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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Jul 24.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21

@ Mandalay, Myanmar (City Tour)

미얀마에서의 마지막 하루가 시작되었다. 15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머물렀던 이곳에서의 마지막 하루는 어떤 하루가 될까. '마지막'날이라는 사실에 좀 더 의미를 두고 싶지만, 사실은 그냥 평소의 다른 날처럼 별 생각 없이 일어난다.

역시나 잘 잤다. 이제 여행지에서의 잠은 정복했나 보다. 심지어 2층의 여자가 새벽 4시에 기차 타러 나가는 것도 모르게 잠들었다. 나 원래 예민한 사람 맞아? 한국에서는 손목시계의 작은 초침 소리에도 잠을 방해받아서 내 방에서는 작은 시계 하나도 두지 않는다. 예민함이 여행 와서 많이 무뎌진 듯하다.

일어나자마자 가슴의 쏘인 상처부터 확인한다. 고름이 생기는 듯해서 어제 자기 전에 한국에서 가져온 마이신 약을 한알 먹었다. 오늘 보니 어제보다 심해지지는 않은 거 같아서 일단 괜찮은 거 아닌가 싶다. 더 악화되지는 않았지만 좋아지지도 않고 그냥 어제와 그대로다. 오늘 병원을 가야 할까? 손에 습진도 많이 생겨서 병원을 한번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은 든다. 여행 다닐 때는 언제나 건강이 제일 우선이다. 앞으로의 여행도 꽤나 남아있으니 생각 좀 해봐야겠다.

어제 그 커플한테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이 게스트하우스 2층에 공짜 세탁기가 있단다. 이 커플은 그 세탁기 때문에 이곳을 반문한다고 한다. 난 왜 맨날 손 빨래를 한걸까. 헌데 사실 난 빨래가 많지 않아서 세탁기에 돌려도 되는건가 싶긴 하다. 오늘 봐서 그냥 모두 다 집어넣고 확 다 돌려버릴까.

5시에 일어났지만 6시까지 좀 밍그적 거리다가 옥상으로 올라온다. 아침은 7시부터라 사람이 아직은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한 명이 있다. 어제 우리 방에서 봤던 몸이 아주 좋은 남자다. 벗고 막 다녀서 바로 눈에 들어왔다. 그래, 나도 몸이 좋으면 너처럼 그럴 텐데 말이지. 좋겠다 이놈아.

자연스레 인사를 하며 커피를 한잔 타서 가져다준다. 역시 언제나 하는 여행자 토크를 한 결과, 벨기에 친구이며 3달째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행 다니면서 한 달 여행 왔다는 얘기를 하기가 참 민망할 때가 많다. 요즘은 그래서 그냥 2달 일정이라고 한다. 근데 실제로 얼마나 하게 될는지.

이 친구, 여행 스타일이 나랑 많이 닮았다. 관광지를 피해 다니고, 사원 같은 데 가서 책 보는걸 좋아한단다. 그래서 바간과 인레를 가야 하나 고민이 많다고 한다. 바간에서는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기에 추천은 못한다. 하지만 어느 곳이든 가서 자기만의 추억을 만든다면 아무리 관광지스러운 곳이라도 본인한테는 여행지스러운 곳이 되지 않을까.

놀랍게도 내가 최근에 고민하던 것을 이 친구가 먼저 얘기한다. 과연 여기 사람들에게 우리가 접근해서 영향을 주는 게 맞냐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로 인하여 이곳 사람들이 조금식 변하게 되고, 그 변한 현지인들을 보며 여행자들은 또 발을 끊게 되는 악순환이다. 어찌 보면 여기저기 정복하고 다니는 포식자 같은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 여행자로서 이런 고민을 안 하면 사실 그게 이상할 수도 있다. 둘이 한참 그 얘기를 한다. 그러면서도 다음 여행 장소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것을 보면 참 모순이긴 하다.

이 친구도 영어를 그리 잘하지는 않는다. 여행 다니면서 느끼는데 실제 영어가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본인의 의사소통만 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어차피 영어를 그리 잘하는 여행자가 생각보다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은 어차피 더욱 더 서툴다. 오히려 불어, 스페인어, 일본어 같은 다른 언어를 조금씩이라도 할 줄 아는 것이 여행자들과 교류하기에는 더 좋다. 추가적으로 현지어로 숫자를 제외한 기본적인 10 단어 정도만 외우고 있으면 어디서든 모두와 금방 친해질 수 있다.

좀 얘기를 하다가 이 친구는 책을 읽기 위해, 그리고 나는 글을 또 쓰기 위해 다른 테이블로 이동한다. 여기서 해돋이를 잘 보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고요한 이곳의 느낌이 좋다. 새벽 6시면 미얀마의 하루는 시각 된다. 사람들은 청소를 하고 있고, 식당들은 아침을 먹는 사람들로 붐빈다. 더운 날씨이기에 그나마 조금 선선한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다.

아침을 먹으며 인터넷을 좀 한다. 글 올린 거에 댓글이 달려서 보고 있는데 한분이 미얀마 생맥주가 위험하다고, 아마 배탈의 원인일 거라고 써놓았다. 어, 진짜 그런가? 생각해보니 생맥주를 먹은 이후 장이 안 좋았던 것 같다. 하긴 차가운 물을 써야 하는데 생수를 쓸리는 없고, 아마도 수돗물을 쓰지 않을까 싶다. 어쩌지. 그래도 어차피 하루 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냥 무시하기로 한다. 생맥주는 포기하기 싫다. 몸이 적응하면 좋을련만.

살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안되겠다 싶어서 그릇을 다 챙겨서 주방에 가져다 드리고 뒤에 벨기에 총각한테도 비 온다고 얘기를 해준다. 그 친구, "아 그래? 뭐 어때. 맞으면 돼지"라고 한다. 쿨한 척 하네. 비 오면 피해야지 뭘 어째! 여행자 느낌도 좋지만 과한 건 사양이다. 비 오면 피해야지 그걸 왜 맞아. 거참.

