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군자역에서의 이야기

프롤로그

by 이보소

지하철 끝 쪽의 노약자석은 총 여섯 자리. 그중 한자리는 긴 머리의 20대 여성으로(30대로도 보이나 30대라고 하면 더욱 몰지각해 보여서 세상 물정 모르는 20대로 단정) 보이는 자가 앉아 앞머리에는 헤어롤을 끼고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혹시 임산부 일까도 싶었지만 그 어디에서도 임산부 흔적 및 이를 입증하는 배지가 보이질 않았다. 혹시 다리에 깁스를 한 건 아닐까라고도 생각했지만 그녀의 발에는 베이지색 운동화가 잘만 신겨 있었다. 몸이 불편한 것이 아닐까라고 애써 생각해 봐도 외관상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그녀. 큰 변화가 없는데도 가는 내내 화장을 고치는 모습은, 그래서 더욱 예뻐 보이지 않았다. 출근길 속 빽빽한 사람들 틈 속에 있어서 안 보인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님 지하철에서의 에티켓이란 걸 모르는 걸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끊임없이 화장질을 하기에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이 자는 아마도 당당한 성격의 소유자일 것이라고 최대한 에둘러 표현해 본다.


출근길 속 지하철. 역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하나둘 한정된 공간으로 들어왔다. 공간은 점점 사람들로 빼곡해졌고 화장을 고치는 노약자석의 여자는 군중 속에 더욱 파묻혔다. 지하철이 군자역을 향할 때였다. 노약자석 출입문 쪽에 자리한 뽀글 머리의 어머님이 전화를 받았다. 스피커폰을 전화를 받았고 모든 통화 내용이 적나라하게 들렸다. 정확한 사연은 모르겠지만 어머님은 지인이 소개한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고 그 누군가를 8호선 가락시장역 8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스피커폰은 꺼졌고 곧 다시 전화가 왔다.

"전화 왔지?"

"어."

"잘 들어. 군자에서 내려서 천호로 가. 8호선으로 갈아타서 가락시장에서 내려"

"천호"

"아니 군자에서 내려서 5호선 갈아타고 천호로 가. 거기서 다시 8호선을 타고 가락시장에서 내리라고."

"군자? 알겠어."


스피커폰은 꺼졌고 뽀글 머리 어머님은 어떻게 가야 되냐고 혼자 중얼거렸다. 마스크는 입에 반쯤 걸친 채. 그리고 주섬주섬 가방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셨다. 분명 혼자 중얼거리는 혼잣말이었는데도 조용한 지하철에서 어머님의 목소리는 뚜렷했다.

"여기가 어디지?"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빨간 원피스를 입고 체인 같은 금박의 알 목걸이를 한 아주머니가 답을 했다.

"다음에 내려야 돼요."

"다음에 내려야 돼? 가락시장 가야 되는데 어떻게 가야 돼요?"

"다음에 내려서 갈아타야 돼요."


그러자 옆옆에 앉아 있던 새마을모자를 쓴 아저씨가 말을 했다.

"8호선 타야 돼 8호선. 빨간 색깔."


꽉 찬 인파 속 맞은편 노약자석 가운데에서 풍채가 있으신 둥근 뿔테 안경의 어머님도 말했다.

"지금 나와. 다음에 내려야 돼."


뽀글 머리 아주머니는 주섬주섬 종이와 미니 양산을 들고 꽉 찬 인파를 헤쳐 나왔다. 출근길의 인파들은 알아서 길을 내주었다. 다들 통화 내용을 들은 것 같았다. 뽀글 머리 어머님은 인파를 헤치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물었다.

"여기서 내리면 돼요?"


이제는 하차하는 출입문 쪽의 아저씨가 거들었다.

"맞아. 다 들었어. 여기서 내려서 두 번 갈아타. 한 번은 천호에서 갈아타야 돼."


노약자석에 앉으면 모두 친구가 되나 보다. 오고 가는 대화 속 여전히 열심히 화장을 고치는 한 명만 빼놓고. 화장을 하는 여성도 언젠가는 당당히 노약자석에 앉을 수 있는 나이가 되겠지. 그때는 그녀도 화장을 고치던 오늘의 자신이 생각날 수도.



살다 보면 뒤늦게 깨우치는 것들이 있다. 당시에는 보이지 않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 이럴 때는 '~할 걸'이라는 아쉬움과 후회가 동반되기도 한다. 아기를 키워보니 이제야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알겠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첫 니가 난 옹알이 아기를 키울수록, 하루하루 성장하는 아기를 카메라에 담을수록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은 진해진다. 헌신과 사랑으로 지금껏 키워주신 부모님. 그들의 젊은 시절은 어느새 지나갔고 이제는 군자역에서 하차한 어머님의 나이대가 되었다.(부모님 또한 요새는 생판 모르는 분들과도 단숨에 친구가 되시는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의 남은 인생. 자식 된 자로서 후회스러움을 남기지 않도록 오늘은 첫 니가 난 손주를 데리고 부모님 댁을 방문해야겠다. 그리고 그 손주를 아낌없이 사랑해야겠다. 첫 니가 난 순간은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시간이기에. 부모님과의 첫 니 아기가 함께 하는 지금의 시간도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이기에.


군자역 노약자석.png 출근길과 퇴근길, 이따금 한강을 물끄러미 쳐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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