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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Jul 23.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20

Pyin Oo Lwin to Mandalay, Myanmar

콩팥 이상무, 안구 이상무, 목숨 이상무. 사실 큰 걱정 안 하긴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하룻밤을 넘겼다. 어제 방문을 잠그고 불안한 마음에 옷장으로 문 앞을 막을까 잠깐 고민을 하긴 했었지만, 실천은 안 했으니 걱정 안 한 거다. 그냥 시설이 허름한 건 괜찮은데 구조가 워낙 미로 같고 손님이 하나도 없으니 귀신이 나올듯한 분위기가 이곳에 있다.

밤새 차량 소리가 시끄럽게 난 듯하지만 역시나 생각보다 잘 잤다. 이제는 웬만하면 잘 자는 듯하다. 근데 여기 사람들은 어차피 일찍 일어나는건지 새벽 4시쯤에 모두를 깨울만한 큰 종소리가 한번 나더니, 6시가 되니 한번 더 그 종소리가 난다. 종료적인 의미를 담은 종소리일려나.

여행 다닐때면 늘상 그렇듯 5시쯤 일찍 일어나서 조금 밍그적 거리다가 아침을 먹으러 6시쯤 나온다. 이곳은 조식이 포함이다. 어제 봐뒀던 게스트하우스 내에 있는 식당으로 가보니, 아침이 7시부터다. 6시 부터인줄 알았는데 시간을 잘못 봤나 보다. 이대로 방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조금 애매해서 오늘 만달레이 가는 버스를 알아보기 위해 어제 갔던 그 할아버지 많던 곳으로 가본다.


오늘도 역시 이른 아침부터 할아버지 대여섯 분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계신다. 우리나라 복덕방 같은 곳인가 보다. 만달레이 가는 버스를 문의드리니 7시 반에 출발하잔다. 어, 너무 빠르다. 주어진 아침은 꼭 먹어야 한다. 9시에 출발하면 안되냐고 여쭤보니 뭐 그러자고 하신다. 이거 혹시 나 혼자 타고 가는 건 아니겠지? 6000키얏이라 조금 비싼 느낌이 들긴 하지만 어차피 일반 버스를 타고 가면 터미널에서 내려서 또 오토바이 택시를 한번 더 타고 이동해야 하니 그게 그거 같다.

 


숙소로 돌아왔는데도 아직 7시가 안되었다. 그렇다고 다시 잠들기도 애매해서 론리플래닛을 열고 이곳, 핀요린에 대해 좀 읽어본다.

대충 알고 있던 데로, 이곳은 영국 신민지 시절 한여름에 너무 더운 만달레이를 대신하여 수도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어쩐지 이 동네는 지금도 더위가 심하지 않다. 어제도 약간 추울 정도의 기온이었다. 또한, 당시 철로를 설치하기 위해 강제 징집된 인도, 네팔 등지의 사람들이 그 이후에 이곳에 눌러앉으면서 후손들이 여기 살게 되었단다. 아하, 그래서 여기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피부색도 다양하고 생김새도 다양했나 보다. 그런 이유로 핀요린에서는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어서 음식점도 인도 음식점, 중국 음식점 등 다른 곳보다 선택의 폭이 훨씬 넓다.

오늘 만달레이로 가야 하니 Ace Star 게스트하우스에도 나의 방문을 메일로 알린다. 쪼우마, 일 제대로 하는지 바로 답장이 온다. 할인을 살짝 언급했더니 할인보다는 더 높은 방으로 무료 업그레이드를 해줬단다. 난 좋은 방 필요 없는데... 가서 좀 얘기를 해봐야겠다.

어제 기차에서 정체 모를 벌레한테 물린 곳은 괜찮아 보이더니 아침에 보니 좀 부어올라 있다. 아프면서 간지러운 게 벌에 쏘인 거와 느낌이 비슷하다. 어디선가 물린 상처가 간지러우면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들은 거 같아서 걱정 안 하려고 한다. 외부로는 그다지 티도 안 나는 게 엄청 간지럽다.


7시 반이 돼서 조식을 먹으러 간다. 여기 진짜 미로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어떤 터널을 지나고 하니 그래도 그럴싸한 식당이 나타난다. 테이블 두개가 달랑 있는거라 그럴싸하다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7달러에 나쁘지 않다. 근데 아무도 없다. 셀프인가? 셀프라고 하기에는 재료도 안 보인다.

결국 리셉션에 내려가서 물어본다. 이 미로를 몇 번 왔다 갔다 하는지... 5분만 기다리라고 해서 돌아와서 자리를 잡고 언제나 그렇듯이 키보드를 편다. 조금 지나니 네팔 사람 같은 한 남자가 와서 요리를 해준다. 근데 단 한마디도 안 한다. 내가 인사를 했는데도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여기 끝까지 뭔가 오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빵 3조각과 계란 프라이, 그리고 커피다. 조합은 나쁘지 않다. 근데 포크를 잡고 계란을 집으니, 포크가 덜렁덜렁... 집을 수가 없다. 바꿔달라고 할까 하고 보니 아까 그 남자는 어느새 사라졌다. 칼로 먹지 뭐.



