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잊지 못할 스승이라 부를 만한 분이 명확하지 않다.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눈에 띄게 못 하는 것도 없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런 아이와 어울리는 삶을 살았을 뿐이다. 가슴 속에 품을 수 있는 스승이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큰 행운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인생 여정에서 만난 스승이든 책 속의 스승이든 말이다.
이렇다할 스승을 떠올리지 못해 왠지 헛헛한 기분이 들어 오래된 기억을 톺아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유독 나를 귀여워해 주셨다. 6년 개근에 대한 의미가 남다른 시절 유행성 질병(수두)으로 병결을 며칠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모르고 지나갔는데 6학년 담임 선생님을 통해 지난 담임 선생님의 실수를 알게 되었다. 개근상을 받을 수 없게 된 사실에 나 대신 화를 내고 속상해하신 점이 어린 내 눈에도 인상적었다.
고등학교 미술 시간, 창의력도 상상력도 별로였던 내게는 곤욕이었다. 흰머리가 멋스러운 미술 선생님은 끄적끄적 그려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한마디 하셨다. “너는 프로필이 정말 멋지구나! 나중에 그림 모델을 해 보면 좋을 것 같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자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러면서도 프로필이라는 표현이 어쩐지 근사하게 들렸다.
고3 때 담임 선생님은 재미없고 어려운 과목을 실생활에 빗대어 설명해주셨다. 덕분에 그 과목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당시 나는 영화에 대한 글을 숙제로 제출한 적이 있었다. 어휘력이나 필력이 돋보이지 않았다. 그런 내게 어느 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우리 학교 대표로 백일장에 나갔으면 하는데.” 선생님께서는 나의 무엇을 보셨던 것일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결과는 별 소득이 없었다. 나는 그럴만한 깜냥이나 노력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대학 때 러시아 문학을 강의했던 교수님께서 집으로 전화하셨다. IMF 때 기특하게 장학금을 받았던지라 계속 공부하길 바라셨다. 교수님께서는 부모님을 설득하셨는데 결국 나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공존했다. 완결에 대한 강박은 새로운 배움으로 이어졌다. 두 번째 대학 졸업 후 마음이 한결 개운해졌다.
스승이란 단어 안에는 본받을 점과 존경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에는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이란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분들은 스승보다는 선생님에 가까웠던 것 같다. ‘명확하게 스승이라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다 말고, ‘잔잔하게 기억에 남는 선생님도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글쓰기 수업 중)
‘톺아보다’는 ‘톺다’에서 갈린 말이다. ‘톺다’는 원래 삼을 적에 짼 삼의 끝을 가늘고 부드럽게 하려고 ‘톱’으로 훑어내는 것을 말한다. 삼의 껍질 따위의 거친 부분을 날이 작고 고른 ‘톱’으로 쭉쭉 훑어내어, 가늘고 고른 섬유질만 남게 하는 것이다. ‘톱+하다’에서 어간의 받침 ‘ㅂ’에 ‘하다’의 ‘ㅎ’이 더해져서 ‘ㅍ’받침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톱(질)하다’가 ‘톺다’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톺아보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 말 풀이사전, 초판 1쇄 2004., 10쇄 2011., 박남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