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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Jul 30.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27

Hat Yai, Thailand to Ko Lipe, Thailand

이제 나의 잠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저녁과 새벽 내내 이어지던 도시의 온갖 소음공해 속에서도 제대로 된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차들의 "빵빵" 소리에 간혹 깨긴 했지만 그 이후 다시 그 차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다. 한국에서는 수면제까지 고려하던 나였다는 걸 생각하면 여행이 주는 심적인 안정감은 지대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잠을 잘 자서 그런가? 아니면 어제가 일시적인 우울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과 마음이 다 상쾌하다. 어제 하루 종일 신경 쓰이게 했던 목 쪽의 담도 많이 풀렸고 술도 안 마셔서 그런지 속도 편안하다. 여기저기 모기에 물린 자국이 좀 크게 남아있지만 동남아 여행 다니면서 모기에 안 물리면 그게 이상한 거다. 모기야 물든 말든 이제 거의 신경도 안 쓴다.

사실 제일 신경이 쓰이는 건 손이다. 언젠가부터 손의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무슨 변태를 하듯이 손 전체로 증상이 퍼졌다. 예전에 습진이 조금 있었는데 그게 더 심해진 건지, 아니면 너무 타서 피부가 한번 벗겨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닌데 미관상으로 안 좋아서 계속 신경이 쓰인다. 이건 아무래도 한국으로 돌아가야 치료가 될 듯하다.

오늘은 대망의 꼬리뻬로 가는 날이다. 아침부터 살짝 마음이 들뜬다. 바다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더라. 홀로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그늘이 지는 해변의 명소를 잘 찾아서 책도 보고, 저녁에는 바닷가가 보이는 바에서 칵테일도 한잔 해야지. 오늘부터 4일은 여행이 아닌 휴양이다!

사실은 원래 꼬수린이라는 무인도 섬으로 가려고 했었다. 보호받는 국립공원이라 리조트 하나 없는, 오로지 텐트에서만 자야 하는 곳, 밤에 별이 쏟아지고 해변으로 바다거북이들이 헤엄치러 오는 곳, 나에게는 그곳이 천국으로 보였다. 하지만 4월 말부터 출입이 금지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어쩔 수 없이 꼬리뻬로 행선지를 바꿨다. 비수기이다 보니 나름 유명한 섬으로 가야 그나마 활동을 할 수 있는 껀덕지가 생긴다. 꼬수린은 나중에 노여사와 같이 가기로 합의를 봤다.

버스가 9시에 오니 시간에 꽤나 여유가 있다. 짧게 있는 동네지만 분위기 파악을 위하여 7시에 나와 산책을 한다. 그 시간에 여기 게스트하우스의 사장님은 벌써 일을 하고 계신다. 여기 새벽 1시까지 여행객을 받는 걸로 알고 있는데 참 부지런하시다.



어제 밤새 내렸던 비 때문인지 날이 시원하다 못해 약간 쌀쌀하다. 하지만 안 믿어. 조만간 다시 더워질 거잖아. 어젯밤에는 비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던 동네를 지금은 느긋하게 거닐어 본다. 물론 너무 멀리 가서 다시 숙소를 못 찾아오면 문제기 때문에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중국 식당, 머슬림 식당들이 눈에 띈다. 어제 잠시 느꼈던 바와 같이 핫야이는 다국적 도시의 느낌이 난다. 아침부터 다들 청소를 하고 부지런히 영업 준비를 하고 있다. 음식 준비하는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이따 숙소로 돌아가서 먹을까 했는데 그냥 여기서 먹을까? 일단 산책을 좀 더 해야겠다.

세븐일레븐이 보인다. 태국에서 가장 시원한 곳이 아마 세븐일레븐일 거다. 살건 이미 어제 다 샀지만 그냥 한번 들어가본다. 그러고 보니 유심은 무료로 받았지만 top up, 즉 유심충전을 아직 안 했다. 할까 말까. 그냥 안 하기로 한다. 어차피 무료로 준 20메가를 다 써도 느린 속도로 데이터 통신이 되긴 되는지라, 인터넷은 안되도 카톡은 되더라. 그 정도면 충분하다. 리조트에 와이파이는 되겠지.



돌아오는 길에 결국 유혹을 못 이기고 어떤 국수집에 자리를 잡는다. 다른 건 다 넘겼는데 앞에 사장님으로 추정되는 분이 국수를 들고 있는 사진에 넘어갔다. 우리나라에서도 무슨 무슨 할머니 집이라고 되어 있고 간판에 사진이 들어가면 이상하게 신뢰가 간다. 자기 얼굴을 걸고 할 정도의 식당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조금 앉아있으니 금방 주문한 국수가 나온다. 내 국수를 준비하는 중에도 몇 명이 테이크 아웃해서 가져가는걸 보니 그래도 어느 정도 맛집인 듯하다. 길가에 펼쳐진 자리에 앉아서 한가로운 거리를 보며 한입 떠먹어본다. 딱히 엄청난 맛은 아닌데, 국물이 깔끔하고 시원하다. 아침으로는 더할 나위없다. 국수와 함께 돼지고기, 어묵을 모두 먹은 후 국물도 남김없이 마신다. 배가 든든한 게 아주 마음에 든다.

