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어렵다.
취미로 사진을 찍었을 때
실내든 실외든 간단한 카메라 조작을 통해서만 촬영을 했다.
빛을 보기보다는 피사체가 어떤 표정과 느낌, 동작을 하고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드라마 씬의 미술 수업 시간.
테이블 위에 석고상을 올려놓고 하는 말씀
'빛과 그림자를 자세하게 관찰해라.
어디가 밝고 어디가 어두운지...'
미술은 전혀 관심없었으니 당연히 빛과 그림자와 친한 적 없었다.
오로지 인간과 세상에만 관심이 가득했다.
나는 전공이 연극영화학과였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분석과 세상과 인간의 관계와 희노애락에 집중하면서 살았었다.
그런데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 항상 첫 번째는 빛이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려웠다.
나를 가르쳐주셨던 교수님은 내가 학교를 졸업할 때쯤 말씀해 주셨다.
"너는 감성훈련은 이미 전공에서 배운 방식이 있으니 기술훈련을 위해 패션 스튜디오로 가서 어시스턴트 생활을 하면서 기술을 배워라."
교수님 스튜디오에는 해외와 국내 패션잡지, 사진집이 많았고 그 많은 것들을 항상 볼 수 있었다.
광고사진과 에디토리얼 화보 사진들. 작가의 사진집. 전시도록.등등
그 굉장한 사진들을 바라보고 에디토리얼에 쓰여 있는 포토그래퍼들의 이름을 하나씩 인식하며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찍은 사진들을 하나씩 정리해가며 패션 스튜디오에 빈자리가 나길 기다렸다.
그리고 스튜디오 면접을 보러 갔고 미팅이 10분 정도 지나고 나서 바로 당일부터 일을 하게 되었다.
아직도 생생한 그 첫날의 느낌.(물론 첫 날 제일 먼저 한 일은 식용유에 막힌 세면대를 뚫는 일이었다.)
스튜디오에서 일을 하면서 느꼈다.
'지금까지 내가 찍은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그리고 내가 모르는 패션 세계가 열렸다.
옷 역시 관심 없었던 내가 패션스튜디오를 오로지 기술을 배우기 위해 들어간 것이다.
헬리오그래피는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많이 해석되어 있으나 나는 더 적극적인 언어로 '빛을 그리다'가 맞다고 생각한다.
빛만 잘 관찰해도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그 세계에는 사진이 커다랗게 한 영역을 차지한다.
사이판 로케이션 촬영 중에 줄리엔강과 잘 어울리는 오래된 석조물.
나는 반 정도 몸이 잠길 때까지 걸어들어가서 사진을 찍었다.
빛으로 인해 줄리엔 강의 근육은 더 살았고 드라마틱한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