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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소 Jan 15. 2024

금사빠 아기의 변천사

다음의 관심사는 무엇일까요?

본격 육아 전, 정확히는 와이프의 임신 시절. 나에게 있어 아기에게 핸드폰 영상을 보여주는 주위 엄빠들 모습은 썩 유익 편은 아니었다. 렸을 적을 생각해 보자. 그 당시에 유튜브라는 것 어디 있었나. 그저 흙냄새 풀풀 풍기는 운동장을 뛰노는 것이 최대 놀이었는데 말이다-

와 같은 꼰대적 마인드로 똘똘 뭉친 예비 아빠.  생각은 아기가 걸음마와 이유식을 서서히 떼어가는, 정확히는 어린이집 입학 전까지굳건했다.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 했던가. 어린이집 입학 후 걸음마가 자연스러워지면서, 거부감 없는 유아식과 함께 른의 응가 냄새를 풍기면서부터, 옹알이를 뛰어넘어 의사소통이란 걸 하게 되면서부터. 아기는 눈에 보이는 모든 세상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기를 키우면서 가졌던 또 하나의 마음 가짐. 세상의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해 주기. 아이러니하게도 유튜브에는 세상의 많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핸드폰 문을 굳게 걸어 잠그는 아빠. 아빠의 모습은 어쩌면 쇄국정책을 펼친 옛 흥선대원군과도 같지 않았을까육아를 하면 정말 많은 것들을 알게 되는데, 유튜브가 육아 도우미라는 것도 이 중 하나였다. 핸드폰 영상만은 보여주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와 이상은 그렇게 현실과의 타협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아기의 첫 번째 관심은 바이올린이었다. 자장가로 틀어준 바이올린 선율 때문이었는지, 장난감 대여점에서 빌린 바이올린 놀이 때문이었는지 잘 때마다 "바올리- 바올리-"을 외치는 아기에게 바이올린 영상을 보여주면 고도의 집중력을 보였다. 음악을 즐기는 듯한 아기의 눈동자. "설마 아기에게 음악적 재능이? 바이올린을 하고 싶어 하면 어쩌지? 예체능은 내가 자신이 없는데." 같은 걱정이 기우에 지났던 건 딱 한 달. 생후 16개월 때였다.


바이올린을 더 이상 찾지 않게 된 건 한 달 뒤였다. 고릴라를 알게 되면서부터 바이올린의 존재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쿵쾅쿵쾅 하며 가슴 치는 흉내를 내면 까르르- 하고 천연 미소를 는 아기. 할머니 할아버지와 영상 통화를 하면 어김없이 고릴라 흉내를 내라고 지시하는 아기. 지금까지 먹은 밥알 수가 최소 수억 배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지만 쿵쾅쿵쾅 쇼를 보여줘야 전화 통화를 끝낼 수 있었다. 고릴라는 그렇게 또 한동안 아기의 최대 관심사로 등극하였다.


고릴라도 수명이 길진 않았다. 고릴라의 수명이 다 해갈 즈음 발견한 인스타그램 영상 하나. (신기한 디지털 알고리즘 세계에서 요즈음 나의 SNS는 육아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다) 그중 눈을 끈 영상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ABC 요가송'이다. A! B! C! 하며 요가송에 맞춰 알파벳 모양을 따라 하는 아기 영상. 조그만 몸둥어리로 알파벳을 따라 하는 귀여운 몸짓. 우리 아기도 가능한가 싶어 보여줬더니 A B C 요가에 맞춰 곧잘 몸을 왔다 갔다 했다.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열어 귀여운 모습을 담았고 그렇게 아기는 고릴라를 버리고 알파벳 요가와 사랑에 빠졌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알파벳은 H였는데 이때는 2인 1조의 협력이 필요하다. H를 만들기 위해 나란히 서서 조그만 손을 내밀 때의 설렘이란. 엄마 혹은 아빠의 손을 잡는 조그만 손을 보면 미소를 숨길수가 없다. (이 때는 잠잘 때마다 아빠 나가! 를 하는 18개월 때였으므로 H요가송은 감동의 노래였다)


두 돌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동물에 관심이 많다. 처음에는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멍멍이 야옹이 짹짹이-'정도였는데 말부쩍 늘고 힘도 세진 요즘에는 사자와 호랑이가 최애 동물이다. '어흥과 으르렁-'하며 자신의 강함을 동물에 투영하는 아기. 실내 동물원에서 새 모이도 주고 뱀도 몸에 감는 아기를 보면 용맹함이 나보다 낫다. 한 달마다 사랑에 빠졌던 금사빠 아기. 개월수가 조금 찼다고 최근의 관심사인 동물 사랑은 꽤 유지 중이다. 조금씩 크는 키처럼 사랑의 길이도 길어지는 것일까. 두 돌 임박의 동물 애호가의 사랑 언제까지 이어질까. 금사빠 아기의 다른 사랑이 궁금해진다.



한때는 포비 사랑이 넘쳐났습니다. 뽀로로보다는 포비. 메인보다는 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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