50바트를 잔돈으로 지불하고 식당을 나온다. 벌써 8시다. 9시에 출발이니 슬슬 돌아가서 개인정비를 좀 해야겠다.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챙긴다. 물론 이동을 해야 하니, 태국 전통 화장실에서 근심을 깔끔히 해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방을 간단히 청소한다. 마음에 안 드는 곳은 그냥 나오기도 하지만 이곳은 이상하게 마음에 든다. 진정한 여행자들을 챙겨주는 허세 없는 게스트하우스라는 느낌이다. 짐을 다 챙기고 잊은 게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 이후에 리셉션으로 나온다.


아직 시간이 좀 이르다. 15바트를 주고 뜨거운 커피를 한잔 주문한다. 커피를 마시고 앉아서 잠시 글을 쓴다. 인터넷이 안되니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역시 여행에서 어느 정도의 단절은 필요하다. 앉아있는 동안에도 현지 여행자들이 계속 여기 숙소를 찾아오는 것이 뭔가 신뢰감을 더 증폭시킨다. 꼬리페로 가는 차편도 별 생각 없이 여기서 샀지만 최소한 바가지는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든다.


아직 9시가 안됐는데 버스가 도착했단다. 나의 이 꿀 같은 30분의 여유를 방해하다니. 아쉽지만 남은 커피를 원샷 한다. 이제 리뻬로 떠날 시간!

내려오니 미니버스가 하나 기다리고 있다. 역시 버스 안에는 에어컨이 빵빵하다. 출발하기를 기다리면서 아까 못 쓴 내용을 마저 쓰기 위해 키보드를 다시 편다.


9시가 넘으니 버스가 출발한다. 20분 정도를 가더니 항구가 아닌 공항에 들어선다. 적당한 장소에 주차를 시킨 후 운전수가 다른 일행을 데리고 오는지 사라진다. 공항에서 직접 꼬리뻬로 향하는 사람들인가 보다. 사실 생각해보면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비용, 숙박비 등을 고려했을 때 이렇게 바로 공항에서 떠나는 것이 오히려 이득일 거 같다. 나야 비행기 시간대가 안 맞아서 어쩔 수 없었지만 가능하다면 이런 식이 더 효율적이다. 돌아올 때는 나도 바로 공항으로 오는 것을 생각해봐야겠다.

공항에서 한 커플을 더 태우고 버스는 다시 이동한다. 전에 있던 팀도 커플이다. 섬이라 그런가. 커플들만 간다. 그래, 로맨틱하게 있기에 좋겠지. 하나도 안 부럽다. 너희가 자유를 알아? 여자친구한테 잡혀서 뭐 하나 제대로 볼 수나 있겠어? 하나도 안 부럽다...

9시에 출발한 버스는 한참을 달려 11시에 항구에 도착한다. 항구에 내리니 멀리서부터 풍겨오는 바다내음에 기분이 업된다. 일단 출발할때 게스트하우스에서 받았던 표를 배 입장권으로 교환한다.


빡빠라 항구는 생각보다 굉장히 현대적이다. 그런데 항구에 들어서는데 20바트를 입장료로 낸다. 뭔 입장료를 이리 자주 내는지 모르겠지만 달라면 줘야지 별 수 없다.


안으로 들어가서 오늘 타게 될 스피드보트에 오른다. 버스가 도착한 게 11시인데 배 출발이 11시 반이다. 게이트에 가니 이미 사람들이 배에 오르고 있다. 이거 잘못하면 놓칠뻔했다. 뭘 이리 여유 없게 스케줄을 잡는다냐. 그래도 올랐으니 됐다.


바다다! 이게 얼마만에 바다지? 작년에 제주도 갔다 온 이후 처음이니 일 년 만이다. 바다를 보면 왜 이리 기분이 좋아질까? 출렁거리는 배에 좁게 앉아서 키보드를 펴고 글을 쓰니 뭔가 새롭다. 그리고, 드디어 출발한다.


잠시 천천히 가던 배가 굉음을 내며 속도를 올린다. 그래, 그래도 명색이 스피드 보트인데 이 정도 속도는 내야 맞지. 기름 냄새와 바다 냄새가 바람에 어우러져 나에게 전달된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이 만석인 배에 홀로 온 사람은 그다지 없어 보인다. 나 같은 거지꼴을 한 배낭여행객보다는 커다란 선글라스를 끼고 온, 말 그대로 휴가를 즐기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역시나, 부럽지 않다.

잠시 눈을 감고 불어오는 바람을 느껴본다. 바다를 머금은 시원한 바람이 그동안 답답했던 가슴을 다소 뚫어준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떠올린다.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는 여행이다. 기쁜 마음으로, 즐거운 기분으로 이 순간을 즐기자. 우울했던 마음이 바다라는 치료제로 회복되는 것이 느껴진다.

