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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소 Mar 19. 2023

흘러가는 날 붙잡지 말기

육아 멘탈 관리의 자세

"오늘 무슨 날이야?"

이럴 때가 있습니다. 의도치 않은 일들이 겹겹이 쌓여 무슨 날인지로 의심받게 되는 날. 짜증에 짜증이 더해져 무슨 날이 되어야만 할 것 같은 날. 정말 아무 날이 아닌데 아무 날이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은 날. 실은 생일도 아닌 기념일도 아닌 365일 중 하루 뿐인데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이런 날은 그저 흘러가는 날입니다. 모래로 물길을 만들었지만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는 물처럼(다시 담을 수도 없는). 그저 흘러가는 날이라고 생각하세요. 365일이 매일 의미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깐요. 괜한 의미 부여를 해봤자 흰머리 늘어날 뿐입니다. 검은 머리로 젊은 척 코스프레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흘러가는 날은 붙잡지 말아야 합니다.


어린이집 생활 이 주차째. 결혼식 참석과 남산 타워 방문을 하루에 모두 '하기로' 했습니다. 아니, 생후 13개월의 아기와 함께 하는 도전기이니 '해보기로 하다'가 더 맞는 표현이겠네요. 해보기로 한 이유. 바로 아기의 어린이집 적응력 때문이었습니다. 어린이집 이 주차. 엄마가 옆에서 한 시간 동안 붙어있는 것을 몇 차례. 끝에는 삼십 분 간 아기와 떨어지면서 이 주차 생활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엄마를 찾고 우는 친구들과는 달리 우리 아기는 엄마를 찾지도 울지도 않았다 했습니다. 심지어 낯선 선생님과도 잘 지내는 친화력 덕분에 엄마 아빠는 괜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적응을 잘 한 건 아기인데 왜 엄마 아빠가 뿌듯해할까요. 정확히 모르겠는 애매한 이유로 결혼식 참석과 남산 타워 방문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봄이 다가오는 날씨 좋은 토요일이었습니다.


이 날은 이러했습니다.

야외결혼식인 줄 알고 신기해하며 도착했는데 실내 결혼식이었고(야외는 신부신랑이 기념 촬영하는 용도로만 활용했고) 1부, 2부로 나뉘는지도 몰라 생각보다 결혼식장에 오래 있었고(아기는 시간이 갈수록 징징 거렸고) 코스 요리의 식사여서 빠르게 먹을 수가 없었고(거세지는 아기의 징징댐은 음식을 덮치려는 행동으로 변모했고) 먹는 둥 마는 둥한 식사를 마치고 방문한 남산의 케이블카에서는 장시간 대기를 해야 했고(하필 주말 저녁 피크타임과 겹쳐 오르며 내리며 모두 대기를) 남산 타워 속 엄마 아빠의 연애 흔적을 찾으려 했으나 청소를 했는지 확인할 수 없었고(영원한 건 없음을 느꼈고) 시간이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의 주차비는 이만 원을 육박했고(사기꾼들인 줄 알았고) 도착하자마자 씻고 자려는데 낮에 세탁기로 돌렸던 이불이 마르지 않았던 날.(늦은 밤 집 앞 주차 공간이 없어 집에서 먼 단지 내 다른 동에 주차까지 했고) 이날은 실로 최악이 어울리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애꿎은 불평불만만 늘어놓았을 텐데, 아기와 함께 하니 이제는 이런 날도 있겠다 싶습니다. 얼굴을 붉혀봤자 유익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기가 바라보는 세상은 밝음과 행복으로 채워주고 싶으니까요. 세상의 배경인 엄마 아빠의 멘탈 관리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천진난만한 아기에게 괜한 짜증을 알려줘 봤자 하등 좋을 건 없습니다. 그러니 무언가들이 끊임없이 몰아치더라도 타박하지 마세요. '왜 그랬어! 왜 그랬니!'가 아닌, '그래서 그렇고 그렇게 되었답니다~'와 같이 흘러가는 동화 속 이야기처럼. 이런 날은 붙잡지 말고 그저 흘러가게 해 주세요. 흘러가는 날 붙잡지 말기. 장기전인 육아 레이스에서 필요한 육아 멘탈 관리의 자세입니다.


생후 14개월 스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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