비 맞으며 감상에 빠진 총각을 두고 숙소로 내려간다. 그나저나 병원을 갈까 말까 계속 고민된다. 사실 그냥 벌에 쏘인거라면 굳이 또 병원까지 갈 필요는 없다. 오늘 하루만 있으면 아마 나을 거 같긴 한데. 쏘이자마자 거기도 오줌을 쌌어야 하나.

이놈들! 어제 그 커플, 지금 보니 내 뒤 침대에 둘이 같이 누워있다. 아니 도미토리에서 이게 왠 애정행각이냐. 분명히 침대 두개를 빌렸을 텐데. 다행히 봐서는 아니될 상황이 연출되는 건 아니다. 안 그래도 노여사도 보고 싶은데 왜 자꾸 요즘 애정행각을 하는 애들이 눈에 띄는 거지. 에잇.

좀 있으니 모두 일어난다. 애정행각 커플이 어제 페리를 같이 가자고 했었기에 자세히 물어보니 여기서 4키로 정도 떨어진 곳인데 페리가 없을 가능성도 크단다. 에잉? 그럼 뭘 같이 가자는 거지? 자기들은 스쿠터를 빌렸기에 없으면 그냥 다른 곳 구경을 할 거라는데, 나는 아니지 않니. 그냥 원래 계획대로 일일투어나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저번에 어버이날에 어머니한테 사진을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

'너 얼굴이 왜 그러느냐. 뭔가 이상하다.'

그냥 탄 겁니다, 어머니. 아들내미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이 알고 계시던 그 훈남이 아니랍니다.

앉아있는데 아까 그 커플한테 초대가 왔다. 잠시 옥상으로 올라와서 대화를 하자고 한다. 아 이 인기 어쩔 거야. 알겠다고 하고 올라간다.

오늘 오토바이를 임대한다고 같이 가자는 제의를 한다. 사실 나도 마지막 날은 투어보다는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다. 그러니 오토바이 대여하는 것도 다 괜찮은데 돈이 문제다. 마지막 날에 100달러짜리를 깰 수는 없지 않나. 대충 머리속으로 계산해보니 남은 돈으로 그래도 괜찮을 거 같다. 점심을 좀 저렴하게 먹고, 남은 1달러들을 쓰면 100달러 환전을 안하고도 적당히 예산 안에 활용 가능해 보인다. 그래, 이렇게 초대까지 받았고, 마음에 드는 일행인데 미얀마의 마지막 날을 이들과 함께하자.

9시에 페리가 출발인데 벌써 8시라 서둘러 내려간다. 마음을 정했으니 빨리 준비를 해야 한다. 남녀 혼숙 도미토리지만 그냥 휙휙 옷을 벗어던지고 갈아입는다. 아까 커플도 같이 있지만 뭐 보려면 보라고 해라. 눈만 버리겠지.

아 그런데, 치앙마이에서 산 내 멋진 선글라스가 안 보인다. 어제 버스에 놔두고 내렸나 보다. 아 이거 두어 달은 쓸려고 했는데 아까워 죽겠네. 누군가 진짜 레이벤이라 생각해서 훔쳐간 건 아니겠지.

1층으로 내려오니 아까 쪼우마한테 부탁했던 오토바이가 이미 와있다. 전에 거는 오토였는데 이번에는 세미 오토라 기어가 있다. 뭐 큰 차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몇 바퀴 돌며 연습을 해본다. 묵직한 게 마음에 든다. 오늘 하루 안전하게 나를 잘 태우고 다녀주렴.

아직 오토바이가 하나 밖에 안 와서 커플 중 여자가 남자보고 혼자 선착장으로 가서 페리표 있는지 보고 있으면 사오라고 한다. 어디 가든 남자는 이용되는구먼. 불쌍한 남자들. 하지만 내가 가는 건 아니니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다.

커플 중 여자는 아르헨티나 사람이고 남자는 독일 사람이다. 여자애는 이름이 마리아나이고 독일 남자는 마리오이다. 슈퍼마리오! 외우기 쉽다. 생긴 것도 뭔가 마리오 아저씨와 비슷하다.

리셉션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여러 여행자들 사이에서 한국은 얼마나 여행해야 적당 한지에 대한 논의가 나온다. 이 커플도 한국에 올 예정인데, 3주를 생각한단다. 다른 한 사람도 2주 있었는데 부족했다고 한다. 도대체 한국에서 3주를 뭘 한다냐. 난 일주일이면 충분하다고 얘기해준다. 물론 경주나 제주도를 가면 다른 얘기긴 한데... 난 너무 익숙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하긴 서양 사람이 한국 오면 그 자체가 뭔가 이국적인 느낌이 날듯 하기도 하다.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어야 해서 한바퀴 다시 돌고 돌아오니 마리오가 돌아왔다. 근데 9시 배란다. 지금이 9시잖아. 그러니 후딱 출발해야 한단다. 아니 9시인데. 뭐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느리니 혹여나 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토바이에 올라타서 마리오를 따라간다. 세미 오토매틱은 처음이라 기어 변속이 익숙하지 않은데 마리오는 배 시간에 늦어서 그런지 매우 서둘러 간다. 그럭저럭 잘 따라붙는다. 확실히 오토보다는 세미 오토가 운전하는 맛은 난다. 그래도 언제나 안전!

도착하니 9시 반이다. 배는 과연 아직 있을까? 일단  정신없이 왔기에 이들의 리드를 따라간다. 서둘러서 오토바이를 주차시키고 안으로 들어간다. 아직 이 오토바이에 익숙하지 않아서 세우고 시동 끄고 하는 게 영 서툴다.


서둘렀지만 이미 배는 떠났다. 어쩌지? 선착장의 스태프와 얘기를 좀 나눠야겠다. 아무래도 혼자 다닐 때와는 다른 것이 일행이 생기니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게 된다.

