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책임감을 실감하다
코로나 확진 판정. D+4
확진 판정 4일째다. 뜻하지 않은 일주일의 반이 흘렀고 일주일은 꽤나 긴 시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방 안이라는 사각의 공간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인가. 정적인 공간이 주는 고요함은 시간의 더딤을 배로 만들어준다. 몸은 거의 완쾌를 향해 가고 있다. 마른기침과 약간의 가래가 목구멍에 걸려 있는데 그 외에는 이상이 없다. 이쯤 되면 밖으로 나가도 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공식적인 해제일은 아직 3일이나 남았다.
가족 모두가 양성인 마당에 격리 장소를 본가로 빠르게 옮긴 건 잘한 선택이었다. 마냥 관리처의 연락을 기다렸다면 확진 4일째까지도 연락을 못 받았을 테니 말이다. 빠른 선택을 할 수 있게 해 준 건 전적으로 1개월 된 아기 때문이었다. 양성이라는 문자 한 통에 갑작스레 생명 위협 사건의 컨트롤 타워가 되었고, 긴급히 상담소에 전화를 하여 향후 거취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가히 실망스러웠다. 현황 보고와 함께 장인 장모님에게 아기와 와이프의 안위를 부탁, 나는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 피신하는 선장이 되었고 본가에서 가족의 안부를 기도했다. 만약 와이프 하고만 있었다면 어쩌지 어쩌지 하는 어리광 남편이 되었을지도. 아빠라는 책임감, 실감을 하게 된다.
결혼과 함께 분가를 하며 본가와 지역구가 다른 곳에 생활을 하게 됐다. 본가에서는 60세 이상의 엄마, 아버지에게 수시로 건강 체크 전화가 온다. 동생에게는 확진 다음 날 격리 해제일 공지와 함께 코로나 지원금 신청 안내 문자가 왔다. 우리 지역구는 확진 당일 날 읽다가 지치는 장문의 문자 몇 통 말고는 그 외 연락이 없다. 지역구마다 확진자에 대한 행동 강령이 다른 건가. 신혼집 위치는 잘 골랐다 생각했는데 말이다.
로보트 기요시키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도 반 이상을 읽었다. 결국 경제적 자유를 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나 투자자가 되라는 건데, 그러려면 큰돈을 굴려야 한다가 포인트. 하지만 난 배포가 작다. 갓 태어난 아기 때문이라도 한 푼 두 푼을 더 버는 것이 더 중요해졌는데 큰돈을 굴리라니. 책임져주지도 않을 거면서. 젊었을 때 이것저것 해보라는 것은 맞는 말이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더 있을 테니. 이런 생각을 하는 거 보면 나도 기성세대가 돼가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로보트 기요시키는 아빠인가. 결혼은 한 거 같은데 자녀 이야기는 따로 안 보인다. 아니, 아빠 아빠 거리면서 정작 자기는 아빠가 아니란 말인가. 게다가 일본 사람. 갑자기 국뽕이 차오른다. 그렇다면 그의 가르침에 대해서 크게 동의하지 않아도 되겠다.
코로나 약도 이제 끝물이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