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거창한 일이 되기도 한다. 가령 퇴사를 하여 십일만에 여행 준비를 하게 된 일이라든가, 그 여행이 코로나 이후 떠나게 된 오랜만의 해외여행이라든가, 누군가에겐 오랜만이겠지만 십팔 개월 아기에게는 첫 해외여행이라든가 같은, 그런 물고 물리는 의미 부여. 별 것 아닌 일들에 이런저런 사연들을 붙이니 여행은 꽤 부담스러운 과업이 되었다. 가장이라는 책임감이 덕지덕지 붙은 묵직한 여행이라고나 할까.
무엇보다 긴장되는 건 십팔 개월 아기와의 여행이란 것이었다. 짤막한 단어만을 구사하는, 그것도 불완전하게 소리를 모방하는 정도의,배가 고프다거나 어디가 아플지라도 온전히 의사를 전달하지 못하는 아기. 불편함을 울음으로 소통하려 하기에 부모 된 자는 울음 속에서 정답을 찾아야 한다.(희한하게도 엄마는 아빠보다 정답을 훨씬 빠르고 잘 찾는다)
이럴 거면 아기가 크고 나서 여행을 가도 되지 않냐고? 정 가고 싶으면 아기를 맡기고 가면 되지 않냐고? 그렇다.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코로나 이후 사 년 만에 떠날 와이프와의 해외여행. 코로나 때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간 자로서는 절대적으로 생각해 볼 일이었다.
현실적인 아이디어는 이십 분 남짓 거리에 있는 본가의 부모님에게 아기를 맡기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아기를 봐서 좋고 우리 부부는 잠시의 힐링을 해서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가히 경제적 일석이조 효과 아니겠는가.
하지만 하나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공무원인 와이프의 현재 상태였다. 이년 째 육아 휴직 중인 와이프. 말 그대로 육아를 목적으로 한 휴직이기에 아기를 떼어 놓고 해외여행을 간다는 것은 휴직의 이유에 부합되지 않았다. 단 오일의 여행일지라도 적절치 않은 행동이었다. 더군다나 오 일씩이나 아기를 보지 못한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될 것 같았다. 설혹 굳은 마음으로 아기를 떼어 놓고 간들 아마도 눈에 밟혀 여행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은 아기와의 동행하는 것. 그것이 합당한 결론이었다. 우리는 아기와 함께 해서 좋고 아기는 새로운 세상을 구경해서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일석이조 효과는 꼭 어른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었다.
아기를 데리고갈 때의 걱정거리들. 아기가 비행기는 잘 탈 수 있을지 렌터카는 잘 탈 수 있을지 음식은 입에 맞을지 잠은 잘 잘 수 있을지 등등. 아기와 함께 하니 별 것 아닌 일들이 크게 다가왔다.(물론 이보다 더한 일이 있었기에 떠나기 전의 걱정들은 기우였지만) 그래서일까. 출국 시간 때문에 새벽 다섯 시에는 기상을 해야 하는 가장은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괜한 긴장감 때문인지 혹은 겪지 못한 불안함 때문인지 몰라도 오랜만의 해외여행은 이상하게도 설레지가 않았다.
어느덧 벽시계는 새벽 한 시를 가리켰다. 기상까지는 네 시간이 남았고 비행기 출발 시간까지는 여덟 시간이 남았다. 오키나와 도착 후 렌터카 픽업까지는 열한 시간이 남짓 남은 시간. 흘러가는 시간을 보고 있자니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묵직한 부담감을 안은 가장은 그렇게 깊고 굵은 잠이 들었다. 우리 가족의 오키나와에서 행복한 오 일을 기대하며. 별 것 아닌 오키나와 여행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