두 커플이 앞에 나서서 얘기를 해주니 딱히 내가 할게 없다. 그냥 앉아서 기다리니 둘이서 스태프와 한참을 얘기한 후 두 가지 옵션을 제시한다. 하나는 개인 배를 빌려서 가는 거,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배를 포기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거다. 사실 난 뭐 둘 다 상관없다. 딱 하나 걸리는 것은, 미얀마 돈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추가로 환전만 안 했으면 한다는 거다. 오늘 하루를 위해서 100달러를 환전하는 것은 사치다.

개인 배는 30달러라고 한다. 원래 9시 배를 탔으면 인당 5달러라 합해서 15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두배가 들어간다. 이건 너무 센데? 내가 나서서 같이 흥정을 해본다. 과감하게 20달러를 부르고 25달러에서 정착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 흠, 근데 쉽지가 않다. 무조건 30달러에서 단 한 푼도 못 깎겠다고 한다.

그럼 뭐 그냥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 되지. 결국 셋이 머리를 모아서 오토바이 코스를 짠다. 사실, 나는 정말 어디로 가든 상관없는지라 그냥 얘기하는 데로 다 괜찮다고 한다. 마리아나가 굉장히 활발해서 여러 가지 스케줄을 짜고 책자를 꺼내서 하나하나 읽어준다.

오케이,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결정하고 길을 나서려는데 선착장의 스태프가 이제와서 갑자기 25달러로 가잔다. 이런 식이란 말이지? 역시 밀땅이 중요하다. 

그럼 우리는 20달러 아니면 안 가겠다고 한다. 안된다기에 쿨하게 나와서 오토바이로 향한다. 나가서 시동을 걸 때까지 이 사람들, 안 잡는다. 25달러가 진짜 마지막인가 보다. 셋이 고민하다가 그래도 그냥 배를 타기로 한다. 날씨도 더운데 오토바이 운전하기도 쉽지가 않을 거다.

헌데, 그러면 오토바이 빌리는데 12,000키얏에 여기서 또 다시 8,000키얏, 결국 20,000키얏을 써버렸다. 큰일이다. 이거 예산 오버되는 거 아냐? 일행이 생기면 이런 자잘한걸 신경 써야 하는 게 문제다. 에잇, 그냥 나중에 고민하기로 한다. 정 안되면 100달러짜리 바꾸지 뭐.


선장을 따라서 배에 올라탄다. 이 큰 배에 3명이서만 타고 가는 건 너무 사치 아닌가. 중국인들도 옆 배에 올라탄다. 더 큰 배다. 차라리 저걸 같이 쉐어 할걸 그랬나? 중국애들이 같이 탈 리가 없지.


배가 출발하고 이 층 그늘에 자리 잡고 키보드를 핀다. 이거 딱 글 쓸 시간인데 대화를 하다 보니 글 쓰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대화를 하는 게 나쁘지는 않다.


이 둘은 영국에서 만나서 2년 전에 결혼했다고 한다. 이 둘과 다니면서 가장 좋은 점은 둘이 국적이 다른지라 쓰는 언어가 달라서 서로 영어로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프랑스애들하고 다닐 때처럼 언어 때문에 왕따가 될 일은 없다.

한국과 일본에서 관광할만한 곳을 알려주니 마리아나가 수첩을 꺼내는데 뒤에 IBM이 쓰여있다. 응? IBM과 혹시 연관이 있는지 물어본다. 마리오가 아일랜드 IBM에서 4년 일하고 1년 안식년을 받아서 여행을 온거란다. 하, 어쩐지 뭔가 여러 가지로 통한다 싶더니.

나도 한국 IBM에서 4년간 일했었다고 얘기하니 둘 다 같이 놀라워한다. 한참 IBM 얘기에 푹 빠진다. 분야와 직군도 비슷해서 잘 통한다. 뭔가 살아온 과정이나 이런 것들이 나와 통하는 것도 많은 거 같다.

그러고 보면 한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그 순간을 보지만 결국 오랜 시간 쌓아온 그 사람의 인생에서의 한 단면을 보게 되는 거다. 그렇기에 전체가 자기와 어울려야지 그 단면도 나와 어울리게 된다. 이렇게 뭔가 큰 부분이 공유가 된다면 당연하게도 마음이 맞을 확률이 더 크다.


한 시간을 배를 타고 가서 오늘의 목적지인 Mingoon이라는 곳에 도착한다. 도착하기 전부터 멀리서 보이는 한 커다란 구조물이 이곳이 뭔가 관광지임을 드러내고 있다. 내리기 전에 마리아나가 이곳의 역사와 저 구조물의 의미를 설명해준다. 투어 가이드가 따로 필요 없는데? 노여사가 나와 같이 다닐 때 이런 편한 기분이었을까 상상을 해본다.

이곳은 만약 완성되었다면 세계에서 가장 큰 불상을 모신 사원이 될뻔했다고 한다. 하지만 1/3만 완성이 되었고, 한번의 지진으로 인하여 그마저도 많이 파괴되어 있다. 그럼에도 멀리서 봐도 웅장한 모습이 꽤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내려서 이 커플을 따라간다. 사실 둘 다 마음에 들어서 같이 다니는 거 자체는 좋은데 항상 내가 다니던 스타일과 많이 다르긴 해서 약간 당황스럽긴 하다. 내가 머무는 파라면, 이들은 찍자파이다. 덕분에 오늘 오랜만에 관광을 하게 될 듯하다. 미얀마에서의 마지막 날이니 하루 관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내가 그렸던 그림 하고는 많이 다르지만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사람들이 마음에 드니 모든 것을 너그럽게 생각하게 되는  듯하다.



첫 번째로 무슨 사원에 들어간다. 마리아나가 역시 무슨 무슨 설명을 해주고 들어가서 기념 사진을 찍는다. 내 사진도 찍어준다. 한바퀴 둘러보고 바로 다음 사원으로 향한다.



