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I Aug 13.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41

Nong Khiaw to Muang Ngoi Neua, Laos

밤새 모기와의 전쟁을 치렀다. 날씨가 선선해서 모기가 없을 줄 알았더니 이놈들 병법을 쓸 줄 아는 놈들이었다. 잠들 때까지는 한 마리도 안 나오며 기만전술을 쓰더니 12시가 넘어가면서 복병들의 게릴라전이 시작되었다.

일단 화생방으로 응전해본다. 갑작스러운 침공에 피해를 입지만 당황하지 않고 홈매트를 꺼내 연결한다. 적절한 응대에 공격이 약해지지만 승리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일어나 창문을 닫아서 보급을 끊고 추가 증원을 막는다. 마지막으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며 공성전을 준비한다.

대규모 공격은 사라지지만 얼마 안남은 겔리라들의 간헐적인 공격은 계속된다. 어쩔 수 없다. 국지전은 무시하며 전투는 지더라도 전쟁을 승리하려 한다. 그 말인 즉슨, 결국 물리는 걸 무시하면서 그냥 잔다.

모기를 하도 물리다 보니 몸이 적응을 한 건지 이제는 물려도 가려움증이 몇 시간이면 가라앉는다. 자고 일어나서 몸 상태를 체크해보니 물린 곳이 꽤 있긴 하지만 크게 간지럽지는 않다. 피부색에 이어 내성마저 현지화되어 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밀렸던 이틀 전 여행기부터 3G로 올린다. 시원하게 한방에 올라간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무제한 패키지를 살걸 하는 후회도 든다. 베트남에 넘어가서는 무제한 데이터를 심각하게 고민해봐야겠다.

오늘 다리 건너 안쪽으로 옮길 계획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마음이 흔들린다. 이 동네가 객관적으로 나쁘지 않은 건 확실하지만 이상하게 정이 잘 안 간다. 아마도 여기 사람들의 불친절 때문이겠지. 이 동네를 돌아다니면 내가 불청객이라는 느낌이 너무 확연하게 든다. 그들의 눈을 보고 있으면 내가 오지 말아야 할 곳을 왔다는 느낌이 든다.

어쩔까. 잠시 해먹에 누워서 강을 바라보며 생각해본다. 아, 이 뷰는 정말 아쉽다. 므앙응오이에도 이런 뷰를 가진 방갈로를 또 찾을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이번 이동이 라오스에서는 제대로 된 마지막 이동일 거 같다. 이 이후에는 베트남이다.

라오스가 싫은 건 아닌데 이상하게 계속 머물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정을 줄만한 곳을 못 찾아서 그런 거겠지? 방비엥이 좋긴 했지만 정을 준 곳은 아니었다. 비자 기간이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지만 므앙응오이에서 마저 마음의 안정을 못 찾는다면 그대로 베트남으로 넘어갈까 싶다. 무료 비자인데 굳이 15일을 다 채워야 하는 건 아니다.

일단 오늘은 이 동네를 벗어나기로 마음 먹는다. 내키지 않는데 굳이 있을 이유는 없다. 떠나려면 오전 11시 배를 타야 하니 조금 쉬다가 9시 넘어서 브런치를 먹고 바로 선착장으로 가야겠다.

해먹에 누워서 농키아우의 경치를 마지막으로 즐겨본다. 다리 건너 좋은 숙소들도 많지만 그 어디도 외딴 곳에 동떨어져있는 이 방갈로 만큼 경치가 좋지는 않았다. 주변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로 고요한 것이 무서울 정도지만 그렇기 때문에 편안하기도 하다. 만사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법이고, 장점은 그 단점을 감수할 수 있을 때 의미를 가진다.

9시가 되자 짐을 싼 후 어제에 이어 또 한번 이동을 준비한다. 이번 이동이 끝나면 한동안은 쉬었으면 싶다. 최근에 이상하게 이동이 너무 잦았다.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여기 방갈로는 바닥에서 높게 나무로 올려서 그 위에 집을 지었다. 그래서 바닥 틈새를 보면 낭떠러지가 보인다. 그렇다는 얘기는 무너지면 즉사라는 거다. 안전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곳이었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었던 곳이었다. 이곳 베란다에서 해먹에 누워 쉬던 순간은 그래도 잊지 못할 거다.

