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티 연수(1)
모든 결정은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다.
나는 그 흔한 유럽, 미국 여행도 가본 적 없지만, 스리랑카로 꼭 떠나야만 했다.
6박 7일의 일정.
또 다른 가게 준비로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나에게 있어서,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자하고 그곳에 가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면 사실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나와 홍차와의 궁합.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이미 티 블렌더 강사 과정까지 수료하고, 새로운 가게 오픈을 위한 디자인 스튜디오에 브랜딩 작업을 맡겨놓고 여러 가지 일은 벌여놓은 상태에서 정작 새로운 업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았던 것이다. 더 이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은 나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나는 지난날 많은 것을 경험해보았고,
결국 그것은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작게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업으로 지속할 수 있을까에 대한 가능성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지난날 많은 사람들이 실론으로 알고 있는 스리랑카엘 가야만 했다.
사전 OT날 이번 연수에 참가하는 대략적인 인원들이 모였다. 대략 10명 남짓,
연세가 있는 분들과 젊은 사람에 비율은 대략적으로 비슷했다. 이러한 현상을 본 어떤 선생님께서는 티업계가 젊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오티가 진행되는 1시간 내내, 강의실에는 여행에 대한 기대감과 누군가에게는 해방감, 그리고 나에게는 왠지 모를 중압감이 한 곳에 뒤섞여 맴돌고 있었다.
오티가 끝난 후, 나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진짜 가긴 가는구나...'
연수 날까지는 앞으로 일주일 정도가 남아있었고, 나에게는 여느 날과 다름없는 일상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전날. 일을 마친 뒤, 동네 이마트에 들러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둘씩 챙겼다.
당일날, 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시간은 대략 9시간 정도, 누군가에게 9시간은 잠을 자기에 충분한 시간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영화를 3~4편을 볼 수 있는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 폐쇄된 공간에서의 9시간은 상당히 버거운 시간이었다.
스리랑카 콜롬보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경 아직 동이 트기 직전이었다. 잠을 얼마 자지 못해 천근만근인 무거운 몸을 이끌고 서둘러 비행기에서 내렸다. 정신없이 입국 심사까지 끝마친 뒤, 주변을 살폈다.
현지의 온화한 날씨가 말해 주 듯, 한쪽 손에는 미처 캐리어에 넣지 못한 패딩잠바를 뻘쭘하게 가방에 구겨 넣었다.
미리 말하자면, 이번 연수는 버스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하루 중 거의 절반 정도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목적지(티팩토리)가 수도인 콜롬보를 비롯한 시내 부근보다는 우리나라로 치면 지방에 있는 어느 산의 중턱 혹은 고산지대에 위치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게다가 숙소까지 왕복하는 거리를 계산하면 대략 그렇다.
버스에 탑승한 뒤, 첫 목적지인 캔디로 이동하면서 아침을 해결할 겸 여행사에서 미리 예약을 해둔 듯 한 식당에 들렀다. 여행의 첫 끼, 스리랑카에서는 라이스 앤 카레가 주식이라고 한다.
라이스 앤 카레에 몇 가지 밑반찬을 혼합해 먹으며 마살라 문화권답게 , 향신료를 이용해 맛과 향을 강하게 내어 맵고 짜고 달다. 뿐만 아니라, 어느 식당엘 가도 몇 가지 빵 몇 종류와 함께 버터, 잼 등이 구비되어 있었는데 현지 음식이 별로 입에 맞지 않던 나로서는 불행 중 다행이었다고 할까.
사실, 연수를 떠나기 전 막연하게 스리랑카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을 떠올려 보았을 때, 생각난 것이
아침식사를 하면서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를 음식에 곁들이는 일이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홍차의 나라에서는 차와 관련된 모든 행위들이 흉내를 낸다거나 억지스러움이 아닌, 자연스러운 당위성을 지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쉽게도 티를 정성스레 우려서 차를 내려주는 직원이 있는 대신 저 언저리 덩그러니 놓여있는 티백들을 보며 환상에 살짝 금이 같지만.
