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분진과 소음으로 터널을 가득 채운 후 전동차가 멈춰 섰다. 그보다 먼저 지하철 선로로 내려가기 전에는 의식적으로 크게 숨을 들이마셔서 폐를 한 껏 부풀려 최대한 숨을 참는다. '여행자의 들뜬 마음으로 채워도 모자랄 곳을 알 수 없는 티끌에게 내어줄 수는 없지.'라며 들숨을 참아보지만 이내 캑캑하고 입을 삐죽이며 지하철에 올라탄다. 가끔 우주선 내부를 걷고 있는 착각이 들만큼 미래적이면서도 때로는 갱도를 걷는 것 마냥, 덥고, 좁고, 구불구불해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 런던 언더그라운드에 대해 얇게 공부해 봤다.
1.
언더그라운드는(the Underground) 런던 지하철의 공식 명칭이다. 둥근 터널의 생김새로 인해 런더너들 사이에서는 튜브로 불린다. 1863년 1월에 세계 최초로 메트로폴리탄 철도(Metropollitan Railway) 노선이 개통됐다. 초기에는 각각의 철도 회사들이 독자적으로 노선을 만들고, 운영을 하다가 1908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언더그라운드라는 이름을 사용해 통합된 운영을 하기 시작했다.
2.
메트로폴리탄 노선은 현재도 언더그라운드의 일부로 운행되고 있으며 셜록 홈즈의 거리로 유명한 베이커 스트리트 역이 이곳에 있다. 증기 기관의 나라답게 초기에는 증기 기관차를 이용해 목조 객차를 끄는 방식으로 운행했다. 그래서 매연과 증기를 위한 설비가 추가로 필요했는데 이 중 하나가 레이스터 가든 23/24번가에 위치해 있다. 이 집은 도로 쪽에서 바라보면 여느 건물처럼 문과 여러 개의 창문이 있어 평범해 보이는지만 실제로는 외벽만 존재하는 가짜 집이다. 그 뒤쪽으로는 기차선로가 건물 아래로 깔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흔치 않은 매력 때문인지 셜록홈즈 TV 시리즈에도 나오며 유명세를 치뤘다. 하지만 이런 시설로도 터널 내부가 매연으로 차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는데 심지어 언더그라운드 직원이 호흡 곤란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당시 운행됐던 증기 기관차는 현재 두대가 남아있으며 그중 한대는 London Transport Museum에 있다.
3.
지하철의 의미로 널리 사용되는 메트로라는 이름은 프랑스의 Métropolitain에서 유래됐는데, Métropolitain이 런던의 메트로폴리탄 철도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프랑스의 메트로는 런던보다 40년이나 늦은 1900년에 지하철을 개통했다.
4.
메트로폴리탄 철도는 터널을 개착식 공법으로(cut-and-cover) 땅을 파서 터널을 건설한 뒤 다시 덮는 기술을 사용했다. 그래서 분주한 거리를 봉쇄하거나 건물들을 허무는 등 터널이 지나가는 공사 현장은 항상 혼란스러웠다. 또한 빈민가는 여지없이 파괴됐기 때문에 이 공사로 인해 집을 잃은 사람이 12,000 명에 가까웠다고 한다. 1890년에 오늘날과 같은 땅속 깊은 고심도 노선이 시티 앤 사우스 런던 철도에 의해 건설된다. 또한 당시에는 실험적 기술이었던 전기 기관차가 이 노선에 처음으로 운행됐다.
5.
내가 매일 타는 센트럴 라인은 1900년에 첫 운행을 시작했는데 모든 구간의 운임이 2페니였던 탓에 당시 "2페니 튜브"로도 많이 알려져 있었다. 100년 전 센트럴 라인의 승강장 그림을 보면 내장재와 인테리어만 조금 바뀌었을 뿐 비교적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의 유산 때문인지 객차 크기가 한국 지하철에 비하면 1/2 정도로 작다. 양쪽 좌석에 사람이 앉아있으면 통로로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이고 편의 시설은 의자가 있는 게 어디냐며 감사해야 할 정도이다. 특히 에어컨이 없는 대신 작은 창문으로 터널의 공기가 내부로 들어오게 되어있다. 때문에 여름에는 지하철 2호선 만큼이나 멀리하고 싶은 노선이다.
6.
언더그라운드의 동근 로고는 1908년 London General Omnibus사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지금과 달리 당시의 로고는 빨간색 링 형태가 아닌 빨간색이 채워진 원을 사용했는데 1917년 Edward Johnston이 이를 새롭게 디자인하면서 현재의 형태가 됐다. 그는 1916년 언더그라운드 시스템 전반에 사용할 Johnston 서체를 만든 것으로도 유명한 디자이너이다.
7.
1931년 해리 벡(Harry Beck)의 튜브 맵이 선보이기 전까지의 지하철 노선도는 일반적인 지도와 같은 지리적 정확도에 기반한 형태였다. 이런 지형학적 사실에 근거한 지도는 복잡도를 줄이는데 한계가 있었고, 노선의 추가와 확장에 비효율적이었며 승객이 원하는 정보를 찾기에도 지나치게 복잡했다. 해리 백은 전자 회로도에서 영감을 얻어 이러한 문제를 해결했는데 수직, 수평, 45도로 기울어진 세 종류의 선만을 이용했다. 승객은 도식화된 노선도를 통해 여행의 출발지, 목적지, 환승지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 방식은 각 나라의 지하철 노선도에 채택되어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공간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디자인의 예이기도 하다.
8.
런던 대공습 때 언더그라운드는 폭격을 피하기 위한 대피 장소로 사용됐다. 현재는 폐쇄됐지만 당시 올디치 역은 (Aldwych tube station)은 런던 박물관의 소장품들를 이곳으로 옮겨 폭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보관하는 데 사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