가방을 들고 강가를 걸어 부두로 나온다. 어제 밤에는 그리 멀어보이더니 환한 지금은 또 금방이다. 하지만 환하도 해도 거리에 정말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기에 걷다 보면 살짝 으시시한 기운이 느껴진다.

원래는 어제 점심 먹었던 곳에 가서 배시간까지 시간을 때우려 했는데 부두 바로 앞에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Khao Soy라고 앞에 써져 있는 게 내 눈길을 잡는다. 라오스 전통 음식인 저 육개장 같은 국수를 한번 먹어보고 싶었지만 어쩌다 보니 아직 못 먹었다.

딸과 함께 누워서 놀던 사장님이 나를 보더니 벌떡 일어나서 주문을 받는다. 카오소이와 아이스커피를 한잔 주문한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키보드를 핀다.

휴지가 없어서 옆 테이블에서 가지고 오니 보고 있던 아저씨가 딸을 시켜서 휴지를 건네준다. 딸의 표정이 매우 해맑다. 그냥 하루 더 있다 갈까? 딸의 순수한 표정을 보니 또 갈등이 온다. 여행자의 마음은 정말 갈대 같다. 아니야, 그래도 가자. 한번 떠나기로 한 곳은 떠나는게 맞다..

라오스의 육개장, 카오소이를 드디어 맛본다. 생김새도 육개장과 비슷하더니 맛도 약간 비슷한 부분이 있다. 라오스에도 된장, 고추장과 비슷한 양념이 있으려나. 왜 그런 장맛이 느껴지는걸까. 언제나 그렇듯이 그릇 바닥까지 긁어먹는다. 내가 지금 먹은 이 국수가 아침인지 점심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주문한 라오스식 커피를 마시며 글을 마저 쓴다. 라오스의 커피는 굉장히 찐하다. 한입 마시면 카페인이 몸에 전달되는 것이 바로 느껴진다. 밥을 먹고 글을 다 썼음에도 아직 10시 반이 안됐다. 이제 쉬면서 배시간을 기다리면 된다.

시간이 남아서 노여사와 채팅하면서 콴시폭포에서 애들하고 찍은 기념사진을 보내준다. 보더니 직언을 한마디 한다. "못 생겼어." 네 남친 못 생겨서 미안하다. 근데 내가 봐도 한국인 관광객 4명과 가이드 1명 같다. 한국 가면 다시 예전의 그 훈남으로 돌아오려나. 돌아가도 이제는 훈남이 아니려나.

슬슬 시간이 되서 식사값을 지불하고 배를 타러 가본다. 매표소 쪽으로 가니 이동하려는 서양 여행자들이 많이 보인다. 25,000킵을 내고 므앙응오이누아로 가는 편도 티켓을 끊는다. 내 여행은 언제나 직진이다. 왕복은 없다. 빌어먹을 에어아시아 때문에 8번을 간 돈무앙 공항을 제외하고.

표를 들고 선착장으로 향한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올라오는 두 명이 한국말을 한다. 방비엥에서는 워낙 한국인이 만나 우연히 한국인을 만나도 아무 감흥이 없었지만 여기서는 다르다. 반갑게 인사를 먼저 건넨다.

청년 두명인데 이들도 한국인을 오랜만에 만난단다. 분위기나 행색을 보아하니 딱 장기 여행자다. 물어보니 여행 떠난지 대략 3주 정도 지났고 한 친구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고 다른 친구는 여기서 베트남으로 넘어간단다. 두번째 친구는 나랑 일정이 비슷하다. 근데 왜 북쪽에서 다시 내려온 거지? 루앙프라방이랑 방비엥은 이미 다 봤다는 아이에게 왜 돌아왔냐고 물으니 베트남의 하노이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루앙프라방으로 다시 내려갈 계획이란다. 왜?