그렇게 스리랑카에서 첫 끼니를 때운 뒤, 캔디에 위치한 티팩토리로 이동했다.
버스에 앉아, 드넓게 펼쳐진 스리랑카의 풍경을 바라보며, 무언가에 대한 중압감이 계속 내 머릿속을 툭툭 건드렸다. 난 지금 무엇을 하러 이곳에 온 건지. 홍차에 대한 내 관심은 과연 진심인지.
생각의 끝에 결국 결론에 다다를 즈음, 가이드가 이야기했다.
여기서부터는 '툭툭이'로 갈아타고 가셔야 합니다.
둘씩 팀을 지어, 툭툭이로 갈아탔다. 몇몇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동수단이지만, 나에게는 5년 전 인도 여행을 하면서 익숙한 이동수단이었다. 정돈이 전혀 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길을 올라가면서 내 몸은 좌우로 계속해서 흔들렸다. 멀미가 날 것 같기도 하면서 자칫하다가는 금방이라도 튕겨져 나갈 것 같았다.
그러다가 산 중턱 즈음에서 어느샌가 시원한 바람과 맑은 공기가 천천히 나를 감싸고돌았다. 숨을 크게 한 껏 들이켜 쉬어도 막힘이 없었다. 미세먼지로 가득 찬 몸을 한번 정화시켜주는 느낌이랄까.
나는 마음껏 좋은 공기를 들이켜고, 산의 기운을 담은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도시에서는 맛보기 힘든
작은 사치였다.
사실, 자영업을 시작한 뒤로는 몇 번 홀가분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경쟁에 치여 끊임없이 터지는 문제들을 앞에 두고 해결방법을 생각하느라 혹은, 풀리지 않는 문제를 미뤄두어서 끊임없이 머리가 복잡한 상태로 지내던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어떠한 문제도 나와 함께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여러 가지로 열악하다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일상에 불만을 품고 있는 듯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들 동양인들에게 신기한 듯 관심을 보였다.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어우러져 주어진 운명에 따라 제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을 걸려 도착한 곳은 '제임스 테일러'가 평생을 바쳤던 룰레콘데라라고 하는 다원이었다.
'실론티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제임스 테일러는 스리랑카에 차를 처음 들여온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던 적이 손에 꼽는다고 할 정도로 스리랑카 차에 인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를 기리는 석상을 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무엇을 위해 평생을 바친다면 그게 무엇일까. 그런 삶은 어떤 삶일까
삶에는 정답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납득할만한 정답을 찾길 원한다.
그가 정확히 어떤 삶을 누렸는지 알 길은 없지만, 이런 산구석에서 일생의 전부를 바쳤다고 한들, 그의 인생이 지루한 인생인 걸까?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는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물론 그에게선 어떠한 대답도 얻을 수 없었지만, 난 계속해서 나아가야만 했다.
Uplands Tea Factory
일정 중 가장 먼저 들르게 된 티 팩토리 일찍이 일이 끝나고 직원들 대부분이 퇴근한 듯, 위조실에는
찻잎을 위조한 뒤 짙게 베인 향만이 남아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홍차의 위조 향.
차에서 '위조'라고 불리는 과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위조'과정을 포함시키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종류의 차를 만들 건지 나뉘기도 한다. 위조란 찻잎을 시들게 하는 것으로, 갓 채엽한 찻잎에는 70~80 퍼센트의 수분이 있는데, 수분량을 60퍼센트 정도로 낮춰 숨을 죽이는 과정이다. 위조는 홍차에만 있는 아주 특징적인 과정 중 하나이며 홍차의 품질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문기영 선생님의 '홍차 수업'에서 발췌)
숨을 쉴 때마다 코끝을 계속해서 찌르는 경쾌하면서도 신선한 향이 족히 100평 정도는 돼 보이는 공간에서 넘실거리는 듯 춤을 추고 있었다. 아쉽게도 업무가 끝난 뒤라 찻잎이 제조되는 과정은 볼 수 없었지만,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래된 티팩토리에 와보았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나와 일행들은 팩토리를 빠져나와 다시 툭툭이에 올라탄 뒤, 구부진 길을 다시 거슬러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