역시 들어가서 설명해주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둘러보고 나온다. 역시 내 스타일은  아니다. 사원들이 조용해서 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서 책이라도 보면 정말 딱일 거 같은데 일행이 있으니 당연히 그럴 수가 없다. 역시 여행은 혼자 다니는 게 좋다는 것을 다시 실감한다. 하지만 오늘 하루는 괜찮다. 사람들이 괜찮으니까.

이제 메인 사이트인 그 넓은 구조물로 온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장관이다. 멀리서 보면서 예상했던 거와는 많이 다르다. 앞에 이 구조물을 지키기 위한 상징으로 사자머리에 용몸을 한 거대한 석상도 있었다고 마리아나가 설명해준다. 하지만 지금은 파괴되어 없단다. 이거 뭔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아류작인가? 아님 종교 구조물들은 대략 다 이런 건지 모르겠다.


가장 거대한 종교 구조물이 될뻔한 곳 앞에서 잠시 생각을 해본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건 쉽다. 하지만 그것을 끝내는 것은 쉽지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시도를 하지만 끝까지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나도 바간에서 핸드폰을 분실하였을 때 위기가 있었지만, 이번 여행에서의 여행기는 끝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다짐해본다.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지만 역시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한다. 햇볕이 장난 아니게 뜨겁다. 난 안가. 얘네 가면 어디 앉아서 글이나 써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이들도 이건 못 가겠단다. 방금 위에서 내려왔다는 한 프랑스인이 절뚝거리면서 절대로 올라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몸에 흐르는 땀과 벌겋게 익은 얼굴이 말에 신빙성을 더해준다.

대신 옆에 어떤 큰 종이 있길래 아까 그 프랑스인과 같이 그쪽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한국에 에밀레 종에 대해서도 얘기해준다. 종교란 참 무서운 거다. 한국의 일화를 보거나 성경을 봐도 자기 아들을 재물로 바치는 것은 예사다. 그냥 이건 미친 거다. 하나의 불확실한 가치를 위해서 가장 소중한 존재마저 바칠 수 있다니. 하긴, 국가라는 이념을 위해서 수 없이 죽어간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또 이해가 될 수도 있겠다. 안중근 의사가 옥에 갇혔을 때 어머니가 나올 생각 말고 '죽으라'라고 했던 편지가 떠오른다. 굉장히 존경스러운 얘기지만, 과연 자기 목숨보다 이데올로기, 가치가 더 중요한 건 맞는 걸까. 단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한다. 하지만 그 희생은 결국 개인'들'의 집합인 단체를 위함이다. 개인의 자유를 위하여 단체에 대한 희생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쉽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단 하나, 개인의 자유와 생명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믿는다.


종에 오니 현지인들에게 마리오의 인기가 폭발한다. 원피스의 루피 같은 모자를 쓰고 수염은 덥수룩한 서양인의 등장에 미얀마인들이 난리가 났다. 다들 기념사진 하나 찍기 위해 줄을 선다. 스님들마저 줄을 서서 사진을 찍어간다. 이거 여기서 1,000키얏에 사진 한 장, 이런 사업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옆에 있는 나는 순식간에 찍사로 전락한다. 한 미얀마인이 나한테 사진기를 건네길래 나랑 같이 찍자는 줄 알고 좋아했더니 마리오와 있는 거를 찍어 달라는 거였다. 이놈들아! 나도 다른 곳에서는 인기인이라고! 아닌가...?

다 둘러보고 더위도 식힐 겸 근처 슈퍼에서 음료수를 사서 자리를 잡는다. 한 자매와 갓난아기가 있다. 벽에 걸려있는 사진의 여인이 미녀다. 자매들에게 저 사진이 너니,라고 물으니 맞단다. 사진을 가리키며 "라데"라고, 예쁘다고 얘기해준다. 좋아하길래 실물은 "노라데", 사진은 "라데"라고 얘기한다. 어찌 보면 싫은 농담일 수 있지만 둘 다 빵 터진다. 그래서 내 운전면허증의 사진을 보여주며 나도 마찬가지로 사진이 이렇고 실물은 오징어라고 하니 둘 다 사진을 보고 놀란다. 마리오와 마리안나도 보더니 이게 어떻게 나냐고 그런다. 이 사람들아, 한 달 전에만 해도 나 이랬어. 여행 와서 이리 된 거란다.


아이가 있어서 놀아준다. 얘는 시크한 아이가 아니다. 필살기 "아빠 없다, 깍궁!"을 해주니 까르르 웃는다. 아직 5개월이라 보행기를 쓰기에 거기 태워주니까 나를 보고 막 쫓아온다. 안쪽에 있던 할머니까지 나와서 이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웃는다. 애기들은 어디서든 참 순수하다. 아직 뭘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무한한 가능성이 아름답다. 미얀마인들도 어떤 면에서 애기들처럼 아름답다.

여러 군데를 다 둘러보고 배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보니 햇볕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마리안나가 아까 뜨거워서 못 올라갔던 그 높은 탑을 햇볕이 좀 가라앉은 지금 올라가 보자고 한다. 난 됐단다. 둘이 올라가라고 한다. 잘됐다, 나도 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둘이 진짜 올라간다. 참 부지런한 부부일세. 난 슈퍼에서 물 하나를 사고 앉아서 드디어 밀린 글을 좀 쓴다. 글까지 써야만 한 순간이 정리가 되는 기분인데 계속 움직이느라 못했더니 불안했었다. 이것도 집착 같은 건가. 그냥 버릇이라고 해두자.

올라간 커플은 10분 정도 돼서 내려온다. 폴짝폴짝 뛰어서 내려오는 게 역시 계단 바닥이 엄청 뜨거운가 보다. 안 따라 가길 잘했다. 물어보니 뷰가 좋긴 좋은데 엄청 덥단다. 미얀마에서 가장 더운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러길래 거길 왜 올라가.


걸어서 배로 돌아온다. 11시에 도착했는데 지금 2시니까 어느새 3시간을 본거다. 다시 만달레이로 돌아가서 어딘가를 가자는데 나는 다 처음 듣는 곳들이다. 마리안나 가이드님의 말을 잘 따르면 된다. 부지런한 커플이라 알아서 좋은 곳으로 잘 데려다 줄 듯하다.

