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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힘 Jun 17. 2023

새장 속의 새가 되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

결혼 전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남편은 분명 그때도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제멋대로였다. 이 결혼이 맞나 싶었지만 맞다고 믿고 싶었다. 처음 만난 사람과 이별이란 걸 할 줄 몰랐던 나는 그냥 나 믿고 싶은 대로 믿었다.


무엇에 홀렸는지 그렇게 확신 없는 결혼에 누군가는 잘 살 거라고, 해도 되는 결혼이라고 강력히 말해주길 바랐다. 그때만 해도 열심히 사는 당신이 성실한 줄만 알았지 그렇게 돈에 미쳐서 일을 하는 줄은 몰랐다. 사람보다 돈이 귀한 사람인 줄 몰랐다. 그래서 주변에 반대를 무릅쓰고 성실한 면만 보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사실 불안 했었다. 콩깍지가 씌어 판단력이 최고조로 흐려진 때였던 것 같다.


연애시절 유명하다는 사주카페에 신점을 본 적이 있다. '새장 새'가 될 거라고 했다. 벗어나라고 했다. 다른 곳에서 남편 사주가 나보다 백배 좋으니 꼭 잡으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난 내가 듣고 싶었던 말만 믿고 말았다.


그리고 난 새장 속의 새가 되었다.


지나고 보니 그 당시 남편 사주가 좋다고 했던 건 돈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땐 아무것도 몰랐다. 그 당시에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지금은 돈 말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 왜 그분은 나에게 돈을 보고 잡으라고 했던 걸까.

남편을 택한 건 분명 나인데 그런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날 때면 누군가에게 탓을 돌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난 사주 보던 그날이 생각난다.  


최근에 남편이 그토록 포기 않던 단독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10년 동안 아파트에서 혼자 애들을 키우는 동안 남편은 밖으로만 나돌았다. 가끔 집에 있는 날에도 애들은 보지 않았다. 내 말은 물론 아이들의 사소한 요구 그 어떤 것도 들어주지 않았다. 분리수거 한번 해준 적 없고 애들 맡기고 나 혼자 나가본 적도 없다. 네 식구 함께 마트에 장을 보러 가본 적도, 여행을 가본 적도 없었다. 함께 둘러앉아 식사 한번 하는 일도 연중행사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나서도 아빠의 자리만은 채워달라 포기하지 못해 싸움은 계속 됐다. 지치는 건 나뿐이었다. 합의점이라는 건 없었다. 대화도 불가했다. 처자식이 무언가를 바라면 배가 불러 정신상태가 썩어빠졌다 여겼고, 처자식에게는 끊임없이 바라고 요구하는 남편은 이 또한 내가 포기하는 게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고 판단하도록 만들었다.


우리의 불화는 다 아파트 때문이고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가면 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처럼 굴었다.

아파트가 닭장 같아서 사람 살 곳이 못된다며 우리의 행복은 주택을 가야 찾을 수 있을 것 마냥 사람을 괴롭혀댔다. 그렇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꺼내는 주택타령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따라오게 되었다.


아이들은 뛰놀아야 한다며 그렇게 주택을 노래 부르던 남편. 그때만 해도 주택에 와서 아이들을 뛰지도 못하게, 문턱을 밟지도 못하게,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집구석만 그저 바라보고 있을 줄상상도 못 했다.


아이들 태우고 다녀야 해서 큰 차가 필요하다 큰 차를 사서 아이들은 1년에 한 번 태울까 말까 혼자 타고 다녔던 당신의 말을 또 믿다. 매번 속지만 난 또 아이들 핑계 대는 당신에게 속고 말았다. 그렇게 속고도 또 속는다. 이제는 더 속지 않으려고 자꾸 믿지 않는 연습을 하게 된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닫혀다.


그렇게 이사 오는 과정에서 시작된 비극은 마지막 남은 미운 정까지 다 털어내게 만들었다.


내 말만 맞고 남의 말은 다 틀렸다는, 내 말이 법인 사람.

남의 비난을 일삼고 남의 불행으로 나의 행복을 찾는 사람.

남의 감정 따윈 무시하고 공감 따위 경험해 본 적 없으며 자기감정은 조절하지 못해 늘 분노에 차서 그 화를 가족들에게 쏟아붓는 사람. 그리고 나가서는 세상 사람 좋은 척 다하고 다니는 사람.

남들에게 상처 주고 죄책감 같은 건 개나 줘버린 사람.

나르에 소시오패스까지 더해 형태를 알아볼 수도 없는 인간의 모습 이 사람과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슬픈 요즘이다.


벗어나기 힘든 굴레에 갇혀버린 기분. 현실에서 지금 할 수 없는 일에 날 가둬두는 일은 그만하기로 했다. 그럴수록 더 벗어나고 싶어 지니까.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안 되는 일에만 매달리다 흘려보낸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산전수전 다 겪어도 털고 일어나 담담해지는 연습을 수도 없이 해오며 강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멀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렇게나 연습할 게 많은 내 나이는 37세이다.


그동안의 정서 학대로 바보가 되어버린 내가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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