내가 여기서 Muang Kuai로 가는 배가 있고 거기서 바로 베트남으로 넘어가는 방법이 있다고 하니 깜짝 놀랜다. 영어가 부족하다더니 아마 정보를 못 들었나 보다. 이분은 내가 지금 가려는 무앙응오이누아에서 오는 길이다. 내가 자세히 설명을 하니 이분, 혼돈이 오셨다. 여기서 원래대로 루앙프라방으로 갈지, 아니면 다시 배를 타고 불쪽으로 갈지 헷갈려하는 듯하다. 영어를 못해서 여행에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단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나와 합류하고 싶어하는 듯 해서, 나는 일행은 안 만들지만 이동은 같이 해도 괜찮다고 미리 얘기를 해놓는다. 일행을 안 만든다고 못 박는 게 조금 정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일행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다. 여행에서는 이기적이어야 한다.

어쩔지 당황하시고 결정을 못 내리고 있기에 난 므앙응오이에서 오래 있을 예정이니 천천히 생각해보고 같이 베트남으로 넘어가고 싶으면 연락하라고 한다. 카톡을 등록하려는데 난 아직도 계정 연결이 안되어서 아이디로 등록을 못하고 그 분이 내 QR코드를 찍어가시게 해드린다.

나도 이들에게서 정보를 얻고자 므앙응오이누아에 대한 몇 가지를 물어본다. 그곳에서 환전이 되는지, 그리고 그냥 속편 하게 3G를 사용하기로 했으니 데이터 충전도 가능한지 묻는다. 데이터 충전은 안되고, 환전은 되긴 하는데 7,500킵의 환율로 해준단다. 루앙프라방에서 8,100킵에 했으니 생각보다 차이가 꽤 크다.

이런, 급하게 인사를 하고 서둘러 데이터 구매와 환전을 하기 위해 나선다. 가는 길에 데이터는 5만킵을 내고 1만킵짜리 5장을 산다. 환전을 하기 위해 급하게 삼거리까지 가보니 은행이 문닫았다. 아 오늘 일요일이지!

배는 11시에 떠나는데 벌써 10시 50분이다. 환전이 안 되는 건 아니고 환율이 안 좋은 거니 그냥 들어가기로 한다. 배를 타러 다시 급하게 오니 이분들 떠나고 있다. 멀리서 손을 흔들어준다. 저 분 중 하나는 인연이 되면 같이 베트남으로 넘어갈지도 모르겠다. 일정이 안 맞아도 연락이 오면 최대한 도와드려야겠다. 여행자들끼리 나누는 정보는 언제나 소중하다.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은 거다.

배를 타러 가니 사람이 이미 많이 올라타있다. 다행히 아직 출발은 안 했다. 배를 타기 위해서는 다리를 무릎까지 물에 담그고 올라타야 한다. 나도 배에 오르기 위해 강물에 발을 집어넣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갑자기 한국말이 들린다.

소리나는 쪽으로 보니 옆에 배에 한국인 3분이 타고 계신다. 나보고 한국인이냐고 묻더니 그렇다고 하니 자기들 3명이 배를 대여했는데 홀수라 무게 중심이 안 맞으니 이쪽으로 타라고 한다. 나야 당연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무앙응오이누아로 가는 건 똑같고, 프라이빗 보트는 비싼 만큼 편하게 갈 수 있다.

올라타려고 다가서니 자리를 만들어주신다. 내가 앉고 나니 이분들이 건너편에 대중배(?)에 탄 사람들한테도 넘어올 사람 있으면 넘어오라고 한다. 프라이빗 보트 대여하는 게 꽤나 비싼 걸로 알고 있는데 이분들 통이 크시다. 하긴 사람을 더 태운다고 더 비용이 나가는 건 아니지만 사람 마음이 보통 그리 이성적이진 않다.

