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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소 Feb 12. 2024

아기와의 생일은 이틀 차이

생일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입니다.

벌써 이 년 전이다. 겨울의 공기가 지배했던 깜깜한 새벽, 와이프가 잠에서 깨 화장실을 가던 중 양수가 터졌다. 처음 보는 모습에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보호자라는 이름 하에 당사자인 와이프를 진정시켰다.(실은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깜짝 놀란 마음을 겨우 부여잡 허둥지둥 도착한 병원. 분만의 고통을 직접 기 전까지 둘은 여유(?)를 즐겼다. 미래를 몰랐던 철부지들의 최후의 여유. 여유가 사라진 건 분만 시작되면서부터다.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세 시까지. 힘들어하는 와이프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은 고통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괜찮아 걱정 마' 같은 말뿐인 시간. 심박수가 떨어져 결국 제왕절개 수술을 결정할 때까지. 오후 다섯 시가 되어서 아기가 세상의 빛을 볼 때까지. 와이프와 아기의 고생은 내가 본 것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첫 통화는 장모님이었다. 코로나 시기에 태어난 아기. 어떤 누구도 면회가 불가하고 오직 보호자 일 인만이 동반 가능했 시절(불과 이 년 전이다). 돌이켜보면 난생처음의 경험 출산 과정 내내 겁이 났었던 것 같다. 내가 당황하면 와이프가 더 불안할 테니 괜찮은 척 담담한 척 겁나지 않은 척 버티고 버텼다. 익숙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음이 터진 건 그 때문이었다. 마치 엄마를 잃어버렸던 아기가 엄마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울음을 터트리는 것처럼. 서럽고 서럽게 울었다. 장모님과의 통화가 끝나고 북받쳐 오른 울음이 진정되고 나서야 병원 밖의 풍경이 보였다. 통창 바깥으로 보이는 한 겨울의 풍경. 길가의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입고 다녔고 맞은편의 스타벅스 건물에서는 사람들이 따뜻한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나 홀로 겨울 모습 바라보며 우리 가족의 행복을 바랐던 그날. (현) 두 돌 아기, (구) 신생아였던 사랑스러운 나의 아들은 정확히 내 생일 이틀 전 태어났다.


어느새 두 아기. 어린이집에 입학을 한지도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첫 입학 때는 아장아장 걷기만 했는데, 이제는 뛰어다니기도 하고 말도 제법 해서 "내 거야~, ~하고 있잖아" 같은 자기주장을 펼치기한다. 생일 때는 케이크의 초를 부는 것이라는 개념도 생겨서 조금만 입으로 후 하며 초를 끄기도 한다.

반면 나는  둘 나이를 먹으면서 생일이란 것에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게 되었다. 일 년 중 하루일 뿐인데 그게 뭐 대단한 하루라고- 같은 성인군자의 마음가짐. 바쁜 사회생활 속 껴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고 나서의 생일은 그런 존재가 되었다.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라고 했나. 아기의 생일이 내 생일 이틀 전이 된 이후부터. 아기는 새 미역국이지만 나는 재탕 미역국을 먹으면서부터. 일 년 중의 하루 그래도 의미 있는 날이구나를 알게 되었다

작년 돌잔치에 이어 올해 생일도 초점은 아기에게 맞춰졌다.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이 두 돌 생일을 축하해 줬고 주말을 이용해 양가 부모님들 축하를 해주셨다.(장인어른 장모님이 내 생일을 함께 챙겨주신 건 정말 감사했다) 생일의 설렘이 점점 하향 조정 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생일은 생일이라는 것. 본의 아니게 아기와 생일이 이틀 차이가 나게 되면서 생일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생일이란 건 그간의 나를 위로하고 앞으로의 나를 위해 파이팅을 외치는, 잘 살아온 나의 머리를 잠시 쓰다듬어주는 그런 날이라는 것. 소홀했던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도 실은 아기 덕분이다. 삶의 이유를 누군가와 연결을 한다면 그 누군가는 참으로 귀중해진다. 앞으로의 아기 생일에 더 큰 사랑을 담아 축하해 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참, 올해부터는 지인들의 선물 목록 변화가 생겼다. 체력 충전용의 생일 선물들이 들어올 줄이야. 그렇다 나는 아빠다. 이제 불혹이다. 몸도 챙기고 마음도 챙기는 건강한 한 해가 되도록 하자.)

피로는 왜 가시지를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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