조식을 끝내고 다시 미로를 통과하여 숙소로 돌아온다. 시간이 얼마 없어서 간단히 씻고 바로 짐을 싼다. 거울을 보니, 아 너무 탔다. 어제 노여사한테 사진 보냈더니 창피하다고 돌아오지 말라고 하던데. 이거 다시 하얗게 돌아오겠지?



이동할 때는 언제나 그래 왔듯이 세컨드 백을 메인 백 안에 넣고 어깨에 짊어진다. 이제 이 과정이 너무나도 익숙하다. 프런트에 내려와서 어제 계산 안 했던 7달러를 계산한다. 10달러 밖에 없는데 나도 잔돈이 없고 얘네도 잔돈이 없다. 그래서 그냥 7000키얏으로 계산한다. 환율 1000키얏으로 한거니, 또 내가 이득 봤다.

잠시 있었던 숙소라 뭐라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확실히 다니다 보면 비싼 데는 비싼 이유가 있고 싼 곳은 싼 이유가 있다. 이 법칙에서 어긋나는 2%를 여행자들은 항상 찾아다니지만 당연히 쉽지 않다. 이곳은 딱 7달러의 느낌이다. 메인 거리 바로 앞이라 밤새 시끄럽고, 방은 지저분하며, 손님이 없으니 관리가 안된다. 그러니 손님은 더 없다. 그러다 보니 어제같이 다른 곳이 다 만석이 되어야만 손님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된 거겠지.

그럼에도 노숙을 할만한 위기에서 나를 구해줬음에 감사한다. 세상 모든 존재는 그 존재 이유가 있다. 네가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나 같이 헤매는 사람들에게 비록 편하지는 않더라도 밤이슬을 피할 수 있는 넓은 지붕을 계속 제공해주렴.

가방을 메고 버스 타는 곳으로 오니 8시 반이다. 9시 출발이니 적당하게 도착한 셈이다. 근데 이거 진짜 나만 타고 가는 건가? 미니버스도 아니고 해치백 스타일의 자동차다. 일단 안에 타서 가방을 내려놓고 기다린다.


운전수 아저씨, 지나가는 여행객들마다 만달레이 혹시 안가냐고 호객행위를 하는 게 진짜 아직 손님이 나밖에 없나 보다. 이거 나 혼자 가도 이익이 있는 건가? 여기서 만달레이까지 2시간 정도 거리라는데, 괜히 취소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약속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출발 할 생각을 안하신다. 아저씨, 지금 9시 반이에요. 상황을 이해하기에 좀 기다려주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그리고 어디로 가서 호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여기 마냥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물어본다고 손님이 생기겠냐. 내가 오늘 딱히 급한 일정이 없으니 다행이다.

아저씨도 눈치가 보이는지 나한테 오기로 한 나머지 두 명 손님을 기다려달라고 한다. 두 명 손님은 무슨, 지금부터 찾으려는 거겠지. 그래, 나도 급한 거 없으니까 일단 기다려는 드릴게. 거짓말인거를 알면서도 그 사람들은 몇 시까지 오냐고 한번 물어본다. 좀 고민하시더니 10시에 온단다. 10시까지 기다리고 손님 없으면 간다는 얘기군. 그래, 그 정도는 기다려주기로 마음 먹는다. 난 배려심 깊은 여행자니까.

그래도 기다리니 희한하게 손님이 생긴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지나가던 서양 아저씨를 붙잡고 기사님이 한참 뭐라 뭐라 하더니 결국 그 아저씨가 차에 올라탄다. 기사님, 나이스잡! 그래도 아직 나를 포함하여 2명 뿐이고 시간도 10시 전이니 더 기다려야겠지.

아저씨가 타고 언제나 그렇듯 익숙한 여행자 인사를 나눈다. 어디서 왔으며, 얼마나 여행했고, 앞으로의 일정은 어떻고, 블라블라블라. 이분은 정리하자면 스위스 사람이지만 국적은 독일이고, 현재 미얀마 국경 근처에 있는 태국의 국제학교에서 선생님을 하다가 때려 치고 미얀마에 3번째 여행을 왔단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아저씨가 아니었다. 무려 나보다 2살이나 어리다. 아, 아저씨가 아닌 게 아니라 내가 그냥 '더' 아저씨인 건가? 하여간 서양인들 나이는 정말 가늠이 안된다. 나보다 10살은 많아 보이는구먼.

