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가 가진 가장 최악의 증상
시작지연을 고치는 가장 강력한 힘
전편에서 말했듯 일이나 무엇인가를 할 때 바로 시작하지 못하거나, 혹은 시작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는 증상을 시작지연이라고 한다. ADHD의 짝과도 같은 이 증상의 주요 원인은 ‘만족을 지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작은 지연이 되는데 만족은 지연이 안 된다니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냥 단순하게 말하면 당장의 만족을 미룰 수 없기 때문에 시작해야 하는 일을 미룬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 당장 누워있는 것이 좋으니까 마냥 누워만 있다가 약속에 나갈 준비를 늦게 시작하게 되거나 해야 할 일들을 미루는 식이다. 언뜻 보면 그냥 게으른 사람 같지만 아니다. 핵심은 ADHD를 가진 사람이 미래를 예상하는 능력이 취약하다는 데에 있다. 단적으로 예를 들면 음식을 과도하게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의 먹고 싶은 욕구와 충동을 이기지 못해서 먹고 비만이 되는 식이다. 게다가 그런 충동적인 욕구에 맞춘 일을 하고 있을 때에는 당장의 만족만을 강렬하게 추구하다 보니 과하게 몰입을 하게 된다. 따라서 당장의 만족에 중독된 채로, 다른 일이나 필요한 일을 하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전환 불가’의 이슈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 모든 증상이 연결되어 불안하고, 산만하고, 불성실한 ADHD맨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ADHD를 심하게 가진 전형적인 사람인 내가 치료를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 가장 충격을 받았던 말은 ‘지금 이걸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보통은 이걸 생각하며 행동해요.’였다. 여기서 내가 충격을 받은 부분은 ‘보통은 이걸 생각하며 행동해요’였다. 지금 무언가를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거나 여유롭다는 건 맹세컨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그래서 보통은 무언가를 생각하면서 한다는 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게 뭔데.. 왜… 왜 생각하는데, 어떻게 하는 건데…? 왜 나빼고 다 하고 있는 건데?
그러고 나자 들었던 가장 솔직한 마음은 ‘큰일 났네, 내 인생은 조졌다.’였다. 애초에 저런 걸 생각하는 기능이 없는 게 ADHD니까. 나는 평생 성실하거나 부지런할 수 없겠네.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게 당시 심각한 우울증을 가지고 있던 나를 굉장히 불안하게 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ADHD보다 우울증의 치료가 시급했는데 우울증을 고치는 행동의 핵심 역시 ‘성실한 루틴’에 있었으니까. 매일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서 해를 보라는데, 당장 하는 것이 즐거우면 시간 따위는 잊어버리는 내가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기란 참 힘들어 보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른 사람과 대뇌가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정말 평생 성실하게 살 수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자 미칠 것 같았다. 궁금해서. 당시 나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평균적인 인간은 얼마나 매일 성실하며, 성실함이 강점인 사람은 대체 얼마나 성실한 걸까? 그리고 나는 대체 얼마나 안 성실한 걸까?
그때는 한창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때라 전사 재택이 시행되고 있는 때여서 날 관찰하기에 딱 좋았다. 그래서 나는 내 하루를 잘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루틴 행동들을 리스트로 정리했다. 그리고 30일짜리 트래커 용지를 사서 벽에 붙인 후 매일 행동을 할 때마다 표시하고, 하지 않을 때에는 표시하지 않았다. 매일 얼마나 엉망으로 사는지도 길게 확인하고 싶어서 일어나고 자는 시간까지 꾸준히 적었다. 2022년 3월 한 달을 그렇게 나를 관찰하는 것으로 보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한 달 뒤에 내가 깨달은 사실은, 내가 정말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기록을 시작한 첫 일주일. 나는 매일 같이 나를 힐난했다. ‘역시 나야. 또 늦게 잤네.’, ‘또 늦게 일어났네. 그리고 하루 동안 해야 할 업무를 또 다 완수하지 못했네.’
두 번째 주에는 좀 달라졌다. 분명 처음에는 얼마나 불성실한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서 작성한 표였고, 표를 만들면서는 솔직히 잘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긴 했지만 안 된다는 걸 알아서 포기했었다. 그런데 매일 같이 표를 봤기 때문일까?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그때그때의 욕구대로만 행동하던 내 머릿속에 해야 할 일들의 순서와 우선순위가 생기기 시작했고, 시간개념이 잡히기 시작했다. 또 늘 새까맣게 잊어버렸던 다 완수하지 못한 일이나 업무들이 머릿속에 생기거나, 적어둔 벽을 매일 보다 보니 그냥 하게 됐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유치원생 같지만… 표에 스티커 붙이는 재미로 성실하게 해 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주~4주째를 보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성실하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는데, 3월 말. 다 쓴 표를 벽에서 떼면서 살펴보니 빈칸이 거의 없었다. 놀랍게도 내가 일 평생 열등감을 가져온 성실함이 내게는 재능으로 있었던…. 건 물론 아니고요. 내 호기심이 만들어낸 시스템이 우연하게도 내 행동을 구조화, 루틴화한 덕에 내가 잘 작동했던 것이다.
