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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Jul 29.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26

Siem Reap, Cambodia to Hat Yai, Thailand

5월 26일이 밝았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나? 우리 지은이, 아이유 생일이다. 생일 축하한다 지은아! My life for IU!

어제 술을 좀 마셔서 그런지 7시까지 논스톱으로 잔다. 시포에서의 숙취날 이후로 여행 와서 가장 늦잠을 잔 거 같다. 하지만 사실 일찍 일어날 이유가 없다. 아침 먹을 돈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남은 잔돈이 5달러, 이 중 공항까지 이동비를 대충 3달러로 잡으면 2달러가 남는다. 아침과 점심을 먹기에는 버거운 금액이다. 점심을 스킵할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오늘은 강제 아침단식이다.

어제는 바쁘게 돌아다니고 밤에 술파티도 벌이느라 글을 거의 못 썼다. 그래도 역시 술자리는 즐거웠다. 말 한마디도 안 통하는데 즐거울 수 있다는 것도 술이 주는 묘미다. 술자리 한번에 사람들과 친해졌다. 사람은 어디든 같다.

9시쯤 완전히 일어났지만 침대에 있는다. 밖으로 나가면 덥다. 지금 캄보디아 날씨는 살인적이라 에어컨을 틀은 이곳에서도 살짝 땀이 날 정도이다. 어차피 글도 써야 했는데 잘됐다. 침대에 앉아서 어제 일을 정리한다.

여기 도미토리는 좀 특이하다. 보통은 9시만 되면 불을 키고 나가는데 여기는 다들 잠만 잔다. 11시가 되어도 몇 명이 자고 있다. 그러니 불을 못 키고 창문도 없으니 완전히 어두컴컴하다. 에어컨이 있고 창문이 없어서 다들 자는 건가.

11시가 되니 앞에 한국 여성분이 짐을 싸들고 나가신다고 인사를 한다. 짐이 어마어마하다. 이곳은 화장실도 그렇고 좀 불편해서 다른 곳을 예약하셨단다. 하긴, 방 안에 화장실이 있는 것은 은근히 불편하다.

배웅해드리며 안전한 여행을 기원해드린다. 여행 와서 처음으로 같은 지붕을 공유한 한국인이었다. 후원하는 아이 때문에 자주 오신다는 까맣게 탄 여성분, 앞으로도 행복하시기를.

여행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난다. 캄보디아에서는 봉사활동과 여행을 같이 하는 한국분을 두 분이나 만났다. 한국인의 특징인 걸까 캄보디아가 가져오는 묘한 매력 때문일까. 잠시 나도 저런 삶을 한번 꿈꿔본다. 예전부터터 NGO에는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좀 알아볼까 싶기도 하다.

12시가 되어서 슬슬 일어난다. 3시 반 비행기니 이곳에서 1시 반쯤 나가야 하고 그러려면 이제 점심을 먹어야 한다. 헌데, 공항까지 교통비가 정확히 얼마나 나올까. 그걸 확실히 알아야 어떤 밥을 먹을지 정할 수가 있다.

내려와서 리셉션에 교통비를 한번 물어본다. 공항까지 버스는 없고, 뚝뚝이나 오토바이를 타야 한단다. 혹시 얼마인지 아냐고 물어보니 어딘가에 전화해서 알아봐준다. 뚝뚝이 6달러, 오토바이가 4달러다. 올 때 2달러에 왔는데 너무 비싸다. 게다가 5달러 밖에 없는데 4달러를 내고 나면 1달러로 밥을 먹어야 해서 애매하다. 일단 내가 따로 알아보겠다고 한다.

어제 세탁비를 내고 못 받은 거스름돈 2000릴을 받는다. 원래 있던 1000릴까지 하면 3000릴이다. 여기서는 무조건 4000릴을 1달러로 치니 그래도 꽤 쓸모 있는 돈이 되었다.

