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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Jul 27.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24

Siem Reap, Cambodia (Angkor Tour)

"딩딩딩~"

알람 소리에 갑자기 눈이 팍 떠진다. 알람? 혹시 늦잠 잔 건가? 서둘러 시계를 보니 4시 반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 알람 소리에 잠을 깨기는 처음이다.

바깥보다 더운 이 도미토리에서 나름 선방하며 잘 잤다. 모기 몇 방을 물리기는 했지만 홈매트의 효과는 이곳에서도 통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것 중 가장 잘 쓰는 것 중 하나가 홈매트이다.


10인 도미토리지만 결국 나 혼자이기에 편하긴 하다. 아무도 없으니 그 자리에서 옷을 서둘러 갈아입고 짐을 싼다. 10분 안에 나가야 한다. 40분까지 오라고 어제 얘기를 했었다. 과연 시간 맞춰서 오실까. 혹시 안 오시면 어쩌지? 캄보디아에서는 누구도 믿음이 잘 안 간다. 조금 불안하지만 지금은 믿고 가는  수밖에 없다.

어제 저녁에 들어오면서 산 1리터짜리 물과 메인배낭, 그리고 오늘 들고 다닐 세컨드 백을 들고 숙소를 나선다. 일층에는 스태프 하나가 잠들어 있다. 안 깨우게 조용히 밖으로 나온다.

아직 시간이 좀 이르긴 하지만 아무도 안 와있다. 오겠지? 픔마저 안 오면 진짜 캄보디아에 실망할 거 같다. 일단 들어오는 입구로 조금 나가 앉아서 기다려본다.


45분인데 아직 안 왔다. 가끔 지나가는 뚝뚝을 다 눈여겨 보지만 내 뚝뚝은 안 보인다. 불안감이 갈수록 커진다.

40분에 보기로 했는데 55분까지 기다려도 안 온다. 설마 진짜 바람 맞은 걸까? 이번까지 바람 맞으면 진짜 캄보디아에 대한 인상이 무척 안 좋아질 거 같다. 더 많은 돈을 준다는 사람이라도 있었던 걸까.

다른 뚝뚝이 때마침 지나가며 탈거냐고 물어보길래 일단 얘기를 좀 해본다. 19달러를 달라고 하지만 일단 상황을 얘기한 상태에서 15달러로 흥정해본다. 하지만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한다. 그래도 5시까지는 기다려보자.

멀리서 뚝뚝이 하나 온다. 가까이 오는걸 보니 품 같다. 맞나? 보니까 맞다. 아 고맙다. 오늘 하루를 구해줘서 고맙다기보다, 캄보디아에 대한 최소한의 마음을 가지고 갈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

잠시 대기하고 있던 뚝뚝 아저씨한테는 미안하다고 얘기를 하고 드디어 나의 뚝뚝에 오른다. 그래도 오늘 하루가 완전히 망하지는 않을 듯 싶다. 갑자기 앙코르와트를 볼 기대감에 기분이 업된다.


일단 Cercle d'Angkor로 향한다. 가방을 들고 들어서니 스태프가 자고 있다. 어쩌지? 살짝 깨워보지만 비몽사몽으로 잠꼬대를 해댄다. 어쩔 수 없다. 자는 스태프의 옆에 가방을 두고 그 위에 A4용지에 메모를 적어놓는다. 이 가방 잘 지켜지려나. 뭐 중요한 건 다 빼서 이동 가방에 넣어놨으니 나머지 내 속옷 등을 가져갈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나름 놀라운 일이겠다.

이제 다시 뚝뚝에 오르고 앙코르와트로 향한다. 거리에는 이 새벽 일찍부터 사람들이 참 부지런히 다니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발을 겁나 돌리는 사람들과 수많은 뚝뚝들이 나와 함께 해돋이를 보기 위해 같은 길을 간다. 막상 보니 평지라서 그냥 자전거를 타도 괜찮을 뻔했다. 만달레이에서 마리오가 여기서 의외로 자전거 타는게 괜찮다고 했었는데 여기 와보고서야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된다.




표를 어제 사둬서 입구는 쉽게 통과한다. 5분 정도 더 가서 앙코르와트에 도착한다. 어제 저녁에 자기 전에 두어 시간 조사를 해서 대략 어디가 앙코르와트이며 어제 저녁에 올라간 곳은 앙코르와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언덕으로 유명한 곳임을 알게 되었다. 픔이 뚝뚝을 세운다. 뚝뚝에서 내리면서 이 사원 안에서 일출 보기 좋은 장소를 물어보니, 그냥 앙코르와트라고 대답한다. 그러니까 앙코르와트 안에서 어디 좋은데 있냐고 물어보니 그냥 앙크로와트가 보기 좋단다. 그래 그냥 들어가자.

언제 나올 거냐고 묻기에 11시와 12시를 고민한다. 점심을 먹어야 하니 그쯤 나와야 할 듯 한데, 지금이 5시니 6시간 이상을 있는 거다. 워낙 넓다니 볼만하겠지? 애매해서 그냥 11시 반을 얘기한다. 참 우유부단하다.


내려서 앙코르와트를 한번 쳐다보니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탄성이 나온다. 아직 남아있는 달의 모습과 이 신전, 그리고 그 앞의 호수까지, 모든 것이 이국적인 조화를 보여준다. 사진을 몇 장 찍지만 내 비루한 실력으로는 이곳의 아름다움을 담을 수가 없다.

앙코르와트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는 다시 한번 표를 검사한다. 역시 철저하다. 표를 내고 긴 다리를 지나서 안으로 들어선다. 벽 하나하나가 이국적인 느낌을 낸다. 어제 잠시 조사한 바로는 모래를 이용한 건축이고, 비슷한 건축물인 피라미드보다 훨씬 거대하다고 한다.


사원 안으로 들어와서 좀 걸어가니 내부의 연못 근처에 사람들이 쫙 모여있는 것이 보인다. 저기가 뭐가 좋나? 아마 연못에 반사되는 해를 보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작은 건축물에는 배낭여행자들이 바닥에 여기저기 털썩 앉아있다. 왠지 내 자리는 관광객들이 몰려 있는 저 연못이 아니라 그 뒤 구조물인 거 같아 그쪽으로 간다.