결국 전체 인원 중 반 정도가 이쪽으로 넘어온다. 이분들 얘기를 들어보니 며칠 전에 정원을 초과해 태운 배가 전복되면서 초등학생 몇 명이 죽는 대형사고가 있었단다. 그래서 가능하면 하중을 나누는 게 좋다며 이 배에 사람을 태우는 이유를 설명해주신다. 그러고 보니 25,000킵 주고 산 대중배표는 날리는 셈이 되었지만 그걸 아까워하는 건 양심도 없는 짓이다.

이제 드디어 배가 출발한다. 잠시 인사를 나눈다. 이분들은 비엔티안에서 사시면서 여행사를 하시는 분들이고 오늘은 답사 차원에서 세분이서 므앙응오이누아로 가시는데, 오늘 바로 또 돌아오신단다. 돌아오는 시간 때문에 아마도 프라이빗 보트를 임대해야 했을거다.

헌데 이분들 중 큰 형님이 내 여행기를 보신다. 내 모습을 보더니 바로 나를 알아보신다. 사진으로 알아보신 건가? 이번 여행에서 내 여행기를 보는 사람을 만난 건 처음이다. 여행기라 하지만 사실 일기처럼 내 모든 것을 열어놓은 것이기에 쓸 때는 몰랐는데 막상 읽는 사람을 만나니 뭔가 부끄럽다. 벌거벗겨진 느낌이다.

배가 강을 따라 가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 나오면 잠시 멈춰서 모두가 찍을 시간을 준다. 프라이빗 보트가 좋긴 좋다. 형님 한분은 가는 동안 나에게 이것저것 가이드처럼 설명을 해주신다. 졸지에 공짜 가이드를 받게 되었다. 이런 횡재가 있나.


한 시간 정도 우강을 따라 가며 라오스의 멋진 전경을 제대로 한번 경험한다. 사방에서 물소들이 강물의 서늘함에 의존하여 더위를 식히고 있으며 배는 생각보다 강한 급류를 만나 엔진의 힘을 빌어 역행하며 역동적으로 달린다. 하지만 배 위에 앉아있는 나는 평화롭다. 스치는 바람과 모토소리 이면에서 들리는 자연의 소리가 마음을 평온하게 가라앉힌다.

한 시간 정도 달리니 멀리 작은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다. 큰 형님이 저기가 무앙응오이누아라고 얘기해준다. 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배가 정착하려 선착장에 다가설때 내가 형님들에게 혹시 이 마을에 환전할 곳을 아는지 한번 여쭤본다. 아까 가이드를 해주시던 작은 형님이, 있긴 있지만 환율이 안 좋다고 그냥 자기가 해주겠다고 한다. 이래도 되려나? 이거 너무 많은 것을 받는 거 같다.

배에서 내려서 식사를 같이 하기 위해 근처 식당으로 간다. 앉자마자 달라를 달라고 하셔서 100달러를 드리니 810,000킵으로 환전해서 돌려주신다. 8,100 환율이면 루앙프라방의 대도시 환율이다. 8,000으로 해주셔도 충분한데 이거 과하게 고맙다. 이번 여행에서 한국인들의 정을 생각보다 많이 느낀다.

나는 라오스 전통음식이지만 아직 기회가 없어서 못 먹어본 파파야 샐러드를 주문하고, 나머지 분들도  이것저것 여러가지를 주문한다. 맥주도 두병 시킨다. 어차피 1/4로 내는 거니 부담 없이 먹으라고 얘기해주신다. 처음에는 약간 경계심을 가지고 이분들을 마주하였지만 이제는 그런 거 없다. 뭔가 진짜 큰 형님들 같다.

내가 굳이 질문을 안 드려도 형님들이 자발적으로 열성을 다해 이 동네에 대해 나에게 설명을 해주신다. 트레킹은 어떻게 해야 하며, 어느 식당이 좋고, 또 어느 게스트하우스가 좋은지까지 하나하나 다 알려주신다. 라오스말을 할 줄 아시는 큰 형님은 이곳만 10번 왔다니 진짜 살아있는 정보다. 뭔가 대단한 운이 나의 이곳에서의 생활을 열어주고 있다. 하나하나 다 귀담아듣는다.