둘이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누며 10시가 되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10시 땡 치자마자 기사님한테 독촉을 한다. 안 그러면 여기서 못 벗어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에 내 기준에서는 나름 강력하게 항의한다. 기사님 알겠다고 손짓하시더니 현지인을 한분 태운다. 현지인은 아마 매우 저렴하게 가는 거 같다.

자, 이제 출발이다. 그래도 버스도 아니고 승용차니 승차감은 꽤나 좋다. 원래는 책을 보거나 좀 자려고 했는데, 이 아저씨랑 계속 얘기를 나누게 된다. 한국에서는 그리 하기 힘들었던 영어회화 연습을 여행 와서는 정말 질리도록 한다. 2주 동안 한국말을 한번도 못 썼더니 이제는 한국말을 좀 하고 싶을 정도다. 이 아저씨(?)도 미얀마에서 한국인을 꽤 만났었다는데 왜 나한테만 절대 안 나타나는 건지. 도대체 한국인들은 다 어디 숨은 거냐! 뭐 방비앙 가면 수두룩 하겠지.


핀요린이 여름 휴양지 성격이 강하다더니 산꼭대기에 있는 마을이었었나 보다. 올 때는 기차를 타고 와서 몰랐는데, 떠날 때 보니 산을 구비구비 돌아 내려간다. 생각해보면 시포 갈 때 버스가 굉장히 험한 길로 산을 넘어갔으니 내려 올 때 이런 게 당연한건데 미처 생각을 못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올라갔으면 내려와야 한다.

난 한 두세 시간 걸릴 줄 알았는데, 막상 1시간 반 정도 지나니 벌써 만달레이에 들어선 느낌이다. 도로 번호가 적혀 있는 표지판들을 보니 알 거 같다. 이제는 하도 얘기해서 외운 "78번 길, 31번과 32번 사이"를 오늘도 기사님한테 당당하게 외친다. 같이 타고 온 아저씨는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 바로 다른 도시로 이동 후, 최종적으로는 인도로 넘어간단다. 아 인도 다시 가고 싶다. 노여사와 만난 곳, 그리운 곳, 인도...

정확히 1시간 40분 만에 도착한다. 이 길을 기차 타고 왔으면 4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편하고 빠르게 왔으니 6000키얏이면 괜찮게 온듯하다. 기사님이 정확한 위치를 몰라서 두리번 거리시길래 그냥 여기 내려달라고 한다. 어차피 근처이니 78번 길이면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지.


같이 타고 온 스위스 아저씨, 아니 동생과 인사를 나눈다. 언제나 그랬듯이 "Have a safe trip!"라고 얘기하며 안전한 여행을 기원한다. 나를 내려준 차가 금방 떠나가고 나는 다시 짐을 짊어진다. 근데 만달레이가 원래 이렇게 더웠었나?

지도를 꺼낼 것도 없이 대충 길 주소를 보고 걸어간다. 근데 5분만 걸어도 땀이 흥건하다. 만달레이, 바간, 이쪽에 쭈욱 있을 때는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몰랐는데, 북쪽에 있다 내려오니 이곳 더위가 살인적이게 다가온다. 다음 일정 캄보디아는 더 덥다고 하는데 벌써 걱정이다. 난 원래 추위는 그럭저럭 견뎌도 더위에는 정신을 못 차린다.



미얀마에는 횡단보도가 없다. 78번 길은 메인도로이고 8차선이라 횡단보도, 신호등 없이 건너는 게 사실 쉽지가 않다. 처음 왔을 때는 정말 눈치 봐가며 힘들게 건넜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적응이 되서인지 3분 만에 휘리릭 건너버린다. 너무 더워서 동네를 더 둘러보고 할 것도 없다. 그냥 바로 Ace Star로 직행한다.


들어가자마자 "뿌레", "모레"를 울부짖는다. '덥다', '피곤하다' 뜻이다. 이곳에 들어오니 마음이 편해진다. 제일 오래 머문 곳은 시포의 레드 드래곤이지만, 이곳이 가장 편하고 진짜 집 같다. 스태프들이 모두 친숙하고 친해서일까, 아니면 내가 미얀마에서 처음 접한 게스트하우스여서일까.

쪼오마가 안보이고 다소 겉멋 든 다른 스태프가 있다. 아이고 반가운 것. 인사를 하고 일단 앉는다. 옆에 다른 여행자가 있어서 편하게 인사를 나눈다. 이곳은 내 집 같아서 다른 여행자들이 와도 뭔가 내 손님 같다.