앞서 말했듯, ADHD는 현재의 만족을 미루지 못한다. 해야 할 일과 일정을 동시에 떠올려서 맞게 하려면 우선순위를 정하고 당장 괴롭고 지루한 것들을 참고 해내야 하는데, 그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다. 미래라고 해봐야 고작 하루, 그나마도 몇 시간인데 그거 하나를 해내지를 못해 슬펐다. 그런데 벽에 내 생활에 필요한 매일 해야 하는 일과들을 써둔 덕에 난 자동으로 리마인드를 받았고, 미래를 예측하게 됐다. ‘지금 씻거나 운동해야 잘 시간이 충분하겠네~’ 하는 생각들을 처음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걸 했다고 스티커를 붙이며 또 인지했고, 하루하루 스티커가 쌓여가는 걸 보는 게 솔직히 뭉클하고 뿌듯했다. 작심삼일이라던데, 나는 어떤 일을 성실하게 하루 이상 해본 적이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티커가 붙으며 내가 하루 이틀, 1주와 2주 무언가를 꾸준히 해내가는 걸 눈으로 인지하자 계속 하고 싶어졌다. 어쩌면 내게도 성실함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게 나에게 즉각적인 보상으로 작용해서 나는 한 달간 꾸준하게 나에 대한 메타인지를 올리며 성실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스티커가 뭐라고. 성실함이 뭐라고. 당시 내게는 그게 너무나 소중하고 절실했다. ADHD의 특성에 맞게 나는 늘 당장 하고 싶은 것을 참지 못하다 보니 일평생 들은 말도 늘 ‘성실하지 못하다.’, ‘꾸준함이 없다.’, ‘차분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평가였으니까. 삶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을 때 내가 처방받은 건 ‘성실하게 똑바로 사세요.’였고,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잘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알았다. 나에겐 성실함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다만 나에 관한 이해가 부족했고, 내게 맞는 시스템이 부족했던 것일 뿐.
내 우울증이 개박살이 난 것도 바로 이 날이다. 혹자가 말하길 우울증은 ‘할 수 없다’는 감정이 너무 강할 때 드는 것이라던데 그래서 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정확히 알았으니까. 절대 불가능하다 믿었던 바른생활이 한 달째 이루어졌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나는 너무 뿌듯하고 안도한 마음에 갓 태어난 아기처럼 엉엉 울었다. 세상이나 주변의 시선에 맞추어서 했던 모든 생각들이 떠올랐다. ‘난 성실하지 못하니까 애초에 시작하지 말자.’, ‘나는 꾸준함이 없어서 부지런하지도 않으니까 잘 살지 못할 거야.’ ADHD를 가진 사람이라면, 혹은 주변에 조금 못된 참견쟁이를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하거나 들어봤을 법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성실해지는 방법을 알게 된 나는 평생 동안 나의 모든 가능성들을 부정해 온 저 말들을 모두 마음 속에서 박살 내버렸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의 시작 지연 증상은 현저하게 달라졌다.
할 수 있는 걸 알게 되자 더 잘하고 싶어 졌고, 더 건강하게 살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ADHD로 살아온 나는 나를 평가하는 말 때문에 스스로를 잘 살 수없다 믿었다. 하지만 저 날 내가 생각한 나는 스스로에게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은 사람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주지 못한 기회를 주고 싶어 졌고, 더 많은 일들을 하며 다양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싶었다. 그날 이후 1년 여가 다 되어가는 지금 내 삶은 정말 크게 달라졌다. 물론 지금도 충동을 이기지 못해 실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금세 나를 다시 현실로 되돌려 오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건 바로 내가 얼마나 잘하는 사람인지 기억하고… 이런 것 당연히 아니다. 그런 감성만으로는 험난한 현실을 살아낼 수 없다. 일단 마감일을 빡세게… 정해서 ^^ 미루고, 휴식하는 시간 포함하여 벽에 크게 적어놓는다.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마감일로부터 일을 잘게 쪼개어서 하루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분배하고. 하루의 루틴 안에 끼워 넣는다. 단순히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찾는 것이다. 이 글도 그렇게 쓰였다. 언젠가 ADHD를 주제로 책을 쓰고 싶었는데, 나는 내가 마감이 없으면 시작하지 않을 사람임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래서 글쓰기 모임에 들었고, 매주 일요일 마감 9시를 기하여 글을 한 편씩 쓰고 있다.
시작지연 행동을 고치는 가장 강력한 힘은, 그렇다. 자신에 대한 메타인지를 올리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나를 이해하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어떻게 할지 알아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한 달 내내 나는 나에게 온통 집중했고, 어떻게든 내 삶을 정상으로 되돌리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하루의 작은 습관들이 모여서 일상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삶을 살아내는 것이 된다는 걸 알았는데 이것 조차 못하면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무척 열심히 했다. 하지만 일상적인 행동이기에 생각해 보면 또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할만했다. 아무튼. 우연이었지만, 메타인지가 바로 내가 우울을 이겨내고, 생활을 바로 잡고 원하는 삶을 만들 수 있었던 힘이 되었다.
내가 ADHD로 1억을 벌려는 것도 그래서이다. 나에 대한 이해를 더 넓히고 내가 가진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을 그저 못 하는 사람으로, 가능성이 적은 사람으로 알고 있던 과거의 나에게 증명하고 싶다. 이렇게나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앞으로 내가 담아낼 내용은 이러하다.
흔히들 단점으로 여겨지는 ADHD의 특성을 짚어볼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극복하거나 활용했는지 짚어보고 가능하면 경제적 활동으로 연결하여 수익을 창출해볼 예정이다. 이 연재기는 그러한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다음 편에서는 ADHD맨의 또 다른 취약점인 미래 예측을 강화하는 방법을 통해 내가 해나갈 경제 활동의 리스트를 잡아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