한 시간을 좀 넘게 달리던 스피드보트는 어떤 한적한 섬에서 멈춘다. 여기가 꼬리뻬인가? 그러기에는 섬이 너무 작아 보이는데. 앞에서 기사님이 태국어로 한참 뭐라고 하는데 뭐라고 하는지 알 수가 있나. 옆에 독일 사람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한테 한번 물어본다. 근데 그 사람도 알리가 없다. 자기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왠지 여기가 꼬리뻬는 아닌 거 같다고 한다. 그때 영어로 한분이 여기서 10분 정도 멈추니 내려서 사진도 찍고 놀으란다.

아, 뭘 또 귀찮게끔. 사람들이 몇명 내리지만 나는 그냥 배에 남아서 밖을 쳐다본다. 아 역시 에메랄드빛 해변이 태국의 섬임을 인증한다. 그래도 귀찮다. 어차피 리뻬 가면 바로 앞에 이런 게 쫙 펼쳐져 있을 텐데 굳이 여기서 이럴 필요는 없다. 그냥 가지. 좁은데 앉아서 엉덩이도 아프구먼.


그래도 앉아만 있기 좀 그래서 서서 좀 구경을 한다. 사진을 대충 하나 찍어도 그냥 엽서용 사진이 나올 듯이 바다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아래 위 옷을 맞춰 입은 동양 커플이 바다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내가 이곳에서 좀 튀듯이 저 커플도 다른 의미로 튄다. 우리는 양극단에 서 있다.


꽤나 오래 쉬더니 모두 다시 보트에 오르라고 지시한다. 사람들이 오르자 보트는 다시 물살을 가르며 우리를 목적지로 이끈다.


1시가 되니 꼬리뻬에 도착한다. 헌데 섬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 밖에 왠 외부선착장에서 내려준다. 그리고 아무 얘기가 없다. 여기서 또 어떻게 가라는 걸까. 다들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다. 사람들이 다 여기 위에 그냥 멍하니 있는 이유가 있는 건가 궁금하다.


눈치 빠르게 일단 주변을 둘러보니 반대편에서 롱케일 보트가 들어오고 나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옆에서는 50바트를 주고 사람들이 표를 사고 있다. 또 돈을 내는 것인가. 이 섬 아주 그냥 돈독이 올랐다. 그래도 여기서 수영해서 갈 수도 없으니 결국 돈을 내고 표를 산다.


1분 거리를 롱테일 보트에 올라타서 간다. 그리고 바다에 드디어 발을 담근다. 가방 두개를 짊어지고 카메라를 한손에 든 체 바닷물을 밟아본다. 한낮이라 그런지 따뜻한 물이 나를 반겨준다. 드디어 도착했다, 꼬리뻬.







이곳이 그 유명한 파타야 해변이구나. 도대체 왜 이름을 방콕에서 가까운 구정물 흐르는 그 파타야 해변하고 같이 지어가지고 몇 번이나 확인을 하게 만들었다냐. 여기는 보통 아는 그 파타야가 아닌 꼬리뻬에서 가장 큰 해변인 다른 파타야 해변이다. 이름만 같고 모든 것이 다르다.

해변을 한번 바라본다. 에메랄드 물 위에 롱테일 보트들이 쭉 들어서 있다. 배가 없으면 더 멋진 풍경이겠지만 어쩔 수 없지 뭐. 탁 트인 해변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하지만 역시 숙소를 잡기 전까지는 마음이 편할 수 없다. 이번에는 조사 없이 왔기에 이동을 많이 할 수도 있는지라 세컨드 백과 메인 백을 합체시켜서 짊어진 후 무거운 걸음을 떼 본다.


비수기라 그런지 해변 자체가 매우 한가하다. 이러면 좀 비싼데도 저렴하지 않을까? 리조트에 수영장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이곳이 많이 유명해졌다더니 화려한 리조트들이 확실히 해변가에 많이 보인다. 나름의 기대를 하며 수영장이 있는 첫 번째 리조트로 들어서 본다.


유니폼을 입은 여성 스태프분들이 반겨준다. 내가 거지 같은 몰골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역시 좋은 리조트라 그런지 친절하다. 나 무시하지 마라, 여기서는 그래도 1000바트는 숙소에 쓸 의향이 있다. 당당하게 하루에 얼마냐고 물어본다. 2500바트란다. 약간은 작아진 목소리로 비수기 할인 없냐고 괜스레 한번 물어본다. 그딴 거 없단다.


이건 예상 밖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몇 군데를 더 가본다. 수영장 있는 곳은 다 비슷하고, 없어도 시설이 좀 좋다 싶으면 1500바트는 기본이다. 비수기이지만 이미 할인한 금액이라 더 이상의 할인도 없다. 거만한 동네다.

