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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Aug 22.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48

@ Sapa, Vietnam (Trekking)

사파에서는 일찍 일어나도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된다. 뭐 이건 사파만이 아니라 좀 큰 도시에서는 늘 그렇다. 어차피 이 시간에 도시의 하루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며, 일출을 보기에도 적당하지 않다.

6시에 일어났지만 7시가 넘어서야 나온다. 나오면서 리셉션에 하노이로 가는 버스표 가격을 물어본다. 이제 슬슬 이동을 준비해야 할 때다. 14$라고 한다. 어제 저녁 먹으면서 대략 물어봤더니 10$였는데 버스가 다른 걸까 그냥 가격이 다른 걸까.

사파의 아침은 역시 안개가 빠지면 섭섭하다. 약간 쌀쌀한 기온을 피부에 느끼며 안개를 헤쳐서 오늘 아침 먹을 곳을 찾아본다. 오늘은 특히나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한다. 어제 못 먹은 반미는 어떨까. 눈을 크게 뜨고 찾으면서 거리를 거닌다.

입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7만 동에 조식 뷔페라고 적혀 있다. 안에를 보니 꽤나 근사하게 조식이 준비되어 있다. 쌀국수도 있고 당연히 커피, 오렌지 주스도 다 있다. 반미는 아무래도 하노이까지 기다려야겠다.

들어가서 보니 생각보다도 더 근사하다. 자리도 호텔 식당 같고 음악도 클래식한 음악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자리를 잡고 앉는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아침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겠다.

쌀국수와 스크램블드 에그는 얘기하면 즉석에서 만들어준다. 하나씩 부탁하니 뒤에 서 있던 요리사분이 익숙하게 이것저것 재료들을 넣어서 퍼가, 즉 닭쌀국수를 만들어준다. 그 와중에 빵과 소시지 등을 담아서 한 접시 더 준비해둔다.

3500원으로 누리는 여유다. 창가 넓은 자리를 혼자 독차지하여 천천히 아침을 음미한다. 대충 만든 퍼가 같았지만 맛이 좋다. 바게트 빵도 당연히 좋다. 베트남에는 진짜 맛 없는 게 없다. 사람들은 동남아 음식 중 태국 음식을 으뜸으로 치지만 나한테는 베트남 음식이 으뜸이다.

메인 음식을 다 먹은 후에는 커피 한잔과 과일 및 디저트를 가지고 온다. 이런 제대로 된 조식이 그러고 보니 꼬리뻬 이후 오래간만인 거 같다. 역시 여행에서의 아침은 이렇게 배부르고 여유 있게 시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빵과 햄을 한번 더 가지고 온다. 3500원 짜리 조식의 극을 치자!

오늘은 어제 결심한 데로 혼자 트레킹을 떠날 예정이다. 트레킹이라고 하니 뭐 대단해 보이지만 근처 마을들을 그냥 한바퀴 둘러보는 거다. 새벽에 비도 좀 오고 날씨가 흐려서 걱정했는데 지금은 해도 뜨고 구름도 없어지는 게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지금의 햇볕을 그대로 믿기에는 그동안 날씨로 속은 게 너무나도 많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가서 짐을 싼다. 작은 가방에 오늘 필요할듯한 여러 가지막 최소한으로 챙긴다. 혹시 모르니 우비 겸 보온용으로 패딩도 물론 챙긴다. 그리고 오랜만에 운동화를 꺼내서 신는다. 신어보니 왜 저번에 오른쪽 발가락이 문제였는지 알겠다. 오른쪽 신발이 내 발에 비해 좀 작은 거 같다. 다시 벗어서 주의해야 할 발가락을 다 테이핑 해둔다. 이러면 좀 나으려나. 그냥 쪼리를 신고 갈까 하다가 비 때문에 오늘은 땅이 질퍽할 거 같아서 쪼리는 따로 챙겨서 짐 속에 넣어놓는다. 오늘은 운동화의 날이다.

메인 배낭도 싸서 일단 로비에 맡겨놓을 생각이다. 혹시라도 트래킹 중에 홈스테이라도 할지 모르니 준비를 해 둬야 한다. 다시 돌아오게 된다 해도 오늘 밤은 그냥 도미토리로 갈까도 생각 중이다. 나가기 전에 언제나 그렇듯이 짐을 다 들고 한번 방을 쫙 둘러본다. 베란다에도 혹시 놔둔 거 없나 하고 문을 열고 나가 보니... 비가 오고 있다. 안개가 자욱해도 비는 안 올 줄 알았는데 왜 나갈려고만 하면 이 모양이냐. 일단 다시 내려놓는다. 10시까지 기다려보고 출발해야겠다.

잠시 누워 쉬다가 10시가 돼서 짐을 가지고 내려온다. 가방을 로비에 일단 맡긴다. 오늘 돌아오게 될까? 모르겠다.

자 이제 트레킹을 시작해보자. 아 그런데 비가 또 온다. 사실 비라기 보다는 구름 속을 걸으며 습기를 몸에 전달 받는 느낌이다. 어쨌든 큰 비는 아니라 그냥 맞으면서 가본다.

