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무전기를 사용해보세요
연구 통계에 따르면 태어나서 2~3년까지는 아기 정서함양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아기가 정상적인 애착 형성과 건강한 사고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워킹맘 워킹대디에게 이는 간단한 일만은 아니다. 당장의 생활고에 시달린다면 더더욱이 일을 미룰 수는 없을 터. 슬프지만 현실이다. 이상과 현실은 자석의 N극과 S극 같다. 상호 배타적인 그런 관계.
다행스럽게도 와이프 직장은 육아에 대해 배려를 해주는 환경이다. 덕분에 최대 2년의 육아휴직을 생각하고 있다. 나머지 1년은 초등학교 입학 때 사용할 계획이다. 나 또한 육아휴직은 가능하다. 하지만 쥐꼬리만큼 더 버는 월급의 액수로 인해 생활비를 담당하기로 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일과 휴직의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때 서로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있다. 바로 무전기. 가는 길이 다르다고 자신의 길만 고집하지를 말 것. 자칫하면 영원히 갈림길만 다니게 될지도 모른다. 갈림길에 들어서기 전 꼭 챙기길 바란다. 상대방과 소통할 수 있는 무전기를 말이다.
무전기가 필요하다고 느낀 건 백일이 지나고서였다. 신생아 때의 정신없던 나날이 지나고 셀프 백일상으로 행복을 나누었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다른 결의 행복. 백일 동안 아프지 않은 아들에게 감사했고 별 탈 없이 건강하게 키워준 와이프에게 감사했다. 백일이 되니 아기는 제법 옹알이를 시작했고 숨 가빴던 육아 생활에도 조금의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슬며시 무전기를 들어도 되지 않겠나 싶었다.
그리하여 지지직 지지직-. 가족회의를 열었다. 회의 안건은 '백일까지 고생했어요. 우리 육아생활 잘하고 있는 거죠?' 회의상에 차려진 음식은 치맥이었고, 아기는 언제 깰지 모르는 밤잠을 자고 있었다. 생각했던 회의의 그림은 백일까지 고생했고 앞으로 더 힘내자라는 으쌰 으쌰. 하지만 생각은 생각으로 남은 채 어느새 서로의 서운함 자랑을 하는 현실에 직면했다. 워킹대디 vs 전업주부의 입장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100분 토론과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다음은 서운하다는 의견을 비춘 전업주부에 대해 워킹대디가 한 항변이다.
육아휴직을 한다면 상대적으로 아기와 보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자연스레 육아휴직 중인 엄마와 친숙할 수 있고 자연스레 엄마가 육아 일에 능숙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육아를 잘 못한다는 의사 표현은 서운합니다. 워킹대디인 아빠도 육아를 합니다. 일 끝나는 대로 집으로 오고 퇴근해서는 아기 목욕을 시키고 잠을 재웁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재택근무를 하면서 엄마의 떨어진 기력을 충전하게 해 줍니다. 주말에는 엄마에게 휴식을 주려고 나갔다 오라 합니다. 그런데도 엄마는 부족한가 봅니다. 부족할 수밖에 없겠죠. 육아시간보다 휴식시간이 적으니깐요. 온전한 휴식을 주지 않는 한 엄마는 피로가 계속 쌓여 있을 겁니다.
육아 휴직을 하며 갑작스레 전업주부가 되고 매일매일 아기와 씨름하는 것이 힘들 수 있습니다. 때로는 안쓰럽게도 느껴집니다. 아기가 없었을 때는 자유로웠던 몸인데 엄마라는 이름이 몸이 무거워졌으니 말이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육아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일을 하니 나보다 육아를 못할 것이오. 내가 육아에 집안일에 다 하는 것 같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소.' 같은 자신만의 단정적인 생각은 기분을 상하게 합니다. 결국은 넌 아기 낳고 뭘 했는데- 로 귀결되는 것 같으니 말이죠. 열심히 육아를 한다 했는데 결국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무시로 연결되는 느낌입니다. 무시를 받고 기분 좋은 사람이 있을까요. 무시를 받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구 사이에는 무시에는 무시로 응수할 수 있지만 부부 사이에는 무시가 답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겠는데요. 지금은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오늘은 우선 여기서 가족회의를 마쳐야겠습니다.
그러했다. 와이프는 집안일이며 육아며 다 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육아를 같이 한다 생각했다. 각자의 기준점이 달랐고 서운함이 쌓인 나는 무시를 당한다고 생각했다. 행여 서로의 예민함을 건드릴까 봐 조용히 각자의 길을 걷다 보니 생겨난 오해들. 각자의 생각이 오래되면 확신으로 굳어가게 된다. 확신이 굳으면 굳을수록 그 두께는 두꺼워지고 그 단단함을 깨트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게 된다. 어쩌면 이 순간에 무전기를 든 건 적절한 타이밍었을지도. 아직 벽의 상태는 물렁물렁할 것이다.
벽을 허물기 위해 지금껏 왔던 길을 되돌아가 보았다. 하나하나 되짚다 보니 어느새 일과 육아휴직의 첫 갈림길에 도착을 했다. 와이프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들게 한 내가 보였다. 10개월 동안의 몸의 변화. 출산의 고통. 정상 몸도 아닌데 마주한 아기. 휴식 없는 매일매일의 연속. 내가 감당하기에도 벅찬 무게를 와이프에게 들게 했다. 짐을 내려주지 못할 망정 잠시의 감정 상함으로 논쟁까지 하는 남편. 객관적으로 멋있는 남편상은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무전기 효과. 육아를 전면으로 하고 있지 않다면 정기적으로 상대에게 말을 걸어라. 그리고 귀 기울여라. 공감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것이 육아다. 오늘따라 퇴근 시간이 더디다. 얼른 집에 들어가 감정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하고 싶다. 그리고 짐을 덜어주자. 와이프보다는 짐 몇 개는 더 들 수 있지 않겠나. 무거울 것 같나. 아니다. 사나이라면 남편이라면 아빠라면, 응당 할 수 있다.
무전기를 사용할 일이 생길 줄을 몰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