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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Dec 08. 2021

필담

열정의 습관



  | 행복한 날적이, 헌책방 기행의 조희봉 작가님에게 |


요즘 저는 책에 몰두해 있습니다. 조희봉 씨처럼  주(註)가 있는 책을 통해 다른 책들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작가들과의 대면 만남은 없지만 신문, 칼럼,  신간이 나오면 친구를 만난듯 반갑습니다. 일종의 지면 친구라고 할까요. 간혹 구할 수 없는 책을 만나게 되면 발도 동동 굴러 보고, 출판사에 글도 보내보고, 저자에게 메일도 보내 봤습니다. 저 역시 용돈의 대부분을 할애해 책을 사고 있으니 예상컨대, 옷보다 책이 많을 것 같습니다. 지독히 저와 닮은 작가님의 글을 읽고 많이 공감하고 웃기도 했습니다.



학교 앞 헌책방에서 책을 고르던 즐거움을 잊지 못했기에 해마다 한번 들러야지,라는  계획을 적어놨지만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추억의 흔적을 찾는 것과 더불어 절박하게 책을 구하는 입장이 됐습니다. 가끔 책에 너무 집착하고, 소진시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하고 인연이 닿지 않는 책은 보내기로 했습니다. 살다가 어느 모퉁이에서 다시 만나 지겠지. 사람과의 인연만 있는 게 아니라 책도 인연이 닿아야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내려놓지 못하고 있던 책을 찾는다는 글을 올렸더니 몇 분이  00헌책방에 가면 구할 수 있다는 댓글을 달아 주셨습니다. 순간 뭐에 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력의 노력도 하지 않고, 아니 앉아서만 노력하다 포기한 거죠. 평소에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을 참 싫어했는데 저도 그런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비도 주룩주룩 내리고 점심 먹은 게 체해서 머리까지 아픈 날이였지만, 결심이 선 오늘 헌책방으로 달려갔습니다. 솔직히 가면서도 미쳤다, 너 미쳤다,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지난 여름 태풍 속을 뚫고 미술관에 갈 때도 수 없이 망설였습니다. 막상 가서 보니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놀랐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믿고 헌책방으로 갔습니다. 역시 저처럼 미친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무엇인가에 몰입한 사람들의 압도적 아우라가 느껴져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외롭지도 않고 오히려 수많은 동지를 만난 듯 기뻤습니다. 초행인 제가 구한 책 목록입니다.


1. 버지니아 울프 - 세월

2. 피천득 - 수필

3. 릴케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4. 최현무. 파트릭 모리스 엮음 - 현대 프랑스 단편선(조르주 페렉-빌렝거리, 마르그리뜨 뒤라스-대서양의 남자)

5. 고리끼 단편선

6. 정연희 - 시베리아! 눈물의 낙원

7. 플로베르 - 감정교육

8. 박완서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2003. 12.



  | 답신  



안녕하세요, 조희봉입니다.

올려주신 독자서평 잘 읽었습니다.

형편없는 책인데 너무 좋게 봐주신 거 같군요.

한 줄 답변으로 감사하다는 말 올릴까 하다가 속 보이는 짓 같아 이렇게 쪽지를 보냅니다.

서평은 '모닝 365'에 처음 올려주셨을 때부터 봤어요.

안보는 척해도 저자들은 자기 책의 독자서평 다 보거든요.(제가 몇 명 확인해 봐도 다 마찬가지더군요.)

독자서평만큼 힘이 되는 건 없지요.

실망시켜 드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읽고 써야겠다는 다짐뿐입니다.

제 책에서 길을 물어 이곳까지 찾아오셨군요.

좋은 친구들이 아주 많은 좋은 곳입니다. 맘에 드는 집이 되시길 바랄게요. 춘천으로 내려와서 이제 친구들도 자주 못 보게 되었지만 언제 기회가 되면 뵐 수 있겠죠.




  | 리뷰   


“어느 평범한 인문주의자가 10여 년 동안의 헌책 수집과 독서 경험을 통해 터득한 자신만의 독서방법론, 책을 통해 만난 스승과 그의 책들, 헌책 관련(수집, 보관 등) 노하우, 그리고 헌책방에서의 에피소드 등을 진솔하게 풀어내고 있다.”    

조희봉《전작주의자의 꿈》


 

이 책의 독자 서평을 과연 차분히 써 내려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오랫동안 망설였다. 커피를 마시고 남은 잔향처럼, 이 책에는 그런 잔향이 느껴진다. 언젠가는 누군가는 꼭 써야 되는 소명을 지닌 책이라면 지나친 찬사일까? 난 운이 좋은 사람인가 보다. 별 어려움 없이 이 책의 저자와 만났으니 말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인연인가 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잦은 탄성을 그야말로 내질렀다. 옆에 있는 동생에게 글을 읽어주면서 마치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친다고 했다. 동생은 저자에게 메일을 써보라고 했다. 그가 이윤기라는 작가에게 그랬듯이. 솔직히 책을 읽고 있는 당시에는 그럴 마음까지 먹었다. 저자가 너무도 궁금했다. 나를 이렇게 잘 알고, 나하고 이렇게 닮은 부분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궁금했다. 살면서 이런 사람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그가 많이 궁금했다.



책을 읽는 동안 난 무척 바빴다. 여기저기 밑줄 긋고 귀퉁이에 내 생각도 수시로 적어놓고 저자가 말한 책을 찾아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의 말처럼 그의 책이 나에겐 새로운 책으로 안내하는 주(註)가 되었다. 솔직히 나는 스스로를 소진시킬 정도로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뭐든 궁금한 게 있음 알아내야 마음이 편하고, 이것저것 관심분야도 많아서 이 책의 저자처럼 누군가의 전작을 하기엔 소양이 부족한 사람이다. 책을 읽는 동안 그의 열정에 참 많이 놀랐다. 그리고 한편으로 세상 참 피곤하게 사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견 나도 그렇게 살면서 나보다 더한 사람 앞에서는 맥이 풀린다고 할까나. 한마디로 징그럽다. 그리고 꽤나 귀엽다. 앞으로 저자가 대성할 거라 난 믿는다. 내 인생의 교과서를 써준 사람이니까. 이게 나, 라는 확신이 드는 책을 써준 사람이니까. 어쩜 작가를 꼭 닮은 지독한 그의 전작 주의를 꿈꾸고 있는지 나 자신을 점검해봐야겠다.


이 책은 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 책에 대한 열정과 결핍을 지닌 사람, 책에 대한 나름의 독서 습관이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그리고 새로운 책으로 안내받을 수 있는 주(註)가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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