비가 좀 오긴 하지만 걸을 만하다. 이쪽 길로 쭉 가면 된다고 했었지. 그냥 별 생각 없이 쭉 뻗은 길을 걸어가본다. 구름 사이를 걷는, 약간 몽환적인 기분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길은 나 혼자가 아니다. 조금 가니 앞에각자 가이드를 대동하고 두세 명씩 그룹을 짜서 트레킹하는 팀들이 두어팀 보이기 시작한다. 가이드와 함께 가면 저렇게 가는 거구나. 역시 혼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 본다. 조금 걸어가니 입장권 5만 동을 받는다. 어제 오토바이로 갈 때는 마을에 들어서도 입장료를 안 내더니 여기는 돈을 받는다. 왜지? 다른 마을은 이제 입장료를 받을 만큼 볼게 없다는 건가?

지나가던 차가 멈추더니 창문을 내린다. 지나가려는 건가 싶어서 옆으로 비켜섰더니 나에게 갑자기 길을 묻는다. 진짜 이제 현지인들도 구분을 못하나 보다.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한국인이냐고 묻는 사람이 없어졌다. 묻는다 하더라도 말레이시아, 아니면 그나마 이웃 나라인 일본인이냐고 묻는다. 조용히 있으면 그냥 현지인줄 안다. 나 외국인이라고 어필하며 길을 모른다고 손짓해서 차를 보낸다.

가이드와 같이 가던 일행이 갑자기 모두 오른쪽 샛길로 접어든다. 아 이게 가이드와 함께 가는 트레킹 길인가 보다. 게스트하우스 스태프가 정식 트레킹 길은 갈래길이 많아서 혼자서 찾아가기 힘들 거라며, 나는 그냥 큰 길로 계속해서 가라고 했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 문득 유혹이 든다. 뭐 저 길로 들어가서 쭉 가면 되지 않겠어? 사람들이 우루루 그쪽으로 빠지니 나도 유혹을 못 이기고 결국 따라가 본다.

헌데 내려가는 길의 시작부터 아주 난리다. 밑에서 어떤 서양인 남자가 표정은 사색이 되어 있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서 올라온다. 걱정되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길이 너무 미끄럽고 이 길로 몇 시간을 가야 한다며 자기는 미안하지만 절대로 이쪽으로는 못 가겠다고 한다. 얼굴이 겁먹어서 하얗게 변해있다.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러지. 근데 가이드도 같이 온 거 같은데 다른 팀원들은 어쩌려고 저런댜.

조금 내려가 보니 아까 그 남자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바닥이 정말 질퍽하다. 앞에 가는 어떤 아주머니는 결국 혼자서는 못 내려가서 가이드 두 명이 옆에서 어깨를 부축하며 겨우 한 발짝씩 천천히 내려가고 있다. 바닥이 진짜 매우 미끄럽다. 쪼리 신고 오지 않은게 천만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운동화가 이리 더러워 보여도 나름 노여사가 지난 생일 선물로 사준 방수까지 되는 트래킹화다. 물론 나도 노여사의 생일 선물로 색깔만 다른 같은 운동화를 사줬었다. 나는 보통 차를 타는 것보다 걷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운동화가 일 년이면 거의 헤져버린다. 그래서 노여사가 그냥 일 년에 내 생일마다 한번씩 운동화를 선물로 준다. 선물 뭐 사줄지 고민 안 해도 돼서 좋지?


그런데 이렇게 가이드들 사이에 끼여 가니 좀 죄책감이 든다. 이건 왠지 무임승차의 느낌이다. 가이드 없이 가기로 했으면 차라리 좀 헤매면서 가는 게 맞지, 이런건 그냥 꼼수일 뿐이다. 돈도 안내놓고 이리 가이드들을 따라가는건 아닌 거 같아서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쭉 나아가 맨 앞으로 간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런 나를 보고 궁금해하며 물어서 혼자 왔다고 하면 다들 용감하다며 깜짝 놀랜다. 이게 그리 놀랄 일인가?

어제 보긴 했지만 역시 논과 밭이 이루는 경치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맨 앞에 서서 좋은 자리가 있으면 잠시 멈춰 서고 이 아름다움을 눈에 담아본다. 확실히 오토바이를 타고 갈 때와 걸어서 갈 때는 마음에 담기는 아름다움의 양과 질이 다르다.

길이 쉬운줄 알았는데 갈래 길이 슬슬 나오기 시작한다. 다행히 앞에 가는 사람들이 살짝 보여서 아직까지는 길을 잃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도 마음에 안 들어서 그냥 다 제쳐버린다. 그룹으로 가는 사람들은 제일 늦게 가는 사람 위주로 페이스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사실 그냥 가도 내가 속도가 빨라 결국 추월하게 된다.

내리막길로 논밭을 지나가니 숲길이 나타나며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제 내 앞에 아무도 없다. 한 팀이 따라오긴 하지만 내 앞이 아닌 뒤다. 이제 내가 길을 개척하는 거다.


