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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롱썸 May 28. 2017

요하네스버그에 발을 딛다

부지런히 장보고, 요리하고, 먹기

한국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 오는 것이 생각만큼 피곤하지는 않았다. 지옥 같을 거라 생각했던 열세 시간 비행은 세 번의 식사와 서너 번의 쪽잠, 서너 번의 화장실 그리고 찰나의 오디오북으로 가득 채워졌다. 오디오북은 수면제 같은 역할을 했다. 15, 30분 번갈아가며 타이머를 맞추어두면 지정해둔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깊은 잠으로 빠져들곤 했다.


보통은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이제 다 왔구나!' 싶었던 것 같은데, 이번만큼은 좀 달랐다. 요하네스버그 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도로에서 무장강도의 습격을 받아 탈탈 털리는 경우가 많다는 흉흉한 소문들이 무성해, 도착했다는 후련함보다는 '진짜는 이제 시작이구나. 정신 바짝 차려야지'하는 결연함을 가지고 입국하였다.


공항 고속철도를 타려고 마음먹었었는데, 짐이 많다 보니 도저히 엄두가 안 나 우버를 부르게 되었다. 우버와 현지 택시 간 마찰로 인해 우버가 공항 내로 들어오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문제 없이 우버 밴을 탈 수 있었다.


가는 동안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르겠다. 긴장하면서 가던 중 왼쪽 차선에 우리와 비슷한 속도로 오고 있는 트럭을 발견하였다. 그 트럭은 안에는 두 명, 오픈된 바깥 뒷자리에는 허름한 옷을 입은 현지인 세 명이 걸터앉아 있었다. '우리 차와 속도 맞추어가는 건가', '노동자들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무장강도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심장이 쿵쾅쿵쾅거렸다. 잔뜩 쪼그라들어있는데, 오른쪽에서 또 하나의 트럭이 우리를 추월해서 달려갔다. '좌우에서 좁혀오다가 총을 쏘며 차를 세우라고 하려는 걸까'하는 생각에 당장에 후드티를 뒤집어썼다. 혹시라도 내가 건장한 남자로 보인다면 좀 덜 만만히 보지 않을까 싶어서.


다행히도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사히 안전한 동네로 들어오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숙소에 도착하는 순간 '살았구나!'하고 온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아 드디어 요하네스버그에 왔구나!! 그것도 사지육신 멀쩡하고 털린 돈 없이!



마트 구경과 장보기


Sandton City Mall의 음식점에서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Sandton city mall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작년에 있었던 하노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달된 몰이 있었고, 그 안에는 forever21, H&M, Zara부터 아르마니, 버버리, 프라다 등과 같이 다양한 가격대의 브랜드샵이 입점해 있었다.


샌턴 시티 몰 안에는 SPAR과 Checkers라는 대형 유통 마켓이 있다. 우리로 치면 롯데마트와 이마트가 한 몰에 같이 있는 느낌이랄까. 마트 하나도 굉장한 규모였다. 채소, 과일 매장부터 육류, 유제품류, 가공식품류 등까지 찬찬히 다 둘러보는데 최소 두 시간은 걸린 것 같다.


마트에 들어서자마 볼 수 있는 형형색색의 꽃


낯선 나라에서 마트를 둘러보는 것은 항상 즐거움과 놀라움이 가득하지만, 이번은 유난히 더 신났다. 일단 식료품 물가가 우리나라보다 저렴한 데다, 신선함이나 종류가 비할 바 없이 우수했다.


처음 보는 야채도 많았다. 첫날 멋모르고 망고라고 생각하고 산 과일은 까면서 보니 파파야였다. 생파파야 껍질을 벗기면서 나는 강력한 '토한 것 같은 냄새'는, 내가 생전 처음으로 냉동이 아닌 생 파파야를 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해주었다. 파파야의 향이 이렇게 끔찍한 줄 몰랐다.


두리안 냄새는 오히려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두리안 냄새가 끔찍이 고약하지만 먹으면 맛있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는 오히려 냄새보다 느끼한 양파 같은 맛이 더 싫다.


파파야는 신기하게도 그 자리에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싶을 만큼 냄새가 끔찍했지만 맛은 꽤 좋았다. 파파야 냄새는 두리안과 다르게 널리 퍼질 만큼 강력하지는 않고, 껍질을 까야 제대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아무리 냄새보다 맛은 좋다고 하지만, 그래도 멜론 같은 맛의 과일은 별로 취향이 아닌지라 남은 3개는 어떻게 먹을지 고민이다. 설탕 뿌려 구워서도 먹는다던데...



신선하고 다양한 야채, 과일코너


파파야. papino라고도 하나보다. 망고 닮은꼴
일반적으로 레몬이 거의 주먹만한 크기다


샐러드용으로 세척된 풀 종류도 많았다. 가격도 괘나 합리적이라 점심이나 저녁에 간단히 먹고 싶으면 간단하고 저렴한 샐러드로 식사를 해치울 수 있을 듯하다.