계획 전면 수정이다. 수영장이 있으면서 1000바트면 그래도 쓸 의향이 있었지만 이건 아니다. 차라리 허름한 곳을 찾아본다. 사실 가난한 배낭여행객을 위한 저렴한 숙소는 몇 개 보이지도 않는다. 하나가 보이기에 들어가서 물어보니 650바트다. 그래도 처음으로 1000바트 밑으로 내려갔다. 좀 더 얘기를 해보니 이틀 이상 있으면 600바트로 해준단다. 숙소를 들어가서 한번 보니 꽤나 괜찮다. 어제 저녁에 잤던 데에 비하면 천국이다. 물론 여기서 제일 쌀 뿐이지, 어제 숙소에 비해서는 가격이 3배이다. 일단 킵해놓고 좀 더 가본다.


끝에 Fora Dive Resort를 발견한다. 사실 아까부터 이걸 찾고 있었다. 다이빙과 리조트를 겸한 곳인데 론리에 보니 다이빙을 할 시 숙박 할인을 한다고 쓰여 있었다. 찾아도 없더니 저 구석에 있었다. 하지만 구석이라고 바다가 더 안 좋은 것도 아니고, 밥 먹을 때 조금만 더 걸으면 그뿐이다.

들어가서 일단  다이빙부터 물어본다. 하루 3번 다이빙에 3200바트다. 예상했던 수준이라 알겠다고 한다. 조심스레 숙소를 물어본다. 아저씨, 쿨하게 다이빙한 날은 숙소 하루가 무료란다. 아니 이런 대박이. 할인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무료라니 완전 대박을 건진 느낌이다. 그럼 원래 숙박은 얼마냐고 물어보니 500바트란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다이빙을 내일 할 생각이니 내일 하루가 무료라는 건데 그럼 굳이 오늘 다른데 가서 잘 필요가 없다. 차라리 하루를 더 넣고 네고를 하는 게 현명할 듯하다. 오늘 숙박을 포함시켜서 할인을 해달라고 하니 당황하신다. 다이빙까지 합해서 3700바트인데, 쿨하게 3500바트에 하자고 질러본다.

잠시 고민하시고 여기저기 전화하시더니 그러자고 하신다. 결국 이 곳에서 하루는 공짜, 그리고 하루는 300바트에 숙소를 얻었다. 이 정도면 꽤나, 아니 엄청나게 괜찮은 딜이다. 나머지 이틀이 있긴 하지만 그건 이틀 동안 분위기를 봐서 조금 좋은 곳으로 옮길까 싶다.


방은 더러워도 상관없으나 그래도 한번 보자고 한다. 들어가보니 침대에 모기장이 있고 뒤편에는 야외식으로 변기와 샤워기가 있다. 제일 마음에 드는 건 발코니에 있는 해먹이다. 낮에 여기 누워서 책 보다 낮잠을 자면 딱이겠다. 바다도 바로 앞이라서 그냥 수영복 입고 해먹에 누워있다가 더워지면 바다로 뛰어 들어가서 수영을 하고 지치면 나와서 샤워하고 쉬면 되겠다. 옆에 화려한 리조트들과는 당연히 비교불가겠지만 혼자 있는 나에게는 아주 만족스럽다.



계약을 한다. 오랜만에 손님인지 청소를 하신다 하여 일단 나간다. 어차피 점심도 먹어야 한다. 아까 올라올 때 봤던 Walking Street로 향한다. 그곳이 이 섬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내일은 하루 종일 다이빙을 해야 하니 오늘 분위기도 살필겸 좀 돌아다닐까 싶다.



리조트가 좀 저렴해서 그런지 확실히 번화가 하고는 거리가 좀 있다. 뭐 그래 봤자 5분이다. 2시까지 점심을 안 먹어서 꽤 출출하다. 거리에 들어서서 처음 보이는 식당으로 무조건 들어선다. 인사하는 소리에 불친절이 가득하지만 이미 돌아서기에는 늦었다.


앉아서 팟타이를 시킨다. 역시 최고의 불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어딘가에 무전기로 연락을 한다. 5분 후 어디선가 팟타이가 배달돼서 온다. 첫 식사는 바보짓했다. 저 배달한 곳에 가면 더 싸고 맛있을텐데 괜히 더 비싸게 주고 식은 걸 먹게 되었다. 조금만 들어가면 더 저렴하고 괜찮을 곳이 많은 게 확실하다.


그래도 일단 먹으니 맛은 괜찮다. 하긴 허기진 상황에서는 뭐든 맛이 없겠나. 그래도 이곳에 오래 있기는 싫어서 후딱 먹고 90바트를 지불하고 나온다. 팟타이는 방콕 길거리에서 35바트면 먹는데...


길을 따라 쭉 들어가 본다. 온갖 상점들이 많지만 비수기인지라 문 닫은 곳이 많다. 개인적으론느 한가한 게 마음에 든다. 반대편에 두개의 해변이 더 있는 걸로 알고 있어서 그쪽을 향해 한번 천천히 걸어가 본다. 왠지 반대편 해변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만 같다.