내 방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니 예약했냐고 한다. 이미 다 했지 이놈아. 찾아보라고 다 있다고 하니 좀 찾더니 금방 찾는다. 쪼우마가 확실히 일은 잘 처리한다. 거기 앉아서 일주일 동안 시포와 핀요린에서 있었던 일을 스태프와 여행자에게 수다 떨며 얘기한다. 이곳에서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열리는 거 보면 확실히 여기는 나에게 미얀마의 고향 맞다. 마지막 이틀을 이곳에서 보내기로 하기를 잘했다.

이제 아까의 껄렁스탭과 함께 방으로 올라간다. 항상 가던 2층 화장실 앞이 아닌 더 안쪽에 "Superior" 도미토리로 들어간다. 같은 가격에 업그레이드해준 거니 기분이 좋긴 한데, 도통 차이를 모르겠다. 똑같잖아. 여기는 남녀 합방이라는데 그게 뭐 혜택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불편하기만 하지. 발코니가 있긴 한데 이건 단배 안 피는 나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열쇠를  인계받고 잠시 쉰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이리 이동했음에도 아직 12시도 안됐다. 좀 누워있으니 쪼우마와 다른 스태프, 그리고 여성 스태프들이 들어온다. 아 역시나 반갑구먼. 애들도 반가워해서 인사를 같이 신나게 나눈다. 여성 스태프들을 보자마자 이번에 배운 단어인 "라데!"를 두어 번 외쳐준다. 역시 예쁘다는 말 싫어하는 여자들은 없다고 그냥 둘 다 입이 찢어지려고 한다. 처음에는 나를 향한 표정에서 그냥 인사치레 미소라는 게 느껴졌다면 두세 번 온 이후에는 진짜 친구 대하듯이 대해주는 미소임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역시 미얀마 마무리는 여기서 하는 게 맞다.

누워서 "뿌레, 뿌레" 외쳐대니 에어컨을 틀어준다. 어? 원래 저녁에만 틀고 낮에는 안트는 게 원칙인데? 그냥 틀고 있으란다. 아이고 고마워라. 너무 더워서 사양 안 한다.

나는 누워있고 얘네는 청소를 한다. 어찌 보면 서로 불편할 수 있는 상황인데 친근해져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다. 근데 여기 확실히 청소 정말 제대로 한다. 시트도 사람이 바뀔 때마다 세탁하고 이불과 베개 커버도 매번 바꾼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만 막상 이곳에서는 이런 것을 보기 쉽지 않다. 여성 스태프는 걸레질하면서 내 침대 쪽으로 오기에 집에서 늘 하듯이 다리를 들어주며 청소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좀 도와줄까 했더니 그냥 쉬라며 손사래를 친다.



집에 돌아온 느낌이라 좋다. 근데 어제 기차에서 물린 벌레가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었나 보다. 오늘 아침보다도 더 화끈거리고 간지럽다. 괜찮은 걸까. 쪼우마한테 약 있냐고 물어보니 벌이면 약 안 바르고 그냥 놔두는 게 낫다고 한다. 걱정되는지 한번 보자고 해서 보여주니 그냥 놔두면 될 듯하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수의사' 친구한테 물어보니 더 심해지지만 않으면 괜찮단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그게 그거니 믿어도 되겠지? 일단 내일까지는 한번 놔둬보고 심해지면 병원을 가보든가 해야겠다. 뭐에 쏘였는지 정체라도 알면 괜찮을 텐데 정체를 모르니 좀 걱정이 된다.

다들 청소가 끝나고 나간 후에 누워서 캄보디아 조사를 좀 한다. 캄보디아는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라 여유 있게 다니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걱정되는 것이, 찾아보니 뚝뚝 기사를 필히 동반해서 다녀야 한다는데, 그냥 자유롭게 슬리퍼 질질 끌고 다니는 내 여행 스타일 하고 안 맞을 거 같다. 그래도 앙코르왓을 보려면 어느 정도 희생은 해야지. 아마도 거기서의 4일은 여행이 아닌 관광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저쪽 방은 모기가 하나도 없더니 여기는 벌써 4방 이상 물렸다. 저놈의 베란다 때문에 그런 거 같다. 아 좋은 방 필요 없다니까. 바꿔달라고 얘기할까 하다가 그래도 사람의 성의는 받아야지 싶어서 놔둔다.

1시가 돼서 슬슬 밥을 먹으러 나선다. 뭐 가는 곳이야 뻔하다. 만달레이에 오면 의식처럼 먹는, 나에게 미얀마라는 나라를 표정만으로 느끼게 해 준 소년이 있는 그 식당이다. 일주일마다 나타나니 이제 날 좀 알아보려나.


내려가서 식당으로 향한다. 더위가 숨이 막힌다. 진짜 '뿌레!' 역시 사람은 경험을 해야 한다. 더운 줄 모르다가 다른 곳에 다녀오고 덥다는 것을 느꼈듯이, 한 곳에 익숙한 곳에 있으면 자기 무지를 안다는 것이 쉽지 않다. 다른 곳이 더 시원하다는 내용의 책을 아무리 본다 한들 한번 갔다 와서 느끼는 것만 못하다.