다들 좋은 자리를 잡고 구석에 걸터앉아있다. 나도 자리를 잡는다. 난 양반다리가 편한지라 끄트머리가 아닌 맨 앞 중간 정도에 자리를 잡는다. 동양인, 서양인을 비롯한 다양한 여행자들끼리 말없이 물끄러미 해가 떠오를 방향을 바라본다.

확실히 여기는 관광객이 많다. 연못에서 몇명은 내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하나씩 찍고 간다. 한국말, 중국말, 일본어도 여기 저기서 많이 들린다. 뭐 걔네는 걔네고 나는 나다. 그냥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앞에 있는 이국적인 건축물 뒤로 펼쳐지는 일출로 인한 붉은 기운이 꽤나 멋지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국적'이다. 그러면서도 주변과 조화롭다. 중간중간 심어져 있는 야자수까지도 조화에 한몫을 담당한다. 역시 이런 아름다움은 사진에 담기 힘들다. 키보드를 펴고 글을 쓰면서 눈은 앞에 고정시킨다. 이 장면을 최대한 내 안에 담아둔다.

커피, 조식을 사라는 소리를 지르며 걸어 다니는 행상원들이 살짝 신경 쓰인다. 확실히 뭔가 집중해서 해돋이를 보기에는 산만한 이곳이 좋지는 않다. 물론 엄청난 장면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빠이에서 빠이린 숙소 뒤 베란다에서 봤던 해돋이가 더 감동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새 소리가 들리는 것은 그때와 거의 동일하다. 좋은 옷이 사람을 잠시 돋보이게 할 수는 있어도 진정 아름답게 하는 건 내면이다. 이곳의 내면은 오늘 얼마만큼 알 수 있을까.


해가 좀 올라오니 약간 밝아지면서 자연의 조명이 더 멋들어지게 이곳을 비춘다. 확실히 장관은 장관이다. 내가 결국 이곳까지 왔구나. 원래 31일 계획했던 여행에서 24일째면 딱 일주일 남은 상황, 원래라면 정리를 할 단계일 거다. 연장을 해서 그런 마음은 덜하지만 나름 잘 해 왔음에 스스로가 대견하다.

이로서 8대 불가사의 중, 피라미드, 아그라, 그리고 앙코르왓, 3개는 찍은 셈이다. 나머지 5개가 뭐였더라? 볼일이 언젠가는 생길까.




이제 슬슬 일어나서 관광객들이 모여있는 연못으로도 한번 가본다. 호수에 비치는 해를 찍기 위해서 사람들이 손만 쭉 뻗어서 사진을 찍고 있다. 뭐가 그리 대단하기에 그러지? 나도 오늘은 관광객들을 좀 따라해 봐야겠다. 카메라를 위로 쭉 빼들고 이들처럼 사진을 한번 찍어본다. 오, 사진을 확인해보니 확실히 멋있다. 하지만 내 눈이 담은 장면도 아니고 그저 카메라만이 담은 장면이다. 가짜 추억이다.


사람들이 또 우루루 몰리기 전에 다른 곳을 좀 볼까 싶어 일어난다. 걸어가다 뒤편을 한번 돌아보니 역시 그림이다. 이곳에서는 어디를 봐도 이국적인 느낌이 완전히 아름답다. 혼자 다니는 여행자의 묘미를 최대한 살린다. 급할 것도 없고 반드시 봐야 할 것도 없다. 그냥 터벅터벅 가다가 아무 데나 털썩 앉아서 글도 쓰고 구경도 한다. 지금까지는 호수 옆에 사람 구경이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다.


안으로 들어가니 가운데로 통하는 길은 막혀있고 좌우로 길게 통로가 이어져있다. 벽에는 벽화가 아닌 양각된 그림들이 쭉 이어진다. 가이드 뒤를 따라가며 설명을 살짝 훔쳐 들으니 전쟁을 묘사한 거란다. Khmer인들과 Siam인들, 즉 캄보디아와 태국 간에 있었던 전쟁을 뜻하는 듯하다. 벽화가 생각보다 매우 정교하다. 이 오랜 기간 동안에도 헤지긴 했지만 윤곽은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긴 하다. 좀 살펴볼까 하다 끝없이 비슷한 그림들이 이어지고 있기에 다른 곳으로 향해본다. 


바깥을 둘러싸는 구조물 안쪽으로 메인 구조물이 있다. 그리고 외곽과 내부 메인 구조물 사이에는 넓은 평원이 펼쳐져있다. 평원에 들어서니 오른쪽에 홀로 서 있는 건축물이 하나 보인다.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듯 한데, 한번 올라가 볼까?


가까이 가서 보니 계단이 매우 헤져있다. 맨들맨들한게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이거 계단의 기능을 수행하기는 할까. 조심스레 올라가 본다.

아 여기 위, 마음에 든다. 아무도 없는 곳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본다. 높이가 있어서인지 뷰가 멋지다. 오늘 아침에는 그냥 여기서 자리를 잡는 것도 좋겠다.


앉아있는데 내가 있는걸 보고 사람들이 따라 올라온다. 아 이게 아닌데. 카우보이 모자를 쓴 중국인 두 명은 이쪽으로 오더니 내 사진을 찍어간다. 내가 광대니...  아랑곳하지 않고 발을 쭉 펴고 앉아서 글을 좀 쓴다. 그래도 조용한 곳에 이러고 있으니 심신이 힐링되는 느낌이다.

노여사가 패키지로 이곳에 온 이후 나한테 자유여행으로 꼭 가보라고 추천한 이유를 알겠다. 워낙 넓다 보니 관광객이 많아도 곳곳에 나만의 장소를 찾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일단 앉아서 저번에 다 안 보고 아껴놓은 '연금술사'를 꺼내본다. 근데 그러고 보니 여기 화장실은 있으려나.


높은 곳에 앉아서 책을 보니 온 세상이 내 것 같은 기분이다. 뭔가 고독한 분위기가 풍겼는지 더 이상 아무도 안 올라온다. 미안하지만 여기 오전에만 좀 세놓을게. 어차피 해가 제대로 나오면 더워서 여기 못 있는다. 잠시 둘러보니 이 작은 구조물에도 장식들이 정교하고 화려하다. 앙코르왓은 어디에 있든 그냥 그림이 된다.

