을 하는 것은 회사생활을 재미있게 해주었다. ‘적당히’라는 타협안을 내놓으면서 회사생활에 활력을 찾기도 했다.


회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회사를 리딩하고 이끌고 나가는 사람도 필요한 반면, 나처럼 한자리를 오래 지키며 자신의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본다. 18년간의 직장생활을 돌이켜 보건대, 잘난 인재들은 다른 회사로 스카우트되거나 이직을 했다. 물론 그 자리는 또 다른 인재로 채워지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자리를 지키는 조강지처도 필요한 법이다. 너도 나도 잘났다고 떠든다면, 그 조직은 잘 될 리가 없다. ‘나를 따르라’했는데, 아무도 안 가고 혼자만 가는 꼴 아니겠는가. 이 모든 것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회사다. 회사가 기술지향적으로 변모를 했을 때 많은 인재들이 떠났다. CEO가 ‘나를 따르라’했는데, 따르지 못한 사람들은 이직을 하거나 퇴직을 한 것이다. 나는 남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떠나는 사람들의 목적지가 어떤 곳이든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늘 아쉬웠다. 버스를 타고 목적지까지 같이 갈 줄 알았던 사람들이 ‘안녕, 나는 다른 버스를 타고 갈 거야.’라는 느낌이랄까. 누군가는 먼저 내리고, 누군가는 다시 채워졌다. 누군가는 나처럼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나처럼 밀당을 하고, 누군가는 불평불만을 하면서 앉아 있다. 관찰해보니 직장 연차가 늘어날수록 불평불만보다는 밀당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키며 버티는 노하우를 스스로 깨친 사람들일 것이다.


시험 결과가 나온 날 나는 나에게 칭찬을 듬뿍해주었다. 밀당도 잘하고, 오랫동안 잘 버티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회사와 밀당을 한다. 회사와 이별하는 날,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이 글은 오마이뉴스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http://omn.kr/1kg8p

https://blog.naver.com/longmami/221616641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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