배가 출발하고 둘 다 잠이 들길래 또 혼자 글을 쓴다. 바람을 맞으며 배에서 일상을 정리하니 기분이 좋다. 일행이 있어도 이렇게 짬짬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구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누군가가 나를 챙겨준다는 기분이 좋긴 하다. 일행도 한번 가져볼까.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처음에 떠났던 항구로 다시 도착한다. 갈 때는 오래 걸리더니 역시나 돌아올 때는 순식간이다. 이 와중에 곤히 잠들어 있던 마리오를 깨운다. 야, 이제 갈 시간이야.


이제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마리아나표 투어'를 떠날 시간이다. 둘이 이미 스케쥴을 쫙 짜나서 나는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 된다. 내 평생 거의 앞에 서봤지, 뒤에 따라가는 건 낯설다. 관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소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뒤따른다는 기분은 괜찮다. 혼자 오래 다녀서 사람이 그리웠던 걸까.

일단 점심을 먹으러 간다. 보트 선착장에 있던 스태프의 추천을 받아 근처 가게로 간다. 꽤나 럭셔리하고 좋아 보인다. 근데 웨스턴 음식점이다. 아, 원래 여행 다닐 때는 현지 음식 아니면 절대 안 먹는데, 오늘 한번 먹어봐야 하려나.


결국 클럽버거와 망고주스를 주문한다. 마리오는 치즈버거를 주문하는데, 치즈버거는 정말 '치즈'만 들어있고 고기가 없단다. 야 이건 또 문화충격이다. 버거 자체가 고기 패티를 얘기하는 거 아니었어? 결국 고기 치즈 버거를 주문한다.


밥 먹으면서 얘네가 한국에 유명한 게 뭐 있냐고 물어본다. 아 또 다시 이 난해한 질문이다. 먼저 역시 강남스타일 얘기를 한다. 그거 싫어... 이번에는 장황하게 한글에 대해 얘기한다. 세종대왕이 민중들을 위해 만들었고, 과학적이고, 발음을 기준을 하고 중얼중얼. 관심을 보이길래 결국 노트를 꺼내 한글을 가르친다.

확실히 얘네는 시포에서의 해태와는 다르다. 한번 가르치니 바로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여 자기 이름을 쓴다. 아 한글의 위대함이란! 특히 마리오는 습득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마리아나는 좀 익히고 바로 싫증을 내는 반면 마리오는 한글의 역사와 조합법에 대해서 꾸준히 관심을 갖는다.


갑자기 옆에서 "야옹" 소리가 들리면서 대화가 끊긴다. 내 몸에서 정말 고양이 냄새가 나나? 옆에 보니 또 고양이 한 마리가 내 햄버거 달라고 울고 있다. 야 이거는 진짜 주기 쉽지가 않아. 꼭 먹어야겠니?

얘네는 고양이파가 아닌가 보다. 오늘은 나도 안 줄까 했는데 옆에서 계속 울어대는데 결국 지고 만다. 일단 혹시 몰라 감자를 줘본다. 혹시 모르긴 무슨, 먹을 리가 없지. 결국 패티를 조금 잘라서 준다. 신나게 먹는다. 맛있느냐, 이놈아. 우리 애들도 이런 애교라도 부리게 교육시켜야 하나. 우리 애새끼들은 먹고 싶으면 그냥 달려들던데.


마리오와 같은 회사를 다녔다 보니 무슨 대화를 해도 관심사가 이어진다. 하지만 마리아나는 바로 지겨워한다. 그치 뭐. 조금 얘기가 깊어지니까 마이라나가 이제 우리 가야 한다고 한다. 사실 해돋이도 보면 지금 가야 하는 건 맞다.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탄다. 이제는 반자동도 꽤나 익숙해졌다. 이 커플이 인도하는 곳으로 믿고 따라간다. 아까 대충 들으니 무슨 금으로 만든 종이라는데, 그게 뭐지?

방향이 반대인지 꽤나 오래 걸려서 도착한다. 근데 여기는 관광지 느낌이 아니다. 그냥 가정 집 같은데... 일단 따라서 들어가본다. 


들어서니 뭔가 사람들이 커다란 망치고 작은 뭉치에 쾅쾅 두드리고 있다. 그와는 안어울리는 세련된 느낌의 미얀마 여성이 안쪽 사무실에서 우리를 마중 나온다. 미얀마에서 본 사람 중 영어 실력이 넘버 1이다. 이 절차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해준다. 대충 들어보니 작은 금 조각을 망치로 1차에서 서너 시간을 두드려서 피고, 2차에서 5시간을 더 두드려서 얎고 커다란 금 종이를 만드나 보다. 왜? 왜에 대한 얘기는 없고 그냥 힘들게 만든다, 이 얘기만 한다. 이 망치질을 체험해봐도 된다고 한다. 왜?? 마리오는 좋아하며 자세를 잡고 마리아나가 사진을 찍는다. 뭔가 귀엽긴 한데 계속 드는 생각은, 왜??


망치질하는 사람들 앞에는 팁박스가 대놓고 놓여 있다. 흠 뭔가 이건 내기 싫어서 일단 무시한다. 난 포즈 안 취했으니까 괜찮지? 다 구경하니 이번에는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안으로 들어서니 밖과는 다르게 에어컨이 빵빵한 방이다. 한쪽면은 유리로 되어 있고 그 안에 어머니들이 앉아서 그 금종이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다. 들어가서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한다. 마리아나가 들어가서 사진을 좀 찍고 나온다. 저 유리방 안에는 금종이가 날릴까봐 에어컨도 안 켜져 있다고 한다.