이곳의 최대 명당을 잡은 것이 확실하다. 새소리로 그득하고 주변은 간혹 사람들의 소리만 들릴뿐 조용하고 평온하다. 수 없이 많은 세월을 견뎌낸 바닥에 앉아, 역사를 담은 기둥을 기대고 책을 보니 이보다 좋은 독서실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가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사진을 찍으면 배려 깊은 모델답게 의식적으로 우수에 찬 눈빛으로 먼 곳을 한번씩 응시해준다.


잠이 오면 살짝 졸기도 하고, 햇빛이 강해져서 기둥 뒤 그늘로  피하기도하면서 두 시간가량 책을 읽는다. '연금술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고개를 들어보니 해가 꽤 올라와있다. 8시다.

'연금술사'는 생각보다 종교적인 색깔이 꽤나 강한 책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큰 주제보다 중간중간 나오는 문구들이 더 마음을 많이 흔들었다.

They were seeking the treasure of their Personal Legend, without wanting actually to live out the Personal Legend.


이 작가가 하려는 여러 가지 얘기 중에서 현재를 살라는 얘기를 가장 귀담아 듣게 된다. 꿈을 이루는 것은 좋지만 그 과정 자체도 꿈이여야지만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사실 가장 감명 깊은 것은 본편의 마지막을 덮고 나서 이다. 파올로 코엘로가 자신의 첫 번째 책인 '연금술사'를 출판한 게 38살인 것을 알게 된다. 그 전에 다양한 일을 했지만 결국 본인의 꿈인 작가를 그 나이에 성취하게 된 거다.

내 나이, 서른여덟, 많다면 많은 나이다. 허나 그렇다고 현실과 타협을 해서 살아야 하는 나이일까? 타협을 하려는 이유는 뭘까. 미래에 대한 불안감?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져서? 아니면 남들의 눈이 두려워서?

만 번의 픽션보다 하나의 논픽션이 주는 메시지가 크다. 이 작가는 꿈을 좇으라는 얘기를 할만한 자격이 있다. 본인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국 해냈으니 훌륭한 삶이며 그걸 녹여낸 소설 또한 훌륭하다.

나도 참 약해졌다. 일단 부딪치고 보는 성격이었고 꿈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람이었는데 몇 번의 좌절에 스스로가 무너져버렸다. 실패가 갖는 의미를 알게 되었고, 그 실패가 제공하는 씁쓸한 열매는 나만 먹는 게 아니라 내 주변에 아끼는 사람들까지도 먹게 된다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꿈을 좇는다는 게 이기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연 코엘료 말처럼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할까.


햇볕이 뜨거워진다. 이제는 이동할 시간이다. 3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3시간이 남았으니 여기를 좀 더 탐험해보도록 해보자.


안쪽으로 들어가니 새벽에 해돋이를 봤을 때 배경이 되어주었던 탑이 보인다. 근데 위에 사람들이 올라가 있다. 어제 얼핏 론리에서 본 바로는 예전에는 저 위를 못 올라 가게 통제했었지만 지금은 개방되었단다. 일단 저기부터 올라가 볼까.


올라가는 길이 다 막혀 있어서 구조물 외부를 돌면서 보니 한쪽에만 개방되어 있고 그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여기도 어제 그곳처럼 줄을 서는구나. 하지만 어제와 달리 오늘은 시간이 많아서 괜찮다. 나도 가서 줄을 서본다.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여기도 사원이라고 민소매 옷은 안된단다. 나는 상관없지만 여자분 몇몇은 아쉬워하며 돌아선다. 동남아 여행 다닐 때 어깨를 가릴 수 있는 숄 하나 정도는 가지고 다니는 것이 상식이다.


금방 내 차례가 와서 계단을 올라간다. 계단이 꽤나 가파르다. 어르신들이 올라가기에는 좀 무리가 있겠다 싶다. 계단을 모두 올라 높은 곳에서 서니 확실히 뷰가 바뀐다. 여기는 사원 안에를 보기 보다는 하나의 전망대 같은 느낌이다.


겉을 한번 쭉 둘러보며 앙코르왓을 한눈에 담아본다. 아까 새벽에 이곳으로 들어왔던 입구와 해돋이를 봤던 작은 연못도 보인다. 그 옆에는 각종 물품들을 파는 가판대도 보인다. 이따 봐서 물이라도 마시러 한번 가볼까 싶다.


이 꼭데기에도 두 군대 불상이 배치되어 있다. 앙코르왓은 원래 비슈누 신에게 바쳤다가 나중에 불교사원으로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 아니 무슨 신전에서 모시는 신이 변하지. 지금은 불교 나라라 그런지 불상에만 깨끗한 옷을 입혀놨다. 그 앞에서 절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래서 민소매 출입을 금지시켰나 보다.



확실히 종교의 힘은 강대하다. 이 정도 규모의 거대 유적은 대부분 종교의 힘으로 건축이 된다. 그래서 옛날 왕들은 자꾸 자기를 신격화시키려고 했겠지. 갑자기 생뚱맞게 마키아벨리 군주론이 보고 싶어 진다. 킨들에 있을는지 모르겠다.


앙코르왓의 느낌은 생각보다 아담(?)하다. 내가 하도 거대하다 거대하다 얘기를 들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앙코르왓 말고 다른 사원들도 있으니 합치면 크겠지만 이곳만으로도 하루 이상은 봐야 한다고 난리 친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내가 공부를 덜 하고 와서 안 보이는 걸 수도 있지만 오늘 하루 정도가 난 딱 좋은 거 같다. 웅장하지만 내 마음 깊이 들어오지는 못한다. 어릴 때 피라미드를 보고 정말 감탄했던 거와 비교된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아기자기한 것보다 사이즈에서 먼저 감탄하는 것 같다.


위에서 한바퀴를 설렁설렁 돌아보고 대기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일단 내려온다. 내려와서 이곳 저곳을 좀 더 봐보지만, 뭔가 같은 장면이 계속 반복되니 살짝 지친다. 9시니 아직 이곳에서의 시간이 2시간 반이나 남았지만 이제 슬슬 나가야겠다. 천천히 걸어서 밖으로 나온다. 중간에 보니 바닥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도 보이고, 곳곳에 모두 사람들이 있다. 확실히 관광객이 많아도 장소가 넓으니까 어디든 사람이 덜 있는 곳을 찾을 수 있다.



밖으로 나와서 다시 한번 사원을 돌아보니 장관은 장관이다. 나야 너무 거대한 기대를 하고 와서 그렇고,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왔으면 입이 떡 벌어졌을 거다. 기대를 하지 않고 봐야 감동이 더 큰 법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에도 스포가 있다고 믿는다.

