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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롱썸 Sep 29. 2016

(번외편) 호이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다면

한번 쌓인 피로는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닌가 보다. 차곡차곡 얇게 층층이 쌓인 피곤감은 눈 아래 한쪽씩, 양 발바닥 아래, 양쪽 어깨 위에 찰싹 붙어 아침부터 밤 사이 그 크기를 조금씩 키운다. 이렇게 나를 둘러싼 고단함이 주말여행에서 모험이나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보다 편안함과 안락함을 찾게 만든다. 


이번 여행은 온몸을 감싸는 피곤함 한 꺼풀을 벗어놓기 위함이었다. 그러기에 베트남 중부 해안도시인 호이안은 훌륭한 선택이었다.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로 시끌벅쩍하고 활기 넘치는 해변도 좋았겠지만, 선탠과 독서로 한가롭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람으로 한적한 해변이 혼자 시간을 보내기에는 최적이었다.


평소 여행할 때 책이나 아이패드 같은 것을 들고 가도 보기는커녕 만져보지도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 이번 여행에서는 과감히 생략하였다. 기내 반입 캐리어 7kg의 무게 제한이 생각보다 빡빡하기도 했고. 그래서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만 담았다. 7kg 무게 제한 규정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생략하겠다. 


아무래도 이번 여행은 망한 것 같아

사실 챙겨 오지 않은 물건도 많고, 투어도 못해서 반나절 일정이 통째로 날아가는 등 변수가 많아 이번 여행은 망했다고 생각했다. 일단 놓고 온 짐이 너무 많았다. 화장의 핵심으로 생각하는 아이라이너도 두고 왔고, 해변에서 나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책이나 아이패드도 빼놓고 왔고, 심지어 클렌징 폼이라고 생각하고 들고 온 통은 비어있어 아쉬운 대로 클렌징 티슈와 호텔 비누 세수에 만족해야 했다. 그 밖에도 여행 시 항상 하나쯤은 예비로 들고 다니는 비닐봉지 하나도 챙겨 오지 않았다. 평소 짐을 꽤 꼼꼼하게 싸는 나에게는 재앙 같은 일들이었다.


해 질 무렵 사람이 더 많아진 안방비치

그러나 덕분에 평소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친자연적 여행을 하였다. 누군가 sns를 끊으면서 그랬는데 디지털 다이어트? 디지털 디톡스?를 하겠다고. 아무튼 의도치 않게 그것을 하게 되었다. 선베드에 앉아 하늘을 보며 1시간, 손으로 모래 장난을 하며 30분, 바다에 들어가서 30분, 바다 앞에서 바라보기만 30분 하며 귀로 들려오는 파도 소리, 발에서 느껴지는 뜨끈하고 축축한 모래의 느낌, 어깨 위로 내려쬐는 햇빛, 습기 찬 바람의 시원함에 집중하였다. 오랜만에 찾아온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낯섦에 어찌할 바 몰랐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올 해의 마지막 해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어쩌면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않은 것이었을 수도 있고.

곳곳에 일광욕 하는 사람들이 누워있다. 선베드에든, 모래 위에든, 모래 위에 깔아둔 천 위에든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 세 가지를 꼽자면, 안방 해변, 수제화, 카페였다.


해변과 카페는 예정에 있었던 것이지만, 수제화는 본래 예정에는 없던 것이었다. 그러나 최소한 두 명은 되어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에코투어를 포기하고 또 하루의 해변 노닥거림과 올드 쿼터 돌아다니기를 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앞에 놓인 단 하나의 신발이 눈에 들어와 길가의 한 신발 가게에 들어가게 되었다. 신어보려니 높은 발등 때문에 윗부분 지퍼가 잠기지 않았다. 아쉬워하던 찰나, 직원이 와서 나의 사이즈에 맞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말하였고 처음 제안한 가격조차 굉장히 저렴했다.