식당에 의외로 손님이 많다. 여기도 유명한 곳이었던가? 그러고보니 처음에 1300키얏이 엄청 싸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다니다 보니 또 그리 싼 건 아닌걸 알았다. 만달레이는 물가가 좀 비싸서 여기가 싼 거일지도?

그래도 다행히 내가 앉을 자리는 있다. 촌스럽게 자리로 바로 가면 안되지. 이제는 익숙하게 반찬 있는 곳으로 가서 고기를 두 가지 고른다. 내가 반한 미얀마의 '미스터 미소'군은 야채 쪽에 있길래 역시 가서 두개 고르며 눈인사를 한다. 수줍게 눈을 피한다. 이 아이는 진짜 제대로 순수하다. 순수의 결정체이다.

자리에 앉으니 국을 가져다준다. 근데 왜 나 야채 안 줘. 얘기하려고 하니 안에서 야채와 찍어먹는 간장을 가지고 나온다. 그래, 이 야채가 있어야 이 미얀마식 백반의 완성이지.



우걱우걱 맛있게 먹는다. 처음 먹을 때 몰랐지만 이제는 이게 꽤나 맛있다. 그리고 맛을 떠나서 효율적이다. 사람들이 매일 같이 엄청난 맛집만 찾아다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여행도 일상처럼 다니려면 이런 효율적인 식사도 가끔은 해줘야 한다. 이 정도 가격에 고기반찬 두개, 야채 반찬 두개, 그리고 찍어먹는 야채 무제한이면 아주 훌륭하다.

뭐 여기는 오래 있을 생각도 없고 너무 덥기도 해서 식사를 마친 후 바로 계산하고 나온다. 잔돈이 1250키얏 있다. 아, 이 50원이 부족할 때의 심정이란. 근데 물어보니 1200키얏이란다.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나? 아님 가격이 내렸나? 그것도 아니면 해피아워? 왠지 정답은 3번일 거 같은데 확인할 방법은 없다.

더워서 후다닥 숙소로 돌아온다. 괜히 방에 에어컨 끄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 1층에 스태프들이 있길래 또 다시 뿌레를 외쳐주고 올라온다. 현지말은 많이 할 필요 없다. 몇 가지 단어만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면 예쁨(?) 받는 것, 어렵지 않다.

아까도 아무도 없더니 여전히 아무도 없다. 가방을 보니 서너 명이 같이 이 방에 머무는 거 같긴 한데, 다들 관광이라도 하고 있는걸까? 이 더위에 어떻게 돌아다니지? 나는 엄두가 안 난다. 이따 해지면 맛집이나 찾아서 가봐야겠다. 돈을 계산해보니 한 끼당 5000키얏 정도로 먹으면 추가 환전이 필요 없다. 내일 점심을 저렴하게 먹는다면 오늘 저녁과 내일 저녁은 제대로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겠다. 저번에 갔던 그 중국집이나 한번 더 가볼까?

내일은 1일 투어 신청을 해놨다. 신청하긴 했지만 미얀마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조금 혼자 돌아다닐까 싶기도 해서 취소할까 고민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만달레이는 조금 제대로 보고 싶기도 하고, 석양이 멋있다는 곳도 따로 혼자 가기는 힘들어서 일단은 가볼까 싶다.

조금 쉬고 있으니 벌써 5시다. 이제 슬슬 나가 봐야겠다. 카메라, 지갑 등 필요한 것만 챙기고 방을 나선다.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미얀마에서는 도둑 걱정은 한번도 안 하고 다녔다.

게스트하우스를 벗어나니 숨 막히는 더위가 피부와 폐에 바로 전달된다. 5시임에도 아직 더위님이 완전히 물러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지금 정도면 아까보다는 낫다. 게다가 습기가 많은 나라는 아닌지라 그늘로 들어가면 충분히 다닐만하다.

이제 길은 익숙하니 지도는 필요가 없다. 오늘의 목적지인 왕궁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도 않다. 큰 길로 나가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은 후 거리를 구경하며 걸어간다. 한 나라에서, 혹은 한 도시에서 큰 거리를 걸어가는 것 만으로도 그 곳에 대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15분 정도 걸어갔을까? 36번 도로가 눈에 띈다. 이 산이 아닌가벼? 내가 출발한 곳이 31번 도로이고 23번 도로로 가야 하는데 왜 36번이 나온 거지. 아예 초보도 아니고 적당히 익숙해졌을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중급자의 실수다. 뭘 그리 자신만만해하면서 지도 한번을 안 핀 게냐. 뭐 그래도 급할 건 없으니 뒤돌아서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만달레이에서 가장 번화한 도로 답게 많은 것들이 눈에 띈다. 하지만 그 눈에 띄는 것들이 오늘따라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일단 스마트폰 가게가 많이 보인다. 한국에 대한 인식은 한류 덕택에 좋아졌는지, 삼성에 대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많다. 아예 한 곳은 가게 이름을 'Korea'로 두고 있다. 노트4 생각이 나서 가격도 물어볼 겸 들어가서 한번 물어보니 노트4 기준 70만 원 정도,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여기 하루 일당이 만원이 안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저걸 어떻게 사는 걸까.