나와서 가판대 쪽으로 걸어가니 화장실 신호가 보인다. 응? 여기서 한번 시도를? 하지만 신호가 약해서 그냥 가벼운 화장실 이용만 하기로 한다. 찾아가보니 생각보다 깨끗하다. 일단 인레 트래킹에서 갔던 곳보다는 확실히 깨끗하다. 급하면 여기를 사용해도 전혀 문제가 안되겠다.


나오는 길에 식당이 하나 보인다. 화장실 앞에 식당이라... 다른 데보다 좀 저렴하지 않을까? 9시라 시간이 애매하지만 조금 늦은 아침을 먹기로 결심한다. 점심은 다음 유적지를 돌고 좀 늦게 먹어도 괜찮을 듯하다.

메뉴는 국수 하나이고 노란면과, 흰면이 있단다. 가격은 둘 다 2달러이다. 노란면이 일반적이라고 하고 흰면은 좀 특이한 맛이라길래, 그냥 흰면을 시킨다. 근데 2달러면 꽤나 비싸긴 하다. 아마 현지인들한테는 다른 가격을 매기지 않을까 혼자 추측해본다.


흰면이라고 한건 그냥 쌀국수다. 그래도 고기도 꽤나 들어가고 맛이 나쁘지 않다. 헌데 모기, 파리, 벌이 너무 많아서 여기에 오래 앉아 있기는 좀 그렇다. 맛있긴 했지만 다 먹자마자 일어난다. 이곳 근처에서 커피 한잔 마실 곳이 있으려나.


나와서 앞쪽으로 나오니, 가판대가 펼쳐져있긴 한데 거의 다 옷가게이다. 앉아서 선풍기 바람도 좀 쐬면서 커피 한잔에 책 좀 보고 싶은데... 좀 더 가보니 내가 원하는 느낌과 비슷한 장소가 보인다. 이 정도면 괜찮을 듯 싶다.

커피 가격을 물어보니 1달러이다. 가격도 괜찮다. 여기로 당첨. 들어가서 얼음 동동 아이스커피를 주문하고 앉아서 키보드를 핀다. 그때 옆 다른 테이블에 캄보디아 연인이 앉았다가 선풍기가 이쪽으로만 향해 있어서 내 테이블로 와서 합석한다.

이렇게 같이 앉아있으면 거의 버릇처럼 말을 걸게 된다. 혼자 여행 다니면서 생긴 버릇이다. 한국 가서도 이러면 바람둥이가 될 텐데. 슬쩍 캄보디아인이냐고 물어보니 맞단다. 영어를 좀 하려나? 보니 남자는 영어를 거의 못하지만 여자는 꽤나 영어를 잘한다. 아니, 캄보디아에서 지금까지 본 사람 중 제일 잘한다.

이런 저런 수다를 떤다. 나름 둘도 재미있어한다. 남자는 베트남에 살고 여자는 캄보디아에 사는데 2년 동안 만났단다. 그런 장거리 연애가 쉽지 않을텐데, 대단하다. 여자가 부자인가? 물어보니 여자는 이런저런 교환 프로그램으로 한국에도 왔었고, 인도에도 갔었단다. 매우 활발한 사람이구먼. 둘 다 훈남, 훈녀라 보기 좋다. 24살, 21살이란다. 귀여운 아기들이구먼.

노여사 자랑도 하고 조금 약 올리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참 여행 다니면서 사람을 만나보면 정말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음을 매번 느낀다. 세상에는 살아가는 방식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며 내가 선택할 길도 한두 가지에서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다. 두려움을 털어내고 눈을 열고 보면 엄청난 가능성들이 열려있지만 그 가능성이 보이기 전에 보통 우리가 먼저 닫아버린다. 나한테 지금 열려 있는 길들은 무엇일까.

11시가 다가와서 일어선다. 이 커플에게도 영원한 사랑을 기원한다. 둘이 은근 어울려서 잘되지 싶다. 이들과 헤어지고 잠시 고민하다가 화장실로 향한다. 그래, 근심을 털어내야 앞으로의 일정이 편해지는 법이다.

이 쯤이야 뭐. 간단히 해결하고 나온다. 천천히 바깥으로 향한다. 아직 11시라 시간이 좀 이르지만 왠지 픔씨는 지금도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 싶다.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앙코르왓을 한번 더 돌아본다. 서둘러 나가고 싶지 않다. 한번 더 전경을 눈에 담는다. 이곳은 왠지 다시 올 일이 없을 거 같다. 약간 실망한 곳이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보니 역시 이국적인 모습이 확실히 눈길을 사로잡는다. 내가 죽고, 내 자식이 죽고, 그 자식이 죽어도 얘는 그대로 살아남겠지. 어찌 보면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은 유물을 남기는 것이다.

나와서 아까 픔과 만나기로 약속한 곳으로 가보니 뚝뚝 위에서 곤히 잠들어있다. 어디라도 갔다 오는 줄 알았더니 여기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마음이 굉장히 불편하다. 이런 대접은 내 스타일이 아닌데. 그래도 너무 귀엽게 자고 있어서 사진 한 장을 찍고 살짝 깨운다.

침을 닦으며 일어서더니 바로 정신을 차리며 어디로 가고 싶냐고 한다. 그래도 참 친절하시다. 어제 그 친구와 이별하기를 정말 잘했다. 아까 커피 마시면서 론리를 쭉 보고, 더운 이 시간에는 숲과 유적이 얽혀있다는 Ta Prohm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 얘기하니 바로 헬멧을 쓰고 출발한다.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다. 가는 길에 전기자전거와 일반 자전거, 그리고 심지어 걸어가는 여행자들도 많이 마주친다. 나도 조금 여유가 있었으면 저런 방법을 썼을 텐데, 아쉽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쓴다는 사실이, 내가 여유를 부리는 동안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든다. 그래도 그 사람에게 벌이를 제공하는 거니 또 좋은 거라 생각하며 마음을 편히 가져본다.


타프롬에 도착하니 픔이 우리가 있는 여기는 동쪽 입구이고 나올때는 서쪽 입구에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지금이 11시 반이니까 2시 반에서 3시쯤 나오겠다고 말하자 픔이 그냥 아무 때나 나오라고 한다. 어차피 여기서 계속 나를 기다릴거 같다. 어디 가서 쉬다가 오든가 하지. 익숙해지는 게 쉽지 않다.