여기 데려온 커플한테는 미안하지만 내가 태어나서 봤던 곳 중 가장 관광스러운 곳이다. 저 종이 만들어서 팔기나 할까? 게다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 구경이다. 이거 뭐 만드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


그나마 여기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물이 엄청나게 차다는 거다. 여러 가지 고급 시설이 있는 거 보니 분명히 돈은 꽤 벌어들이나 보다. 나야 물이나 열심히 마신다. 미얀마에서 이런 차가운 물 마시기 힘들다.

안에 금으로 만든 기념품도 있지만 당연히 눈에 안 들어온다. 그래도 조금은 돈을 내야 하는 거 아니야 생각하고 있는데 마리안나가 밖에  망치질하는 애들한테 1000키얏을 팁으로 줬단다. 나도 그 정도는 줘야겠다 싶어서 나가서 주고 온다. 그래도 구경한 건 있으니 맨입으로 가긴 좀 그렇잖아.

언제 떠나나 하고 있는데 이제 떠날 시간인가 보다. 기쁜 마음에 후딱 나와서 오토바이에 올라탄다. 마리오와 마리안나도 나와서 출발하려 하는데 갑자기 아까 그 차가운 물이 한잔 더 먹고 싶어 진다. 또 먼길 갈 텐데 안 먹고 가면 후회할 거 같다.

물을 마시러 다시 들어간다. 헌데 아까와는 뭔가 다르다 싶어서 생각해보니 망치질 소리가 안 들리고 있다. 뭐지 하고 옆을 보니 아까 그렇게 열심히 망치질하던 애들이 다 같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다. 휴식 시간인거지? 그래, 분명 휴식 시간인 걸 거야. 나름 좋은 구경이군.

순수한 이 커플에게 굳이 아까 본 얘기를 하지는 않는다.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서서 길을 나선다. 오토바이 12달러면 정말 비싸게 빌렸지만 잘 사용하고 있긴 하다.

이번에는 어떤 사원에 간단다. 참 사원도 많다. 그래도 덕분에 나 혼자라면 절대 못할 구경을 하니 나쁘지 않다. 이번에는 근처인지 15분 정도 가니 도착한다.


주차를 하고 모든 사원이 그렇듯이 역시나 여기도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그런데 여기가 사원이여, 시장이야. 사방 팔방에 물건 파는 사람들이 천지다. 노점상이 아니라 동대문시장처럼 본격적으로 제대로 되어 있다. 갑자기 성서에서 예수님이 성당 앞에 장사꾼들을 몰아냈던 생각이 난다. 무교지만 그래도 주일학교 선생님까지 한 오랜 기간 천주교 아닌가.


그 시장의 끝에 가니 한 부처상이 있다. 맨 뒤에는 가장 가난해 보이는 사람들이 엎드려 있고 그 앞에는 조금 깨끗한 여성들이 엎드려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맨 앞에는 칸막이가 처져 있고 여성 출입 금지라는 표지판이 있다. 그 안에서는 남자들만 기도를 하고 있으며 철문 앞에서는 여자는 못 들어오게 경찰들이 지키고 있다.

이걸 보는데 살짝 화가 난다. 언제부터 종교에 남녀 차별이 있으며 빈부차별이 있단 말인가. 미얀마의 보기 싫은 면을 보는 느낌이다. 역시나 모든 일은 양면성이 있다. 좋은 점이 있으면 반드시 나쁜 점이 있고, 그 두 가지는 같은 원천을 갖는다. 순수함이 순수함만으로 남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위에 보니 이곳 부처상의 변천사를 100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사진으로 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쇠로 만든 상이었지만 사람들이 붙인 금종이로 점점 커져서 지금은 돼지 부처가 됐다. 금종이의 쓰임새가 여기 있었나 보다. 자기를 돼지로 만들어달라고.

종교라는 게 정성이다 보니 개인의 정성을 보여주는 것은 좋다. 근데 왜 그게 항상 돈이냐. 종교란 사람들이 마음의 안식처를 얻기 위해 가는 곳이 되어야지, 돈이 없으면 가기 무서운 곳이 되면 안되지 않을까. 일반인들이 과연 저 금종이 하나를 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까. 미얀마에 너무 오래 있었나 보다. 시포에서까지가 딱 좋았다.

5시가 되어서 사원을 나선다. 이제 마지막 코스이자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일몰이다. 이곳에 유베인 다리라고 유명한 다리가 하나 있는데 거기서 일몰을 보려고 계속 계획했었지만 위치가 애매해서 못 기고 있었다. 오늘은 오토바이가 있으니 갈 수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한참을 간다. 이곳을 찾아가는 게 쉽지가 않다. 마리오가 운전하고 마리아나가 그 뒤에 타서 내비게이션을 보고 있는데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어선다. 한번은 이상한 길로 들어서서 외국인이라고는 한번도 못 본듯한 아이들이 달려들기도 한다. 산을 넘고 강을 넘고 철로까지 넘어서 간다. 마리오, 이거 진짜 이렇게 가는 거 맞아?


거의 40분이 걸려서 정말 어렵게 유베인 다리에 도착한다. 마리아나는 고소공포증이 있기에 아래서 기다리고 마리오와 나 둘이서만 다리에 오른다. 고소공포증이랑 다리가 뭔 상관있을까 싶었는데 오르는 순간 많은 상관이 있음을 깨닫는다.



이거 안전한 걸까? 다리가 허접하기 그지 없다. 사람들이 지나가면 흔들 흔들거리고, 중간에는 못 한두 개로만 박아놓은 것이 눈에 뻔히 들어온다. 난간도 없어서 안전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유지되었다는 것은 나름 꽤 튼튼하게 지어졌다는 거겠지. 물론 100년 동안 안전했다고 해서 오늘도 안전할 거라는 생각은 논리적인 오류이다. 그래도 오늘만은 안전해다오.