여행의 묘미는 흥정이니까(!), 주로 이 곳에서는 재미를 위해서 흥정을 하는 편, 가격을 깎기 시작하였다. 결국 내가 원하는 가격과 그가 원하는 가격의 반 정도 수준에서 가격이 결정되었다. 한화로는 2만 원 조금 넘는 가격이었다. 놀랍게도 세 시간 정도만에 신발은 완성되었고, 내가 원하던 딱 그 스타일 그대로 나왔다. 가죽이 엄청 고급이거나, 신발 자체가 아주 튼튼해 보이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나의 발에 딱 맞는 나만의 신발이라는 느낌이 너무 좋다. 하노이에서 가을 혹은 겨울쯤 신을 발등을 덮는 신발이 운동화 외에는 없어서 아주 잘 신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3시간만에 만들어낸 나만의 신발

+ 신발은 가게에서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인근 고만고만한 신발가게들에서 주문을 하면 꽤 큰 공장에서 이를 제작하여 가게로 신발을 가져다주는 구조인 듯했다. 전 날 옷 수선을 받았던 bebe라는 글자가 신발 밑바닥에 새겨져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가게에서 신발을 사든 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고...?



현재까지는 베트남 최고의 카페, 호이안 로스터리


한국에는 근사한 카페가 많지만, 호치민은 또 다를 것 같긴 하지만, 하노이에서 내가 별로 안 돌아다닌 탓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카페는 현재까지 내가 가본 카페 중 최고였다. 직원도 매우 친절하고, 그 어떤 곳보다 카페 쓰어다를 예쁘게 주고, 무엇보다 화장실이 매우 깨끗하다. 


하노이에서는 한국에서만큼 카페에 오래 있기가 어려웠다. 자리가 불편해서도 아니고, 커피가 별로 여서도 아니었다. 3층짜리 카페 중에 한 층을 내가 거의 전세 내다시피 쓸 수 있는 카페도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즐기기 어려운 열대 과일로 만든 음료가 훌륭한 카페도 있지만, 화장실이 너무 지저분해서 도무지 사용하고 싶지 않아 번번이 테이크아웃을 하곤 했다. 그러나, 이 곳 화장실은 깨끗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삼 개월 전쯤의 나는 상상도 못 하였겠지.


오랜만에 마시는 에스프레소가 너무 반가웠다. 강렬함이라면 베트남 커피도 뒤지 않아 본능적으로 에스프레소보다는 베트남에서만 즐길 수 있는 베트남 커피를 주문하게 되었다. 이 곳에서 처음에 시킨 것도 베트남 아이스커피였고. 그런데 한 잔을 마시고 보니 뭔가 부족했다. 피곤을 가시기에도, 커피가 고픈 나를 달래기에도. 그래서 좀처럼 하지 않는 ‘두 번째 커피 주문하기’를 하였다. 


한국에서는 커피 가격 때문에 한잔 더 마시고 싶어도 그냥 아쉬움을 뒤로한 채 끝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 곳에 온 뒤로는 '나에게 돈이 충분히 있는지’보다 ‘내가 커피를 더 원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커피를 주문하게 되었다. 이 곳에서 내가 두 잔이 아닌 한잔의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한잔의 커피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이런 삶을 한국에서도 누리는 것이 가능할까?


에스프레소에 굵은 설탕을 챙겨주는 곳이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그렇게 거의 두 달여 만에 마신 에스프레소는 입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짜릿하게 좋았다. 강렬한 커피 향을 머금은 뜨끈하고 진득한 액체가 목을 넘어갈 때 느껴지는 만족감이란! 호이안에 온 것에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에스프레소는 생각한 것만큼 강렬한 맛은 아니었다. 베트남 커피를 마신 뒤에 마신 것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율이 높았던 것 같다. 진득하고 묵직하기보다는 물같이 흐르는 가벼운 느낌이었다. 아 물론 아메리카노 같은 것과 비교할 수는 없고, 다른 에스프레소와 비교했을 때. 


아무튼, 호이안 로스터리는 환상적인 맛의 커피 때문에 추천한다기보다는 무난한 커피에, 친절한 직원, 맛있는 애플파이, 아주 잘 터지는 와이파이, 깨끗한 화장실, 꽤 편한 좌석, japanese bridge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위치 등이 좋아서 추천한다. 


그리고 혼자 여행 다니기에는 방콕 홍콩 싱가포르보다 호이안이 낫지 않나 싶다. 아, 쇼핑이 주된 목적만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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