나가니 역시 햇볕이 무섭울 정도로 뜨겁게 비추고 있다. 역시 캄보디아의 낮시간은 나올게 못된다. 지나다니면서 눈여겨 봤던 숙소 앞의 그 식당으로 바로 향한다.

문을 닫았다. 아 하필 먹으려고 하니 문을 닫았다냐. 그 옆에 좀 더 허름한 식당이 하나 보인다. 여기 가볼까? 슬쩍 보니 미얀마에서처럼 반찬을 골라 먹는 시스템인가 보다.


들어가서 가격을 물어보니 밥과 반찬 하나에 3000 릴이란다. 희한하게 지금 가지고 있는 캄보디아 돈과 딱 일치한다. 교통비가 어찌 될지 모르니 그냥 이걸 먹기로 한다. 반찬은 콩과 고기가 섞여 있는 듯한 것을 고른다. 무슨 고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기는 어쨌든 언제나 진리다.



자리에 앉아서 한입 먹어보니 반찬이 꽤나 짜다. 잘됐다. 반찬 양이 좀 적어 보여서 좀 모자라지 않을까 싶었는데 적당하겠다. 앞에 보니 작은 고추도 있어서 조금씩 같이 베어 먹으니 매콤한 것이 먹을만하다. 그러고 보니 캄보디아에서는 현지 식당에 처음 왔다.

지닌 돈이 적으니 물도 사기가 참 애매하다. 옆에 다른 테이블에서 하는걸 보니 식당에서 물과 얼음을 제공하고 자유롭게 떠서 마시면 되는 거 같다. 태국과 비슷한 시스템이다. 나도 가서 한잔 떠 마신다. 사실 현지 물을 마시면 장트러블이 무조건 생기긴 하지만, 어차피 안마실 수가 없다. 아무리 자기가 자제한다 해도 얼음이 그물로 만들어져 있고, 생맥주, 아이스크림 현지 물이 들어간 음식이 대부분이기에 결국 피할 수 없다. 그냥 포기하고 몸이 빨리 적응하기를 바라는 게 상책이다.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몸은 적응한 게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1000원에 점심 한 끼를 잘 해결했다. 배가 부르진 않지만 오늘 이동을 위한 육체의 연료는 충분히 채웠다. 식사값으로 3000릴을 드리고 밖으로 나온다.

오늘따라 그 많던 오토바이 택시가 말을 아무도 안 건다. 이거 말을 걸어야 흥정이라도 할 텐데 도리가 없다. 햇볕은 너무 뜨겁고 점심은 생각보다 싸게 해결해서 생각보다 돈의 여유가 생겼다. 이 더위에 헤매느니 그냥 4달러로 가기로 마음 먹고 숙소로 돌아온다.

3시 20분 비행기니 1시 40분까지 오토바이를 불러달라고 하고 체크인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그동안 도미토리에 있어도 되냐고 묻는다. 괜찮단다. 다행이다. 이 날씨에 에어컨 방에 있는 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일이다.

도미토리에 누워서 어제 글을  업로드하며 오늘 숙소를 검색해본다. 노트4가 있을 때는 좀 싸다 싶으면 그냥 온라인으로 예약을 해버렸는데 지금은 안되니 일단 무조건 가서 한번 봐야 한다. 그렇다고 막무가네로 가서 살펴보면 고생만 한다. 일단 한 군데 주소라도 미리 적어두고 가서 그 근처를 돈다고 생각해야 이동할 때 헷갈리지 않는다. 헌데 이 7만원짜리 후진 핸드폰이 어느 순간부터 화면캡쳐가 안된다. 어쩔 수 없이 옛날 스타일로 볼펜을 이용하여 공책에 손으로 다 적는다.

도미토리에서 쉬고 있는데 오늘 처음 보는 룸메이트 아저씨가 화장실로 가더니 온 방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진다. 현지 물을 먹으면 저런 소리가 나지. 한참 동안 이어지던 천둥소리는 상쾌한 얼굴의 아저씨가 나오면서 멈춘다. 질 수 없지. 나도 화장실에 들어가서 같은 천둥소리를 선사한다. 한국 여성분이 가시고 나니 부끄러움이 다시 사라졌다.