밥을 먹으면서 형님들은 이곳 식당의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과 몇 가지 사업적인 딜을 하신다. 유심히 지켜보니 라오스의 특이한 점을 발견한다. 라오스에서는 워크인하는 것보다 예약을 하는 것이 더 비싸단다. 이유는, 예약을 하면 전날을 받지 말아야 해서 그렇다는데 이런 비수기에 무슨 말인가 싶다. 아까 작은 형님 말을 들어보니 라오스는 사는 사람이 아닌 파는 사람이 우선인 문화가 있다고 한다. 네가 필요해서 사는 거니 네가 아쉬운 거고 그러니 네가 손해를 봐야 한다는, 우리나라 가치관으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개념이 만연하다. 돈에 대해,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해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까. 문득 내가 농키아우에서 느꼈던 불친절이 이런 거 아니었나 싶다. 방비엥, 루앙프라방이야 관광객들로 인하여 자본주의에 많이 열려있지만 북쪽 마을들은 아직 덜 개방되었기 때문에 그런 개념이 없나 보다. 내가 착각을 했을 수도 있다. 불친절한 게 아니라 역시 무친절한 거다. 그냥 관심이 없는 거다.


밥을 먹고는 나와서 형님들과 같이 동네를 한바퀴 돈다. 형님들이 라오스말을 잘하시니 동네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어보니 모두 친절하게 응대해준다. 여행을 왔으면 사실 현지 주민들이 영어를 하기를 기대하지 말고 내가 그 나라말을 조금이라도 알아가지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그게 쉽지만은 않다. 이곳은 영어가 거의 안 통하는 동네이다. 형님들이 돌아가면 또 꿀 먹은 벙어리가 될 내 모습이 훤하다.

그런데 얘기를 듣다보니 문제가 좀 있다. 내 일정상 여기서 Muang Kuai로 가서 베트남으로 넘어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무앙쿠아로 향하는 배가 사람이 10명이 모여야 배정이 된단다. 육로로 올 수도 없는 이 외진 마을에서 10명이나 모일까? 안 그러면 배를 120달러를 주고 혼자 대여해야 한다는데 그건 미친 짓이다. 그냥 비행기를 타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농키아우에서 일찍 떠나기를 잘했다. 여기서 오래 머물다 보면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은 배가 뜨지 않을까.

무앙응모이누아가 왜 현재 여행자들 사이에 숨겨진 명소로 극찬을 받고 있는지 딱 보니 알겠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여행지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경치가 좋고, 트레킹, 튜빙 같은 액티비티가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여하튼 존재한다. 식사를 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여행자 거리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여행자 수는 적어서 평화롭다. 육로가 최근에 뚫렸다고는 하는데 아직은 거의 배 편으로만 오는 것이 가능하기에 이곳까지 오는 여행자들은 이미 한번 걸러진다. 멍 때리기에 좋고, 심심하면 할 액티비티가 있으며, 저녁에 맥주 한잔 할 레스토랑이 있다. 이보다 완벽한 여행지가 어디 있겠는가. 아직 도착한지 얼마 안됐지만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이곳과 사랑에 빠져버린다. 빨리 넘어오기를 잘했다. 내 영혼이 이곳에서 얼마를 머물고 싶어 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

형님들은 나를 데리고 아까 추천해주시던 그 게스트하우스까지 와서 사장님에게 내 소개까지 시켜주신다. 게스트하우스의 방을 보는 순간 눈이 하트 모양이 된다.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게스트하우스의 장점들만 모은 곳이다. 강가가 뒷편으로 쫙 펼쳐져 있고, 그 강으로의 일몰이 보이는 테라스에는 해먹 두개가 자리 잡고 있다. 글 쓰기 좋은 테이블과 의자도 있다. 방갈로의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나무가 아닌 시멘트로 지은 집이라서 벌레가 덜하다. 방을 들어가 시설을 보니 무슨 호텔방인 줄 알았다. 거기에 가격도 형님이 알아서 네고를 해주셔서 정말 만족스럽다. 가격은 사장님과 형님과 나만의 비밀로.

