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또 오키나와예요?

아빠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입니다만

by 이보소

여행지를 선택한다는 건 따면 꽤 심오한 일이다. 우선 그 사람(혹은 일행)의 취향이 담겨야 하고 그와 함께 시간과 에너지 동반이 필요하다. 한 최소한의 사회적 규율이라든가 금기하는 제스처 같은, 그 나라 혹은 지역의 문화도 고려 대상이 된다. 게다가 여행 경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니 이것저것들의 조건값들을 결합하면 행지를 선택한다는 건 꽤나 심오한 일이다.


연차를 사용하는 직장인에게 외 여행지의 선택은 그래서 더 신중하다. 한정된 일수에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나라 찾기(정확히는 그 나라의 도시지만). 최대한 다양한 나라를 경험하고자 하는 의지는 아마도 연차의 소중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번 여행지의 선택은 평소의 지론에 반하는 결정을 하였다. 한 번은 회사에서 패키지여행으로, 한 번은 회사 동료와 자유 여행으로 방문했던 오키나와. 이미 두 번의 전적이 있었음에도 또다시 문턱을 넘게 되었으니 개인적으로 이번 오키나와 방문은 세 번째가 되게 된 셈이다.


왜 또 오키나와냐고? 이유는 십팔 개월 아기에 있다. 아기가 태어난 이후로 어디를 가든 아기가 우선순위가 된다. 식당을 가면 아기 의자가 있는지, 호텔을 가면 침대 가드가 있는지, 야외 나들이를 하면 아기 놀거리가 있는지 등등을 먼저 확인하고 이동을 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삶은 변한다. 처음에는 삶의 변화가 급격해서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만 지나고 보면 기분 좋은 변화임을 알게 된다. 변화의 크기보다 행복의 크기가 더 크다면 한 번쯤은 변화를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은가. 행복이란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때로는 지칠 수도 있겠지만 육아라는 것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삶이라는 건 확실하다. (아직 십팔 개월 아기만으로 판단하는 풋내기 초보 아빠의 낭만적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뭐가 됐든 또 다른 기분 좋음을 상상하며 선택한 여행지, 오키나와. 십팔 개월 아기와 함께 할 여행지의 조건 값들을 읊어보자면 아래와 같다.


1. 가까 거리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는 아기를 위해서는 짧은 탑승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 부부 또한 코로나 이후 첫 해외여행이기도 하여서 장거리보다는 단거리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평소 차에서 한 시간가량은 카시트에 얌전히 앉아 있기도 해서 두 시간 남짓한 거리까지는 도전 가능하겠다 싶었다. 그러려면 해외 여행지는 대한민국에 인접한 중국 아니면 일본 중에서 선택이 필요했다. 본의 아니게 친중이나 친일이냐는 외교의 선택적 갈림길(?)에 선 것 같았지만 정치적인 견해를 떠나 아기에게 집중하자면 음식, 환경 등등에서 일본이 보다 적합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선택한 일본. 다음으로 일본의 어느 도시를 방문하냐의 단계로 넘어갔다.


2. 휴양지

약 삼 년의 연애 기간 동안 우리 부부가 함께 한 해외 여행지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스트리아 빈, 체코 프라하, 그리고 코로나 직전 방문한 사이판이었다. 동유럽 여행지는 관광, 사이판은 휴양의 성격이 강했는데 우리 부부에게는 단순 휴양보다는 관광을 곁들인 여행이 보다 맞았다. 코로나 이후의 첫 해외여행이라 관광지가 탐나기도 했으나(그래서 도쿄가 물망에 오르기도 했지만) 최근의 아기 최대 관심사를 고려하자면 물놀이가 가능한 휴양지가 적격이라 판단됐다. 일본에서 휴양지 하면 떠오르는 곳, 오키나와였다. 더군다나 인천에서 오키나와까지의 비행시간은 두 시간 삼십 분 정도. 시간도 적정했다. 도시까지 선택했으니 다음으로 오키나와에서 아기가 즐길만한 것들을 체크하였다.