1시 반이 되어서 내려온다. 오토바이 기사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헌데 오토바이가 아니라 뚝뚝이란다. 어차피 공항을 갈 일이 있는 뚝뚝 기사님이 그냥 오토바이와 같은 가격으로 데려다 준단다. 아 더운데 잘됐다. 4달러에 지붕이 있는 뚝뚝이면 나쁘지 않다. 이래저래 일이 잘 풀린다.


여성 스태프, 그리고 조금은 친해졌던 남자스태프 녹과 작별인사를 하고 나온다. 씨엠립에서 당황하고 헤맬 때 시원하고 저렴한 지붕을 제공해준 이 숙소에 감사 인사를 마음 속으로 전한다. 스태프도 친절하고, 시설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하룻밤에 4달러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저렴하게 묵은 숙소이다.


뚝뚝에 올라탄다. 아저씨 갑자기 이 가격에 뚝뚝은 너무 저렴한 건데 더 줄 수 없냐는 식으로 얘기하길래 그냥 못 알아들은 척 무시해버린다. 이곳의 좋은 인상은 뚝뚝 기사들이 모두 망친다.



캄보디아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으며 20분 정도 이동하여 공항에 도착한다. 기사님께 미리 챙겨놓았던 4달러를 드리고 공항으로 들어간다. 의외로 그 얼마 안되는 돈에서 1달러를 남겼다. 이걸로 뭘 살 수 있을까? 사실 달라는 남겨놓으면 어떻게든 사용이 되니 굳이 써야 하는건 아니다.


티켓팅을 간단히 끝내고 출국 수속을 하러 간다. 어느 나라나 출국 수속하는 직원들이 원래 좀 무뚝뚝한 편이지만 캄보디아는 특히나 더 심하다. 여권을 제출하니 출국세관 종이에 비행기 편이 안 쓰여있다며 쓰라고 돌려주기에 혹시 볼펜이 있냐고 묻는다. 원래 아예 뒤로 가서 다시 쓰는게 맞는건 알지만 지금은 내 뒤에 아무도 없고 한가한 상황이다. 아저씨 나를 물끄러미 몇분동안 째려보더니 옆에 있는 볼펜을 아무말 없이 툭 던져준다. 기분이 확 상한다. 다 쓴 후에 나도 확 던져줄까 하다가 그냥 돌려준다.

캄보디아는 양면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정확히는 캄보디아가 아닌 씨엠립이라고 해야 맞겠다. 나는 캄보디아를 간 게 아니라 씨엠립을 온 거니까. 앙코르왓이라는 걸출한 유적지로 인하여 현지인들 중 한 부류는 관광객들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최대한 빨대를 제대로 꼽아야 하는 대상으로 보지만 또 한 쪽에서는 한 없이 순수하면서 친절한 현지 주민들도 있다. 일반 관광을 와서는 사실 이 순수한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관광객을 무시하는 불친절만 느껴질 뿐이다. 뚝뚝 기사들의 모습과 공항에서 직원들의 모습에 있던 정마저 떨어질 지경이다. 어제 하루가 없었다면 나에게도 이곳은 최악의 여행지로 기억될뻔했다. 그럼에도 다른 곳과는 다르게 캄보디아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오고 싶다. 물론 씨엠립과 앙코르왓은 빼고 말이다. 이 나라를 제대로 한번 느껴보고 싶다.


시간이 되서 비행기에 오른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창가 자리에 못 앉는다. 가운데 자리에 배정을 받는데 내 왼쪽 창가 자리에는 서양인 남자가 하나 타고 있다. 이제 확률 계산은 의미 없어졌다. 뭐 어차피 처음부터 그리 의미가 있지는 않았다.


어제 약간 과음을 해서 좀 피곤했나 보다. 비행기를 타고나서는 그냥 잠이 들어버린다. 어차피 이 비행기는 1시간이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륙하면 착륙이다.