형님들이 이제 다른쪽 답사를 더 하신다며 나보고 쉬라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가방을 내려놓고 따라나선다. 이리 잘 챙겨주셨는데 배 타는데 까지는 최소한 배웅해드리는 게 예의다. 한 마을을 오면 보통 하루 정도는 분위기 파악하는라 허비하고는 하는데 형님들 덕분에 그 하루가 완전히 단축되어버렸다. 특히 게스트하우스는 더이상 둘러볼 것도 없이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다.


형님들을 따라 이번에는 마을 안쪽으로 좀 들어가본다. 초등학교도 구경하고 트레킹을 할 수 있다는 길도 한번 둘러본다. 같이 걸어가니 자꾸 나에게 이것저것 알려주시려 한다. 진짜 이분들을 만나 많은 것을 배운다.


그런데 하늘이 심상치 않다. 바람에서 습기가 느껴진다. 비가 올 듯하다. 이제는 진짜 가셔야 한다. 같이 아까 타고 왔던 선착장으로 돌아온다. 아까는 못 봤는데 자세히 보니 선착장에 Muang Kuai로 가는 사람을 구하는 표가 붙어 있다. 어제 5명이 간다고 쓰여 있는데 사람이 결국 부족했을텐데 배가 출발했는지 모르겠다. 너무 걱정하지 말자. 정말 안되면 다시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버스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 어차피 농키아우로 가는 배는 매일 있고 거기까지는 한 시간 밖에 안 걸리니 문제가 안된다.

이제 형님들을 배웅해드린다. 정말 지극히 짧은 순간에 이리 정드는 거 보면 여행은 신비롭다. 처음에 경계를 하고 보다가 마음을 열고 다시 또 일행처럼 느껴지기 까지 4시간이 체 안 걸렸다. 비엔티안에서 여행사를 하시고 곧 사이트도 오픈하신다니 라오스에 다시 들리게 되면 꼭 한번 방문해야겠다.

한분 한분과 악수를 나누고 배에 태워드린다. 나처럼 이분들도 아쉬워하는 거 같다. 내가 무슨 도움이 될지 몰겠지만 여행기에 홍보도 해드린다고 약속한다. 하시는 모든 일들 잘되시기를. 형수님들한테도 충성하시고요.

배가 떠나는걸 지켜보다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도 발을 되돌린다. 이제 진짜 무앙응오이누아에서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잘은 모르지만 여행자들의 극찬을 듣고 라오스에서 가장 오고 싶었던 곳을 드디어 왔다. 그리고, 약간의 우려와 다르게 무척 마음에 든다. 이곳에서의 시간들이 가져올 추억들에 마음이 들뜬다.

숙소로 돌아와서 찬찬히 방을 둘러본다. 역시 마음에 든다. 말도 안되게 좋다. 일단 간단히 샤워를 하고 테라스에 앉아 밀린 글을 좀 쓴다. 혹시 와이파이가 되려나? 옆방에 머무는 사람들이 해먹에 누워있기에 물어보니 와이파이는 안된단다. 아쉽지만 상관없다. 5만킵이나 주고 3G 데이터를 잔뜩 사왔으니 충분하다.

테라스에 앉아있는데 여기 사장 할머니가 이쪽으로 오신다. 라오스말로 10여분이 넘게 뭐라고 나에게 얘기를 해주시는데 미안하지만 정말 한마디도 못 알아듣겠다. 그래도 굴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신다. 표정을 보니 뭐 여기저기 소개도 하고 좋은 이야기를 하시는 듯해서 그냥 끄덕끄덕이며 웃어드린다. 할머니도 외로우시겠지. 꼭 이해를 해야 말 상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옆방에 머무는 커플은 날 알고 있단다. 어라, 어디서 만났지? 내가 숙취로 고생하던 날, 루앙프라방에서 농키아우로 넘어가는 그 버스에서 내 바로 옆에 탔었단다. 미안, 나 그날 정말 아무 정신이 없었어. 옆에 누가 있는지도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이 커플은 그날 바로 여기로 직행하여 넘어왔단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베란다가 거의 붙어 있어서 앞으로 며칠 동안 인사하며 지낼듯하다.

