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I Aug 20.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47

@ Sapa, Vietnam (Bike Tour)

어제 술을 꽤나 마신 거 치고는 나름 개운하게 일어난다. 오늘은 나만의 스케줄이 있는 날이다. 오토바이를 빌려서 아침으로  유명하다는 베트남의 반미를 찾아 먹고, 점심은 어딘가 한적한 곳에서 먹은 후 저녁 5시까지 귀가한다. 써놓고 보니 스케줄이 아니라 그냥 멋데로 다니는 거긴 하네...

일어나서  밖을 바라 보니 오늘도 역시 멋진 운무가 펼쳐져 있다. 이야, 이건 봐야지 하면서 베란다 문을 열어본다. 그리고  질색을 하며 다시 닫는다. 어제 방에서도 조금씩 보였던 하루살이들이 베란다 바닥에 수천 마 죽어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어제 저녁에 비가 왔었는데 그거 때문에 다 여기로 숨은 걸까? 이건 내가 치우고 자시고 할 수준이 아니다. 이따 아침 먹으러 가야하니 로비에 청소를 부탁해야겠다.

예전에 인도의 파티뿌르시크리라는 곳에서 이러한 생태계의 파괴를 본 적이 있다. 모기가 정말 엄청나게 많아서 손을 휙 적으면 대여섯 마리가 잡힐 정도였다. 그 때문인지 박쥐도 그에 비례해서 엄청난 수가 서식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개발이 새로 되면, 기존 생태계가 안정이 되는데까지 시간이 걸리는 걸까. 여기는 날파리가 이리 많으면 도마뱀이 많아져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도마뱀은 여행자의 친구다. 벌레를 먹어주고 잘대 외롭지 않게 친구가 되어준다. 도마뱀 한두 마리 없는 곳은 여행자가 묵을 곳이 아니지. 근데 이 방에는 그러고 보니 안보인다. 이놈들, 좋은 포식 기회를 놓쳤군.

8시쯤 돼서 내려오니 안개가 자욱하다. 일단 숙박 정산부터 한다. 여기 호텔에서 환전하면 31.7을 준단다. 구글해보니 지금 시세가 31.8, 나쁘지 않다. 정산하는 김에 오토바이도 빌리자고 하니 5달러란다. 어제는 4달러라며. 그 친구가 잘못 알았단다. 일단 다른 빌릴 곳을 좀 더 알아봐야겠다. 환전할 잔돈이 없다길래 일단 아침을 먹고 9시에 돌아와서 받기로 한다.


대신 하루 더 있을 거라면서 방 청소를 부탁한다. 날파리 얘기를 하니 이곳에 날씨가 변덕이 심해서 그런 현상이 가끔 일어난단다. 그래도 여기 스텝이 영어가 잘 통해서 다행이다.


아침도 먹을 겸 나오는데 호텔 바로 앞에 오토바이 대여점이 눈에 들어온다. 나중에 반납할 거를 생각하면 자는 곳과 가까울수록 좋다. 들어가서 얼마냐고 물어보니 5달러란다. 왜 다 같지? 다른 곳을 알아보려고 나가려고 하니 얼마까지 알아봤냐며 용산의 분위기를 풍겨주신다. 과감하게 70,000동을 부르고 80,000동으로 합의를 본다. 4달러가 조금 안 되는 가격이니 나쁘지 않다. 스쿠터는 지금 가져가고 6시에 반납하는 걸로 한다.

나가려고 하는데 기름도 채워가란다. 기름은 1리터에 3만동이지만 잘 말해서 2만동으로 깎는다. 근데 이거 주유소가 더 싼 거 아냐? 사실 좀 헷갈리지만 어차피 그리 큰 돈도 아니어서 2리터를 채워버린다. 근데 오늘 하루 종일 다니려면 좀 더 채우긴 해야 하지 싶다.


이제 오토바이를 몰고 나간다. 베트남에서의 첫 라이딩이다. 5분 해보고 베트남의 라이딩이 만만치 않음을 깨닫는다. 워낙 오토바이가 많다 보니 서로 끼어들고 물러서고 전쟁이 따로 없다. 그래도 오토바이 자체는 내가 이번 여행에서 지금까지 빌린 것 중 최고다.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어제부터 먹고 싶던 반미를 찾아본다. 찾는 반미는 안 나타나고 어제밤에는 그리 안보이던 비아호이가 쌩뚱맞게 보인다. 항상 느끼지만 역시나 찾으면 안 나타나는 법이다. 근데 다들 보니 아침으로는 국수를 먹는 거 같다. 그냥 지나가다 대충 사람 많이 보이는 곳에 들어간다. 오늘은 분보를 주문한다. 나오는 걸 보니 퍼보랑 같지만 국수만 다르다. '보'는 소고기를 뜻하니 고명을 나타내는 거일테고 '분'은 쌀국수가 아닌 일반 국수인 거 같다. 무엇이 됐든 맛있다. 베트남 음식은 맛이 없는 게 없다.