미얀마에서 보는 마지막 일몰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해는 보이지도 않으며, 전체적으로 구름이 많이 끼고 바람이 불어서 곧 비가 올듯한 분위기까지 풍긴다. 다리 위에서 적당한 곳을 찾아 마리오와 한참을 걷다가 그나마 안전해 보이는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키보드를 핀다. 마리오한테는 미안하지만 짧은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마리오는 혼자 고프로를 막대기에 연결해서 여기저기 찍고 있다. 이 커플은 진짜 한시도 가만히 못 있는다. 근데 그 모습이 밉다기 보다는 귀엽다.

하늘에서는 구름이 조금씩 붉어지면서 해는 안 보이지만 그 안에 있음을 부끄럽게 알려준다. 해가 꼭 보여야 일몰은 아니다. 우리 눈에 아름답게 비춰지던 안보이던간에 해는 언제나 진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보는 거, 우리가 체험하는 거, 그런 거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느끼는 거 그리고 진실이라는 것을. 미얀마를 떠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시간은 연속적이기에 이미 지나갔던 순간은 바꿀 수가 없다. 이곳을 떠나도 이곳에서 내가 만들었던 기억들은 그대로이다. 내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그러하기에 그 기억을 가지고 있는한 나는 미얀마를 떠나지 않는거다. 이 무슨 궤변이냐...

중간에 해가 살짝 구름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도 이별 인사는 해주려나보다. 완전 아름다운 일몰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 그래도 해님의 얼굴이라도 본 게 어디냐.

마리오는 옆에서 타임랩스를 찍고 난리났다. 역시 다른 사람들하고 다니는 건 아무래도 내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역시 오늘 하루는 괜찮다. 좋은 친구들을 만난 거 같고 많은 얘기를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좋은 사람들하고 같이 다녀도 혼자만의 여행이 방해받는다면 역시 일행은 없이 다니는 게 맞을 듯하다.

어찌 보면 미얀마의 배려일까. 괜히 오버하지 말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떠나렴.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어울리고 또 하루하루 일상처럼 사는 것이 인생이지,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과한 짓이야.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보내려면 사실 이러한 하루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그냥 여행의 다른 하루이다.

일몰을 보며 자리에 앉아서 마리오와 얘기를 하게 된다. 교육 수준도 비슷하고 회사 생활도 비슷해서 그런지 확실히 얘기가 잘 통한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열렸을까. 미얀마 와서 처음으로 한국에서의 내 얘기를 한다.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어떻게 성공했으며 또 어떻게 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내 얘기를 모두 한다. 한국에서도 잘 하지 않는 얘기를 이곳에서 하게 된다.


얘기에 집중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뒤에 일몰에 대해 잊고만다. 마리오가 가리켜서 보니 해는 아직 구름에 가려져 있지만 나름 정말 멋진 햇빛의 꽃이 한 송이 피어 있다. 미얀마에서의 보름,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의 순수함에 감동받았고, 또 그 순수함에 실망도 했다. 사람에게 정을 줬고, 마음을 닫기도 했으며, 오늘은 다시 한번 마음을 열었다. 마지막 석양이 뭔가 미얀마에서 나의 여행을 보여주는 거 같다.

15일 만에 어떻게 한 나라를 알 수 있을까. 30년을 살아간 한국도 아직 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오늘의 해돋이가 아름답지만 자기 모습을 안보여준 것처럼, 나는 미얀마의 아름다움과 추함은 알지 몰라도 미얀마를 알기에는 많이 멀다. 아마 죽을 때까지 모르게 되겠지.

마지막 해는 졌고,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마리안나는 다리 위까지 못 따라왔기에 서둘러 마리오와 함께 돌아온다. 내려와 보니 마리안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서 이것 저것 찍고 있었다. 사진이 꽤나 멋진데? 나중에 꼭 보내주렴.


갑자기 마리안나가 몇 시냐고 물어본다. 7시라고 하니 깜짝 놀란다. 이 친구들은 어제 핀요린에서 이곳까지 현지인차를 얻어 타고 왔단다. 그리고 오늘 그 현지인들에게 저녁 초대를 받았단다.

오늘 같이 저녁 먹는 거 아니었어? 혼자 마무리하는 게 좋으면서 나도 모르게 얘네가 부담스러울까 봐 "안 그래도 혼자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잘됐네. 나 혼자 저녁 먹으러 갈게."라고 얘기한다. 굳이 이 얘기를 왜 했을까...

뭔가 분위기가 싸해진다. 이러면 내가 먹으러 가자고 조르는 거 같잖아. 진짜 그건 아니다. 그냥 당연히 먹을 줄 알다가 취소돼서 잠시 당황했을 뿐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빨리 출발하자고 한다. 너희 약속에 늦지 않았니?

돌아오는 길은 정말 항상 신기하다. 갈 때는 엄청 걸렸던 거 같은데 이번에도 역시나 올때는 금방이다. 정말 이 주제로 논문 하나 쓰고 싶을 정도다. 정신적인 거든 물리적인 거든 꽤나 의미 있는 논문이 나올 듯 싶다.

오자마자 다 같이 샤워를 한다. 아 '같이'가 아니라  따로따로인데 동시에! 우리나라말 어렵다. 샤워를 하고 내가 줘야 하는 돈이 얼마인지부터 물어본다. 그거부터 해결하고 밥을 먹으러 가고 싶다. 근데 이미 내가 가진 미얀마 돈은 넘어선 게 거의 확실하다. 남은 1달러로 해결할 수 있을까? 100달러짜리를 깨야만 하는 걸까?

13달러, 혹은 13,000키얏을 주면 된단다. 지금 있는 돈을 세보니 딱 13,000키얏이다. 야, 이걸 주면 난 저녁은 어떻게 먹니. 결국 내일 주기로 한다. 100달러를 쪼우마한테 한번 잔돈으로 바꿔달라고 부탁해봐야겠다. 어차피 캄보디아에서 달라를 쓴다니 나쁘지 않지 싶다.

얘네는 예쁘게 단장하고 오늘의 약속으로 향한다. 아 거기 재미있을 거 같은데 껴달라는 얘기는 절대 못하겠다. 이 의리 없는 놈들. 하긴 지금 나를 데려가는 것 자체가 비매너일거다.