방콕에 다시 도착했다. 다른 공항은 좀 어색한데 여기 공항은 하도 와서 그런지 모든 것이 익숙하다. 입국 수속을 하며 걸어가는데, 문득 내 몰골이 참 거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객 중에서도 가장 더럽다. 생각해보니 오늘 세수도 안 했다. 옷을 한번 버리고 새로 사야 하려나. 하지만 돈을 떠나서 난 물건을 버리는걸 싫어한다. 인파 사이를 걸어가는데 바지 왼쪽 주머니 쪽에 바느질로 수선했던 곳이 또 터진다. 오늘 저녁에 또 바늘을 한번 들어야겠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다시 티켓팅을 한다. 국내선이니 키오스크를 이용해서 간단하게 처리를 한다. 그리고 다시 보딩. 환승하는 한 시간 반 터울이 촉박할 거라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여유가 많다.


또 다시 탄 비행기. 이번에는 아예 통로 자리다. 왼쪽 두 자리 모두 꽉 찼다. 에어아시아, 국내선에서는 꽤나 사람이 많이 있나 보다. 이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오늘 한 끼만 먹었고 그마저도 제대로 못 먹어서 그런지 배가 고프다. 그렇다고 공항이나 비행기에서 밥을 사먹기는 아까워서 참는다. 핫야이에 내리면 오늘 저녁은 제대로 먹어야겠다.

배가 고파서 그런가. 비행기를 타고 앉아있는데 갑자기 이 모든 것이 매우 피곤하다. 거지처럼 다니는 것도 그렇고, 배고프게 다니는 것도 그렇고, 문득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동안 괜찮더니 또 서울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왕십리에 있는 단골집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 마시고 싶다. 어제 저녁은 제대로 먹었는데 왜 이러지. 뭔가 캄보디아에서 정신과 육체가 모두 지쳐 버린 거 같다. 아니면 원래 처음 계획으로는 이번 이동이 마지막이라서 그런 걸까.

비행기를 타고 대충 결산을 해본다. 남은 돈이 361달러와 7,041바트이다. 미얀마를 떠날 때 490달러가 있었으니 캄보디아에서 129달러를 쓴 셈이다. 총 4일 있었지만 숙박은 3일인걸 감안하여 3으로 나누면 하루에 43달러를 썼다. 생각보다 많이 썼다. 이게 실제 생활비보다 비자 받는 비용, 입장료 등에서 과한 지출이 나가서 그런 거 같다.

남은 7,041바트는 이번 목적지에서 모두 써도 된다. 더 이상 태국에 돌아올 일은 없다. 아, 마지막에 방콕에서 하루 자야 하니 그것만 남겨놓자. 그러면 태국을 떠나는 22일까지 총 6박을 해야 하는 거고, 하루에 1,200바트 정도를 쓸 수 있다. 대충 하루에 35,000원 정도니 충분히 여유있다.

조금 변수는, 아까 아고다에서 이번에 최종 목적지인 꼬리뻬의 숙소를 검색하니 기본 1,000바트로 나왔다. 물론 막상 가면 더 저렴한 애들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그냥 돈을 좀 쓸까도 고민된다. 여행을 시작한지 한 달이면 좀 지칠 때도 되었다. 다시 또 베트남과 라오스를 돌려면 말 그대로 잠시의 '휴양'이 필요하지 않을까. 수영장이 있는 리조트에서 바다를 보며 수영을 하고, 조식을 먹고 칵테일을 마시며 심신을 치료하고 싶다. 꼬리뻬에 있는 4일 동안만 예산을 하루 5만 원으로 잡아볼까 싶다.