근데 여기 맛집인가 보다. 사람들이 계속 들어와서 후딱 먹고 자리를 비켜준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4만동이다. 4만동? 퍼보가 3만동을 넘는걸 본 적이 없는데 왜 이리 비싸지. 바가지인가. 아님 분보가 원래 더 비싼 건가. 언어가 안 통하니 물어볼 수도 없다.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동네를 한바퀴 돌려고 하는데 안개가 더 자욱해진다. 그래도 오늘 하루 빌렸으니 알차게 써야 한다. 조금 가다 보니 이제는 비가 오기 시작한다. 아, 날 참 잘 잡았다. 어제 빌렸으면 딱인데. 일단 귀가해서 상황을 지켜봐야겠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앞이 안개로 안 보일 정도이다. 리셉션의 스태프한테 물어보니 오늘은 하루 종일 이럴 거 같단다. 망했다. 저 오토바이 타고 어디를 가야 하지. 그래도 트래킹 가는 날은 아니니 나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방청소는 아직 안됐고, 환전할 돈도 준비가 안되었다고 해서 그냥 방에서 일단 한두시간 쉬기로 한다. 지금은 너무 안개가 심해서 뭘 할 수가 없다. 일단 해가 중천에 뜨기를 좀 기다려봐야 할 듯 싶다.


방에서 쉬다 잠시 잠들었나 보다. 일어나 보니 햇살이 들어오는 게 이제 비는 멈춘 거 같고 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벌레들의 무덤으로 변질되어버린 내 숙소에서 더 이상 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나오면서 열쇠를 맡기고 다시 한번 청소를 당부한다. 이 정도 얘기했으면 들어주겠지. 오전에 받은 지도를 보면서 근처 볼만한 곳으로 가는 길을 스태프에게 한번 더 확인해본 후 출발한다.


시간이 11시라 조금 애매하다. 밥을 어떻게 할까? 여기서 먹고 가자니 오토바이를 빌린 게 아깝다. 일단 동네를 한바퀴 둘러본다. 대충 가다 보니 주유소가 보인다. 1리터에 2만 동, 아침에 그 친구가 준 가격과 동일하다. 나름 양심 있는 친구였다. 내가 지금 반 정도 채웠는데 더 넣을까 말까? 일단 지나치고 가다가 뭔가 찝찝해서 돌아온다. 기껏해야 2천원 정도인데 그거 때문에 길거리에 나앉는 위험을 감수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풀로 채워달라고 하니 3만동이다. 1500원에 안전을 산다.

동네를 돌아보니 비아호이를 파는 곳이 어디인지 맛집은 어디가 많은지 대충 느낌이 온다. 하지만 밥을 이 근처에서 먹고 싶지는 않다. 일단 올라타고 길을 나서 본다. 기름도 가득 채웠으니 어디든 가야지. 폭포가 근처에 있다니 그쪽으로 먼저 길을 잡아본다.


스쿠터를 타고 산으로 계속해서 올라간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경치가 더 수려해진다. 사파는 거대함 속에 아기자기함이 돋보이는 마을이다. 운무는 므앙응오이와 비슷하지만 가장 다른 점은 거기서는 구름이 조용하게 머물고 있는데 반해, 여기 구름은 용솟음치듯이 역동적으로 계속 움직인다.

길이 잘 닦여 있어서  드라이빙하는 맛이 난다. 차는 거의 없지만 한번씩 큰 차가 지나갈 때마다 내는 커다란 경적소리에 계속해서 흠칫 놀란다. 조심하라고 내는 경적소리에 놀래서 사고가 날 판이다.


근데 밥은 어디서 먹지? 폭포는 10킬로미터 정도라니 가면서 적당한 곳을 찾아보려 한다. 가다 보니 한 경치 좋은 곳에 식당이 하나 보인다. 아, 바로 여기다. 지나쳤지만 다시 돌아와서 오토바이를 주차하고 들어간다. 그래, 이 정도 경치의 식당은 가줘야 드라이빙하는 맛이 나지.


헌데 자리에 앉아도 메뉴를 안 가져다 준다. 가서 물어보니 여기는 음료만 판매하고 식사는 없단다. 아니 왜 음식이 없는 거야. 나름 비싼 돈도 낼 의향이 있었는데 아쉽다. 좋은 경치를 마주하는 멋진 정자를 바라보며 입맛만 다시고 돌아선다. 이런 비슷한 곳이 또 나오겠지.


큰 길을 따라 더 가다 보니 길이 익숙해진다. 어라? 혹시 이 폭포가 어제 오는 길에 잠시 들렸던 그 폭포인가? 왠지 방향과 느낌이 그런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또 뭐 그러면 어떠냐. 어제는 급하게 지나왔으니 오늘은 좀 찬찬히 보면 좋지.

그 폭포 맞다. 조금 더 올라오니 익숙한 폭포가 보인다. 어제 몰랐던 것은 여기 폭포가 두개가 있었다는 점이다. 어제 본거는 그 규모임에도 작은 폭포였고, 옆에 더 큰 폭포가 있다. 올라가는 길이 있을까?


주차할데가 없어서 길가의 다른 오토바이들이 세워놓은 옆에 세운다. 근데 주차를 하자마자 길 건너편에 노점상하시는 여성분이 자꾸 뭘 사라고 호객행위를 한다. 베트남은 좀 강매가 심한 편이다. 익숙하기에 그냥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넘어간다. 근데 이 아주머니 내가 안산다는 것을 알고 나니 갑자기 표정이 돌변하면서 오토바이 주차료 1만 동을 내란다. 주차료가 1만 동인가? 어디다 내냐고 하니 자기한테 달란다. 내가 바보로 보이나. 자기 가게 앞에도 아니고 저쪽 멀리 주차한 건데 왜 자기한테 달라냐. 이것도 넘어가는 사람이 있으니 이런 거겠지?


사기 치는 아주머니를 살폿이 무시하고 폭포로 오니 입장권이 15,000동이다. 이건 당연히 내고 입장을 한다. 근데 오늘 오전부터 구름이 계속 심상치 않다. 비는 이미 아침에 왔잖아. 두 번 오지는 않을 거야. 그치?