이제부터는 갈래길이 나오면 주저주저하게 된다. 어느 쪽으로 갈까? 직감으로 갈 수밖에 없다. 뭐 길 좀 잃으면 어떠냐. 아직 오전이고 시간도 많으니 걷다 보면 어딘가 나오지 않을까? 그리고 또 어떤 식으로든 사람이 사는 곳이 나오면 길이 열리겠지. 오후라면 해가 질까봐 조금 불안했겠지만 지금은 아침이라 마음의 여유가 있다.

또 다른 갈래 길에서 왼쪽으로 틀어 들어간다. 그때 뒤에서 누가 나를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보니 멀리 뒤에서 따라오던 가이드가 나에게 왼쪽이 아닌 오른쪽으로 가라며 손짓하고 있다. 아까 지나가면서 내가 혼자 왔다고 얘기했더니 불안해서 지켜보고 있었나보다. 아, 무척 고맙긴 한데 또 매우 민망하다. 이럴 거면 가이드를 데리고 오는 게 맞았을 텐데. 그래도 이 산길에서 길을 잃으면 엄청 고생할 텐데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시야가 열리면서 더욱 넓은 자연이 눈 앞에 펼쳐진다. 아까 그 가이드는 내가 틀린 길을 갈 때마다 뒤에서 소리질러 알려준다. 두 번 정도 도움을 더 받는다. 더 빨리 가야겠다. 알량한 자존심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도움은 부담스럽다.

뒤에 일행이 안보일정도로 빨리 걸어서 결국 혼자 걷는다. 역시 혼자 걷는 게 마음이 편하다. 비가 좀 많이 오기 시작해서 가방에서 패딩을 꺼내 입는다. 이 날씨에 패딩이라니... 좀 덥긴 하지만 비를 피하는 게 더 중요하다. 티셔츠를 달랑 하나 가져와서 이게 젖어버리면 진정 온몸이 자연으로 돌아간 트레킹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앞에 또 다른 트레킹 그룹이 보인다. 양갈래에 서 있다. 저기서 어느 쪽이지? 이 친구들이 가지 않고 서 있다. 한쪽으로 가야 따라같텐데. 도움을 안 받으려 했지만 이런 상황은 또 애매하다. 이번 트레킹은 눈치의 연속이다.

가까이 가도 이 팀에 안 가기에 어쩔 수 없이 물어본다. 왠지 가이드한테 물어보기 민망해서 여자 여행자에게 말을 건넨다. 여자 여행자, 내가 영어로 말을 건네니 화들짝 놀라면서 나에게 말을 건넨다.

"You, tourist??!"

그래, 나 가이드 아니야. 이제 몇 번 이어지다 보니 그냥 그러려니 한다. 혼자 왔다니까 용감하다고 우러러봐준다. 기분은 좋은데 이게 사실 혼자 온 게 맞는 건지 좀 애매하다. 그나저나 첫 번째 마을인 Y Lin Ho는 가까운 줄 알고 있었는데 왜 이리 안 나오는 거지?

길을 듣고 그 그룹도 지나쳐서  앞장선다. 이제 내 앞에는 또 다시 아무도 없다. 하지만 길이 엉망이다. 이걸 걸어가라고 만든 길일까? 냇가인지 길인지 애매한 길들이 이어진다. 신발이 방수여서 천만다행이지 큰일 날뻔했다. 오늘 이 신발 덕을 정말 많이 본다. 고마워요 노여사.

앞에 아무도 없다 보니 또 직관에 의지해서 길을 간다. 하지만 길이 사라질 때는 정말 문제다. 지금까지는 길이 아닌 거 같아도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유심히 보면 그래도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헌데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계곡은 아무리 봐도 길 방향을 모르겠다. 반대편에 마을이 보이는 것 보니 왠지 이 계곡을 넘어야 할 듯해서 쭉 걸어가면서 넘어갈 길을 찾아본다.

그러는 사이 뒤에 그룹이 따라잡는다. 그러더니 내가 이미 지나온 길의 가운데를 건넌다. 아까 여성 여행자가 나를 보며 힘내라는 미소를 지어준다. 미소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는 사실 정확히 모르겠지만, 난 그리 이해하련다.


이 그룹은 다행히 속도가 빨라서 시야에서 금방 사라진다. 사실 그냥 다른 그룹을 따라가거나 아님 지금이라도 돈을 좀 주고 그룹에 합류하면 일이 쉬울텐데 뭐 이리 고집이 센지 모르겠다. 한번 하기로 한 거는 끝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벌써 길을 나선지 2시간이 지났는데 첫 번째 마을이 도저히 안 보인다. 한 시간 정도만 가면 나온다고 한 거 같은데, 잘못 알려준 걸까? 앞의 그룹은 이제 더 이상 안보이고, 뒤에 그룹도 내가 많이 앞장서서 눈에 안 들어온다.

또 갈래 길이다. 어느 쪽으로 갈까? 대충 길이 좀 더 잘 닦인 쪽을 선택하지만 지금까지 온 길을 보면 그게 꼭 맞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 마침 마을 분이 사는 집이 한채 보이길래 한번 집 밖에서 물어본다. 지금까지 만난 마을 사람들은 영어로 물어보면 정말 심각한 영어울렁증을 보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뒷걸음치며 도망갔다. 하지만 여기는 아예 집에 있는 사람한테 물어봤으니 못 도망갈 거다. 나도 절박하다.

