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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힘 Jul 12. 2023

나는 총체적 난인이다

인내심이 아니라 자존심이었을까

나의 독박육아는 인내심이 아니라 보란 듯이 내가 해내고 만다는 오기 혹은 자존심이었을까.

 

독박육아를 십 년째 하니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화가 나지도, 낼 필요성도 못 느낀 지 오래라 더 이상 나에게 혹은 아이들에게 언성을 높이거나 욕설을 하지 않는 이상 그 사람에게 바랄 게 없었다.


아이들을 네가 보니 내가 보니, 네가 더 힘드니 내가 더 힘드니 따지는 실랑이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마당에, 우여곡절 끝에 아이들 재울 준비를 겨우 마치고 누워서도 딸들 재잘거리는 별의 별소리를 다 듣고, 대꾸해 주다 혼이 나야만 끝이 나는 긴 여정을 지나 드디어 고요한 시간을 맞이하여 아이들 눈이 감길락 말락 할 때쯤 등장하는 그 인간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와주는 거 바라지도 않는데 제발 방해만 말아주길 바라는 내 마음과 어쩌다 한번 마주치는 아빠인데 잠깐이나마 졸졸졸 쫓아다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이 참 아득하게 멀기만 하다.


 잠이 홀랑 깨서 쪼르르르 아빠 따라 2층으로 올라가 버리는 너희들.


그렇게 아빠가 무섭고 싫다가도 현관문 소리에 한 템포 눈치 살피고 머뭇하다 아빠 기분이 좋다 싶으면 벌떡 일어나 달려간다.


그렇게 눈치 봐가며 아빠를 반기는 너희가 불쌍했다가, 이제 한숨 좀 돌리려나 기대하다 찬물 끼얹는 그 인간에게 화가 났다가, 이제 곧 따로 살아야 할 아빠이건만 저렇게 반기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팠다가, 애들 정도 뚝 떨어지게 계속하던 대로 하지 요즘따라 애들에게 살가운 꼴도 보기가 싫었다가, 그래도 아빠 정을 이렇게라도 느껴야 떨어져서도 아빠사랑 의심 없이 밝게 자랄 수 있겠지 하는 맘에

불행 중 다행이다 싶었다가, 내 속도 모르고 지들 당한 것도 잊은 채 저렇게 아빠를 반기며 폴짝 뛰는 게 얄밉기도 했다가, 얼마 가지도 않을 친절에 또 속고 너희들이 한심하기까지 했다.


나도 그랬다.

그렇게 모진 말에 관심 하나 내게 두질 않는 당신이 가끔 씩 웃으며 건네는 말에 잠깐이나마 기대하고 안심이 되던. 정말 찰나라서 다시는 속지 말아야지, 말 상대하지 말아야지, 안심하지 말아야지, 내 속을 보이지 말아야지, 계속해서 내가 다치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살았다. 한결 같이 모질던 당신이 나빴다기보다 뻔한 일에 자꾸 속고 기대하는 내 잘못이 컸다는 걸 지나고야 알았다. 참 오래도 걸렸다.


내 자식 내가 건사하는 게 그리 억울할 일도 아닌데

'왜 나 혼자야 하지? 왜 나만 희생해야 하지? 난 이렇게 내 인생을 모두 내어줬는데 저 사람은 왜 결혼 전과 다를 게 없지?'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참 많이도 날 괴롭히던 그 질문들이 어젯밤 다시 떠올랐다.


눈코 뜰 새 없이 나만 뛰어다니는 바쁜 아침보다 잘 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잘 생각이 없는 아이들을 재우는데 몇 안 남은 체력을 탈탈 털어 쓰는 밤에 내 육퇴를 방해하는 자는 가차 없이 원망 아니 저주까지도 마땅했다.


꼭 아이들이 잠드려는 순간 들어오는 당신에게도, 문소리에 뛰쳐나가는 너희들에게도 순간 화가 나서 가슴에 불덩이가 얹어졌다. 괜한 화풀이를 하고 싶지 않아 애들에게는 병원 다녀오겠다며 급히 차로 가서 화를 삭였다. 마침 걸려있던 감기에게 고마운 밤이었다.


내 새끼들 자라는 순간순간 나 혼자 보고 듣고 느끼고 이행복 이기쁨 혼자 다누리는 감사로만 살다 당신이 언젠가 뼈저리게 후회될 늙고 병든 시절이 오면 '너는 이런 귀한 행복 못 누려봤지! 아이들과 남긴 추억도 없지!'라는 우월감 뽐내고 싶데... 밴딩이 소갈딱지 그게 그렇게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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