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이 년 전이다. 겨울의 공기가 지배했던 깜깜한 새벽, 와이프가 잠에서 깨 화장실을 가던 중 양수가 터졌다. 처음 보는 모습에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보호자라는 이름 하에 당사자인 와이프를 진정시켰다.(실은 진정시키려 노력했다)깜짝 놀란 마음을 겨우 부여잡고 허둥지둥 도착한 병원. 분만의 고통을 직접 겪기 전까지둘은 여유(?)를 즐겼다. 미래를 몰랐던 철부지들의 최후의 여유랄까. 여유가 사라진 건분만의시작되면서부터였다.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세 시까지. 힘들어하는 와이프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은 고통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괜찮아 걱정 마' 같은 말뿐인 시간. 심박수가 떨어져 결국 제왕절개 수술을 결정할 때까지.오후 다섯 시가 되어서 아기가 세상의 빛을 볼 때까지. 와이프와 아기의 고생은 내가 본 것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첫 통화는 장모님이었다. 코로나 시기에 태어난 아기.어떤 누구도 면회가 불가하고 오직 보호자 일 인만이 동반가능했던시절(불과 이 년 전이다). 돌이켜보면 난생처음의경험에 출산 과정 내내 겁이 났었던 것 같다. 내가 당황하면 와이프가 더 불안할 테니 괜찮은 척 담담한 척 겁나지 않은 척 버티고 버텼다. 익숙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음이 터진 건 그때문이었다. 마치 엄마를 잃어버렸던 아기가 엄마의 얼굴을 보고나서야 울음을 터트리는 것처럼. 서럽고 서럽게 울었다. 장모님과의 통화가 끝나고 북받쳐 오른 울음이 진정되고 나서야병원 밖의 풍경이 보였다. 통창 바깥으로 보이는 한 겨울의 풍경. 길가의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입고 다녔고 맞은편의 스타벅스 건물에서는 사람들이 따뜻한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나 홀로 한겨울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 가족의 행복을 바랐던 그날.(현) 두 돌 아기, (구) 신생아였던 사랑스러운 나의 아들은 정확히 내 생일 이틀 전 태어났다.
어느새 두 돌 아기. 어린이집에 입학을 한지도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첫 입학 때는 아장아장 걷기만 했는데, 이제는 뛰어다니기도 하고 말도 제법 해서 "내 거야~, ~하고 있잖아" 같은 자기주장을 펼치기도 한다.생일 때는 케이크의 초를 부는 것이라는 개념도 생겨서 조금만 입으로 후 하며 초를 끄기도 한다.
반면 나는 하나 둘 나이를 먹으면서 생일이란 것에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게 되었다. 일 년 중 하루일 뿐인데 그게 뭐 대단한 하루라고- 같은 성인군자의 마음가짐. 바쁜 사회생활 속에때가 껴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고 나서의 생일은 그런 존재가 되었다.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라고 했나. 아기의 생일이 내 생일 이틀 전이 된 이후부터.아기는 새 미역국이지만 나는 재탕 미역국을 먹으면서부터. 일 년 중의 하루가 그래도 의미 있는 날이구나를 알게 되었다
작년 돌잔치에 이어 올해 생일상도 초점은 아기에게 맞춰졌다.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이 두 돌 생일을 축하해 줬고 주말을 이용해 양가 부모님들도 축하를 해주셨다.(장인어른 장모님이 내 생일을 함께 챙겨주신 건 정말 감사했다) 생일의 설렘이 점점 하향 조정 되어갔다고 생각했는데그래도 생일은 생일이라는 것. 본의 아니게 아기와 생일이 이틀 차이가 나게 되면서 생일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생일이란 건 그간의 나를 위로하고 앞으로의 나를 위해 파이팅을 외치는, 잘 살아온 나의 머리를 잠시 쓰다듬어주는 그런 날이라는것. 소홀했던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도 실은 아기 덕분이다. 삶의 이유를 누군가와 연결을 한다면 그 누군가는 참으로 귀중해진다. 앞으로의 아기 생일에 더 큰 사랑을 담아 축하해 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참, 올해부터는 지인들의 선물 목록에도변화가 생겼다. 체력 충전용의 생일 선물들이 들어올 줄이야. 그렇다 나는 아빠다. 이제 불혹이다. 몸도 챙기고 마음도 챙기는 건강한 한 해가 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