역시 못 알아듣지만 포기하지 않고 물어본다. 베트남어는 성조가 있어서 그냥 영어식으로 읽으면 절대 못 알아듣는다. 억양을 신경쓰며 Y Linh Ho가 이쪽 방향이냐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어보니 한참 있다가 그렇다고 끄덕인다. 이거 내 질문을 이해한거 맞는건가? 에라 모르겠다. 진짜 어디든 가게 되겠지. 12시 밖에 안돼서 아직까지는 용감하다.

이번 선택은 정말 확신이 없다. 숲속에서 길을 잃고 패딩 하나에 의지한테 밤에 잠드는 상상이 되기 시작한다. 내 나이에 그러면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 불안해하며 걸어가는데 멀리 사람이 하나 보인다. 앞 그룸의 꽁무니다. 난 왜 이리 운이 좋을까? 이번에도 제대로 길을 찾아 왔다.

이제는 길이 하나여서 마음 편하게 간다. 나름 스펙터클하게 왔지만 경치를 감상하지 않은 건 아니다. 여기는 모든 길이 말 그대로 예술이다. 정말 힘들게 힘들게 가고 있지만 큰길을 따라가지 않고 이쪽 길을 선택하기를 잘했다. 큰 길로 간다면 이런 아기자기한 장관을 절대 보지 못했을 거다.

그쪽 길로 쭉 걸어가니 작은 건물이 보이며 여행자들이 쉬고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선두그룹은 가버렸는지 여기서는 안 보인다. 대신 다른 여행자들이 있길래 혹시나 해서 여기서 또 가는 길을 아냐고 물어보니 자기들은 가이드 뒤통수만 멍하니 보면서 가고 있다며 수줍게 대단한다. 건물 안을 보니 현지인들이 보이기에 물어본다. 혹시 Y Linh Ho로 가는 길이 어디인가요?

자기들끼리 수군대더니 그중 영어를 꽤나 하는 남자가 대답해준다. Y Linh Ho는 이미 지나쳤단다. 도대체 언제 지나친 거야. 그 정도 되는 큰 규모의 마을은 오면서 본 기억이 없는데.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다음 마을로 갈려고 했는데 계획이 틀어졌다. 대신 다음 마을인 Lao Chai가 여기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단다. 오 그렇다면 또 다행이다. 친절한 남자의 길 안내를 듣고 쉬고 있는 사람들을 뒤로 한채 다시 나는 여정을 떠난다.

걸어가며 생각해보니 그 영어 잘하는 남자도 가이드였던 것 같다. 여기의 길은 사실 가이드 없이 오면 절대 안 되는 길이었다. 잘못해서 미아가 되면 아찔한 사고도 날 수 있는 곳이다. 나야 운도 따라주고, 결국에는 여러 가이드들의 도움도 받아서 가고 있지만 마음이 계속 찝찝하다. 하지만 그 찝찝함을 누를정도의 경치가 나타난다.

여기가 정상일까? 한눈에 보이는 마을들과 논밭의 거대한 모습이 모든 생각을 잊게 한다. 게다가 이 길에는 지금 나 혼자 뿐이다. 기분이 신나져서 혼자 노래를 부르며 경쾌하게 걸어 간다. 근데 왜 하필 지금 생각나는 노래가 군가 밖에 없을까. 


"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만..."

이때 사람도 다니기 힘든 이 험한 길에서 앞에 오토바이가 나타난다. 양발에 장화를 신고 다리를 지지대 삼아서 서커스 하듯이 이 험난한 길을 지나가고 있다. 이게 가능이나 한 건가? 지금 이 길 자체도 정말 거의 불가능해 보이지만 내가 지나왔던 계곡 같은 곳들은 진심 오토바이로 지나가기는 불가능하다.

이 젊은이 가까이 다가오는데 인상이 너무 좋다. 이럴 때는 다시 한번 확인해보면 좋다. "혹시 이 길이 Lao Chai로 가는 길인가요?" 역시 라오 차이를 못 알아듣는다. 한참을 듣더니, "아! 라오 차이!"라고 하는데 내 귀에는 똑같이 들린다. 성조 좀 틀렸다고 못 알아듣는 게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되지만 또 그 언어에 익숙하면 그렇겠지.

이 길 맞단다. 그러면서 나한테 "태워줄까?" 라며 해맑게 물어본다. 아이고야, 됐습니다. 혼자 가기에도 벅차 보이는데 그냥 걷는 게 차라리 낫다. 그리고 오늘은 빠르게 가는 날이 아니라 느리게 가는 날이다.

30분 거리라고 했던 마을은 1시간이 더 가니 드디어 멀리서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걷는걸 충분히 즐기고 있었던지라 한 시간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냥 느긋하게 걸어가다 보니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에 들어가니 1시다. 점심부터 먹어야겠다. 웃기게도 마을에서 나에게 처음 말을 건네는 사람은 한 오토바이 기사님이다. 이 오토바이로 사파로 다시 데려가 주겠단다. 어차피 돌아가야 하는데 길도 험하고 몸도 피곤하니 오토바이를 타야 할지도 모르겠다. 혹시 나중에 필요할지도 몰라서 물가를 좀 알 겸 얼마냐고 물어보니 10만 동이란다. 뭐 이리 비싸, 안가. 내가 그냥 무시하고 가니 5만 동에 가겠단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벌써 반으로 깎였다. 5만 동이면 사실 갈만한 거리다. 그래도 일단 지금 당장은 필요한 게 아니고 마음 내키면 그냥 걸어갈지도 모르는지라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지나간다.