이곳에 들어서니 무슨 수목원에 들어온 느낌이다. 아까 앙코르왓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조금 더 들어오니 역시 티켓 체크를 한번 한 후 나무들에게 괴상하게 정복당한 건축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론리에서 보기로는 이 괴상한 사원에서 나무를 제거해야 하나, 놔둬야 하나에 대한 토론이 많다고 한다. 나무로 인해 로맨틱한 정취를 풍기지만 유적지 파괴가 문제라는 얘기다.


들어가기에 앞서 그 앞에서 잠시 앉아서 글을 좀 쓰고, 론리를 피고 이곳에 대한 얘기를 먼저 좀 읽는다. 역시 좀 읽고 들어가야 도움이 되는 거 같다. 워낙 더워서 그늘이라도 땀이 주룩 주룩 나지만 이제 땀은 익숙해졌다.


씨엠립에 와서 느낀 것 중 하나 홀로 여행자가 확 줄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래도 꽤나 보였지만 여기는 모두가 일행이 있다. 뚝뚝을 혼자 타는 것이 비효율적인 이유도 있을 거고, 유명한 관광지다 보니 아예 처음부터 기획해서 같이 다니는 사람들도 많을거다. 하지만 홀로 다니는 여행이 주는 자유로움과 여유는 경험한 사람만이 안다.



유적 앞의 큰 나무의 그늘에 앉아서 론리를 20분 정도 찬찬히 정독한다. 이곳에 대한 설명이 철학적이다.


 사람이 먼저 자연을 파괴하며 엄청난 문명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자연이 그 문명을 조금씩 파괴하고 있는 곳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결국은 자연이 이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기껏해야 100년이다. 자연 입장에서는 하루살이에 불과한 인생일진대 뭔 이리 고민과 걱정이 많을까. 누구든 죽고 나면 한줌 흙이 될 뿐일진대.

앙코르왓은 일출 때문에 좀 서두르며 입장했지만 이곳은 한껏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들어선다. 여기 말고 딱 한군대만 더 갈 것이라 한 곳에서 3시간 이상 시간이 있으니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다.

이곳에서 툼레이더 영화 촬영을 했다더니 이해가 간다. 나무와 유적물이 주는 묘한 분위기가 여러 가지 생각을 들게 하는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 나무들은 몇 년이나 된 걸까? 이곳이 생긴걸 생각하면 천년 정도를 예상할 수 있다. 나무의 뿌리를 봐도 그 정도는 된 느낌이다. 이 정도의 문명도 끈질긴 자연 앞에서는 모두 무너진다.



Khmer인들은 아치 기술을 마스터 못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모든 통로고 좁고 위를 보면 아치로 구성이 되어 있지 않고 그냥 벽돌을 쌓듯이 쌓여있다. 헌데 보면 10 군대 중 서너 군대는 위가 뻥 뚫려있고 그 돌들이 무너져서 바닥에 떨어져 있다. 아치형이 아니라서 기초가 단단하지 못했나 보다. 이거 근데 안전하긴 한걸까?


사원 여러곳을 무심코 지나가는데 그중 한곳에서 바람이 세군데서 불며 갑자기 시원해진다. 둘러보니 여기가 명당인 거 같다. 사방으로 구멍이 뚫려있어서 바람이 항시 불며 시원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헌데 위를 보니 역시나 돌멩이가 위태롭게 얹혀있다. 저거 하나만 떨어져도 난 사망이다. 여기 진짜 안전한 걸까? 잠시 앉아서 책을 보려다 돌아선다. 아직은 내 목숨이 소중하다.



앙코르왓에 비하면 타프롬은 유적이 체계적이지도 않고 그만큼 넓지도 않다. 조금 보다 보니 다 본 듯하여 가운데 있는 큰 나무 옆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앉아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서 한국인 가이드가 큰 소리로 사람들을 소집한다. 그리고는 암기과목 명시하듯이 이곳에 대한 설명을 한다. 지켜보는 게 나름 재미있다. 슬쩍 엿들어볼까?


헉, 이번에는 어떤 방에 들어가더니 다 같이 손바닥을 3번 치고, 다 같이 "야!"하고 소리도 지른다. 이 방이 소리가 울리지 않게 지어졌음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강의(?) 방식이겠지만 조용하던 이곳에 쌩뚱맞게 울려 퍼지는 "아~" 소리에 순간 민망해진다. 외국인 여행자들이 지나가면서 보고 다들 웃는다. 누가 물어보면 지금 이 순간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와따시와 칸코크진가 나이데스. 우리 어머니도 단체 관광 가면 저러려나. 앗, 그러고 보니 노여사도 어머니와 패키지 왔는데 저 방에서 소리 질렀으려나? 근데 방이 안 울리는 게 무슨 과학적으로 그런 걸까? 소리가 난반사된다는건데 여기 구조물 특징상 모두 난반사될거 같기도 한데. 원래 관광지에는 포인트가 필요하니 뭐라도 스토리를 만드는 게 정석이다.


내가 앉은 곳이 이곳의 중심인가 보다. 내 주위로 사람들이 나무 사이에 얼굴을 집어넣고 사진 찍고 난리가 났다. 한 외국 아저씨는 가이드에게 정확하게 서야 하는 장소를 물어본다. 사진 찍는데 꼭 서야 하는 곳이 어딨을까. 자기가 포인트를 잡아야 더 의미 있는 거지. 유적 구경하러 와서 사람 구경을 시작했다. 역시 사람 구경이 더 재미있다.


여행 이후 처음으로 책 한 권을 끝내고 새로운 책을 편다. 내용도 전혀 모르지만 누군가한테 추천받은 Pearl S. Buck의 'The Good Earth'가 Kindle Unlimited에 있길래 받아왔다. 그런데 지금 카드를 다 취소시켜서 킨들 언리미티드 갱신을 못한다. 와이파이 연결하는 순간 내 론리는 다 날라간다. 새로운 책을 받고 싶은데, 이것도 문제다.

좀 안 좋은 생각이지만 이곳에 앉아서 관광객들을 보면 내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행복감을 더 강하게 느낀다. 일종의 우월감이라 안 좋다는 건 알지만 일단 지금은 즐길련다. 줄 서서 한 명씩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웃음이 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통곡의 방에 들어가서 "하나, 둘, 셋, 아~!!"를 한 팀은 한국 밖에 없다. 유일한 호적수인 중국 사람들은 왜 안보일까.