3. 츄라우미 수족관

물놀이와 함께 동물들에게 부쩍 관심을 쏟는 아기. 집에 붙여 놓은 동물 그림 때문인지는 몰라도 멍멍이(강아지), 야옹이(고양이), 뺙뺙(병아리) 꽥꽥(오리), 찍찍(쥐), 짹짹(새), 꺼끼리(코끼리), 마(말), 베어(곰) 등등을 발음하며 수시로 동물 사랑을 외친다. 말이 빠른 편이라 드문드문 노래를 따라 하기도 하는데, 십팔 개월 아기의 최애 애창곡 또한 아기 상어, 작은 동물원 같은 동물 노래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 이 위 규모라는 츄라우미 수족관은 아기의 취향을 저격할 곳이자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었다. 분명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는 기분 좋은 상상과 함께.


4. 숙함

최대한 많은 나라를 방문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해외 여행지 선택의 기준이지만, 아기와의 첫 여행은 역으로 여러 번 방문한 곳이 낫겠다 싶었다. 낯선 곳에서의 허둥댐 보다는 익숙한 곳에서의 안정감이 가장의 입장에서 조금 더 어울리지 않겠는가. 아기와 엄마가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이니 더더욱이. 때로는 평소의 확신의 생각을 뒤집을 필요도 있다. 그러면 안 풀리던 실타래가 스르르 풀리기도 한다. 만약 평소의 지론을 지키려 오키나와를 배제했다면 여행지를 선택하는 것부터 골머리를 싸맸을 것이다. 혹여 다른 여행지를 골랐더라도 낯선 곳에서의 가장은 긴장과 예민에 휩싸여 우리 가족을 잘 돌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십팔 개월 아기와의 첫 해외 여행지를 익숙한 곳으로 선택한 건 괜찮은 결정이었다.


5. 오키나와의 역사

해외여행을 가면 하는 일이 하나 있는데, 바로 그 나라의 역사 공부이다. 그러면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는데 조금의 도움을 받는다. 짤막한 지식을 토대로 건물이나 음식, 사람들을 직접 만나면 여행의 재미는 배가 된다. 그래서 심화 공부를 해 본 오키나와 이야기. 오키나와의 간추린 역사는 아래와 같다. (지금은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십팔 개월 아기지만 조금 더 커서 함께 역사 공부를 하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빠의 소망이기도 하다)


오키나와는 최초 류큐 왕국이라는 독립국이었다. 즉, 태생이 일본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왕국을 유지하던 나라가 흔들린 건 1879년이었다. 중국(당시 청나라)과 일본(메이지 정부, 당시 일본 제국 초기 정부) 사이에 위치하여 무역 중계지로서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하던 때, 일본이 무력으로 류쿠 왕국과 중국 간의 교역을 끊고 오키나와 현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편입을 시켰다. 하루아침에 일본인이 된 류큐인들은 청나라 등에서 독립운동을 벌였다고 하니, 이 당시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과도 유사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변화의 소용돌이가 끝났나 싶었는데 일본의 2차 세계 대전 참전 당시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하면서 오키나와는 한 차례 더 전쟁터가 된다. 당시 일본은 오키나와인에게 자결을 강요하는 등의 일을 벌이기도 했다는데 오키나와인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억울하고 분한 일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패전국 일본이 1945년 항복하면서 오키나와는 27년 간 미국의 통치하에도 있게 된다. (오키나와에 스테이크와 아메리칸 빌리지가 유명한 이유도 바로 이 미국의 영향 때문이다.) 일본으로 다시 반환이 된 건 1972년, 실상 진정한 오키나와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는다. 오키나와인 중에는 자신이 일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하니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던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일본 같지 않은 일본이라 할까. 오키나와의 역사에서 무언가의 동질감을 느꼈다.


여러 조건값들의 결합으로 선택한 여행지 오키나와. 조건값들을 엮어보니 완벽한 여행이 될 것만 같았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었다. 비행기가 오키나와 땅을 밟고 렌터카의 첫 시동을 걸 때까지만 해도 순조로운 여행이 될 거라 자신했다. 오키나와의 푸른 바다처럼 내 마음도 부풀어 있었다. 그땐 정말 그랬었다.


KakaoTalk_20230922_073039275.jpg 미국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아메리칸 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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