이곳에는 백화점이 있어서 그런지 부유층도 많이 보인다. 한 배나온 30대 후반의 아저씨는 스포츠카에 젊은 여자와 같이 올라타고 있고 그 옆에는 20대 젊은 여자 3명이 멋들어진 선글라스를 낀체 쇼핑한 가방을 잔뜩 짊어들고 자기들 차에 올라타고 있다.

거리 곳곳에는 2주 동안 다니면서 수없이 봤었던 복권 가게들이 많이 눈에 띈다. 한 곳에서는 1등이 나온 건지 홍보 차원인지, 어수룩한 한 남자가 1등 팻말을 들고 찍은 기념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기차역에 가까워지자 길에서 누워 잠든 거지들이 보인다. 두세 명이 모여서 의식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얼굴을 땅으로 하고 누워있다. 구걸을 하고 있지는 않으니 거지라기보다는 노숙자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리고, 나머지 일반적인 미얀마의 모습들이 보인다. 1000키얏에 오토바이를 태워주겠다는 아저씨들, 길에서 과자 같은 것을 파는 젊은 처녀들, 그리고 아이 둘을 안고 버스를 멍하게 기다리는 아주머니.

사실 일반적인 대도시의 느낌이다. 하지만 얼마 전 시포에서는 여기서 지금 받는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이곳을 3번 방문하니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아름답지는 않구나라는 것이 느껴진다. 사람들이 온순한 것은 교육이 덜 되어서일 거고, 빈부 격차는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심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이용해 먹기 좋은 사람들 인거지.


30분을 걸어가니 드디어 왕궁이 나온다. 화려한 벽이 둘러쳐져 있고 그 앞에는 인공을 만든 연못이 웅장함을 드러낸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엄이 느껴질 만한 모습이다.

아그라의 타지마할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한 권력가의 로맨스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하는 거다. 이 왕궁을 짓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을까. 종교사원이야 세뇌가 되었든 아니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겠지만 이 왕궁은 무엇을 위해서 그 많은 희생을 토대로 만들어진 걸까.

우리나라에서도 모든 가치 중 '충'을 으뜸으로 삼았었다. 결국 나라가 먼저이고 개인이 나중이라는 건데... 또 생각해보면 모든 문명은 거대한 권력국가에서 시작되었으니 나라가 필요 없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그 나라가, 그 권력이, 과연 개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걸까. 그냥 하나의 당위성은 아닐까.

싱가포르의 리콴유는 아시아에 서구식 민주주의보다는 엘리트 통지주의가 어울리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누구 아들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솔직히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은 한다. 만약 '발전'이 궁극적인 목표라면 말이다. 싱가포르가 동남아시아 안에서 이룬 성과만 봐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헌데 '발전'의 궁극적인 목표가 뭘까. 조금 더 편해진다고 해서 우리네 삶이 달라지나. 우리가 지금 충분히 편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듯이, 지금 기준으로는 꽤나 불편했을 조선시대에도 사는 사람들은 충분히 만족하며 살았을 거다. 100년이 지난 후의 우리 후손들은 쟤네는 어떻게 저리 불편하게 살았지,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만약, 지구가 곧 멸망할걸 알기에 대항성 우주선을 구축하여 지구를 떠나야만 한다,라는 대목표가 있다면 발전이 의미가 있겠지만, 그런 이유 없이 그냥 편해지려는 발전은 공허하다.


중요한 것은 자유와 포용이다. 자기의 인생, 자기 뜻대로 살 수 있는 자유, 그리고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을 안고 갈 포용력. 자유를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고, 포용을 위해서는 아량이 필요하다. 