근데 지금 있는 돈을 다 쓰면 추가 돈을 어떻게 공수해야 하는지가 살짝 걱정이긴 하다. 저번 노트4를 분실하면서 카드를 정지시킬 때 인출 기능을 놔두라고 부탁하긴 했는데 될지 모르겠다. ATM기기로 시험을 해봐야 알 거 같다. 그게 아니라면 여기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송금받고 인출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

에이 모르겠다. 일단 오늘 저녁 한 끼 제대로 먹고 생각해봐야겠다. 배고플 때 하는 생각은 의미가 없다. 어서 빨리 내려서 숙소를 잡고, 내일 버스와 배 편 예약을 마친 후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다. 핫야이는 휴양지나 관광지는 아니라서 아마도 저렴하고 괜찮은 식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핫야이는 생각보다 큰 도시인가 보다. 내려서 보니 공항이 꽤나 크고 번화하다. 지방공항임에도 어찌 보면 만달레이 공항보다 큰듯한 인상을 받는다. 방콕에서는 그렇게 찾아도 없던 TrueMove 무료 심카드가 이곳에서는 바로 보인다. 심을 충전할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무료니까 하나 받아놓는다.


여기서 시내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고 들었다. 오기 전에 살짝 검색해보니 쌩따우 같은 버스를 타면 40바트로 갈 수 있다고 한다. 공항을 나가서 길을 건너면 있다고 하니 찾아봐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공항을 나선다.


비가 온다. 그것도 굉장히 많이 온다. 빠이에서 마주쳤던 스콜과 비슷한 느낌이다. 하 이거 난리 났네. 이 비를 피하며 버스를 알아본다는건 쉽지 않은 퀘스트이다. 어쩔 수 없이 급하게 택시를 알아본다. 기사가 보이길래 시내까지 얼마냐고 물어보니 300바트란다. 생각보다 비싸다. 이거 오자마자 큰 지출하게 생겼다.


일단 좀 더 알아보고자 나가보니 공식 택시 부스가 보인다. 그곳으로 가서 오늘의 행선지인 Cathay Guesthouse까지 얼마인지 물어본다. 250바트라고 대답해준다. 그래도 확실히 공식 부스가 조금이라도 저렴하고 안전하다. 하늘을 보니 이 비는 멈추지 않을 비 같기에 그럼 그냥 택시를 타겠다고 불러달라고 한다.


택시가 금방 할당되어 비를 피하며 올라탄다. 차라리 잘됐다. 잔돈이 없어서 버스를 어떻게 타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1000바트를 거스를 수 있게 되었다. 좋게 생각하자.


가는 동안 비는 한층 더 거세어진다. 꼬리뻬는 섬인데 내일 배를 타고 갈 수 있을까? 오늘에서야 비로소 지금이 우기임을 실감한다. 들어가는 것도 그렇지만 나올 때 비행기 뜨는 당일에 나오려고 했는데 하루 전에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걱정도 된다.

생각보다 꽤나 간다. 30분 정도를 가니 드디어 시내가 나온다. 핫야이는 생각보다 정말 큰 도시인가 보다. 남부 최대의 도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시내 골목 어딘가로 계속 들어가던 택시가 어느 허름한 건물 앞에 차를 세우더니 여기가 Cathay Guesthouse라고 알려준다.


뭐지? 여기 론리에도 나오고 꽤나 유명한 데로 알고 있는데 너무 허름해 보인다. 일단 기사님께 250바트를 지불하고 비를 안 맞기 위해 처마까지 달려간다. 게스트하우스는 심지어 1층도 아니다.


올라가는데 오만가지 벽보가 보인다. 자전거 대여부터 버스, 배, 스쿠터 등 관광과 관련 있는 것은 모두 여기서 취급하는 듯하다. 어디선가 이곳이 게스트하우스보다 여행사라는 생각으로 오면 괜찮다는 것을 본 것 같은데 이래서 그랬나 보다.


3층에 올라서니 허름한 곳에 스태프 한분이 있다가 나를 보고 나온다. 1인 숙박을 문의하니 말없이 고정가격이 쓰여있는 종이를 보여준다. 240바트다. 어차피 내일 오전에 떠날 거니 시설과 상관없이 꽤나 괜찮은 가격이다. 나름 유명한 곳이기에 방은 확인하지 않고 그냥 계약한다. 어차피 이 정도의 저렴한 가격이면 좋은 방은 기대하기 힘들고, 그냥 잠만 잘만하면 좋겠다.