올라가는 길이 잘 닦여 있다. 어디든 허접하게 해놓은 라오스와 비교된다. 나라 전체가 발달이 더 되었으니 관광지도 상대적으로 잘 닦여 있고, 그런 만큼 상인들은 상업화에 영향을 많이 받아 불친절하다는게 다른 나라를 거쳐온 후 느끼는 이곳에 대한 인상이다. 계단을 중간까지 오르니 벌써부터 시원한 폭포에서 흘러나오는 우렁찬 소리와 차가운 기운이 느껴진다. 정상까지 오르니 완전 장관이다. 그래 폭포는 이렇게 콸콸콸 흘러야지. 방비엥에서 그 고생을 하며 찾아간 매마른 폭포가 문득 떠오른다. 뭐 그게 폭포, 네 잘못은 아니지.

폭포가 강하게 떨어지니 그 주위로 물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확실히 다른 건 몰라도 폭포는 이렇게 강인한 맛이 있어야 한다. 루앙프라방의 콴시폭포가 여성적인 아름다운 폭포였다면 얘는 남성적인 강한 폭포다.

꼭데기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으니 베트남 현지 관광객이 많이 올라온다. 주변국에 비해서는 발달된 나라라 그런지 베트남에서는 현지 관광객도 관광지에서 많이 보인다. 여기 사파에서도 반 이상은 현지인이 아닌가 할 정도로 많다.

그런데 먹구름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이제는 햇볕이 또 쨍쨍하다. 하지만 이러다 또 먹구름이 나타나겠지. 우기의 날씨는 안 믿는다. 아까는 흐리더니 이제는 뜨거워서 못 앉아있고 일어난다. 1시가 다 돼간다. 이제 진짜 점심을 먹어야 한다.

내려와서 오토바이를 찾으러 간다. 내려가는 길에 오른편에 식당이 하나 큰 게 보인다. 저기를 가볼까? 아까 그 아주머니 또 1만 동 내라는 헛소리를 하시려나 싶어서 쳐다보니 아무 말이 없다. 바로 앞이라 헬멧을 쓰지 않고 오토바이에 올라타 1분 이동해서 그 식당으로 온다.

이 식당은 맛집인걸까, 그냥 자리가 좋은 걸까? 안쪽에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이런 바쁜 식당에서는 한국에서 혼자 들어가서 험한 대접과 무시를 많이 받아왔기에 조금 소심해진다. 우리나라는 혼자 오는 손님을 싫어해서 심지어 이전에 한번 식당에 혼자 갔다가 아무도 나를 아는 척을 안 해서 5분 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그냥 나온 적도 있다. 여기는 근데 보아하니 다행히 이미 피크 시간은 한번 지나간 거 같다. 자리마다 안치운 식기가 엄청나게 쌓여있다.


뒤로 통하는 길이 있기에 나와보니 고급스러운 정원이 나타난다. 그래, 이 정도는 되는 곳에서 식사를 하고 싶었다. 근데 여기도 다 자리가 안 치워져 있다. 독채처럼 되어 있는 한 곳만 비어 있지만 그런 럭셔리한 곳에 내가 앉아도 될런가 모르겠다.


다들  정신없어 보이기에 메뉴를 가지러 간다. 카운터에 사장님 같이 중후한 배를 지니고 있으신 분이 보이길래 메뉴를 보며 이것저것 물어본다. 이곳이 맛집이 맞다면 가장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가장 비싼 게 20만 동 정도 하길래 먹어볼까 싶다. 만원이라면 질만 보장된다면 투자할 수 있는 돈이다.


그중에 15만 동 정도 하는 정체 모를 요리를 주문하자, 사장님 표정이 좀 난처해 보인다. 그러더니 나보고 차라리 1만 동짜리 꼬치 두개와 역시 1만 동짜리 대나무밥 두개를 먹는 게 어떠냐고 제의하신다. 돈을 쓰겠다는데 왜 싫어하시지? 아마 1인분은 만들기 어려운 게 아닐까 싶다. 배려의 아이콘이니 그러자고 한다. 거기에 콜라 하나를 덤으로 주문하다. 커피를 마실까 하다 차라리 가다 좋은 카페가 보이면 머물기 위해 아껴둔다.

근데 자리가 없다. 내가 헤매고 있으니 종업원이 나보고 아까 그 멋져보이던 독채로 가란다. 거기 앉아도 되는 걸까? 사실 여기만 치워져 있으니 일하는 입장에서는 이게 나을 거다. 뭐 나는 횡재한 셈이다.

조금 있다 음식이 나온다. 근데 에게... 이거 먹고 간에 기별이나 갈려나. 나 배고픈데. 아 사장님, 나를 너무 무시하셨다. 이거의 두배는 먹어야 배가 부를 듯하다.  이따 커피 마시면서 뭐라도 같이 먹어야겠다.


별 생각 없이 먹어본다. 그런데 의외로 맛있다. 베트남에서 맛 없는 음식은 도대체 뭘까? 대나무에 넣어서 구운듯한 밥은 차지면서 대나무 특유의 향이 스며들어 그냥 먹어도 입을 즐겁게 한다. 닭꼬치는 사실 별다를게 없지만 이 밥과 은근히 잘 어울린다. 둘 다 같은 불에서 태어난 형제들이라 그런가 보다. 아무래도 베트남은 먹방의 향연이 되지 싶다. 매번 다른 음식을 먹어도 계속 새로운 음식이 있고, 다 맛도 좋다. 이래서 내가 여기서는 마음이 즐거운 걸까?