갑자기 피곤해져서 잠시 방에 가서 눈을 잠시 붙이고 나온다. 한 10분 잤는데도 피곤이 많이 풀린 느낌이다. 그리고 베란다에 다시 나와 해먹에 몸을 뉘운다.

시야를 막고 있는 망고나무가 약간 아쉽다. 나름의 정취라고 생각하면 또 그럴 듯 하긴 한데 강을 막고 있으니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든다. 사실 베란다에서 보는 뷰만 본다면 역시나 어제 농카우에서 묵었던 방갈로가 역시 최고긴 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다른 조건들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이곳과 비할 바는 못된다.

누워서 책을 좀 본다. 펄벅의 Good Earth는 1편은 괜찮더니 아들 이야기로 이어지는 2편은 뭔가 흡입력이 떨어진다. 그래도 한번 시작한 책이라 멈추기는 좀 애매하다. 여기서 있는 동안 이 시리즈를 다 보고 베트남에서는 다른 책을 시작해야겠다.

6시 반쯤 되니 어둠이 슬슬 내린다. 산으로 막혀있어서 바닷가처럼 뚫린 일몰을 볼 수는 없지만 산 뒤에서 비추는 햇빛이 은은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잠시 누워서 감상을 하다가 방으로 들어간다.

어제 모기와의 전쟁을 교훈 삼아 오늘은 아예 침대 위에 모기장을 펼친다. 지금부터 미리 모기에 대한 대비를 확실히 해놓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야겠다. 오늘은 편안한 잠자리를 가지고 싶다.

이 동네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메인 거리가 므앙응오이의 평온하면서 아기자기한 분위기 형성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로컬 상점들, 여행자들을 위한 바, 그리고 레스토랑들이 묘하게 어울리며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리버뷰 뭐시기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 마음에 들어 한번 들어서 본다. 자리에 앉고 보니 여기는 아까 형님들하고 먹었던 그 식당의 바로 건너편이다. 자리에 앉아 그쪽을 바라보니 낮에 점심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눈 사장님이 보이며 뭔가 그 식당으로 안간 것이 미안해진다.

아까 형님들 말을 들어보니 점심을 먹은 건너편 식당은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많고 내가 지금 있는 이쪽은 여행자들한테 인기가 많단다. 가격을 보니 역시 비싼 게 그럴 만하다. 오늘 온 이쪽은 음악과 조명, 그리고 좌석까지 분위기에 집중을 했다. 반대편을 아마도 가격과 음식의 퀄리티에 신경쓰는 것 같다. 여기도 괜찮긴 한데 내일은 다시 건너편으로 가볼까 싶다. 강가 쪽을 보니 여기저기 불 켜진 곳이 많이 보이는 것이 의외로 앞으로의 식당 옵션도 꽤 많을 거 같다.

라오스 전통음식인 LAAP을 물소버전으로 주문한다. 여기가 라오스의 마지막이니 라오스 음식을 최대한 먹어봐야겠다. 저녁에는 분위기와 맥주 한잔도 중요하니 여행자 식당에 오지만 점심은 최대한 현지 식당을 돌아다닐 생각이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많으니 모든 곳을 가볼 수 있지 않을까?

므앙응오이 누아는 분류를 하자면 태국의 빠이와 비슷한 산골 휴양지로 보인다. 내가 좋아했던 시포나 인도의 오르차 같은 그냥 현지인 동네라기보다는 사람들이 강을 보며 멍 때리며 맥주나 칵테일 한잔 하는 그런 히피 분위기가 주력이다. 아직은 레스토랑이 엄청 많은 건 아니지만 점차 소문이 퍼지고 있으니 성수기에는 앞으로 꽤나 시끄러워질 거 같다. 빠이에서 서양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꽤 보인 것처럼 이곳도 이미 네덜란드인이 운영하는 바 겸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

음식이 나온다. 역시 라오스식 찰진밥도 같이 나온다. 뚜껑을 열고 이제는 익숙하게 손으로 뜯는다. 전에 스푼으로 떠먹으려고 할 때 그렇게 고생했는데 알고 보니 이건 손으로 뜯어먹는 밥이었다. 고기는 물소고기라 그런지 약간 비린내가 난다. 아저씨 향신료 좀 잘 쓰지. 좀 느끼하기도 해서 가서 고춧가루를 얻어와 고기에 좀 뿌려먹는다.