물어보는 김에 내일 꼬리뻬까지 가는 배 편도 물어본다. 역시 조용히 종이를 보여주신다. 여기로 9시까지 버스가 오고, 버스와 배 모두 포함하여 650바트이다. 이게 비싼 건지 싼 건지 감이 잘 안 오지만 비도 많이 오는 이 상황에서 다른 곳을 돌아다니며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냥 그것도 같이 결제해버린다. 방과 교통편까지 해서 총 890바트이다. 1000바트를 내주고 110바트를 잔돈으로 돌려받는다. 잔돈은 틈이 있을 때 항상 모아놔야 한다.

열쇠를 받고 방을 보러 간다. 여기 아저씨 뭔가 친절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다. 딱 할 일만 하는 느낌이다. 여행자들을 많이 받은 느낌이 난다. 하긴 이렇게 모든 곳으로의 관광이 연결되어 있다면 거쳐지나 가는 곳으로서는 이곳도 꽤나 괜찮은 선택일 듯싶다. 론리에 언급된 이유를 알겠다.


복도에 들어서니 양옆으로 방들이 쭉 늘어서 있다. 어찌 보면 교도소 같은 느낌도 난다. 방으로 들어서서 불을 키는데 안 켜진다. 불이 안들어오나? 하나 또 걸리는 것이 도로 쪽 방이라 밤새 시끄러울까봐 걱정된다.

프런트로 다시 가서 불이 안 켜진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혹시 방을 반대편으로 옮길 수 없냐고 물어보니 그건 안된단다. 불은 문 밖에 스위치가 있으니 그걸 올리라고 얘기해주신다.


돌아와서 다시 보니 문 바깥에 전기 스위치가 보인다. 이 스위치를 올리니 불이 들어온다. 이 방은 치앙마이에서 하루 묵었던 그 방과 비슷한 느낌이 난다. 하지만 거기보다는 나은 게 허름하지만 더럽다는 생각은 안 든다. 화장실이 방에 없을 줄 알았는데 있는 것도 나름 만족스럽다. 물론 태국식 화장실에 물 내리는 것도 없이 수동이지만 그래도 있는 거와 없는 거는 다르다. 헌데 화장실에 휴지가 안 보인다.


어차피 저녁도 먹으러 가야 해서 로비로 다시 나온다. 물어보니 휴지는 별매란다. 여기 보아하니 방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대신에 모든 게 옵션이다. 와이파이도 무료가 아닌 한 시간에 얼마 이런 식이고, 휴지, 칫솔, 비누 등 수건과 이불 빼고는 모두 다 별도로 사야 한다. 조식도 여러 가지 옵션으로 판매한다. 숙소의 DLC화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워낙 싸다 보니 반발심보다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기타 서비스가 굳이 필요 없는 사람은 싸게 지낼 수 있고, 또 필요한 사람은 각종 옵션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가 가능하다. 왠지 아까 예약한 꼬리뻬로의 교통편도 비싸지 않을것 같다. 럭셔리하지는 않지만 딱 필요한 기능을 효율적으로 제공해주는 곳이 여기 아닌가 싶다. 나름 마음에 든다. 배낭여행자들이 좋아할 만한 매력이 보인다.

벌써 어언 8시다. 밥을 먹으러 가야 해서 우산을 빌리려고 하니 찾아보신 후 없단다. 아 어쩔 수 없다. 근처에 식당이 있기를 기원하며 내려간다.

태국은 우기 때 비가 자주 와서인지 모든 건물에 처마가 있다. 예전에는 봐도 막상 모르고 있었는데 비가 오니 눈에 확 들어온다. 처마 밑으로 잘 지나다니면서 건물을 한바퀴 돌아본다. 그래도 이 건물 안에 음식점 하나는 있겠지.

