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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소 Mar 26. 2023

안 보였던 것들이 보입니다 : 공룡 세 마리

주저하지 말고 추억 쌓기에 전념할 때

장난감 대여점에서 새로 빌린 해상동물 퍼즐. 조그마한 손으로 퍼즐의 조각을 만지작거리더니 베란다 창문에 붙어 있는 해상 동물 포스터로 가져갑니다. 몇 개 집지도 못할 손에는 꽃게와 돌고래, 해마 퍼즐이 들려 있었습니다. 이내 해상 동물 포스터 앞에서 퍼즐을 떨어트리고는 손가락으로 포스터 그림을 가리킵니다.

"으케!! 으케!!"

아기의 손가락은 꽃게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어우~ 잘했어요~!!"

관찰력이 좋은 생후 14개월. 으-- 으-- 라고 무언가의 말을 하는 아이를 보며 아내가 작게 속삭입니다.

"혹시 우리 아기 천재 아닐까?"

모든 부모들이 한 번쯤은 의심해 보는 생각. '우리 아이 천재설' 어린이집 삼주차에 접어들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관찰력 좋은 아기를 위해 집 근방의 공룡 공원에 방문했습니다. 유모차를 천천히 끌며 따뜻한 햇살과 함께 도착을 했습니다. 따뜻한 날씨 때문인지 이십여분의 거리 동안 아기는 잠이 들었습니다. 도착해서도 곤히 잠들어 있는 아기. 따스한 햇빛 사이 녹색 벤치에 잠시 앉아봅니다. 공원에는 아기보다 큰 형 누나들이 뛰놀고 있습니다.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도 언젠가 형 누나들처럼 뛰놀겠지-라는 생각을 잠시 해 봅니다.


미래의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있던 중 아기가 눈을 떴습니다. 시끌 버쩍한 공원. 검은 유모차 안에서의 환한 낮 풍경에 아기는 한동안 한동안 두리번거립니다. 그리고 이내 공룡을 발견합니다.

"으으-"

목을 길게 빼고 공룡을 가리키는 아기를 유모차에서 꺼내줍니다. 총 세 마리의 공룡. 티라노사우루스를 자신 있게 알려주고 이구아노돈, 부라키오 사우르스는 커닝으로 알려줍니다. 그림책에서만 보던 공룡을 처음으로 보는 아기. 날카로운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자신보다 한참 높은 공룡을 바라봅니다. 공룡에 관심을 보이는가 싶어 친숙한 티라노사우르스를 다시 알려줍니다. 하지만 아기는 곧 고개를 내리고 자기만 한 손에 어울리는 돌멩이를 연신 찾아댑니다. 흙 속의 돌멩이를 꼭 쥐고 이리 뒤뚱 저리 뒤뚱. 공룡 공원에 온 건지 돌멩이 공원에 온 건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공룡에 관심은 없습니다. 처음 보는 공룡이 무섭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기우였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빠의 손은 아기를 카메라에 담고 있었습니다.


맘마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기는 오는 내내 검지를 쪽쪽 빱니다. 평온한 아기 덕분에 한낮의 집 근처 풍경이 보입니다. 천체박물관이 있고 교통공원이 보입니다. 아기와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분명 익숙한 동네인데 그간 이런 공간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아기와 함께하니 안 보였던 것들이 보입니다. 라식 수술 후의 느낌이 이런 걸까요. 뿌옇던 공간들이 아기와 함께 하니 선명해집니다. 선명해진 공간을 보니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나쁜 핑계일 뿐입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 주저하지 말고 추억 쌓기에 전념할 때입니다.

공룡 무릎까지 크면 징그러울까 사랑스러울까 귀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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