조금 더 길을 걸어가니 한 곳에서는 사람들이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그 사람들이 가니 또 다른 애들이 와서 먹이를 준다. 비둘기들도 하나의 생명력인데 인간들이 퍼트려놓고 너무 퍼졌다고 죽이고, 얼마나 이기적인가. 비둘기 한 마리는 다리를 다쳤는지 절뚝거리고 있다. 한 아이가 그 비둘기에게만 따로 먹이를 주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저 비둘기를 우리가 포용할 수 없다면 이 모든 발전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모두가 행복한 세상에 살고 싶다. 헌데 역설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모른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고, 행복해지려면 행복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나도 여기 미얀마의 사람들이 순박하다고 좋아했지만 이게 과연 정상적일까 싶다. 충분한 교육과 이념의 전달 후에도 이런 순박함이 유지될 수 있을까. 그 후에도 이리 유지되는 게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자본주의에서 얘기하는 기회의 평등만큼 허울 좋은 얘기도 없다. 평등을 얘기하면서 부의 세습을 인정하고 신체의 불평등을 인정한다. 금수저를 물고 나온 아이는 다시 금수저를 물 확률이 크고, 머리가 좋은 자는 머리가 안 좋은 자보다 성공할 확률이 크다. 물론 김연아가 엄청나게 훌륭하지만, 과연 그만큼 노력 한 사람이 오직 김연아뿐일까? 모르긴 몰라도 지금도 남모르게 눈물 흘리고 있을 사람이 엄청 많을 거다. 이게 무슨 빌어먹을 평등인가. 한 사람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희생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이 권력자는 아니다.

고등학교 때 정말 공부를 엄청나게 열심히 하는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그 반도 안 하는 나에 비해 성적은 너무 초라했다. 그 친구가 내가 대학교 3학년 때 3수해서 우리 학교 우리 과를 결국 온 것을 보고 나는 '역시 난 머리 좋아'라는 바보같은 우월감만 가졌다. 단언하건대 나는 절대로 그 친구만큼 노력을 안 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잘해서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본인이 그 성공에 기여한 부분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 우리는 동일선상에서 출발하지를 않는다.

그래도 나는 적당한 중산층 부모 밑에서 어느 정도 괜찮은 머리를 타고 났으며 그리 게으르지 않아서 우리나라의 명문대를 나오고 대기업에 안정적으로 취직했었다. 만약 그리 계속 살았다면 나 또한 내 잘난 맛에 살았겠지. 그런 의미에서 노여사를 만난 것도, 사업에 실패해서 지금 여기에 있는 것도 모두 오히려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잃은 게 많았지만 그보다 더한 많은 것을 얻었다.

왕궁 옆에 앉아있자니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 정답이 없는 문제이니 이러한 고민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내 코가 석자인데... 그냥 미얀마를 떠날 때가 되니 지금까지 봤던 거와 다른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거 같다.

원래는 론리플래닛에 나오는 유명한 오리 음식점을 찾아가고 있었지만, 왠지 기분이 삐뚤어져서 앞에 보이는 현지인들이 많은 평범한 맥주집으로 들어간다. 서빙하는 아이, 사장님 누구 하나 영어를 못한다. 하지만 열심히 바디랑귀지로 맥주와 닭볶음, 그리고 밥을 주문한다.


먼저 맥주가 나와서 한 모금 먹는다. 의외로 맛있다. 얘가 생맥주 1등 등극! 이름이 '만달레이 생맥주'인데 차가움은 좀 덜하지만 부드러움이 끝내준다. 여기 들어오기 잘했다. 그래, 머리 아픈 생각을 오늘은 그만하고 며칠 안남은 이 밤을 즐기자.


요리가 나온다. 한입 먹어보니, 맥주와는 다르게 얘는 순위에는 못 들듯 하다. 뭐 맥주 전문집이니 요리까지 맛있긴 힘들겠지. 대신 밥은 양이 엄청나다. 물론 다 먹을 수 있다. 조금 있으니 국도 가지고 온다. 다 먹을 수 있다!

텔레비전에서는 미얀마와 태국 간의 여자축구가 한창이다. 나도 미얀마를 응원하며 동참한다. 이틀이면 태국으로 가지만 어쩔 수 없다. 미얀마가 더 좋은걸.


왜 여기도 초등학교 수준의 꼬마들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미얀마에서는 항상 어린 아이들이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다. 생각 그만하고 싶은데 계속 생각거리를 보여준다. 에잇, 안 해! 오늘은 충분히 했단 말이야...

미얀마가 어느 편인지 물어보니 빨간색이란다. 서빙하던 꼬마도 옆에 앉아서 같이 본다. 중간에 텔레비전이 꺼진다. 어떻게 된거지, 하며 어리둥절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가 보다. 조금 있으니 다시 켜진다. 전력의 문제인가 보다. 총 전력을 보강해야 할 텐데.

사진을 찍고 있으니 서빙하는 아이가 관심을 보인다. 사진기를 주고 나를 찍어달라고 하니 매우 좋아한다. 이걸 보더니 애들이 서너 명 모여든다. 모두 나를 한 장씩 찍어준다. 찍은 걸 보니 왠 오징어가 한 마리 있다. 하... 이건 어쩔 수가 없구나.