아까 팀이 가고 다른 한국팀이 또 왔다. 같은 곳에서 이번에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는데 한이 많으면 "둥둥" 소리가 크게 난다고 가이드가 얘기한다. 그리고 부부 두 팀씩 들어가서 실습을 한다. 줄 서서 그 방으로 들어간 후 "둥둥", "둥둥" 소리가 나게 가슴을 치며 울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다. 아 진짜 중국 패키지 팀 안 오나? 왜 우리나라만 이런 거야....... 여기 한 시간째 앉아있는데 당황스럽다. 실습 이후에는 나와서 줄 서서 사진을 찍는다. 여기서의 기념 사진이 오늘의 하이라이트란다.

1시 반이 되어가기에 그들이 나올때 같이 따라나온다. 밥을 여기서 먹고 이동할 생각이다. 근데 내가 한국인인 줄 알까? 왠 이상한 거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뒷다마 작렬했지만, 왠지 우리 어머니 아버지 같아서 뭔가 정감이 간다.

유적을 나오니 앞에 식당들이 줄지어 있다. 픔이 혹시 날 기다리고 있나 찾아 보는데 잘 안 보인다. 지금 보면 식사가 애매한데 잘됐다. 일단 Khmer 전통 음식이 Amok을 먹으려 물어보니 6달러란다. 헐, 이거 2달러 정도일 텐데, 바가지가 장난 아니다. 내가 헐, 하는 표정으로 보고 있으니 역시 알아서 네고가 들어간다. 메뉴판 가격은 그냥 보여주기 위함인 걸까. 결국 망고 쉐이크까지 같이 해서 5달러에 주문한다. 어디 가도 바가지가 없던 미얀마가 살짝 그리워진다.


이곳 대표 메뉴를 처음 먹는 건데 좀 느끼하다. 똠얌꽁하고 비슷하지만 맵지 않다. 결론적으로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도 비싸게 주고 산 건데, 싹 다 비운다. 그리고 물 한잔 얻어먹는다. 그냥 여기 현지 물인데 이거 먹고 설사하지는 않겠지. 하루 종일 땀을 흘리니 수분 섭취가 필수적이다. 움직임은 당연히 덜하지만, 땀 흘리는 건 거의 인레 트래킹 할 때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밥을 먹고 픔의 뚝뚝을 찾아 헤매니 멀리서 픔이 먼저 날 알아보고 손을 흔든다. 다시 뚝뚝 타고 이동할 시간이다. 두개의 유적을 거치니 이제 진짜 체력의 한계가 좀 와서 뚝뚝 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늘 안에서 편하게 이동하니 살 거 같다. 움직이는 것도 그렇지만 너무 더워서 벌써 지쳐버렸다.


세 번째 가는 곳은 Bayon이라는 얼굴 모양이 많은 사원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얼굴 사원은 전체의 일부분이고 유적 자체는 더 넓게 듬섬듬섬 펼쳐져 있단다. 전체 유적을 둘러본 후에 Bayon을 마지막으로 보고 그 출구에서 만나자며 픔이 나를 반대편에서 내려준다.

유적에 들어가니 이곳은 다른 유적과 다르게 그냥 숲이고 군데군데 작은 유적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다. 하지만 아무리 유적이 많다 해도 이제 좀 지친다. 같은 유적을 하루 종일 보니 이제 눈과 몸이 익숙해져 버렸다. 이곳에는 큰 규모의 유적은 없지만 깔고 앉는 돌멩이부터 통로까지, 그냥 모든 보이는 것이 유적이다. 약간 방치된 느낌이 든다. 하긴 이 광활한 곳을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아 이제 귀찮다. 그냥 바욘에 가서 책이나 보면서 쉬다가 일몰이나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허나 그쪽으로 가는 길에 기다란 길과 거기서 이어지는 파고다가 하나 눈에 띈다. 그래, 그래도 여기는 걸어봐야겠다. 이거 진짜 진이 빠지는데. 오늘 저녁에는 필히 맥주 한잔 해야겠다. 아, 그러고 보니 내일 고아원 같이 가기로 한분하고 한잔 하자는 얘기를 하다 마무리를 못했다. 와이파이가 없어서 카톡이 안되니 천상 숙소에 가서 확인할 수 밖에 없다.


길게 뻗어 있는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데 내뒤에 아까는 그리 안보이던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나타난다. 그들 사이에 파묻힐까 봐 앞으로 나서서 그 길을 걸어본다. 아 좋군, 하며 걸어가는데 뒤에서 카메라 소리가 들린다. 뒤를 보니 10여 명이 다 나를 향해 사진을 찍고 있다. 정확히는 사원을 향한 거겠지만 거기에 내가 있으니 문제다.

공짜로 찍혀주지 뭐. 무시하고 길을 끝까지 간다. 길 끝에 있는 사원에 다가가니 그 높은 사원 맨 꼭대기에 사람이 있는 게 보인다. 올라가는 길이 있나 보다. 아, 왜 있는 거야. 있으면 또 올라가야 하잖아. 그래 가자 가. 꽤 높아서 위에서 보면 멋있을 거 같긴 하다.




여기는 앙코르왓의 올라갔던 곳 보다 두배는 높다. 가파른 계단 하나를 오르니 하나 더 나타난다. 거길 올라서니 또 하나가 더 나타난다. 3개를 오르고서야 정상에 도착한다.

아찔하다. 이 천년 된 나무들과 눈높이를 같이 한다. 아파트로 치면 대충 10층 정도 높이가 아닌가 싶은데 안전장비는 거의 전무하다. 하나 더 올라가는 게 있길래 올라갈까 싶었더니 그곳은 막아놨다. 일몰을 여기서 보면 어떨까 싶어서 봤더니 아쉽게도 나무가 우거져서 지평선은 안보인다. 누군가 그랬지. 사람이 몰리는 건 그만 한 이유가 있어서라고. 일몰은 역시 그걸로 유명한 Bayon에서 봐야겠다.


