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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Jan 23. 2019

맥북을 샀고, 나는 더 행복해졌다

일과 취미를 분리하게 되면서 내게 찾아온 즐거움에 관하여 

200만원도 넘는 거금을 들여 맥북을 샀다. 2017년 버전이긴 하지만 맥북프로 15인치 제품이다. 자랑을 하자면 램도 16기가고 하드도 512기가다. 이정도 스펙이면 몇 년쯤은 거뜬하다. 마음 한 켠이 든든해졌다. 

 

 맥북을 사고 나서 2주쯤 지났고, 나는 꽤 행복해졌다. 단지 최신 노트북을 쓰게 되어서? '스타벅스 입장권'이라 불리는 맥북을 가지고 다닐 수 있어서? 둘 다 아니다. 맥북을 통해 일과 취미를 분리할 수 있게 되어서다. 


 내가 하는 일은 파워포인트와 워드, 엑셀, 아웃룩 등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사용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그렇다보니 파일 호환성이 너무나 중요하고, 거기에 주요 결제나 가끔 들어가는 관공서 사이트까지 활용하려면 윈도우 노트북을 쓸 수 밖에 없다. 윈도우 노트북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것이 내 일의 영역에 있다. 


 그러다보니 이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해도 일과 분리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무언가 개인적인 일을 (집에서) 하다가도 갑자기 일을 하고 있고, 취미나 취향과 관련된 무언가를 찾아보거나 끄적끄적 만들어 볼 때도 일에 치이는 느낌이 들어 불편했다. 일상이 일이고 일이 일상이 삶이 계속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 똑똑한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한, 나는 내 일의 영역 밖으로 빠져나오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뭔가 탈출구가 필요했다. 


'일하는 시간' 말고 '나를 위한 시간'을 쓴다는 느낌

 '탈출구'를 명분삼아 큰 맘먹고 맥북 프로를 샀다. 맥OS가 주는 쾌적함은 차치하고, 일에서 쓰던 노트북과 완전히 다른 도구를 사용하게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맥북으로는 일 말고 다른 무언가를 할거야"라는 마음을 먹게 됐다. 수년간 미뤄왔던 글쓰기를 브런치에서, 맥북으로 쓰기 시작했고, 현재 하는 일 외의 또다른 생각이나 아이디어는 맥북에 저장하기 시작했다. 


맥북과 윈도우노트북. 두 기기를 오가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물리적으로 내 모드를 바꿔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 맥북 자판을 두드릴때면 오직 나만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고, 글쓰기나 정보 서핑, 아이데이션에 대한 집중력도 높아졌다. 물리적 환경을 바꿔 내 몸과 머리에 '모드가 바뀌었어'라고 신호를 보내는 셈이라고나 할까? 도구의 변화는 내게 삶을 분리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좀 더 행복해졌다. 항상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일을 할 때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의 차이를 조금씩 만들어 갈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을 좀 더 감성적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는 소위 '애플감성'도 있겠지만, 도구와 환경의 분리는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구분지어 주었다. 


 일하는 '나'도, 무언가 다른 취미를 즐기는 것도 온전히 '나'지만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느냐에 따라 스스로의 상태를 구분해 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 구분점이 <인셉션>에 나오는 작은 팽이일 수도 있고, (나처럼) 노트북일 수도 있다. 그 구분점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행복은 시작될 수 있다. 나는 내 일상에 좀 더 많은 '구분점'을 만들 생각이다. 


200만원이 넘는 노트북을 사고, 2억도 넘는 행복의 기술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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