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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힘 Jun 22. 2024

비아냥 대면 행복할까

이혼소송 이야기 3

큰 아이가 책도 좋아하고 만화도 즐겨보는 터라 늘 시력이 걱정되던 차에 그래도 어떻게 지켜오던 눈인데...


면접 교섭을 시작하고 세 달쯤 돼서 시력이 떨어졌다. 오고 가는 차 안에서 만화만 주구장창 틀어주는 그 인간의 짓이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됐다.


오늘도 역시 정해진 시간에 올리 없는 그 사람은

출발 전에 연락 달란 말에는 당연하듯 알았다고 대답하고 당연하듯 연락을 주지 않았다.


미리 알리다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역시나 기다리다 출발은 했는지 궁금해 걸었던 딸 전화에 거의 다 왔다고 하니 나는 속에서 불덩이가 올라왔다. 상대방 생각은 정말 손톱의 때만큼도 안하는 인간.


준비하고 내려가겠다는 말에 그럼 자기 밥을 좀 먹고 오겠다고 한다. 그 시간이 7시 반.


나는 당연히 미리 애들 밥을 챙겨 먹였지만

적어도 출발 전에 애들이 밥을 먹었는지 확인은 못하더라도 본인 밥 먹으러 간다면서 애들은 밥을 먹었는지 묻지 않고 혼자 밥 먹고 온다며 또 기다리게 하는 그 짓에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난 나대로 보내기 싫고 그 사람은 그 사람 대로 한 시간 반 거리를 오고 갈 때마다 심술을 부리는 걸 보면 억울해 부아가 치미는 듯했고 아이들은 한 달을 못 봐도 찾지도 않는 아빠인데 왜 누구도 원하지 않는 면접교섭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지 답답하다.


아이들을 보내며 당부할 것들은 매번 아이들에게 직접 반복해서 주문을 한다. 절대 아이들의 정서와 건강을 고려하지 않고 본인이 귀찮으면 나 편하자고 나쁜 걸 오히려 더 부추기는 그 인간이 못 미더워 입이 닳도록 직접 일러두는 게 영상시청과 군것질이다.


벌써부터 나쁜 콜레스테롤이 높아 고지혈증 약을 먹는 초딩이에게 먹이지 말라는 라면은 나 보란 듯이 먹이고 눈 나빠진다고 차 안에서는 보면 안 된다는 내 말에 콧방귀를 뀌며 옆에서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내 아이들의 아빠라는 게 너무너무 가슴 치게 싫은 밤이다.


오늘은 잠시 마주치기도 싫어 아이들에게만 후다닥 인사를 하고 차문을 닫자마자 서둘러 올라와서는 혹시나 오늘 당부를 안 했다고 방심하고 차 안에서 영상을 볼까 봐 큰 아이에게 전활 걸었다. 심심하면 화면은 덮고 소리만 들으라고 말했다.

스피커폰이었는지 그 사람은 전화너머로 내 소리를 듣고는 들으라고

걔가 만화를 잘도 안 보겠다
지가 보고싶으면 보는거지


라며 깔깔깔 크게 웃어댔다.


적어도 부모라면 내가 미워도 지 자식 눈 걱정 정도는 하는 척이라도 해야 사람 도리 아닌가 싶은데 어떻게 된 게 이건 무식을 넘어서 소름이 끼쳤다.


예전에 큰아이 시력이 나빠지고 있어서 곧 안경을 쓰게 될 것 같다고 차에서 영상을 못 보게 해 달라는 부탁을 했을 적에도

"지가 보고 싶음 보고 말고 싶음 말겠지"라고 했다.

책임감 따위 없는 인간.


큰 아이가 중성지방 너무 높아 식이조절을 하느라 나 혼자 애먹고 있던 때에도 인스턴트 먹이지 말아 달라는 내 부탁을 듣고 아이 건강이 괜찮은지 한마디 묻지 않는 인간. 그러면서 보란 듯이 짜파게티 먹여 보내는 인간.


오늘도 내가 아이에게 하는 말에 옆에서 계속 비아냥대며 딴지를 걸었다.

다 켜고 보는데 무슨 눈이 나빠지냐며. 큰소리로 비웃어댔다.

누가 봐도 나의 화를 돋우려고 하는 짓이 분명하고 아이들도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렇게 해야만 당신은 행복할까.


당신 행복이야 관심 없지만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고 내 아이들은 과연 행복할까.

아이들 건강 따위 안중에도 없고 마냥 본인 감정에만 몰입돼서 엄마 깎아내리는데만 혈안인 아빠를 보고 너희 마음은 안전한지 또 나만 마음이 쓰인다.


무식도 죄가 맞다. 시간은 이미 어두운 시간이고 아무리 전등을 켜고 본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책을 보던 영상을 보던 눈에 안 좋다는 건 지나가는 개도  알겠다만 정말이지 이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애들 앞에서 저렇게 무식이 당당할 일인가.


무식도 죄고 무관심도 죄고 공감능력이 제로인 것도 죄다. 그 인간 존재 자체가 죄라고 생각 드는 순간

낯이 뜨거워질 정도로 혈압이 올라 서둘러 전활 끊어버렸다.


소송은 아직도 갈길이 멀어 보이고 아이들을 보낼 때마다 차 태우는 그 잠시 마주칠 뿐인데도 그 짧은 시간 안에 매번 사람을 이렇게 까지 화나게 할 수 있는지 빨리 끝내고 면접교섭도 줄이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렇게까지 간절히 이혼녀 딱지가 붙이고 싶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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