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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Apr 11. 2016

여름을 준비하는 자세

천막 하나로 시작되는 여행

여행에서 돌아온지도, 여기 옥탑방에 들어온지도 어언 일 년이 다가오고 있다. 시간은 정말 알 수 없다. 어떨 때는 원망스럽게도 느리게 가더니 또 느긋하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어느새 저만치 가 있다.


옥탑방의 보릿고개인 겨울이 드디어 물러갔다. 집을 잘 골라서 옥탑 치고는 엄청 추운 나날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마당을 활용할 수 없던 그 시기가 드디어 끝난거다. 올 듯 말듯 애간장 태우며 밀땅하던 봄이었지만 이제는 드디어 왔다는 것을 반팔로 마당에 있으면서 체감한다.


봄날을 맞이하여 하루 휴가를 내고 마당에 천막 치기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작년 가을에 어설프게 치고 실패했던 경험을 토대로 이번에는 제대로 준비하고 도구를 갖추고 계획을 짰다. 한동안 회사 생활을 보내며 받았던 스트레스를 이렇게 푸는 건지도 모르겠다. 휴가를 쓰면서도 여행을 떠나지 않고 마당으로 나오는거 보면 진짜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먼저 모자란 하나의 축을 대신할 대나무를 구입했다. 누군가한테는 굴러다니는 게 대나무겠지만 막상 구입하려니 의외로 비싸다. 대나무를 고른 이유는 바람에 부러지지 않고 탄성으로 잘 버틸 거 같다는 지인의 의견 때문이었다.

철사 등을 이용해 대나무를 고정한다. 이것도 의외로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래도 태붕에도 버틸 수 있도록 단단히 작업을 한다, 다음으로, 천막 자리를 잡아 본다. 하... 저번에는 비 오는 날 친구랑 하면서 고생했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한번 해본 거니 좀 더 쉽겠지? 천장의 나사들을 활용하여 줄을 묶고 먼저 한쪽을 올린다. 역시 쉽지는 않다. 하지만 확실히 두 번째라 대략 감이 온다. 결국 대나무까지 모두 묶어서 천막을 모두 올린 후 앞면은 글루건을 활용하여 접어서 붙임으로서 마무리 작업까지 완료한다.

평상에 올릴 쿠션은 인도 느낌 나는 것으로 거금을 들여서 주문 제작하였다. 한 땀 한 땀 장인의 정성이 들어가는지 정말 생각보다 비쌌지만 깔아놓으니 확실히 좋다. 그래, 이런 행복을 위한 부분에는 아끼지 말자.

오전 내내 천막 설치를 하고 오후에 느즈막히 평상에 앉아서 노트북을 열어본다.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것이 여기가 서울인지 저 오지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인지 헷갈린다. 인도 자이살메르의 타이타닉이나 미얀마 만달레이의 게스트하우스 루프탑에 와 있는 착각마저 든다. 오늘 하루 고생했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고생이었다.


요새 생각이 다시 많아지기 시작했다. 난 잘 살고 있는 걸까? 나에게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란 어떤 걸까? 정답은 없지만 또 정답이 있는 이 문제를 가벼이 넘기지 않고 깊게 고민을 하고 싶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보니 막상 가장 중요한 '나'에 대한 생각이 줄어든게 아닌가 싶다. 다시 여유를 찾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난 지금의 집이 좋다. 럭셔리하고 호화롭지는 않지만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곳이다.


올해에도 마당에서 친구들과 수많은 파티를 하게 될 거다. 그래, 일단 이렇게 추억을 하나 둘 쌓아보자. 인생은 어차피 하루의 집합,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도 살 수 있게 되겠지. 금요일을 기다리는 삶이 아닌, 하루 하루를 즐겁게 기다리는 삶을 살아보자. 그러면 이 마음 속의 격한 공허함도 채워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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