Lao Chai 마을에 입성하긴 했지만 먹을 곳이 안 보인다. 마을 자체는 나름 규모가 있는 듯 한데 다 문이 닫혀 있다. 그러다 조금 더 가니 드디어 문을 연 식당을 하나 발견한다. 아, 드디어 밥을 먹을 수 있겠다.

신발이 너무 더러워서 이대로 들어가면 민폐일 거 같다. 신발을 벗으려 하니 안에 할머니가 그냥 들어와도 된다고 손짓하신다. 에이 그래도 그럴 수 없지. 굳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할머니와 딸로 추정되는 여주인분이 그런 나를 보며 따뜻한 미소를 짓는다. 출발이 좋다.

자리에 잡고 주문을 하려 하는데 메뉴판이 없다. 뭐 좀 특이한걸 먹으려고 했는데 이러면 뻔한 것 밖에 먹을 수 없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해서 '퍼보'를 달라고 하니 안된단다. 그러면 '퍼가'를 달라고 하니 그것도 없단다. 대신에 돼지로 만든 건 있단다. 뭐 돼지고기도 좋지.

주문하기 전에 혹시나 싶어 얼마냐고 물어본다. 5만 동이란다. 아이고, 아주머니 너무 부르셨어요. 내가 '이건 아니잖아요'라는 의미를 웃음에 담아 사장님을 말없이 쳐다보니 아주머니도 겸연쩍게 웃으시면서 금방 3만 동이라고 바꾸신다. 이것도 약간 비싸긴 하지만 뭐 이 정도야 충분히 낼만하다. 그거 하나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근데 다른 여행자들은 다 어디서 먹는 걸까? 가이드 비용에 밥과 숙소 뭐 이런 거 다 포함이 되니 가는 곳이 정해져 있을 텐데, 여기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거 보니 아닌 거 같다.

조금 기다리니 국수가 나온다. 라임을 잘라 주기에 익숙하게 라임을 짜서 넣고 여러 가지 양념을 한다. 아, 역시 '퍼'는 언제 먹어도,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정말 내가 딱 좋아하는 맛이다. 한국에 가면 이렇게 먹을 수 있을까? 고수는 달라고 하면 줄지 몰라도 라임을 달라고 하면 당연히 뭐라고 하겠지?

여기 사는 사람들도 식사를 하려나보다. 뒤쪽에 밥을 넣고 반찬을 준비한다. 무슨 사람들인지 모르겠지만 남자들이 서너 명 같이 자리를 잡는다. 이때 아까 그 여사장님이 나 보고도 와서 한입 뜨라고 한다. 이런, 정말 영광이지만 이미 퍼 한 그릇을 먹었는데 또 먹긴 좀 그렇잖아요. 아쉽지만 정중하게 괜찮다고 말씀드린다.

조금 있으니 이번에는 할머님이 오라고 손짓한다. 이거 또 거절하면 예의가 없는 거다. 그리고 사실 나도 이 사람들이 평소 식사에서 뭘 먹는지 궁금했다. 염치 불구하고 자리를 옮겨서 앉는다.

내가 자리를 옮기자마자 남정네들이 신나 하면서 잔에 뭔가를 가득 담아 건네준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물은 절대 아니다. 살짝 냄새를 맡아보니 역시나 술이다. 오 전통주까지 체험한다. 살짝 맛을 보니 쌀로 만든 도수 높은 술이다. 밥을 먹으면서 조금씩 반주로 마신다.

반찬은 고기 반찬 두개와 나물 반찬 하나다. 고기는 두개 다 닭고기인데 방식을 달리해서 조리한 듯하다. 나물은 그냥 대친거 같고 특별한 양념이 되어 있지는 않다. 소박하지만 그래도 고기까지 올라간 밥상이니 푸짐하다.

할머니가 조금 먹다가 나물 삶은 물을 밥에 부어서 말아드신다. 딸도 그리 먹는다. 그렇다면 나도 그리 해야지. 내가 똑같이 따라하니 보시며 좋아하신다. 하지만 정말 단 한마디의 언어도 통하지 않으니 대화를 할 수가 없다. 베트남어 좀 더 공부할걸.

밥을 다 먹고, 남은 술은 원샷 한다. 음식은 무엇이든 남기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배웠다. 그릇도 주방으로 옮기려 하니 손사래 치면서 놔두라고 한다. 너무 정색하셔서 어쩔 수 없이 놔두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내 자리로 돌아온다.

아까 먹던 원래 내 국수도 아직 조금 남아있다. 그것도 싹 비운다. 밖에서는 서양 여행자들이 계속 지나간다. 내가 아까 같이 밥을 먹고 있는 걸 보면서 내 사진을 찍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 블로그에 '베트남 소수민족의 전통 식사 장면'이라는 제목으로 올라가는 건 아니겠지.