중간중간에도 리조트가 보이길래 다음 숙소의 후보를 찾기 위해서 가격을 물어보니 전부 하룻밤에 1000바트가 넘는다. 여기는 비수기여도, 그리고 해변에 있지 않아도 비싸다. 이미 비싼걸 알고 왔으니 그런가 보다 하지, 모르고 왔으면 충격 먹을뻔했다.


20분을 넘게 걸어가니 Sunrise Beach가  나온다. 이름에서 암시하듯이 지금의 해 위치를 보니 여기가 파타야 해변보다는 확실히 해돋이가 잘 보일 듯하다. 내일 오전에 한번 보러 올까 싶다. 그런데 이곳은 비수기라 한가한 파타야보다도 훨씬 더 한가하다. 너무 한가한 나머지 열려 있는 식당이 안 보인다. 리조트는 그래도 한두 개 열려있다. 종업원들이 놀고 있기에 들어가서 물어보니 해변가는 1000바트, 안쪽은 800바트이다. 하지만 이곳들이 지금 있는 곳에 비해 좋은지 모르겠다. 게다가 여기 머물면 조용한 건 좋지만 연 식당이 없으니 식사도 못 하겠다. 비수기라 어차피 파타야 해변도 조용하니까 그냥 그쪽에 머무는 게 맞을 거 같다.


다시 슬슬 걸어서 돌아온다. 넘어오니 3시 반이다. 물을 하나 사들고 숙소로 온다. 조금 쉬다 4시쯤 바다를 한번 들어가야겠다. 스노클링 장비를 빌리고 싶은데 여기 사장님한테는 없단다. 아니 다이빙 전문 리조트가 물안경도 없다냐. 뭐 어차피 오전부터 저녁까지, 무조건 하루 단위로 빌리는 거니 그냥 오늘은 수영만 하고 내일 모레 제대로 들어가도 괜찮겠다.


어제 글을 올려볼까 하는데 여기 와이파이 속도가 미얀마 뺨친다. 사진을 서른 장 넣어서 이미 글은 다 준비해놨는데 망했다. 그냥 사진을 빼고 올릴까 나중에 올릴까 고민된다. 뭐 땡기는 데로 하자.


일단 숙소로 돌아가서 해먹을 펼친다. 내 첫 해먹 경험이다. 이거 편하려나. 조심스레 한 다리를 올리고 다른 다리를 해먹에 걸쳐본다. 생각보다 안정적이다. 머리를 편하게 뒤로 기대어본다. 이거 은근히 편한데?


바다와 근거리라서 파도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바다소리를 들으며 책을 펼친다. 펄벅의 Earth Trilogy를 다시 연다. 이 책은 사실 별 내용이 아닌데도 은근히 잘 읽힌다. 나름 흥미롭다. 근대기 중국 농부의 일상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다고나 할까. 나긋나긋해진 몸을 뉘인체 독서를 즐긴다.

이게 한량 생활이구나. 이러고 하루 종일 있을 수도 있겠다. 중간에 손가락만한 모기가 간혹 보이긴 하지만 이따 모기 억제제를 바르면 괜찮을 거다.

책에 빠져 읽다 보니 어느새 5시가 되어간다. 그래도 해지기 전에 수영은 해야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슬리퍼만 신고 바다로 향한다. 여기는 사람이 워낙 없는지라 왠지 도둑도 없을 거 같다. 있다 하더라도 어차피 가방을 바다까지 들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냥 없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해변에 신발을 벗어서 가지런히 놓아두고 바다로 들어간다. 얼마만에 느끼는 바닷물일까? 언제가 마지막인지 잘 기억도 안 난다. 뭐 사실은 아까 이 섬에 올 때 바다에 닿았으니 따지고 보면 몇 시간 만이긴 하다.


바닷물이 투명한 파란색이다. 얕은 바다임에도 고기들이 꽤나 보인다. 이런 백사장이 쫙 펼쳐져 있음 좋겠지만 조금 안으로 걸어가 보니 안타깝게도 암초 같은 것이 꽤나 많다. 암초가 없는 곳의 모래는 괜찮은데 이놈들이 전면을 막고 있어서 멀리 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재주껏 피하며 앞으로 나가 본다.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서 뒤를 돌아본다. 어? 너는 뭐니? 개 한 마리가 수영하면서 날 쫓아오고 있다. 이 무슨 특이한 상황이냐. 나를 보고 온 거 맞나? 잠시 기다려보니 내 앞까지 수영해 와서는 근처 암초에 올라서서 나를 쳐다본다. 맞구나.

36년 평생 가장 신기한 경험 1순위에 들겠다. 가까이 가서 머리와 몸을 만져준다. 어차피 목 빼고는 바다에 다 들어가 있으니 손으로 털을 씻겨도 준다. 가만히 즐기고 앉아있는다. 얌전한 놈일세. 이제 다시 앞으로 가볼까? 암초를 피해 미로 찾듯이 앞으로 향해가니 얘도 뒤에서 나를 쫓아온다.