점심을 먹으면서 벌써 저녁을 기대한다. 저녁은 두 가지 옵션이 있다. 어제 돌아다녀보니 Bia Hoi만 포기하면 먹을 거 천지다. 일단 통돼지 바비큐를 굽던 집을 가보고 싶고, 그게 아니라면 여기저기 보이던 Ca Hoi, 연어를 먹어보고 싶다. 사방 팔방에 쓰여 있는 거 보면 뭔가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다.


점심을 먹고 내일 트레킹을 하기 위해 Muang Khua에서 훈남 커플에게  추천받았던 가이드에게 전화를 해본다. 없는 번호란다. 걔 핸드폰에 있는걸 직접 받았는데 왜지? 계획이 틀어졌다. 어쩔까? 사실 여기서 당일 트레킹은 좀 찾아보니 가이드 없이도 혼자 충분히 가능해보인다. 가이드가 있는 거와 없는 거는 일장일단이 있다. 가이드가 있으면 부족 마을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오는 것이 쉽다. 대신에 가이드 뒤를 졸졸 따라다녀야 한다. 솔로 트레킹을 하면 내 맘대로 갈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지만 아무래도 영어가 안 통할 부족 마을에서 일박을 하는 게 쉽지 않을 거다. 고민 좀 해봐야겠다. 버스 정거장에서 내리면 가이드들이 막 달라붙는다니 집에 가는 길에 버스 정거장을 한번 가봐야겠다.


계산하고 슬슬 일어나려는데 비가 온다. 조금만 더 있다 갈까? 기름을 가득 채워서 다 쓰고 싶긴 하지만 그것을 목적으로 두는 것만큼 미련한 건 없다. 기름을 쓰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생각을 하기 위한, 여유를 즐기기 위한 여행이다. 비가 오는 식당에서 폭포를 바라보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다.

5분이 지나니 역시 비는 멈춘다. 오늘 하루 종일 이런 분위기일 듯하다. 트레킹할때는 이 정도가 오히려 시원하고 좋을 텐데. 일단 일어서서 다음 목적지로 향해봐야겠다. 중간에 머물만한 좋은 카페도 찾아보면서 말이다.


해가 짱짱한데 조금씩 비는 오고 있다.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다. 살짝 쌀쌀한 기운을 맞으며 오토바이를 달린다. 해는 짱짱, 비는 조금, 바람은 차갑, 신기한 조합이다.

한 20분 올라가는데, 바람이 갈수록 쌀쌀해진다. 이거 너무 추운데?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니 전부 긴팔이다. 아 패딩을 하나 챙겼어야 했는데, 후회한다. 그래도 무시하고 달려본다.

안되겠다. 지금은 그럭저럭 견딜만한데  올라갈수록 추워지는 게 정상까지 가면 잘못하면 감기 걸리지 싶다. 언제나 안전 제일인 여행에서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 잠시 고민하다 오토바이를 돌린다. 좀 귀찮긴 하지만 패딩을 가지고 다시 와야겠다.


내려오는 길이 멀다. 원래 돌아오는 길은 더 짧은 법인데, 옷을 가지러 간다는 목적을 가지고 내려와서 그런 건가보다. 새삼 깨닫는다. 가는 길이 길고 돌아오는 길이 먼 것은 실제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것을 말이다. 돌아오는 길이지만 목적을 지니고 있기에 가는 길과 같고 그러니 멀게 느껴진다. 그만큼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못 둘러 본다는 거겠지.

베트남에서의 운전은 꽤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차들이 그냥 무작정 추월을 한다. 건너편에 버스 두대가 추월하며 길을 통채로 완전히 막아버려서 길 옆으로 오토바이를 세운다. 아 위험하다. 근데 이것만 벌써 두 번째다. 정신 바짝 안 차리고 가면 정말 큰일나겠다.


내 예상보다 한참을 더 달려 사파에 도착한다. 사파는 지금 또 안개가 자욱하게 껴있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만만치 않게 쌀쌀하다. 여기서는 패딩을 필수로 가지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로 돌아오니 다행히 이번에는 청소가 깔끔하게 되어 있다. 패딩을 꺼내놓고 잠시 쉰다. 정상까지 갈려면 서둘러야 하는데 막상 내려오니 같은 길을 가기가 싫어진다. 다른 쪽 길로 가볼까. 근데 지도를 보아하니 다른 쪽 길은 갈만한 곳이 없다. 아직 기름은 거의 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아 막상 남으니 아깝다. 그래도 역시 중간에 기름 떨어지는 것보다는 나을 거다.

일단 버스 터미널과 투어리스트 인포를 들려야겠다. 생각해봤는데, 어차피 한번 하는 트레킹이라면 일박을 하고 가이드 있이 정상적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 트레킹이 시포에서의 그 뙤약볕 트레킹 만큼 힘들거라 여겨지지는 않는다. 호텔에서 예약하면 커미션 때문에 비싸지니 소위 직거래를 해야 서로한테 이익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가이드들이 직접 홍보를 한다니 거기가 제격이겠다. 아니면 차라리 투어리스트 인포가 호텔 예약보다는 낫지 싶다. 일단 그쪽을 돌고 정상에 올라갈지 말지 결정해야겠다. 벌써 3시니 만약 정상을 갈 거면 좀 서둘러야 한다. 결국 오늘도 커피 마실 시간은 없겠다.


