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격리하는 광고쟁이의 하루
코로나 확진 판정. D+3
나는 광고대행사에서 일을 한다. 광고주의 요청에 따라 업무가 정해지는 예측 불허의 업무 라이프. 광고주 전화가 오면 부모님보다 더 공손해지고, 때가 주말이든 늦은 저녁이든 그들의 전화는 항시 수신 대기다. 광고 업력 11년 차. 업계 처음 입문 때보다는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몇몇 광고주들은 빠른 피드백을 원하면서 동시에 높은 퀄리티를 원한다. 무리한 일정에 최고의 자료를 기대하는 이들. 이들의 기대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나 같은 광고 대행사는 힘들어지고 동시에 지쳐가게 된다. 회복을 위해서는 동료들과의 소주 한 잔이나 업무 요청이 없을 것 같은 날짜를 예상하여 떠나는 휴가(그래 봤자 연락은 오지만). 그렇게 11년을 버텨왔다. 앞으로도 버텨야겠지만.
코로나 확진이 됐지만 업무를 쉴 수는 없었다. 개개인별로 담당하는 광고주가 있기 때문에 특정한 공백이 아니고서야(가령 출산휴가라든가, 안식휴가 등) 다른 이에게 백업을 부탁하는 것은 다소 민폐가 될 수 있다. 틈을 내어 반차를 쓰거나 하루 휴가를 쓸 때면 인수인계하기도 애매하여 연차를 사용했더라도 일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다. 자가 격리에 따라 재택근무를 진행했고 출퇴근 앱을 통해 출근 시간을 기록했다. 회사 아웃룩 메일을 오픈하니 도착해 있는 메일 한 통. <신규 캠페인 제안 요청 - 기한 오늘까지> 지난 금요일 밤늦게 업무 요청을 받아 일정에 여유를 달라고 했으나 의견은 무참히 묵살된 채, 광고주가 원하는 일정대로 전달 달라는 확인 사살의 메일이었다.
확진 3일 차. 증상은 약간의 목 칼칼함과 코막힘 정도. 조금 더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지만 첫날보다는 크게 호전된 모습에 자기 합리화를 하며 노트북 자판과 마우스를 열심히 굴리기 시작했다. 11년 차의 내공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제안서를 반나절만에 완성했다. 소심한 반항이랄까. 무리한 일정으로 요청한 것이 괘씸해서 자료는 퇴근 시간이 될 무렵에 전달했다. 쉼 없었던 하루의 업무는 끝이 났다.
업무를 끝내고 와이프와 영상 통화를 했다. 3일 만에 보는 우리 아기. 새벽에 한참이나 놀았다고 했다. 덕분에 와이프는 잠도 못 잔 채 뜬 눈으로 새벽을 보내야 했다. 영상 통화 중간에 와이프의 손목 보호대가 보였다. 5kg의 아기를 계속 안고 있으면 손목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남자인 내가 안고 있어도 힘든데 와이프는 오죽하겠나. 가뜩이나 몸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인데 와이프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뉴스 기사에서는 곧 방역 패스가 해제되고 자가격리 조치가 완화된다고 했다. 뭐 그럴 테면 그러라지. 광고쟁이의 삶은 매사에 수용적이다. '갑'보다는 '을'이 익숙한 광고쟁이니깐. 자가 격리하는 광고쟁이의 하루는 이렇게 끝이 났다.
와이프의 손목 보호대가 유난히 더 신경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