내가 멈추고 길을 찾고 있으니까 이번에는 얘가 길을 개척한다. 앞을 가면서도 한번씩 뒤를 돌아보며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한다. 개들은 참 영특하다. 내가 얘랑 놀아주는 건지 얘가 심심해서 나랑 놀아주는 건지 헷갈리지만 개와 함께 수영하는 이 기분은 좋다.

근데 여기 진짜 암초가 수영에 너무 방해된다. 앞을 크게 가로막은 암초가 있고 돌아갈 방법이 없기에 이번에는 아예 그 위에 올라가서 넘어가는걸 시도한다. 개한테도 올라오라고 손짓하니 올라온다. 근데 뭔가 위에 있는 게 불안한가 보다. 나를 잠시 스윽 쳐다보더니 획 고개를 돌리고 나를 버린체 뭍으로 수영하며 돌아간다. 아니 왜. "가지 마~"라며 울부짖지만 한번 떠난 개는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혼자다. 근데 뭔가 개도 떠나고 암초도 막혀 있고 그러니 김이 샌다. 잠시 무릎밖에 안 오는 바다에 앉아있다가 돌아선다. 돌아가는 길도 어렵다. 중간에 성게도 크지막한 놈을 두어 마리 마주친다. 여기 만만한 해수욕장이 아니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참 평온해 보였는데 안으로 들어오니 전혀 평화롭지 않다.

방으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면서 바지와 속옷도 빨래를 해버린다. 어차피 여기서는 그냥 수영복을 입고 다닐 예정이라 바지는 입을 일이 없을 거다. 언제든지 바다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어야지!


다 씻었는데도 시간이 아직 일러서 저녁 먹기 전에 다시 또 베란다로 나온다. 수영복이 덜 말라서 해먹에 오르지는 않고 배게를 배고 대나무 바닥에 드러눕는다. 누워서 책을 다시 펼치니 이곳이 바로 천국이다. 바다라 그런지 하나도 덥지 않다.


진정한 휴식을 즐기고 있는데 여기 리셉션에 있는 친구가 갑자기 로비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뭐지? 가보니 내일 다이빙을 같이 떠날 강사가 와있다. 미모의 여자 강사다. 서양인 남성 하나랑 얘기 중인데 누가 봐도 남자가 작업 중인 것이 보인다. 그래, 많이들 연애하거라. 나는 괜찮다.

여자 강사는 서양인으로 보였는데 물어보니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람이고 작업남은 영국 사람이다. 남자도 내일 같이 다이빙을 가고 나처럼 여기서 머물고 있다. 여자 강사는 친절하게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남자 놈의 자식은 나한테 관심을 전혀 안 보인다. 나도 너 관심 없어요.

다이빙하기 전에 작성하는 '죽어도 괜찮아요' 서약서를 쓰다 보니 내가 한 마지막 다이빙이 2012년도였다는 걸 깨닫는다. 그게 벌써 3년이나 됐나. 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내일 가는 포인트 중 한곳은 해류가 심해서 가만히 물 흐름에 몸을 맡긴 체 흘러가는 것도 있다고 한다. 재미는 있을 거 같은데 실력이 돌아올지 걱정된다.

강사한테 이런 걱정을 얘기하니, 그리 오래됐으면 500바트를 추가하고 짧은 재교육 프로그램을 받으라고 한다. 10분 동안 받는데 그 정도면 보통 충분하단다. 500바트,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돈이긴 한데 그래도 목숨과 연관 있는 문제니 받는 걸로 하지 싶다.

남자 놈은 아직도 끊임없이 작업을 걸기에 열심히 해보라고 마음속으로 응원하며 자리를 비켜준다. 여자 강사는 누가 봐도 직업정신으로 친절한 건데 저놈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떠나가는데 여강사가 이따 6시 이후에 워킹 스트리트에 있는 샵으로 와서 장비 체크를 한번 하라고 한다.

다시 나의 보금자리인 해먹으로 돌아간다. 앞으로 이곳에서의 대부분은 해먹에서 보내지 않을까 싶다. 쉬로 온 섬에서는 파도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여기만큼 좋은 곳이 없다. 책 보다 자고, 자다 책 보고, 배고프면 밥 먹으러 가는 게 휴양이지 별거 있나. 호화로운 리조트 하나도 안 부럽다. 대신 이번에는 모기 억제제를 바르고 눕는다.

누워있는데 개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들어보니 아까 같이 수영했던 그 개가 날 찾아왔다. 얘 진짜 뭐냐. 내가 슬쩍 손짓하니 바로 나한테 달려온다. 그러더니 내 방갈로 위에 올라와서 해먹 밑에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이놈은 한쪽 귀만 접혀 있어서 알아보기가 쉽다. 근데 너 진짜 뭐냐. 그렇게 한 30분 있더니 또 갑자기 일어나서는 어딘가로 간다.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 건가? 이 바람둥이야! 여하튼 여기 있는 동안 얘 때문에 심심하지는 않겠다.  