내려오니 어제  체크인할 때 있었던 그 친절한 직원이 다시 나타났다. 이 친구는 벌써 내 이름도 외워서 Mr. Lee라고 부른다. 대성할 친구다.


이 친구가 있는 김에 환전이 되냐고 물어보니 미안하지만 여기 아직 잔돈이 없단다. 뭐 그럼 저녁에 하지 했더니, 금방 기다리면 다른 곳에서 해오겠단다. 역시 적극적이다. 환율을 물어보니 21.7로 같단다. 그럼 안 할 이유가 없지. 100달러를 건네니 누군가한테 전달한다.

다시 폭포를 거쳐 정상으로 가는 게 내키지 않아서 지도를 보면서 혹시 다른 갈 만한 곳이 있는지 물어본다. 그랬더니 주변의 마을들을 가보라고 알려준다. 어 거기는 트레킹으로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나? 오토바이로도 갈 수 있단다. 생각해보니 당연하다. 그 사람들도 시내를 자주 나올 텐데 항상 걸어서 나오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럼 어디로 가지? 여기 숙소가 있는 쪽으로 쭉 더 내려가면 마을이 서너 개가 있어서 좋단다. 하지만 얘기를 좀 하다 이건 내일을 위해 남겨놓기로 한다. 반대편은 주유소 쪽으로 가야 해서 오토바이가 있을 때 가는 게 좋겠다는 스태프의 의견을 참고해서 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얘기하고 있으니 환전을 해가지고 왔다. 그런데 세어보니 2,100,000동이다. 내 7만 동 어디 갔나. 이 친구도 당황한다. 물어보더니 수수료란다. 처음에는 7000동으로 착각해서 그래, 350원 정도면 이해하지 싶었는데 좀 생각해보니 아니다. 7만 동이면 3500원, ATM에서 뽑아도 그 정도 수수료는 안 준다. 7만 동이면 퍼보를 두 번을 먹을 수 있는 나름 큰 돈이다. 내가 따지니 이 친구도 미안한데 자기도 몰랐단다. 보아하니 의도한 건 아니라서 뭔가 억울하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오늘이 아마 주말이라 그런 거 같다. 어제 환전을 해놨어야 했는데 바보 같았다.


일단 오늘 저녁까지 정산을 다 하고 남은 돈을 받는다. 혹시 몰라서 영수증도 챙겨놓는다. 이 돈으로 하노이까지는 충분히 갈 거 같다. 하노이에서 한국 여행사나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해서 돈을 추가로 조금 더 받긴 해야 할거 같다. 마지막 100달러는 진짜 비상금으로 놔두자.

그나저나 내일 트레킹을 가이드 따라가서 1박을 할지 혼자 할지 또 다시 고민이다. 일단 오토바이를 타고 Tourist Information에 가본다. 물어보니 28달러에 투어를 할 수 있고 현재 8명이 신청을 했단다. 아 이런 대규모로 가기 싫은데... 혼자서 가도 되냐고 물어보니 그냥 가면 된단다. 다만 숙박은 가이드가 있어야만 된다고 한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나온다.

이번에는 버스 터미널로 가본다. 듣기로는 여기서 부족 마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내리는 사람들한테 여러 제안을 한다고 한다. 직거래(?)라 25달러에 가능하다고 그때 Muang Khua에서 만난 애들이 얘기해줬었다. 헌데 지금은 버스가 없나 보다. 그냥 시장만 있고 가이드를 할만한 사람들은 안 보인다.


이따 다시 와보기로 마음먹고 오토바이를 타고 지도에서 본 첫 번째 마을인 Ma Tra를 찾아가본다. 이것저것 하고 출발하니 벌써 4시다. 6시까지는 돌아와야 하니 5시에는 무조건 귀가해야 한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 스태프가 알려준 데로 큰 길을 따라 쭉 가다 보니 생각보다 금방 표지판이 나타난다. 차 길이 역시나 뚫려 있다. 조금 좁아지긴 했지만 포장도 잘 되어 있다. 확실히 라오스 하고는 많이 다르다.

그 길로 들어서서 조금 가니 탄성을 자아내는 전경이 드러난다. 혼자 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자주 하는 버릇이 생겼다. 여기서도 나도 모르게 "아 진짜 예쁘다"라고 중얼거린다. 뒤에는 산이 크게 하나 버티고 있고, 그 밑으로 밭들이 계단식으로 있는데, 별거 아닌 이 광경이 감동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답다. 낮에 본 폭포의 강인함과 다른 아기자기하고 평온한 아름다움이다.

그 길을 따라 쭉 가본다. 여기는 관광을 위하여 전시 차원으로 해놓은 마을이 아니다. 실제로 모두 농사를 짓고 있다. 소를 이용하여 밭을 뒤엎고 있고, 여기저기 아주머니들, 젊은이들이 열심히 모작을 하고 있다. 뭔가 뻔한 마을을 생각하고 들어온 나의 뒤통수를 강하게 때릴만한 반전이다. 오히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익숙해하지 않는 게 당황스럽다. 여기 막 기념품 팔고 식당 있고 그런 곳 아니었어?