여사장님한테 여기서 사파까지 걸어서 가면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보니 3시간 정도 걸린단다. 그러면 2시쯤 출발하면 적당하겠다. 원래 마을 하나를 더 갈까 했지만 오늘의 탐험은 이미 충분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즐겁고 힘겨운 트레킹이었다.

2시에 인사를 하고 다시 더러워진 운동화에 발을 맡긴다. 3만 동이지만 아까 밥 먹은 게 고마워서 5만 동을 드린다. 2만 동으로 감사를 표하는게 오히려 실례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뭔가 마음을 표시하고 싶다. 여사장님, 한사코 안받으시려고 하다가 내가 한사코 다시 건네니 받으신다. 처음에 5만 동을 얘기하시고서는 사양하시기는. 세상에 알고 나면 나쁜 사람은 없다. 모두 생활이 힘드니 그리 행동하는 것뿐이다.

다시 길에 오르니 다른 여행자들이 같은 길로 꽤나 많이 가고 있다. 여행자들과 만나면 그냥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인사부터 하게 된다. 어쩌다 영국인 중년 여성 분하고 같이 가게 된다. 이분 내가 혼자 왔다고 하니 어떻게 그 길을 혼자 왔냐고 놀라워하신다. 역시 이 길은 혼자 올 길이 절대 아니다. 그리고 사실 가이드와 같이 와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길이다.

근데 사파로 가는 길은 또 어느 방향일까. 내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으니 그 영국분이 자기들 가이드가 영어를 잘한다며 그 친구한테 물어보라고 한다. 뭔가 가이드 없이 온 것이 죄지은 것 같아서 좀 그렇다고 하니 자기가 직접 가서 물어봐주신다. 여행지에서는 모두가 모두를 챙겨주게 된다. 가이드도 혼쾌히 알려준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결국 다음 마을까지 가야 한다. 어쩌다 보니 자연스레 이 그룹에 끼어서 걸어가게된다.

가이드가 가면서 이것저것 설명해준다. 한 곳에서는 전통주를 담그고 있는 것을 설명해주고 다른 곳에서는 이곳 소수민족들의 생활상을 알려준다. 내가 가이드한테 농담으로 나는 무임승차라서 알려주면 안되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니 어차피 여기 사람들도 자기 그룹이 아니라며 상관없단다. 다 이 길로 모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가이드, 여행자가 다 뒤섞여서 그냥 아무 하고나 같이 가게 된다. 졸지에 공짜 가이드를 받게 되었다.

다음 마을, Ta Van에 도착한다. 여기가 아마 이 모든 여행자들이 한 템포 쉬어 가는 곳인가 보다. 레스토랑과 홈스테이가 여기저기 즐비하다. 말이 홈스테이지 뭐 게스트하우스 같다. 어제 투어리스트인포에서 가이드 없으면 못 잔다고 했던 말은 헛소리다. 오늘 아침에 우리 호텔 스텝에게 물어보니 전혀 상관없다고 했는데 이곳에 오니 정말 상관없는걸 알겠다. 그냥 여기저기 널려있어서 잔다고 하면 받아줄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자는 거와 사파에서 자는 거의 차이를 나는 잘 모르겠다. 진정한 현지인들의 가정집을 방문하는 홈스테이도 아니고, 상업화된 홈스테이라면 게스트하우스와 다른 점이 도대체 뭐일까. 심지어 wifi와 뜨거운 물이 나오고 방에 화장실이 따로 달려 있다는 홍보물이 사방에 보인다. 나는 그냥 사파로 돌아가자.

정식 투어는 여기서 일단락된단다. 자고 갈 사람은 여기서 자게 되고, 돌아갈 사람들은 이곳에서 버스로 사파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난 걸어서 갈 거다. 아직 트레킹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았다. 어찌 보면 올 때는 진짜로 혼자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돌아갈 때는 혼자서 조용히 돌아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그 가이드에게 사파로 가는 길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다른 여행자들과 인사를 나눈다. 이제 또 다시 혼자다. 마을을 벗어나니 사파로 데려가 줄 오토바이와 버스들이 엄청나게 대기하고 있다. 다들 날 보더니 오토바이 타겠냐고 물어보지만 나는 그냥 걸어간다고 당당하게 얘기한다.

큰 길로 가니 표지판이 바로 나온다. 사파까지 8키로다. 8키로면 얼마나 걸릴까? 대략 2시간에서 3시간이면 될 듯하다. 지금이 3시니 서둘러 가면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갈 수 있다. 해만 안진다면 사실 아무리 늦어도 상관이 없다.

길이 오르막부터 시작한다. 천천히 걸어가는데 뒤에서 이번에 투어를 한 여행자들을 태운 봉고들이 하나 둘 지나간다. 조금 지나니 그들이 모두 떠나고 이제 진정 나와의 싸움만 남게 된다.