전면이 보이는 곳에 앉아서 큰 심호흡을 이삼회 한다. 그래도 좋긴 좋다. 앙코르 사원들은 확실히 매력적이긴 한데, 그냥 하루에 하나씩만, 서너 시간 보면 좋을 듯하다. 이렇게 힘들게 다니면 좋은 곳도 힘겨워지고 버거워진다. 난 그래도 3개만 쉬엄 쉬엄 봐도 이런데, 패키지로 하루에 5개씩 다니면 어떻게 되려나.


멀리서 폭풍우 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새지길래 일단 내려가기로 한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는 길에 힘을 가득 실은 바람이 불어온다. 노여사라면 날아갔겠는걸? 나는 물론 괜찮다.

아 이제는 진짜 진이 빠졌다. 그냥 Bayon으로 직행해서 쉬다가 일몰을 봐야겠다. 그 생각으로 나와서 5분 걸으니 또 큰 사원이 보인다. 아 또 뭐야...


이번에는 진짜 안 들어가! 과감하게 지나가려고 하는데 안에 사람이 너무 많다. 후... 여기 유명한 곳인가? 또 가봐야 하나... 근데 위쪽에 얼굴이 보이는 거 같기도 하다. 혹시 여기가 Bayon?

옆에 뚝뚝 기사님한테 한번 물어보니 여기가 바욘이 맞단다. 아 내가 상상했던 거대한 유적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잘됐다. 근데 여기 아까랑 비슷한데 일몰을 볼 그림이 나올려나? 일단 들어가는데 표 검사를 한다. 표 검사하는 분에게 확인차 여기 Bayon이 맞냐고 다시 질문하니 나를 쳐보다며 아니란다. 헉, 뭐지?

장난친 거란다. 그런 장난치지 마... 나 지금 정말 힘들어... 유적에 들어와서 한바퀴를 둘러보고 위로 올라간다. 다리가 이제 후들후들 거린다. 올라가니 유명한 얼굴 모양을 한 돌들이 여럿 보이긴 하는데 이곳이 왜 일몰을 보기 좋다는지는 도통 이해가 안된다. 숲으로 가려져 있어서 보이지도 않을 거 같다. 게다가 구름도 쫙 꼈다.

에잇, 그냥 돌아가자. 이거는 내가 생각하는 여행이 아니다. 너무 지치고 진이 빠졌다. 인레호수도 안 봐놓고 여기서는 이게 뭔 짓인지. 그냥 귀가하기로 결정한다. 근데 4시 반인데 픔이 지금 있을까?

내려와서 찾아보니 안 보인다. 마냥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었던 건가. 일단 너무 목이 말라서 주변을 둘러본다. 수중에 큰돈 뿐이라 혹시 잔돈을 못 바꾼다면 지금은 딱 1달러만 사용 가능하다. 근데 다른 곳에는 그리 많이 보이던 가판대들이 여기서는 잘 안 보인다.

하나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서니 언제나 그렇듯이 호객을 한다. 이번에는 나도 필요하니 물어본다. 물이 2병에 1달러, 그리고 코코넛이 하나에 1달러이다. 항상 느끼지만 달라를 메인 화폐로 쓰기에는 1달러가 너무 크다. 나야 며칠 안 있으니 그냥 쓰지만 여기서 일주일 이상 있으려면 반드시 이곳 화폐로 바꾸는 게 이득이다.

물 두병 받아봤자 들고 다니는 것도 쉽지 않아서 그냥 코코넛을 처음으로 주문해본다. 한국에서 먹어 봤을 때 너무 맹숭맹숭하여서 안 좋았던 기억이 커서 그 이후 사서 먹어본 적이 없다. 정글의 법칙에서는 그리 힘들게 자르던 코코넛을 얘네는 두세 번 도끼질에 뚜껑을 쉽게 잘라내고 먹기 좋게 빨대를 꼽아준다.


한 모금 빨아 먹어보니 나쁘지 않다. 시원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단맛도 있고, 무엇보다 양이 상당하다. 오늘 내내 땀은 엄청 흘리고 수분 섭취를 못해서 몸이 고달팠는지 바로 원샷 해버린다.

이제 품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려나. 혹시 몰라서 주변을 산책도 할 겸 돌아본다. 사실 산책할 다리 상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냥 기다리는 것이 더 싫다. 저쪽 구석에 뚝뚝이 하나 있길래 걸어가 보니 멀리서 픔이 자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확인하기 위해서 조금 가까이 가니 자고 있던 픔이 무슨 예감이 들었는지 갑자기 일어나더니 나를 발견하고 똑바로 앉는다.

방금 깨서 정신 없을텐데 또 일어나자마자 이제 어디로 갈까, 하며 운전할 준비를 한다. 참 성실하다. 가긴 어딜 가, 힘들어서 집에 가자니까 픔의 얼굴에 티 안 나는 미소가 살짝 보이는듯 하다. 그래, 당신도 힘들었을 거야.


올라타고 집으로 향한다. 중간에 스님도 한 명 무임 승차해도 되냐고 물어서 그러라고 한다. 스님의 영어 연습 상대가 되어주면서 집으로 향한다.

숙소에서 내리니 픔이 내일은 어떤 계획이 있냐고 묻는다. 내일은 도저히 못 나가지. 일단 고아원에 가기로 했고 설사 그게 취소되더라도 앙코르를 다시 갈 생각은 없다. 입장권도 하루치를 사서 어차피 못 간다.

오늘 열심히 고생했는데 미안하다. 그래도 내가 블로그를 하니 거기에 소개하겠다고 한다. 엄청 추천할 기사님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어가 어느 정도 통하고 착하셔서 최소한 손해를 안 볼 기사님이다.

오늘 새벽에 가방을 맡겼던 앙코르빌라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서 구석에 놔뒀던 가방부터 챙긴다. 어제 봤던 여자 스태프가 아닌 남자애가 있는데 얘도 인상이 좋다. 그때 여자 스태프와 했던 얘기를 들려주는데 영어를 잘못해서 의사소통이 쉽지는 않다. 일단 이름부터 물어본다. 여행 다닐 때의 버릇이다. 사람은 이름으로 부르는 게 예의라고 믿는다. 그래도 친절하고 착하니까 바디랭귀지로 그럭저럭 잘 통한다.

가방을 들고 숙소로 올라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람들이 서너 명 이미 있다. 살짝 눈인사를 하고 안면을 틀려고 하는데 다 씹는다. 아 여기는 서로 잠만 자는 그런 게스트하우스인가 보다. 뭐 내가 먼저 와있었던 것도 아니니 분위기가 그러면 맞춰줘야지.

