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는 일 년이 지날 즈음 아기가 걷기 시작했습니다. 넘어질락 말락 하지만 좀처럼 넘어지지 않는. 누워있던 아기가 뒤집을 줄 알고, 뒤집던 아기가 길 줄 알고, 기던 아기가 일어설 줄 알고, 일어서던 아기가 걷기 시작했습니다. 뒤뚱뒤뚱과 아장아장이 어우러진 13개월 아기의 걸음.
존재 자체가 사랑스러운 아기가 어린이집에 입학을 했습니다. 낯선 공간 속에서의 시간은 어땠는지. 불편하진 않았는지.아기의 반응이 궁금하지만 생후 13개월 아기에게 들을 수 있는 대답은 '으으- 아아-' 일 뿐입니다. 표정이 일그러지지 않은 걸 보고 괜찮았구나-라고 자의적 판단을 해보기도 합니다. 내 방식대로 해석하기. 엄마 아빠들의 특기라 할 수 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아장아장한 아기가 자기만 한 가방을 멘다는 것. 그 가방을 메고 어린이집에 간다는 것.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또 다른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을 13개월 아기가 해낸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아기가 입학을 하니 자연스레 학부모가 되었습니다. 아기의 선생님이 어떤 분 일지. 아기는 어린이집 생활을 잘하는지가 궁금해질 것 같습니다. 나의 부모님은 알고 있을 학부모의 마음.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슬그머니 또 하나의 역할이 생겨버렸습니다. 남편. 아빠. 그리고 학부모. 결혼을 하면 어른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려면 아직도 더 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를 어쩌죠. 키는 더 이상 안 자를 것 같은데 말입니다. 에라이 모르겠다. 꿩 대신 닭이라고 마음이라도 키워봐야겠습니다. 마음을 잘 가꾸어 진짜 어른이 되어봐야겠습니다. 진짜 어른이 되면 좋은 아빠도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내 스스로가 좋은 아빠라 칭하는 것이 아닌, 아기가 말하는 좋은 아빠. 마음 가꾸기. 학부모 역할에 걸맞은 새로운 취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