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이야기를 올리면서 몇몇 매체에서 인터뷰나 출연을 요청한 적이 있다. 인터뷰에서 바라는 내용은 대부분 동등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사의 불평등이나, 시부모님과의 육아 가치관으로 인한 갈등을 소재로 삼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한동안 맞벌이가 아니었다. 혼자 벌어서 생계를 책임지는 생계형 워킹맘이었다. 내가 둘째를 낳은 후에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몇 년간 수입이 전혀 없었다. 말이 사업이었지, 소득이 없으니 백수나 마찬가지였다. 마찬가지로 시어머님과 소소한 갈등은 있었지만, 상식을 넘어서는 갈등은 없었다. 결국 사정을 파악한 관계자는 전후사정을 알아보고는 포기를 했다. 그러니까, 나는 처음부터 보편적인 맞벌이, 보편적인 일하는 여성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자에게 일의 의미가 생계형이면 안 되나? 남자에게 일의 의미는 생계형이고 숭고하게 인식되면서 여자에게 일의 의미가 생계형이 되는 순간 불쌍한 인간으로 전락해버린다. 여자의 사회적 진출이 많아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사회는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무의식적인 선입견을 깔고 있다. 여자가 바깥일을 하는 것은 자아실현이나 혹은 남자의 무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여자가 전업주부라고 해서 여자를 무능력하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데, 남녀가 전통적인 자리를 벗어나 무어가를 시도하려 할 때 우리는 사회적인 저항에 마주친다.
"차장님 남편은 좋겠어요. 차장님이 돈을 버시니, 수입이 두 배인 거잖아요."
언젠가 회식 자리에서 남자 동료가 나에게 말했다. 그 남자 동료의 말은 전업주부인 자신의 아내도 돈을 벌어 왔으면 좋겠다는 속내가 내포되어 있었다. 자신의 아내는 집에서 논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그 말이 내내 불편했다. 집에서 노는 사람이 어디 있나?
"우리 집 남편은 사업을 해요. 그런데 아직 소득이 없어요. 제 월급으로 먹고사는 걸요."
순간, 주위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돌아오는 대답이 "힘드시겠어요."였다. 웃으면서 말해주었다. "사는 게 쉬운 사람이 어디 있어요. 차장님은 사는 게 쉬워요?" 라고 물었다. 순간 남자동료가 ‘허허’하고 그냥 웃었다. 어색한 웃음을 안주삼아 소주잔을 기울였다.
생계형으로 직장을 다니게 되면 어떤 노동강도와 스트레스도 견디게 한다. 내 월급이 아니면 나와 내 가족이 사회적 빈곤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은 몸이 무거운 아침에도 출근길에 오르게 한다. 아이가 아프다고 해서, 상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일에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표를 불쑥 낼 생각을 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버텨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블로그에 이런 나의 상황을 일기처럼 공유를 했는데, 비밀댓글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글을 달았다. 사회적 시선을 견디기 힘든 생계형 워킹맘들은 대부분 남편이 집안일을 한다는 것을 숨긴다. 갑자기 남편이 퇴사하더니 육아를 책임지겠다고 했다거나, 사업을 하는데 잘 안 되서 나처럼 일을 해야만 한다거나. 그런데 그것을 어디에 대놓고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회가 변해도 남자는 1차적인 생계부양자이니까.
생계형으로 일하는 여성들은 보편적이지 않은 시선들까지 견뎌내야 한다. 생각해보면, 이게 결국은 사회가 만들어낸 기준을 내가 나한테 들이미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 뭔가 이유를 찾는다. 자아 발견이라던가, 경력이라던가, 비전이라던가 하는 말들을. 그 거창한 이름 앞에서 자신이 일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는 여성들은 육아를 위해서 퇴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일하는 것에 무슨 거창한 의미가 있을까. 먹고 사는 일을 해결 하는게 우선 아니던가? 그리고 그 일을 가족 중 누군가 한다는 것은 숭고한 일이다. 먹고사는 일을 해결하는 것, 그건 숭고하고 멋진 일이다. 부모로서 가정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부과된 책임이다. 사실 사람이 살면서 소득이 없는 시기는 누구에게도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
가장이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여자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할 수도 있다. 이혼을 했을 수도 있고, 젊은 시절이든, 나이 들어서든. 혹은 여자, 혹은 남자. 누구나 돈을 벌지 못하는 시기가 있을 수 있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힘든 시기를 같이 겪어내는 것, 그것이 가족 아닐까? 어쨌든 먹고사는 건 해결하고 있는 것이니까. 평범한 일상을 이어나가는 것, 그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것이라고 본다.
자아발견이니 성취감이니 하는 것 따위는 잠시 접어두자. 일단 생계여도 괜찮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는 것도 괜찮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힘이 될 수 있다.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도 그만큼 많아진다. 회사에서 내 의견을 이야기할 수도 있으며, 가족 내에서 평등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물론, 남편과 둘이 벌서 경제적으로 훨씬 윤택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나 또한 남편의 벌이가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놀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찾고, 열심히 실행했다. 생계형 워킹파들이 아내가 집에서 논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비해, 보통 생계형 워킹맘들은 남편이 집에서 논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배우자에 대한 배려가 있긴 하지만, 전통적 사회에서 당연시 여기던 관습적인 면이 없다고는 무시못할 것이다.
내가 아는 외벌이 형태의 전업주부들과 이야기해보면 집에서 계속 전업주부로 남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아이 키우고 다시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가지는 위력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맞벌이라는 말은 있어도 맞살림이라는 말은 없지 않은가. 그만큼 한 사람이 벌어들이는 소득이 중요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 소득의 권력은 집안에서도 작동한다. 진심에서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치사하고 아니꼽지만 경제력이 없으니 참는다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가족들을 위해서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재차 가족들에게 확인하려는 남편들도 있다. 물론 숭고하다. 그렇다고 그걸 매번 가족들에게 확인하며, 자신이 대우받기를 바란다면, 은퇴 후 그 남편의 자리는 비좁아질 것이 뻔하다. 그건, 우리 윗세대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시대가 달라졌다. 특히 아이가 어리다면 육아와 살림은 같이 해야 한다. 해 주는 것이 아니다. 같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보고 일을 하고, 돈을 벌라고 재촉하는 남편도 이건 좀 알자. 돈을 벌고 싶은 건 누굴 막론하고 하고 싶은 일이다. 결혼이라는 건,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넘쳐나는 부분을 나눠 갖는 것이다. 재촉하지 말자. 재촉하는 시간에 맞살림이나 해주자. 여유가 있어야 다른 생각도 하는 법이다. 여유가 있어야 돈 버는 아이디어도 생기는 거 아닐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중요한건 여자도 안다. 아내는 언제고 돈을 벌기 위해 행동할 것이니 미리 맞살림 연습을 해두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