일단 샤워부터 한다. 샤워실이 도미토리 안에 있어서 남녀 같이 쓰는 상황이라 썩 바람직하지 않다. 동양 여자 하나, 서양 여자 하나, 그리고 서양 남자 둘 이렇게 4명이서 방을 쉐어하고 있다.

빨래를 할까 하다가 애매해서 로비로 들고 가서 맡긴다. 돈이 아까운 것을 떠나서 더러운 속옷을 맡길려니 뭔가 민망하지만 여기는 빨래 여건이 어렵다. 빨래 여건이란, 세면대에 물을 받을 수 있게 마개가 있냐는 건데, 여기는 없다. 이왕 맡기는 거 이것저것 다 넣어보지만 그래 봤자 딱 1키로다. 1.25달러로 해결한다. 속옷 민망한데...

방에 들어가서 쉬고 있으니 한 명 두 명 밖으로 나간다. 아 이렇게 안면 안트고 있는 도미토리는 뭔가 숨이 막힌다. 만달레이 Ace Star는 내 영역인 느낌이라 내가 분위기를 주도했지만 여기서는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

7시 반이 되자 나도 밥을 먹으러 나온다. 이곳에 Pub Street가 있다기에 오늘은 그리로 가 볼 생각이다. 물론 관광객 냄새 물씬 나겠지만 하루 정도는 그런 체험도 나쁘지 않다.


한 5분 걸어서 Pub Street를 들어서니 좌우로 가게들이 양쪽으로 쭉 늘어서 있다. 메뉴를 보며 걷다가 가장 저렴해 보이는 마지막 가게에 정착한다. 어차피 퀄리티는 다 그게일 거라 추측된다. 악어 고기 등 별의별 고기를 BBQ에 하는 캄보디아식 구이가 궁금하긴 한데, 궁금하다 해서 9달러를 쓸 수는 없다. 확실히 이곳은 모든 것이 비싸다. 안동소주라도 있었으면 생각이라도 해봤을 텐데.

자리를 잡고 앉아서 Khmer Loklok을 시킨다. 전통 요리가 그래도 가성비가 좋다. 2달러 정도다. 이곳도 미얀마와 마찬가지로 생맥주는 0.5달러다. 당연히 하나시킨다.


Loklok은 고추장이 아닌 이곳 양념으로 한 돼지불백 느낌이다. 좀 매콤하게 해 달라고 했더니 약간 매운 느낌이 나게 나왔다. 더 매워도 되는데. 캄보디아는 태국과 다르게 그다지 안 매운가 보다.

먹으면서 글을 쓰고 있는데 왠 중국인 5명 정도가 큰 소리를 내며 지나가다가 내 앞 가게에 자리를 잡는다. 저번에 노여사 얘기 들으니 패키지 여행을 왔을때는 숙소에서 자유롭게 나오지도 못해서 겨우 몰래 탈출했다고 들은 거 같은데 이 사람들은 패키지가 아닌건가.

이 사람들 자리를 여러개 붙이고 한참 자기들끼리 시끄럽게 얘기하더니 갑자기 나한테 와서 다짜고짜 중국어로 말을 건다. 저기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중국인은 아니랍니다. 중국인이 아니라고 영어로 말을 해도 중국어로 얘기한다. 천천히 "코리안" 하니까 아아 하며 당황하며 자리로 간다. 내 스타일이 바뀌어서 중국인 같나? 왜 어디 가도 현지인 같다는 거지? 그냥 멀티내셔널인 건가.

이 사람들 앉아서 시끌벅적 10분이 넘게 놀더니 주문을 안하고 그냥 일어나서 가버린다. 이건 또 뭐다냐. 가게 앞에 메뉴판이 배치되어 있어서 이미 메뉴를 다 본 상태로 앉아놓고서는, 당황스럽다. 테이블 정리를 다시 하는 직원분과 어쩌다 눈이 마주치며 둘 다 황당한 웃음을 교환한다. 내가 외식업을 했어서 그런지, 저런 매너없는 인간들은 꼴보기 싫다.

좀 앉아있으니 갑자기 한국말이 들리더니 가이드를 앞에 내세우고 한국인 팀이 우루루 지나간다. 중국인들도 안 그러는데, 한국인 관광객들은 가이드가 너무 감싸고 돈다. 밥 먹는 것도 꼭 같이 다녀야 하고 여행지에서도 정해진 코스에서 벗어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사고가 걱정되서겠지. 내 건너편을 보더니 "여기가 피자 제일 유명한 곳이에요"라고 가이드가 외친 이후에 다 같이 "아아" 하면서 지나간다. 식당도 관광을 하나보다. 이것도 문화 차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거겠지. 다른데서는 못 보던 것을 이곳에서 보는 거 보니 확실히 관광지는 맞다.

오늘은 돌아가는 길에 두리안이나 사서 먹어볼까 한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 두리안을 제대로 시도한 적이 없다. 비싼 한국에서 못 먹으니 1달러인 이곳에서 뭐든 시도해봐야겠다. 망고주스도 1달러던데, 망고주스를 먹을까.

오늘은 앙코르 사원들의 탐방으로 하루를 보냈다. 내 체력이 비루하고 공부가 부족해서 내 개인적인 경험은 별로이긴 했지만 분명 한번 와봐야 하는 곳임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캄보디아가 매력적인 게, 패키지 관광객도 배낭여행객도 모두 다 즐길 문화가 있다. 비싼 음식도 있고, 싼 음식도 있으며 호화로운 호텔과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공존하고 있다. 나는 이곳을 4일만으로 잡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지만 분명 누군가에게는 오랜 기간 머물면서 즐길 환상적인 도시일 거라 생각한다. 내일은 어떤 경험이 이어질까.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고아원 봉사활동 리더분에게 연락하고 어찌 될지 생각해봐야겠다. 거기 꼭 갔으면 좋겠는데. 취소되지는 않겠지.



그래도 번화한 거리의 식당 테라스에 앉아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맥주 한잔 마시고 하루를 정리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노여사가 여기를 작년에 지나갔었을 거라 생각하니 더 기분이 좋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두리앙을 물어보니 2키로에 2달러로 생각보다 비싸서 그냥 망고 주스 하나를 1달러에 사온다. 왠지 캄보디아는 이렇게 짧게 오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한 달을 기획하고 전국을 돌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일은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을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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