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도록 정답을 찾으려 했다. 논리적으로 맞는 말, 누구라도 설득할 수 있는 말, 흔들리지 않는 기준. 그것만이 내가 붙잡아야 할 가치라고 믿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분명한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다. 내가 옳다고 믿은 논리가 누군가에게는 전혀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타인에게는 논리의 참과 거짓보다 더 중요한 삶의 기준이 있을 수 있고, 혹은 논리를 전달하는 나의 방식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종종 사람들이 내 말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그들이 비논리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것은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한 서툰 표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논리 자체는 틀리지 않았을지 몰라도, 관계 안에서 그것은 충분히 폭력적일 수 있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공감과 도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공감과 선의를 앞세워 말한다. “나는 좋은 마음으로 그랬다”고. 하지만 타인의 입장을 생각한 배려보다는, 그 마음 안쪽에 '나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소망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때로 도덕은 질문이 아니라 확신이 되어 말을 건다. 그리고 그 확신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대로 전해지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의도치 않게 불편해지고, 상처를 입는다.
논리와 감정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둘 다 '정답'이 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그리고 그 정답들은 언제나 모든 사람을 충분히 안아주지는 못한다.
이 모든 과정을 지나오며 나는 또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늘 옳아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답을 찾지 못했을 때에도, 불완전하고 흔들리던 시간에도 나를 기다려 준 사람들이 있었다. 말없이 곁에 남아 주고, 연약한 순간을 지나갈 수 있도록 조용히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이.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나름의 속도로 내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애썼다.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려 했고, 내 몫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피해자나 가해자로 나누기보다, 이 삶을 살아온 한 사람으로 남기고 싶다. 도덕적인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이 시간을 건너온 당사자로서 주어진 삶을 살았고, 선택했고, 사랑받았고, 용서받았으며,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했다.
나에게는 정답이었을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답이 아니었을 시간들. 이것들이 모여서 나를 만들었고,
우리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