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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로니 Oct 12. 2016

형광등

내 방 여행하는 법

나는 방구석구석을 밝게 비추는 것을 소임으로 여기는 형광등이 싫다. 게다가 집 안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수명 다한 형광등을 교체하느라 위태롭게 의자에 오를 때마다 균형을 잃고 넘어져 머리가 깨지지는 않을까 걱정을 해야 하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쓰레기장으로 가는 길에 깨트리기라도 한다면 경비 아저씨에게 혼쭐이 날 것이다. 혹여나 펑하고 폭발이라도 하면 어쩌자고 이렇게 위험한 물건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밀실 살인사건이 발생한다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형광등을 지목할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형광등을 줄 곧 싫어한 것은 아니다. 어릴 때 동네 녀석들과 버려진 형광등으로 광선검 놀이를 하며 한껏 포즈를 잡기도 했으니 말이다. 나는 스타워즈 광선검의 모티브가 형광등이 틀림없다고 믿는 광선검 형광등설 지지자다.

최근에 이사를 했다. 붙박이장을 설치했는데 문을 열다가 등갓에 걸려 문이 활짝 열리지 않는다. 언제나 형광등이 말썽이다. 투덜거리며 등갓을 떼 버렸는데 내가 생각하던 형광등이 거기에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LED 100여 개가 교체될 근심 걱정 없다는 듯 형광등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다.

형광등이 싫었지만 그렇다고 없어져버리길 바란 건 아닌데 왠지 마음이 쓸쓸하다. 그리고 마치 형광등인 것 마냥 행세하고 있는 LED가 얄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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