7시쯤 되니 배가 살살 고파온다. 밥 먹으러 가야지. 작은 가방만 챙겨 들고 해변을 걸어 Walking Street로 향한다. 중간에 해변에 있는 호화로운 리조트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보니 거의 비어 있다. 해변의 식당 중 하나에서 먹어볼까 했는데 저 상황을 보니 왠지 나 같은 거지가 먹을 곳은 아닌가 보다.


Walking Street로 들어서니 아까 낮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카오산도 그러더니 여기도 '낮져밤이'이다. 웬만한 가게는 사람들이 꽉 차 있고, 거리 자체가 무척 활기차다. 일단은 아까 여자 강사가 오라고 했던 초입에 있는 다이빙 샵을 들린다. 장비부터 체크해야 한다.


아까 미녀 강사가 날 반겨준다. 이분 좀 너무 친절하다. 영업을 잘하시는 거겠지? 괜한 오해하지 말자. 거울 보고 네 꼬락서니를 봐라. 어제 이곳에 비가 엄청 오면서 물이 넘쳤다며 부끄러워하신다. 뭐 나야 아무 상관없다.


둘이서 장비를 고르고, 옷과 오리발까지 챙겨서 내 이름을 써놓는다. 장비들아, 내일 나를 잘 지켜다오. 다이빙을 두 번 할지 세 번 할지는 내일 현장에서 정하면 된단다. 어차피 모두 9시에 출발해서 4시에 귀가하는 거고 다이빙을 안 하면 스노클링 장비를 무료로 준다니 그냥 스노클링 하면서 놀아도 된다. 은근 괜찮다.

PADI 다이빙 자격증 체크를 하는데 사진을 보더니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거 나 맞아요. 자꾸 아닌 거 같다고 농담한다. 이거 너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미소를 지은체 친근한 농담을 하니 사람들이 오해하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김태희보다 아름다운 노여사가 있기에 벼룩의 간만큼도 흔들리지 않는다. 아, 노여사 요즘 이 여행기 안 본다고 했던가...?

미녀강사와 인사를 하고 이제는 식당을 찾아 나선다. 꼬창에서 예전에 본것처럼 얼음 위에 해산물을 올리고 파는 곳이 많다. 이곳의 시세를 보고 밥은 어차피 비싸게 먹을걸 각오하고 있다. 해산물 가격을 물어보니 게가 3000바트, 오징어는 1000바트, 블라블라... 그래 내가 먹을 건 아니구나. 비싸서 그런거 아니다. 1인분씩 안 팔아서 안 먹는 거다. 그럼그럼. 치사하게 왜 2인분씩만 팔고 난리야.


좀 돌아다니다가 현지인들이 많이 보이는 태국 음식점으로 들어선다. 비수기라 그런 건지 외국인들에 비해 태국 관광객도 꽤나 많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반은 차지하는 듯하다. 자리에 앉아서 메뉴판을 보니 모든 음식이 기본으로 100바트는 넘어간다. 그건 뭐 어쩔 수 없다.


웨이터의 추천을 받아 돼지 카레와 밥, 그리고 망고 주스를 주문한다. 키보드를 펼치고 글을 쓰고 있는데 익숙한 말소리가 들려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니 한국말이다. 슬쩍 보니 한국인 여성 두 명이다. 너무 멀쩡한 모습을 보니 배낭여행객은 아니고 여기만 온 휴양객인가 보다. 죽은 듯이 있어야겠다.


음식이 나와서 먹어보니 좀 느끼하다. 코코넛 오일로 만든 음식은 맛이 있긴 한데 좀 느끼하다. 매운 거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이게 뭐냐. 고춧가루를 달라고 해서 팍팍 뿌려 먹는다. 태국 음식 맵다더니 난 막상 내 입맛에 맞을 정도로 매운 것을 못 봤다. 그래도 허기가 좀 졌던지라 남기는 거 없이 싹 다 비운다.

220바트, 한끼 식사치고는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이 섬에서는 그냥 모든 단위가 올라가는구나. 망고 주스를 괜히 먹었나? 여기서는 돈을 아끼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지만 전반적으로 다 비싸다 보니 그래도 약간은 의식적으로 절약할 필요성이 느껴진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돌아오는 길에 코코넛 아이스크림도 40바트에 사먹는다. 근데 계산하려고 보는 순간 지갑에서 여권이 안 보인다. 순간 머리가 멍해지지만 아까 다이빙 샵에서 자격증 꺼낸다고 꺼낸 생각이 난다. 거기 있으면 안전하겠지. 큰 걱정 안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가본다.


샵에 가보니 강사가 다른 손님과 대화중이다. 다른 현지 스태프도 있어서 여권 혹시 없었냐니까 못 봤단다. 강사를 보니 그 손님하고 얘기하느라 날 본 척도 안 한다. 잠시 양해를 구하고 강사에게 여권을 못 봤냐고 물어보니 못 봤다고 짧게 대답하고 바로 다시 기존 손님에게 집중한다. 어 내 여권은 어디간거지? 순간 당황한다. 여권을 잃어버리는 건 중대사다. 핸드폰 잃어버리는 것과는 다르다. 일단 당황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가방의 물건을 다 꺼내어본다.