아, 하지만 내가 너무 길을 만만하게 본거 같다. 이게 왜 오르막인가 생각해보니 사파에서 올 때 계속해서 내리막길로 왔다. 한마디로 산을 내려온 거다. 그렇다면 여기서 8키로는 산을 계속해서 올라가는 등산의 8키로인 거다. 할 수 있을까? 왠지 이러니 더 오기가 생긴다. 가보자!

똑같은 길이라도 차를 타고 가는 것과 걸어가는 것은 무척 다른 경험을 준다. 너무 느리지 않게, 그렇다고 서두르지도 않으면서 여유 있게 길을 걸어가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 오른쪽으로 펼쳐져 있는 산도 멋있고, 왼쪽으로 보이는 전통 마을도 아름답다. 걸어 올라가길 잘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사파가 주요 도시라 그런지 1키로마다 안내 표지판이 나온다. 7키로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여서 시계를 보니 여기까지 대략 20분 정도 걸린 거 같다. 이런 추세라면 5시 10분에 도착할 거 같다. 나쁘지 않다.

오르막이 끊이지를 않는다. 산을 오르는 거니 사실 당연하다. 벌써 지치는 건 아닌데 발바닥이 슬슬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땀은 비 오듯이 오고 아까 흙탕물을 한번 실수로 밟은 신발 안에서는 모래가 계속해서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꾸준히 한 발을 더 내딛는다.

이제 6키로다. 딱히 신경 쓰지 않았는데 비슷한 페이스로 왔다. 살짝 노곤함이 느껴지지만 무시하고 걷는다. 생각해보니 오늘 식사할 때 빼고는 거의 한번도 안 쉬고 걸었다. 4키로에서 한번 쉬어줘야겠다.

여기 산은 농사하기에는 정말 축복받은 땅이다. 산 위에서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서 지상에 있는 모든 밭을 충분히 적셔준다. 1키로를 걸으면 물이 흐르는 도랑과 두어 번은 마주친다. 이러니 논과 밭이 이리도 많은 거겠지.

4키로에서 한번 쉬어준다. 물도 마셔준다. 생각해보니 물도 거의 안 마셨다. 땀을 이리 흘릴 때는 억지로라도 물을 마셔줘야 하는데 나는 오로지 트레킹에만 집중하느라 수분 섭취에 소홀했다.

확실히 올라갈수록 경치는 좋아진다. 밑에서는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더니 올라오니 좀 시원해진다. 노여사가 내가 너무 타는 게 자기한테 예의 없는 거 아니냐고 까지 얘기를 하길래 아까 선크림도 발라줬는데 필요 없어졌다. 사실 그리고 지금 이 얼굴에 선크림 바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트레킹은 슬슬 나와의 승부가 된다. 지나가는 오토바이들은 5분에 한번씩 마을까지 싸게 태워주겠다며 나를 유혹한다. 사실 그거 탄다고 큰 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이놈의 자존심과 승부욕이 뭔지 지기가 싫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나한테 지는 거다. 절대적인 조건이 부족해서 포기하는 거면 모르겠지만 단지 내 의지력과 끈기가 부족해서 처음 마음 먹은 것을 포기한다면 그건 내가 나한테 지는 거다. 어찌 보면 사업도 나와의 싸움을 한 게 아닌가 싶다. 다른 사람한테 지는 건 넘어갈 수 있지만 나한테 진다면, 더 이상 내가 내가 아니게 된다.

이제 안개 속으로 진입하는 것을 보니 사파와 많이 가까워진 거 같다. 계속해서 나오던 표지판이 4키로 이후 사라졌다. 중간에 좋은 전망대가 있으면 잠시 멈춰서 쉬면서 구경을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승부도 좋지만 과정도 즐기자. 힘들긴 하지만 즐거운 경험이다. 인레에서의 트레킹이 괴롭고 괴로웠다면, 지금 이 순간은 괴롭지만 즐겁다. 이것도 아마 누군가를 따라가는 거라면 이렇진 않았을 거다. 내가 선택을 하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을 끝까지 완수하는 것, 이 두가지가 둘다 중요하다.

안개에 깊숙이 진입하니 약한 비가 내리고 있다. 처음 내려 올 때 느꼈던 그 안개의 습기이다. 역시 이건 비가 아니라 구름을 통과하면서 습기를 몸으로 느끼는 거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거 같다. 여기까지 온 거 보니 꽤나 온 듯하다.

갑자기 2키로 표시가 나타난다. 8키로는 까마득하지만 2키로는 걸을만하다. 조금 지나니 처음 올때 봤던 표를 팔던 판매소도 보인다. 지금은 문이 닫혀 있다. 어제 다른 곳에서 표를 안받은 것도 아마 내가 4시 이후에 가서 그런가 보다.

