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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소 Mar 04. 2024

압빠, 엄뫄, 쭈니. 우리는 가족

가족의 의미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란 아들이 동성인 아버지에게는 적대적이지만 이성인 어머니에게는 호의적이며 무의식적으로 성()적 애착을 가지는 복합감정을 말한다. 통상 구강기(0~18개월)와 항문기(18개월~36개월)를 거쳐 남근기(36개월~6세)에 많이 발현된다고 하는데, 생후 십팔 월에 접어들고부터 부쩍 엄마만을 찾는 것을 보면 우리 아기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일찍 찾아온 게 아닌가도 싶다. 아직 응가를 가리지 못하는 원초적 아기인데 말이다.


낮에는 괜찮다가도 밤에 잠 들려고만 하면 아빠를 적대시하는 아기. 엄마 옆에 누워같이 잠을 자는 시늉이라도 하면 "가! 빼! 비켜!"를 외치는 아기님. 엄마 옆자리는 자기거라고 경고 하는 목소리에 쭈글해져 자리를 뜰 수 밖에 없지만 함께 잠을 자지 못하는 아빠는 내심 서운하다. 품 안에 안겨 자는 아기의 조그만 몸뚱아리가 좋은데 말이다. 온 종일 아기와 씨름 하는 아내를 대신하여 잠이라도 재울까 하는 마음은 강력한 아기의 제지 덕분에 시도 조차 못하고 자리를 뜰 수 밖에 없다. 더 크면 느낄 수 없는 엄청난 소중한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는 것만도 같아 못내 아쉽다. 본의 아니게 효자가 된 아기. 그러던 아기가 변했다.


재택 근무로 집 앞 어린이집에 하원을 하러 갈 때였다.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기가 앙증맞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압뽜. 엄뫄. 쭈니. 카족."

한 단어씩 내뱉는 단어의 마무리는 가족이었다. 가족이라는 단어를 알려주지 않았는데 아기는 가족이라는 단어를 인지하고 말을 내뱉었다. 아마도 어린이집에서 배웠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뭉클할 줄이야. 반사적으로 아기를 안고 얼굴을 부비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함께 하는 아기. 거친 압뽜의 피부를 보드라운 아기의 얼굴에 들이밀며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했다. 뭉클함의 유사어가 가족이었다는 사실을 십팔 개월 아기에게 배웠다. 아기의 존재는 부모에게는 큰 선물이다.


그로부터 이 개월 지난, 이십개월의 아기. 두 달 여간의 구애 덕분일까. 이제는 잠이 들 때 옆자리를 허락해주기 시작했다. 물론 앙증맞은 기저귀로 온 얼굴을 뒤덮기도, 조금만 발로 머리를 퍽퍽하고 강타하기도, 심지어는 갑자기 나가라고 하며 내쫓기도 하지만. 이 개월 전 침범 조차도 거부했던 때를 생각하면 매우 감사한 일이다. 아기의 옆에 내가 붙어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좋다. 아기가 내 입술을 만지며 잠을 청할 때면 마음이 아늑해진다. 나 어렸을 적에는 엄마 입술 옆의 점을 그렇게 만지며 잠을 청했다 했는데, 나의 아기도 그러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일까. 조그만 몸덩어리가 내 몸에 닿을 때, 아기의 피부가 내 피부에 닿을 때의 기분 좋음과 사랑스러움. 이 때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함이다. 함께 살을 부비며 살아가는 집합체. 그것은 바로 가족이다.


가끔씩의 취미. 길바닥에서 드러눕기. 옆자리를 잠시 내어주실 수 있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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