내려가서 쪼우마한테 잔돈 얘기를 하니 당황하는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환전이 부담되는거 같지만 포기하지 않고 웃으며 부탁을 해본다. 나한테만 해주는 거라고 몇 번을 당부하더니 나름 기분 좋게 환전해준다. 역시 미얀마에서의 내 고향 같다. 아이디 여러 개 만들어서 모든 사이트에 별 5개 줘야겠다. 진짜 미얀마에서 가장 마음이 편한 장소다.

이제 밥을 먹으러 갈 시간이다. 이번에는 진짜 미얀마에서의 마지막 만찬이다. 81번가의 중국식을 갈까? 순수한 청년네를 갈까? 마지막 식사다 보니 고민된다. 81번가를 다시 가고 싶긴 한데 나가면서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숙소를 나와서 터벅 터벅 걸어간다. 81번가를 향하면 걷는데 항상 늦게 귀가할 때 보이던 우리나라 수산시장 같이 생긴 곳이 갑잡스레 눈에 들어온다. 아 그래, 여기 지나갈 때마다 여기서 한번 먹자고 마음 먹었었지. 81번가 너무 멀다. 마지막은 거창하게 먹지 말고 여기서 먹자. 내가 언제부터 마지막이라고 챙겨먹었다냐. 그리고 나한테 미얀마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시포에서 먹었던 500키얏짜리 샨누들이었다.


들어오니 여긴 정말 영어 하는 사람도 없고 영어 메뉴도 없다. 아니 꽤나 크게 있기에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확실히 미얀마 자체에 여행자가 아직은 얼마 없음을 느낀다. 일단 맥주 하나를 시키고 안주는 알아서 달라고 한다. 이곳에서 여행자로서 하면 절대 안 되는 것을 한다. 어차피 남은 돈을 써야 하기에 남은 미얀마 돈을 보여주고 이 금액이 넘지 않게만 다 달라고 한다.


맥주는 확실히 어제 핀요린에서 먹은 게 제일 맛있었다. 물맛의 차이겠지? 그나저나 생맥주 먹었으니 또 다시 설사하겠군. 일주일 내내 설사하니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근데 갑자기 나를 데리고 냉장고로 가더니 뭘 고르라고 한다. 슬쩍 보니 우리나라  꼬치집처럼 고르면 숯불에 구워주나 보다. 그럼 아까 난 뭘 주문한 거지?


여하튼 고른다. 그냥 다 고른다. 어차피 막판이다. 달라 교환도 했다. 근데 달라 받으려나. 닭발도 있다. 닭발 좋지. 모두 한 종류씩 넣어서 달라고 하고 자리를 잡는다.

근데 주변 사람들을 보니 거의 다 안주 없이 맥주만 먹고 있다. 이거 뭔가 불안하다. 내가 먹은 게 얼마냐고 물어보니 또 영어를 아무도 못 알아듣는다. 한참 후에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누군가를 데리고 나온다.

내가 먹은 게 7000키얏이란다. 여기 뭐여. 엄청 비싼 곳이었다니. 보아하니 여자 종업원들이 야하진 않지만 노출이 좀 있는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이 무슨 미얀마의 후터스 같은 곳인가 싶기도 하다. 옷이 막 야하진 않고 그냥 티셔츠에 치마인데 이 동네에서 애기들 말고 젊은 여자애들이 서빙하는걸 처음 보니 의심스럽다. 7000키얏이라니. 길 건너편에 순수청년 네가 한 끼에 1200키얏인데.

내 예산을 넘어선다. 달라 되냐고 물어보니 막 상의하더니 된단다. 그래 너희도 호구 놓치고 싶지는 않겠지. 그래 마지막 날에는 내가 호구 노릇 제대로 해주마.


음식이 나온다. 맛도 그냥 그렇다. 마지막 식사, 이거 절대 아니다. 정도 의미도 없는 이 식사가 미얀마에서의 마지막이라고 하기에는 내 15일이 너무 아쉽다. 내 마지막 식사는 시포에서의 샨누들이다. 내 마지막 식사는 시포에서의 샨누들이다. 두세 번 되새긴다. 


계산서를 달라고 하니 8300키얏이다. 가장 불만족스러운 식사를 가장 비싼 가격에 먹게 되는 셈이다. 에잇, 꼭 모든 게 내 뜻대로 되라는 법 있나. 남은 키얏을 모두 주고 부족한 것은 달러로 지불하고 나온다.

숙소에 돌아오니 리셉션에서는 애들이 노래를 부르고 난리가 났다. 아까 나도 저녁 먹으러 나가기 전에 로비에서 기타를 치며 '서른 즈음에'를 부르다 코드를 잃어버려서 말았었다. 뭐 지금이라고 생각이 날까. 내일 떠나는 나에게는 지금 여기의 처음 보는 이 사람들은 연이 아니다. 나는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이다.

아까 글을 마무리했는데, 뭔가 많이 아쉽다. 방으로 들어가다가 코스를 바꿔서 옥상으로 향한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글을 올린 이후에 수정 버튼을 누른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꼭 정리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허나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갖는 무게는 너무나도 크다. 내가 다시 미얀마를 올 수 있을까? 인도를 그리 가고 싶었는데 못 가는 거 보면 여기도 오늘이 정말 정말 마지막이겠지.

이곳, 마지막에 안 좋은 생각도 많이 한 듯하다. 하지만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가자. 내가 여기서 정치를 할 것도 아니고 여행자로서 이런 생각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좋았던 사람들, 좋았던 기억, 이것들만 안고 가자. 그리고 생각해보면 내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항상 기억은 자연스레 그리 되더라. 

미얀마에서 처음 왔던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또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참 고맙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쪼우마의 친절함, 순수청년이 비둘기한테 먹이를 줄 때의 충격. 이것들을 안고 미얀마에서의 여행을 끝내고 싶다.

하지만 진짜 마지막은 내일 조식이다. 그것도 잊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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