길이 갈래 갈래로 있는데 표지판을 보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 뭐 정해진 갈 곳이 있는 것은 아니니 대충 땡기는 곳으로 들어가본다. 허나 그렇게 들어간 곳은 정말 전통 현지인들의 주거지역인 거 같다. 아이들이 닭들을 쫓아다니고 아주머니들은 길가에서 수다를 떨고 있다. 이런 곳을 오토바이로 시끄럽게 침범하니 뭔가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게다가 길은 조금씩 좁아지다가 하필이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길 자체가 없어져버린다. 이런, 낭패가... 슬쩍 손짓, 눈짓으로 물어보니 이 앞으로는 길이 없단다. 조용히, 낑낑거리며, 오토바이를 돌린다. 열댓 명이 다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다. 왠 변태 수염 난 아저씨가 이러고 있으니 자기들도 당황스럽겠지. 외지인에 낯설어하는걸 보니 아무래도 정식 트레킹 코스로도 오는 곳은 아닌가 보다. 겨우 오토바이를 돌려서 나가니 어린아이들이 나한테 손을 흔들어준다. 조금 민망했지만 기분 좋은 동네다.  


다른 길로 가면서  중간중간에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진기라도 이곳의 전경을 그대로 담기는 힘들 거 같다. 그러니 여행이 좋은 거겠지. 사진도 사진이지만 기억 속에 담아보려 노력한다. 사파에 있는 소수민족 사람들을 보고 굉장히 상업에 물들고 깐깐한 줄 알았는데 여기 사람들은 아니다. 모두 한결같이 순박하고 농사만 아는듯한 모습이다.

생각해보면 웃긴 것은 이 사람들은 이걸 아름답게 하려고 만든 게 아니라는 거다. 산에서 논밭을 일구기 힘드니 그냥 계단식으로 한 거뿐인데 지나가는 우리의 눈에는 너무나도 완벽한 아름다움이 형성됐다. 여기는 자연도 아니고, 진짜 논밭일 뿐이다. 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그리고 마을 사람들까지 너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최고의 미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올라가면서 밭을 한번 유심히 관찰해본다. 이들의 관개방식에 또 한번 놀란다. 어디든 강부터 밭까지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조성이 되어 있다. 관리가 얼마나 잘 되었는지 구석구석 섬세한 손길이 느껴진다. 이걸 이리 유지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을 텐데, 감탄스럽다. 원래 만드는 거보다 유지가 더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곳을 시끄러운 오토바이를 타고 가며 빠르게 지나가는 내 행태가 영 마음에 안 든다. 여기는 이렇게 올 곳이 아니라 진짜 걸어서 천천히 즐기며 지나가야 하는 곳이다. 그래, 오늘은 예고편이다. 진정한 본편은 내일 트레킹을 하면서 시작될 거다.

정상까지 올라가서 아래를 쭉 보고 다시 한번 또 감탄한다. 너무 감탄을 많이 하는 거 같지만 이걸 보고 어찌 감탄을 안 할 수가 있으랴. 트레킹을 시포에서 퐈이어와 함께 개시한 나로서는 그딴 것을 돈까지 줘가며 도대체 왜 하는지 이해를 못했지만 이곳을 와보니 트레킹을 하고 싶어서 다리가 근질근질해진다. 내일이 정말 기대된다.


달리다 보니 어느새 아까 그 전통 마을을 지나가서 큰 길이 나온다. 하지만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길이 없다. GPS로 한번 보고자 핸드폰을 꺼내... 려고 하지만 안 보인다. 에이 설마... 가방을 열어서 모두 꺼내본다. 없다. 없다!


아 이 미련한 놈아, 또 어디서 잃어버린 거니. 당황하지 말고 잘 생각해보자. 게스트하우스 아니면 투어리스트 인포, 두 군데 밖에 잃어버릴 곳이 없다. 잘 생각해보니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태프하고 내일 트레킹 길을 물어보면서 지도를 보려고 꺼낸 거 같다. 투어리스트 인포에서는 꺼낼 일이 없었다. 만약 게스트하우스에 놔뒀으면 누군가 챙겨놔 줬겠지. 불안하지만 처음도 아니고 너무 당황하지 말자.


사실 사진도 아침에 백업을 다 해놨고, 글도 자동 백업이 되게 해놔서 자료는 잃을게 전혀 없다. 핸드폰 자체도 7만 원짜리고, 이상한 브랜드라 중고 판매도 안되어서 한국 가면 어차피 버렸어야 했을 테니 크게 문제가 안된다. 단 하나 문제라면 앞으로 여행 동안 여행기를 쓸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고 지금 또 다시 하나 사기도 애매하다.


일단 돌아가서 확인해야 할까 그냥 무시하고 더 가볼까 고민하다 그래도 다른 곳을 더 가보기로 한다. 어차피 지금 가나 나중에 가나 없으면 없는 거고, 있으면 있는 거다. 모든 건 익숙해진다고, 핸드폰 잃어버리는 것도 익숙해질지는 나도 몰랐다.

하지만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결국 알 수 없으니 왔던 길로 돌아간다. 핸드폰을 잃어버린게 생각보다 많이 불안하지 않다. 경치를 보며 감탄하다 보니 금세 잊힌다. 어떻게든 되겠지.


내려오는 길에 드디어 트레킹을 하는 여행자 인원과 처음 마주친다. 10여 명의 사람들이 배낭을 메고 마을 사람의 인도하에 일렬로 걸어가고 있다. 이걸 보는 순간 바로 마음을 정한다. 1박을 안 해도 되니 가이드 없이 가야겠다. 이런 좋은 경치를 누군가를 따라가면서 곁눈질로 본다는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혼자 길을 걷다가 중간 어디서든 편하게 쉬면서 아름다움을 눈에 담으며 내 멋데로 가고 싶다. 사실 트레킹, 트레킹 하니까 어려워 보이지만 그냥 좀 긴 산책일 뿐이다. 가는 길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므앙응오이처럼 햇볕이 뜨거운 길도 아니니 정말 여기 트래킹은 혼자 해도 상관없을 듯하다. 그리고 어차피 부족 마을에서의 1박도 그리 큰 기대는 안된다. 아마도 같이 트레킹 하는 사람들끼리 친해지는 건 있겠지만 루앙프라방에서 동생들과 하루 거하게 놀았더니 사회적 열망은 지금 거의 없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게 아니라면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

큰 길로 나온다. 시간을 보니 4시 40분 정도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안 지났다. 다음 마을을 가볼까? 20분이나 남았으니 한번 가봐야겠다. 게다가 아깝게도 기름이 아직 풀이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지.