지나다니는데 ATM기가 눈에 들어온다. 한번 인출을 시도해볼까? 아직 돈을 뽑을 생각은 없지만 가능 여부를 알기 위하여 한번 가서 카드를 꼽고 버튼을 눌러본다. 오류가 난다. 뭐가 문제일까. 카드 정지시킬 때 현금 인출 기능은 놔두라고 했는데 그거마저 오류가 난 걸까. 일단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아니니 나중에 걱정하기로 한다.


이 건물에 중국음식점을 찾는다. 여기 택시 타고 오면서부터 느낀 건데 중국계열의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도 약간 중국 느낌이 나더니 근방에 중국 음식점만 두개를 발견한다. 안에 손님들도 다 중국계로 보인다. 남쪽 지방은 중국계의 사람들이 많이 있는 걸까.

자리에 앉으니 뭐라 하시는데 못 알아듣겠다. 이곳도 관광객이 많이 오지 않는지 영어가 잘 안 통한다. 그래도 다행히 영어메뉴판이 있어서 새우볶음밥으로 주문한다. 150바트이다. 어찌 보면 비싸지만 지금 배고픈 나에게는 식사가 비싼 건 괜찮다.


생각보다 금방 나온다. 우리가 익히 아는 중국 볶음밥의 느낌이다. 먹어보니 역시 그 맛이다. 나쁘지 않다. 같이 나온 매운 간장과 같이 먹으니 맛있다. 하지만 다 좋은데 말린 생선 같은 게 들어있고 뼈가 그대로 있어서 비린내가 좀 나고 불편하다. 그래도 워낙 배가 고팠던지라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낸다.

150바트를 잔돈으로 드리고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오는 길도 역시 처마 밑으로 슥슥 다니면서 비를 최대한 피하고 온다. 로비의 사장님은 역시나 무뚝뚝하지만 불친절하지는 않은 공허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해주신다. 

휴지와 비누를 각각 10바트와 20바트에 사장님한테 구매한다. 편의점이 보이면 심카드 충전도 할 겸 소모품도 살겸 들릴까 했는데 안 보인다. 그리고 막상 게스트하우스에서 판매하는 물건의 가격이 비싸지는 않다. 바가지 씌우는 곳은 아니다. 물도 한통을 6바트에 사서 가져온다. 요즘 수분 섭취를 제대로 안 한 듯하다. 그래서 좀 무기력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돌아와서 목욕부터 한다. 역시 뜨거운 물은 안 나온다. 근데 또 뭐 뜨거운 물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찔끔찔끔 나오는 물로 그래도 시원하게 목욕을 한다.

침대에 올라가니 삐그덕 소리와 함께 매트리스가 한쪽으로 쏠린다. 가운데로 오니 그래도 괜찮다. 이상하다. 어찌 보면 치앙마이에서의 게스트하우스보다 시설은 더 나쁜 듯 한데 왜 밉지 않을까. 오히려 이 상황이 즐거우며 약간 우울했던 기분이 풀리는 듯도 하다. 사장님의 무뚝뚝함 속에 느껴지는 미소 때문일런지...

침대에 누워 바느질을 좀 한 후 키보드를 핀다. 오늘은 이상하게 뭔가 피곤한 날이다. 물론 두 번이나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으니 육체적으로 피곤한 게 정상이지만 정신적으로도 좀 지쳤다. 그냥 다 접고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어찌 보면 딱 이럴 때 알맞게 휴양할 수 있는 섬으로 가는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스케줄을 잘 짠 건가. 일단 내일 꼬리뻬 가서 진짜 에너지 충전을 좀 하고 와야겠다. 꼬리뻬에서는 돈 쓰는 것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진짜 신나게 놀다 올 거다. 오늘은 인터넷도 안되니 책이나 보다 푹 자야겠다. 내일도 긴 하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 와중에 노여사는 자기 친구들이랑 삼겹살 먹고 있다고 자랑하며 사진을 보낸다. 아주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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