여권은 가방에 있었다. 아까 꺼내고 항상 넣어 놓는 곳에 안 넣어놔서 아까 못 봤나 보다. 아까 여기 샵에서 미녀 강사와 얘기한 후이다. 그깟 미인계에 당해서 원래 넣는 곳에도 넣지 않다니. 게다가 지금 보니 역시 그 미인계는 아무에게나 쓰는 거였다. 쳇.

나갈 때까지도 강사는 나와 눈도 안 마주친다. 근데 이건 사실 뭐라 할게 없는 게 그만큼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거다. 눈앞에 고객에게 집중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이 강사는 정말 앞에 사람한테 집중을 한다.


해변으로 다시 나오니 밤바다가 드넓게 펼쳐져있다. 낮과는 다른 바다의 모습에 잠시 말을 잃고 넋 놓아 쳐다본다. 별이 하늘에만 떠있는 게 아니라 수평선부터 이어지는 것이 묘하게 아름답다. 아직 가게들이 불을 켜 놓아서 그리 어둡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별은 쏟아질 듯하다.


한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쭈욱 걸어간다. 중간에 많은 바들이 한잔을 유혹하지만 내일 다이빙이라 스스로를 자제시킨다. 내일부터 마셔도 충분하다.

숙소 앞의 해변까지 걸어와서 별을 사진에 담아보려 노력한다. 노출을 5초로 두고 타이머를 설정하여 아까 먹은 아이스크림 통 위에 얹어놓는다. 타이머를 하면 손에 떨림을 방지할 수 있어서 긴 노출에 적합하다.


열심히 집중해서 찍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누가 나를 탁 친다. 누구지? 한쪽 귀만 접힌, 아까 그 개다. 야 너 진짜 뭐냐. 이놈 전생에 내 부인이라도 됐나? 또 어찌 알고 나를 찾아왔지? 황당해서 쳐다보니 자연스럽게 내 옆에 털썩 앉아버린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털썩 주저앉는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같이 밤바다를 지켜본다. 아무래도 너 이름 하나 지어줘야겠다. 뭐라고 부를까?

갑자기 얘가 귀를 쫑긋 하더니 일어난다. 멀리서 사람들이 뭔가 음식을 들고 오고 있다. 엄청난 속도로 꼬리를 흔들더니 그들을 따라간다. 하지만 어차피 먹이를 얻기는 힘들다. 실패하니 또 내 옆으로 와서 앉는다. 야 이러니 우리 거지 패밀리 같잖아. 그래 너의 이름은 이제부터 걸견이다. GulGyun!

걸견이 뭘 원하는지 자꾸 앞발을 내 무릎 위에 얹어놓는다. 먹을걸 달라는 말이겠지? 미안하지만 지금은 없다. 내일부터는 소시지 한두개를 들고 다녀야겠다. 그래도 이곳에서 같이 추억을 만들어주니 일용할 양식이라도 제공해야겠지. 잠깐, 이것도 얘 나름의 생존 전략 일려나.

이놈 얼마나 더러운지 옆에서 아주 그냥 털을 뽑아내듯이 입으로 씹어댄다. 아까 같이 바다에서 목욕했잖아. 봐서 내일 한번 더 데리고 가서 씻겨야겠다. 더러운 놈. 깨끗한 나는 상종 못하겠구먼. 걸견은 또 어디론가 사라지기에 나도 그만 일어나서 속소로 돌어간다.


날씨도 덥고 약간 땀도 나서 자기 전에 퀵하게 샤워를 한번 한다. 근데 여기 수돗물이 투명하지가 않다. 섬이라 물이 귀하다더니 빗물 같은 종류의 정상적이지 않은 물을 사용하나보다. 뭐 4일 동안 이물로 씻는다고 죽지는 않겠지. 대신 이를 닦고 헹굴 때는 마지막에 식수로 한번 입안을 씻어낸다. 나는 깨끗하니까.

이제 드디어 모기장을 재끼고 침대로 들어온다. 다행히 모기장안에는 모기가 안 보인다. 홈매트를 안에까지 연결은 해놨는데 굳이 킬 필요가 없을 듯해서 그냥 놔둔다. 단, 새벽에 혹시 이머전시 상황을 대비하여 홈매트 총알도 하나 준비해서 침대 옆에 놔둔다.


꼬리뻬로 와서 마음의 평화를 다시 찾은 듯 하다. 어제의 불안함과 조바심은 사라졌다. 이곳이 비싼 동네인건 맞지만 나름 숙소도 저렴하게 찾았듯이 잘 찾아보면 나에게 맞는 공간을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돈을 충분히 쓰면서 휴양을 하는 것도 좋지만 없으면 없는 데로 휴양하는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니다. 더구나 이번 여행에서 내 유일한 사치인 다이빙은 정말 기대가 된다. 3년 만에 다이빙, 또 어떤 멋진 추억들을 내게 만들어줄까? 설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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