다음 마을은 Ta Phin이라는 마을이다. 큰 길을 따라 쭉 가니 또 금방 표지판이 나온다. 표지판을 보고 왼쪽으로 들어선다. 여기도 아까 마을에서 본 것 같은 밭이 나오긴 하지만 거기보다는 다소 투박하다. Ma Tra 사람들이 밭을 만들 때 진짜 미적인 부분을 고려하는 걸까?

헌데 Ta Phin은 여기서 6키로라고 나온다. 지금이 50분이니, 그렇다면 5시까지 못 갈 확률이 크다. 옆을 보니 2키로 앞에 다른 무슨 마을이 있다는 표지판이 나온다. 지도에도 없는 거 보니 유명한 마을은 아닌 듯 하지만 뭔 상관이랴. 남은 시간에 갈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니 한번 그쪽 길로 둘어가본다.


이 길은 좀 무섭다. 양옆으로 아무런 방어선 없이 낭떠러지로 연결된다. 길이 사실 그리 좁지는 않은데 심리적으로 위축되니 매우 좁게 느껴진다. 바닥에 줄을 그어놓고 그 위에만 걸으라면 잘 걷는 사람들도 그 줄이 10미터 상공에 있다면 못 걷기 나름이다. 모든 건 마음 먹기 나름이다.


그래도 쫄지 않고 잘 나가 본다. 여기도 아까 처음 들어간 곳처럼 여행자들이 자주 오는 곳이 아닌 듯하다. 들어가면 갈수록 사람들의 모습이 문명과 멀게 느껴지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당황스럽다. 결국 길이 좁아지는 곳에서 멈추고 오토바이를 돌린다. 나는 왜 계속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길을 돌리는 걸까. 어색한 미소를 얼굴에 담고 낑낑거리며 겨우 돌린다. 신나게 놀던 아이들이 나의 출연에 모두 얼음이 되어 있다. 방해해서 미안해, 금방 사라져줄게. 걸어서 왔으면 이런 불청객 느낌은 아닐 텐데 확실히 시끄러운 오토바이로 오니 고요하고 성스러운 곳을 침범하는 느낌이 계속 든다.

어차피 시간도 5시가 되었기에 귀가길에 오른다. 귀가할 때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드라이빙을 즐긴다. 아 오토바이의 매력을 너무 많이 알게 돼서 큰일이다. 한국 가서도 하나 사고 싶지만 노여사한테 바로 쫓겨나겠지. 잘 닦인 길을 좋은 경치 속에서 신나게 달리니 속이 다 시원하다.

속도를 좀 내볼까? 조금 겁나지만 최대한 속도를 내본다. 스릴이 느껴진다. 살짝 겁이 난다. 이 이상은 위험하다. 이 정도면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치인 거 같다. 이때 옆에서 경적소리가 작게 나더니 스쿠터 앞에는 딸, 뒤에는 부인을 태운 아저씨가 유유 자작하며 내 옆을 아무렇지도 않게 스윽 추월한다. 내 주제에 오토바이로 스피드는 무슨...

그래도 나름 혼자 신나게 즐기며 사파로 돌아온다. 다른 곳은 안그런데 사파만 여전히 안개에 둘러싸여있다. 안개 속에 숨겨진 신비로운 마을 같다. 이래서 유명한 건가 싶다. 마을로 돌아오니 잃어버린 핸드폰 생각이 갑자기 다시 나면서 급 불안해진다. 요리조리 좁은 길을 달려 숙소로 급하게 돌아온다.


아까 그 총각은 없고 사장 아주머니만 계신다. 내가 핸드폰을 혹시 못 봤냐고 물어보니 여기저기 보더니 없다신다. 불안함이 극대화된다. 인포센터에서 잃어버렸나? 거기서는 잃어버리면 못 찾을 확률이 클 텐데.


일단 방을 한번 확인해보겠다고 하고 올라가본다. 역시 방에도 없다. 있을 리가 없다. 항상 무의식적으로 가방에 모두 넣고 뒤를 돌아봐서 확인하고 나가기에 여기에 놔뒀을리는 정말 없다. 항상 확인하는 게 버릇인 줄 알았는데 도대체 어디서 잃어버린 걸까. 이 소 잃고도 외양간 못 고치는 한심한 녀석아!


일단 인포센터를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급하게 내려온다. 이때 여사장님이 뭔가 익숙한 핫핑크 물건을 건네준다. 아까 남자 스태프가 챙겨서 서랍에 넣어놨단다. 아니 아까 없다더니. 빨리 좀 얘기해주지! 아 그래도 정말 다행이다. 7만 원짜리 싸구려라도 이놈이 없으면 문제가 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앞으로 무시 안 하고 아껴주마. 한국가도 안 버릴 테니 또 가출하기만 해봐라. 다리 몽둥이를 뿐질러버릴테다!