큼직하고 저렴한 육류코너


그러나 역시 나를 가장 신나게 한 건 역시 육류 코너였다. 고기는 돼지고기, 닭고기는 말할 것도 없고, 양고기가 정말 흔했다. 우리나라 마트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양고기가 매우 흔하게 진열되어 있어 다양한 부위를 선택할 수 있었다. 구워 먹는 용도, 스튜 해 먹는 용도 등 어떤 식의 조리법이 적합한지 포장지에 쓰여있기도 했다.


우리나라와 크게 다른 점 중 하나는 포장 단위였다. 최소 포장 단위가 남달랐다. 고기 하나의 두께며, 조각난 고기가 담긴 양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코스트코 아니고서야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더 감동적인 것은 가격이었는데, 한 팩에 엄지손가락의 1.5배는 될 것 같은 두께의 채끝 등심이 두 개 들어간 팩이 기껏해야 1만 원이 조금 안되었다. 양고기도 마찬가지로 아주 저렴하다. 아래에 양념된(?) 양고기 5대가 들어있는 팩은 우리 돈으로 1만 원 정도다.


후추 양념된 소고기는 그냥 구워먹기만 하면 되는 모양이다.
35일 숙성되었다는 Rump steak
28일 숙성된 6개들이 sirloin steak는 3만원이 채 안된다


그 외


남아공은 유제품, 치즈 등이 매우 발달한 나라라고 들었다. 소문처럼 진열대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도해봐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도 않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제품이 있었다. 일단 염소치즈와 버팔로 생 모짜렐라 치즈를 사 왔는데 아직 뜯지 않아 어떨지 궁금하다.


시식코너에 거의 2cm는 될 것 같아 보이는 큐브 모양의 치즈는 꽤 감동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인심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 싶어 동시에 아쉬워지기도 했지만.


전혀 섭섭지 않은 시식용 치즈의 크기



아몬드 오일, 아보카도 오일 등 각종 오일
포도와 리치가 들어있는 음료는 리치 향이 향긋했다





오늘의 저녁식사



버팔로 생모짜렐라 치즈가 들어간 카프레제
아보카도와 바질 퀴노아 샐러드
양송이 스프
양고기 스테이크
한 달 정도 숙성된 소고기 채끝 스테이크
가니쉬로 토마토와 마늘, 양송이 볶음
남아공 레드 와인 The Chocolate Block



한 달 정도 숙성된 소고기는 지금껏 먹어보거나 구워본 어떤 고기보다 부드러웠다. 시즈닝을 하느라 고기를 손으로 만지는데, 지금껏 시즈닝을 하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폭신하고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과연 맛도 훌륭하다.




마트에서 직원에게 와인 추천을 부탁하니 1초도 안 되어 The Chocolate Block이라는 와인을 추천해주었다. 탄닌이 많지 않고 달콤한 향이 특징이었다. 2만 원 정도 되는 가격도 꽤 훌륭했고, 고기랑 먹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는데 식사가 끝난 뒤 마시니 시큼하고 떫은맛이 강해져서 내가 먹던 와인이 이게 맞나 싶었다.  


로부스타 특유의 헤이즐럿 향이 강하다. 맛이 없진 않지만 있지도 않은 무난한 커피
맥주 안주로 딱이다. 달콤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하나도 안 달고 짭짤하다


가장 쇼킹한 제품은 딸기 우유였다. 그냥 우리나라 딸기 우유 같겠거니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딸기맛 약'맛이었고, 무엇보다 색이 정말 쇼킹했다. 사진처럼 형광 핑크였다. 결국 다 못 먹고 버렸다. 한국 딸기 우유의 수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그와 달리 초콜릿 우유는 그냥저냥 먹을만했다. 우리나라 우유보다 유지방 함량이 높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 초코 에몽보다 더 눅진한 느낌이었다. 호불호가 갈렸는데, 나 같은 경우는 심하게 달지도 않고 묵직한 게 꽤 괜찮았다.



요거트 초코가 묻혀진 쌀과자는 아주 훌륭했다. 계산대에 이르기 전 줄을 서는 곳에서 쉽게 집을 수 있는 미끼상품(?) 같은 것이었다. 백인 아주머니가 사는 것을 보고 따라 샀다. 다른 나라에서 수입된 것일 줄 알았는데 남아공 제품이라고 한다. 다시 사 먹고 싶은 맛이다.




그나마 이번에 실험적으로 산 우유 중에 가장 먹을만했던 것이 위의 초코맛 두유였다. 두유 특유의 콩 맛이 싫어서 소화가 잘 안 되어도 두유보다는 우유를 선호하는 편인데, 위의 두유는 상당히 맛있었다. 너무 무겁지도, 심하게 달지도, 두유 맛이 강하지도 않은 무난한 맛이다.



마트에 있는 다양한 먹거리들을 최대한 많이 먹어보려면 부지런히 장보고, 요리해야겠다. 앞으로 어떤 것들을 먹어볼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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