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1

2020.08.24

by 박윤희

회사를 열심히 버티고 나서 3일 휴가를 얻었다.

만화카페에 출근해서 만화책 정주행도 하고, 잔뜩 장을 봐와서 오래간만에 요리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작은 책방에 가서 여러 글귀도 읽어보고, 노트북 들고 카페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시원하게 마시면서 괜히 끄적거려보고, 실내 운동 시설에 가서 원하는 운동도 실컷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계획도 코로나 때문에 무산이 되어버렸다. 코로나 사태가 다시 심각해져서 카페도 위험한 상황이 되었고 운동시설도 모두 문을 닫았다. 꼭 어디를 놀러 가지 않아도 내 플랜대로만 시간을 보낸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또다시 포기해야만 했다.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계획을 다시 짜보았다.


그런데 어젯밤에 아빠가 할아버지 댁에 같이 다녀올 수 있냐고 물으셨다. 다녀오면 하루가 끝날 것을 알았지만, 휴가가 3일이니깐 하루 정도는 '반납'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할아버지 댁에 도착하니 역시나 할아버지는 너무나도 기쁘게 나를 반겨주셨고, 맛있는 소갈비도 사주셔서 든든히 배도 채웠다. 전망 좋은 카페에 가서 커피도 한잔 마시고, 날씨가 좋은 탓에 구름이 정말 그림 같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미래를 위한 탈출구를 찾아야 된다는 압박감에 휴가기간은 온전히 나를 위해서만 써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휴가가 아니면 할아버지를 뵐 일이 또 언제 있을까 싶었고, 시간을 '반납'한다고 생각했던 게 조금 부끄러웠다. 덕분에 콧바람도 쐬고 집에 와서는 산책도 하고 홈트도 해서 오히려 더 알찬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여건이 될 때 주변을 돌아보고 신경 쓰고 사랑할 수 있는 게 복이다. 지금 내 상황을 탈피하는 것보다 이렇게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 어쩌면 나중에 후회 없는 지난날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일은 오랜만에 친하게 지내는 언니의 딸들, 어린 동생들을 놀아주러 간다. 아, 놀아준다가 아니라 애들을 보고 싶어서 간다는 게 맞겠다. 내일 놀러 간다고 하니깐 애들이 좋다고 소리 지르고 난리 났다고 한다. 기분이 엄청 좋았다.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고 좋아해 준다는 것이 왠지 더 뿌듯했다. 내 휴가가 전혀 아깝지 않다. 여건이 될 때 주변을 더 돌아보고 신경 쓸 수 있는 이 기간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