찾은 핸드폰으로 오토바이 빌린 사람한테 전화해서 반납한다고 얘기한다. 기름이 너무 많이 남았다. 전화를 받고 금방 가지러 왔기에 기름 아깝다고 투덜거리니 그럼 내일 이 바이크를 그대로 또 빌리란다. 아무리 그래도 내일은 아니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내일까지만 기름을 빼지 말아달라고 한다. 여행은 원래 모르는 거다.


올라와서 밀린 글을 쓰고 나니 6시 반이다. 오늘은 뭘 먹을까? 베트남에서는 먹을 옵션이 많다 보니 식사시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즐거워진다. 연어를 즐겨먹지는 않지만 Ca Hoi를 한번 먹어볼까? 아니다. 어제 그 꼬치에 껴있는 돼지가 너무 맛있어 보였다. 오늘 마을을 다니면서 새끼 돼지들을 보며 귀엽다 생각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돼지고기는 진리다.


거리로 나오고 나서 오늘이 토요일임을 깨닫는다. 여기도 토요일의 열풍인지 사람들이 어제에 비해 두배는 있는 거 같다. 메인 길에도 맛있어 보이는 게 많아 보이지만 유혹을 이겨내고 어제 봤던 그 고깃집으로 간다.

여기는 역시 오늘도 돼지 한 마리를 꼬치에 넣어서 열심히 돌리고 있다. 근데 아무래도 저건 먹지 못할 듯 싶다. 메뉴를 달라니 메뉴도 없다. 그냥 앞에서 꼬치를 고르면 그대로 구워준다. 이러면 낮에 점심으로 먹은 꼬치와 겹치는데. 그래도 사람이 미어터지는 거 보니 먹고 싶어 진다.


대충 보아하니 곱창도 보인다. 아까 낮에 제대로 못 먹은걸 만회할 겸, 이것저것 챙겨서 담는다. 대나무밥도 하나 넣는다. 오늘은 그래도 배부르게 먹을 거다.


자리가 없다. 물어보고 옆에 다른 분들하고 합성한다. 앞에 이미 한 커플이 있는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있자니 마음이 여유롭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즐겨보려 한다. 고기를 굽는 중에도 사람들이 모이고 자리가 없어서 줄을 서기 시작한다. 도떼기 시장이 따로 없다.

조금 기다리니 아까 내가 담은 고기들이 구워져서 나온다. 오랜만에 먹는 곱창의 맛이 마음에 든다. 대나무밥의 차짐도 마음에 든다. 역시 베트남에서 먹는 음식이 날 배신할리는 없다. 하지만 사람이 많아서 너무 정신없다. 아주 난장판이다.


여기는 맛이 있어서 유명한 걸까, 저렴해서 유명한 걸까? 꼬치가 사실 맛있어봤자 한계가 있다. 가격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름 신선한 경험이긴 한데 진짜 너무 너무 정신이 없다. 거기에 옆에서 울려대는 경적까지 합해지면서 정서불안이 오겠다.


가장 맛있는 건 의외로 대나무밥이다. 얘만 그냥 소스에 찍어먹으니 또 나름 새로운 맛이다. 떡과 밥의 중간 지점이라고나 할까. 고기와의 궁합도 괜찮다. 하지만 역시나 정신없다. 여기는 먹고 빠져야 할 곳이다. 혼자 오니 특히 더 그렇다.

다 먹었지만 조금 부족하다. 조금 더 시키고 싶지만 그것도 녹록지 않아 보인다. 계산서를 달라고 한다. 95,000동이다. 고기 먹고 맥주까지 먹었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스프링롤이 50,000동임을 생각하면 가격이 저렴하다. 그래서 소문난 집인가 보다. 뭐 사실 맛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다소 부족하다. 어디 다른 데를 가볼까 싶어서 두리번 거린다. 시끄러운데 있었더니 좀 조용한데 있고 싶다. 하지만 오늘은 토요일이라 그런지 온 동네가 시끄럽다. 광장에는 무슨 행사가 준비 중인 건지 아니면 이미 끝난 건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포장마차 같이 홀로 조용히 있을 곳이 없을까.

왜 난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할까. 사교성이 없냐면 또 막상 그렇지도 않다. 나름 리더십은 풍부하다고 생각하고 필요할 때는 사람들과도 잘 어울린다. '필요'할때 어울리는 게 문제군.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많을수록 더 공허하고 외로움을 느끼는 거 같다. 오히려 혼자일 때가 마음이 편하다. 사실 정말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건 즐겁다. 하지만 얼마나 이어질지도 모르는 인연을 만들기 위해 더 이상 내 시간을 쏟는 건 좀 아깝게 느껴지는 건 나의 옹졸한 생각일까.


결국 갈만한 곳을 못 찾는다. 사실 방이 제일 편하다. 올라오면서 어제와 같이 스프링롤과 맥주를 룸서비스로 달라고 부탁해놓는다. 이것도 버릇이 되면 안 좋지만 어차피 오늘이 아마 마지막일 거다.


사파는 나에게 좀 외로운 마을 같다. 화려하고 볼거리도 많지만 또 막상 살펴보면 화려하지 않고 볼거리도 없다. 말장난 같지만 실제로 그렇다.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지만, 오늘 밤은 왠지 므앙응오이가 그립다. 아냐, 여기도 좀 시간이 지나면 그리워지겠지? 그래, 현재에 충실하자. 오늘은 배만 적당히 채우고 일찍 자서 내일을 준비해야겠다. 내일은 오래간만에 다시 운동화를 신는 날이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4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