관광객 명소가 아닌지라 에어컨도 없고 모기도 물어대고 영어는 아무도 못하지만, 텔레비전을 보면서 같이 환호하고 탄식하고 있으니 아까까지의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은 좋아진다. 축구를 보느라 아무도 내 신경을 안 쓰는 것도 좋다. 근데 태국이 어째 더 잘하는 거 같다...

결국 태국이 한골 넣는다. 사람들과 함께 나도 같이 탄식한다. 역전 가능성은 그다지 없어 보인다. 맥주를 두 잔 마시고 그만하기로 한다. 내일 긴 일정이 있기도 하고, 가슴에 물린 벌레가 뭔지 모르니 간이 제 기능을 하게 여유를 좀 줘야겠다.

전반전이 끝나고 계산하고 일어선다. 약간 아쉽지만 여행을 일상처럼 보내야지! 아, 근데 일상처럼 하면 부어라 마셔라 해야 하는 건가...?


원래 돌아갈 때는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그냥 걸어가기로 한다. 운동도 할 겸, 술도 깰겸, 거리도 좀 더 눈에 담을 겸, 일석삼조다. 


왕궁의 야경은 짜증 나게도 꽤나 멋지다. 근데  중간중간 스쿠터가 놓여있고 커플들이 호수 앞에서 밀회를 즐기고 있다. 아, 이거 방해 안되게 조심해야겠는데. 그래도 이 왕궁이 모두에게 주는 행복도 있다니 다행이다. 근데 이 더위에 무슨 저리 붙어있다냐. 대단한 청춘들이다. 중간에 여자 4명이서 자기들끼리만 뭔가 우울한 표정으로 있는 것도 보인다. 그러게 왜 굳이 너네끼리 여기로 왔니.


미얀마의 큰 거리를 신호등 없이 건너는 거 자체는 그러려니 하는데 이 저녁에 사람이 많은 8차선 길을 건너자니 하나의 퀘스트를 수행하는 느낌이다. 그것도 한번이 아닌 4번을 건넌다. 한번 한번 건널 때마다 심장이 쿵쾅 거리지만 큰 문제없이 건너는데 성공한다.



역시나 갈 때는 오래 걸리더니 돌아올 때는 생각보다 빨리 온다. 숙소로 돌아오니 땀이 흥건이 젖어 있다. 스태프들이 언제나와 같이 리셉션에 모여있길래 같이 앉아서 수다를 좀 떤다. 노여사 사진을 몇 장 보여주니 다들 예쁘다고 난리다. 알아 알아.

도미토리에 들어오니 역시 나 혼자다. 룸메이트들은 도대체 언제 오는 걸까? 일단 땀을 너무 흘려서 후딱 씻고 온다. 헌데, 벌레에 물린 상처가 더 부어올랐다. 약간 곪으려고 하는 것도 같다. 약을 한알 먹고 잘까, 아님 놔뒀다가 내일 더 심해지면 차라리 병원을 갈까. 고민이다. 무슨 벌레인지 보기라도 했으면 그래도 괜찮을테네 모르니 더 불안하다.

잠시 방에 있는데 한 커플이 들어온다. 지금 새로 오는 사람들이라 쪼우마와 스텝들이 짐을 들어서 가지고 올라온다. 근데 또 낯이 익다. 물어보니 어제 기차를 같이 타고 핀요린에서도 같이 내렸던 커플이다. 그때 인사를 나누지는 않아서 친하지는 않지만 안면이 있다.

이 친구들, 앉아서 얘기를 좀 해보니 완전 마음에 든다. 이리도 금방 마음이 맞는 사람들은 오랜만이다. 하지만 난 내일 모레 떠날 뿐이고... 내일 보트 투어를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일단 일일 투어를 신청한 몸이라 내일 다시 얘기하자고 한다. 이들은 여행 중에 서울도 올 계획이 있다는데 오면 삼겹살이라도 한번 사주고 싶다. 같이 하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아쉽다.

내 위층에 있는 어떤 여성분은 내일 새벽 4시 기차를 타고 시포로 떠나신다. 시포에 대해 몇가지 알려주는데 이분은 또 여행 다니면서 처음 볼 정도로 괴팍하고 다소 이기적인 사람이다. 역시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많다. 여하튼 덕분에 9시에 불은 끄게 됐다. 나야 10시면 잠드니 나쁠 거 전혀 없다.

미얀마에서의 일정은 이제 내일이 마지막이다. 그 다음날 하루 더 있긴 하지만 아침에 떠나니 미얀마라기 보다는 태국 일정이 될 거다. 내일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사실 시포를 떠나면서 아쉬움은 이미 충분히 보냈던지라 지금은 딱히 아쉽고 이런 건 없다. 이것도 비행기 올라타 봐야 알려나. 내일을 어떻게 보내든, 마지막 몇 시간만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은 꼭 가지고 싶다. 미얀마와의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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