사람들이 계속 들어온다. 나름 경쟁 가게인데 내가 지금 있는 쪽은 이제 만석이고 반대편은 하나 있던 손님까지 가버려서 아무도 없다. 점심에는 저쪽이 더 많았던 것 같은데 확실히 저녁의 분위기는 무시 못한다. 건너편 가게 사장님은 아까 고객과 술을 거나하게 드시더니 지금은 또 가족들과 맥주를 드신다. 오늘 하루 이러시는 게 아니라 매일 같이 저렇게 과음하시는 거라면 건강에 안 좋을 텐데. 의미 없는 걱정을 해본다.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고기를 먹다 조금 흘리니 갑자기 고양이가 어디선가 나타나더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미안한데 다 먹었다. 나 앞으로 여기 며칠 있을 거니 나한테 잘 보여보렴. 다른 동네 고양이들한테 인간 호구 하나가 돌아다닌다는 소문 못 들었니?

밥을 먹고 아까 농키아우에서 급하게 산 쿠폰을 긁어서 심카드를 충전해본다. 계산해보니 대략 1.2기가 정도 충전이 가능하던데 충분할까? 일단 5만킵을 충전해본다. 그리고 데이터 전용을 등록하기 위해 *50#을 전화로 보내니 오류라고 나온다. 뭐지? 당황헤서 오류 메시지를 읽어보니 5만킵짜리는 아예 일주일 무제한 데이터 패키지가 있단다. 아 이거 횡재했다. 이제 일주일 뒤면 어차피 라오스를 떠나니 고민도 안 하고 등록한다. 앞으로 라오스에서는 인터넷 걱정을 접었다.

무제한이라니 밀려뒀던 미얀마 여행기의 사진을 바로 등록하면서 가방을 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55,000킵이다. 아 많이도 나왔다. 확실히 여행자를 상대로 하고 분위기가 좋다 보니 비싸다. 아무래도 이 레스토랑은 오늘이 마지막일 듯하다. 오래 머물려면 좀 더 적당한 가격의 식당을 찾아야 한다.

무앙응오이누아의 식당들은 빈인빈 부익부가 심하다. 현지인들이 테이블 몇 개를 대충 깔아놓고 운영하는 식당에는 손님이 단 한 명도 없고 약간 분위기 있게 해 놓은 곳만 사람이 넘친다. 저녁에만 그런 거겠지? 사람이 너무 없으니 나도 들어가기 쉽지 않다. 최고의 마케팅은 역시 바글바글한 사람이다.

방으로 돌아와서 핸드폰을 보니 아까 업로드를 걸어놓은 미얀마편의 사진이 오류 없이 이미 다 올라갔다. 라오스는 확실히 와이파이보다 3G가 더 빠르고 안정적이다. 무제한이라니, 내가 소비자의 무서움을 톡톡히 보여줘야겠다. 자기 전에는 나스에 사진 백업을 하고, 여행기도 앞으로는 사진을 대폭 늘려서 넣어봐야겠다. 그러다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지는 않겠지?

자기 위해 씻고 모기장 안에 들어와 침대에 누우니 샬랄라 공주가 된 느낌이다. 오늘은 이 모기장 덕분에 숙면을 취할 수 있을거라 기대된다. 침대도 아늑하고 이불도 호텔 이불 같이 뽀송뽀송하다. 숙면의 방해가 되던 닭들도 여기서는 안 보인다. 오늘 푹 자고 내일 새벽 일찍 일어나서 앞으로 이곳에서의 일상을 어찌 꾸려나가 볼지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4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