드디어 멀리 사파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왠지 이대로 진입하면 승리의 여운을 못 즐길 거 같아서 사파가 보이는 언덕에서 잠시 멈춘다. 아무도 안보이기에 혼자 소리를 크게 한번 질러도 본다. 오늘도 나한테 지지 않았다. 지금 현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 상황에서도 이렇게 지지 말도록 하자. 내 자신을 믿어보자. 어찌 보면 별거 아닌 것에 의미를 너무 부여하는 거 같지만 여행이란 게 뭐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숙소에 도착하고 시계를 보니 5시 9분이다. 5시 10분을 예측했는데 거짓말처럼 거의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이것도 뭔가 기분이 좋다. 오늘 사파에서의 트레킹은 잊지 못할 거 같다. 풍경도 너무 아름다웠고, 운도 따라줬으며, 식사하면서 현지 생활을 체험하기도 했고, 혼자와의 싸움에서도 승리하였다. 좋은 경치들은 다른 곳에서도 많았지만 순수한 경험으로만 따지자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이었다. 뭔가 벅차오른다. 하지만 이런 걸로 벅차 오르는 것도 뭔가 웃겨서 혼자 피식 웃고 흘려버린다. 나는 정말 너무나도 감성적이다.

게스트하우스를 들어가서 지친 몸을 로비에 있는 소파에 깊숙이 던진다. 호텔 스태프가 웃으면서 어땠냐고 물어보기에 신나서 오늘의 내 경험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놓는다. 어떻게 트레킹 하는 사람들을 따라 들어가게 됐으며 양갈래 갈림길마다 얼마나 해멨는지, 로컬 식당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나만의 특별한 경험을 인정해주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얘기한다.

스태프가 묻는다. 


"그래서 마을 몇 개 갔다 왔어요?" 


"3개..." 


".......... 아, 힘들었겠네요."

내 소중한 경험이 순식간에 숫자 '3'으로 축약된다는 게 슬프다. 하지만 이곳에서 매일 같이 여행자들을 마주치는 사람들한테는 너무나도 자주 발생하는 일이겠지. 특별함이 지속되면 일상이 되는 법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한번만 경험하는 모든 여행자들의 이 순간은 모두 특별하다.

오늘은 빨래를 좀 맡겨야겠다. 여기 빨래는 1키로에 2달러로, 라오스에 비하면 두배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내일 출발할려니 빨래가 마무리 되는 시간이 걱정된다. 지금 맡기면 언제 찾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오전 10시쯤 준비될 거란다. 버스는 물어보니 오전 일찍과 저녁에만 있다. 어쩌지? 그래도 일단 빨래는 맡긴다. 다른 곳에서 낮시간에 떠나는 버스를 한번 찾아볼 생각이다.

내 방이 아직 비어 있냐고 물어보니 다행히 비어 있단다. 원래 도미토리로 갈까 했지만 몸이 피곤해서 도저히 갈 수가 없다. 처음에 네고했던 그 가격 그대로 하루 더 머물기로 한다. 오늘처럼 힘들었던 날은 좀 쉬어줘야 한다.

방으로 올라오자마자 샤워부터 하고 옷을 모두 들고 내려가서 빨래하게 가져다준다. 그리고 올라와서 만신창이가 된 신발도 물에 씻는다. 생일이 아직 두 달이나 남았는데 이번 신발은 일 년을 못 버티지 싶다. 미안해요...

잠시 침대에 누워 글을 쓰지만 너무 피곤하다. 잠을 잘까 싶어 잠시 누워있다가 다시 벌떡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한. 글이 밀려 있으면 잠이 안 온다. 이것도 나와의 싸움인 걸까. 한번 마음 먹은 일은 어떻게든 끝내야 하는 이 성격이 과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나는 본질적으로 노여사처럼 현재를 살 수는 없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런 현재에 존재하는 모습이 그리 아름다워 보이는 걸 거다.

비는 안 오는데 바깥에 바람이 심하게 분다. 그래도 오늘 저녁은 이곳의 Ca Hoi, 즉 연어를 먹고야 말 거다. 오늘은 로컬 레스토랑을 안 가고 그냥 이 거리의 식당을 갈 생각이다. 글 쓸게 아직 많이 남았기에 좀 여유 있게 밥도 먹고 쉴 수도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가방까지 세탁을 맡겨버려서 패딩 점퍼를 보관하는 작은 가방에 지갑과 핸드폰, 그리고 키보드만 챙긴다. 날씨가 추운 듯해서 패딩도 입고 나온다. 옳은 선택이었다. 바깥은 초겨울 날씨다. 사파에는 하루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있다더니 정말 동감한다.

음식을 먹을 때 흥정을 하거나 가격 조사를 한 적이 별로 없지만 Ca Hoi는 워낙 비싸고 모든 곳에서 파는 것 같기에 식당마다 물어보면서 지나간다. 어차피 버스표도 찾아봐야 하기에 쭉 한바퀴를 돈다. 대략 보니 저렴한 게 18만 동 정도다. 비싼 거는 28만 동으로 차이가 꽤 크다. 어쩌지? 일단 버스표를 못 찾아서 메인길까지 나간다.

메인길에 나가서 드디어 오전 11시에 떠나는 버스를 찾는다. 가격도 25만 동이면 12달러가 조금 안되는 거니 괜찮다. 호텔에서는 14달러를 불렀었다. 예약을 하고 돌아선다. 이제 드디어 내일 사파는 떠나게 된다. 마지막 사파에서의 저녁을 먹어보자.

고민하다 저렴한 18만 동짜리를 찾아간다. 가격 차이 만큼의 퀄리티 차이는 왠지 안날 거 같다. 사실 음식은 가성비보다 절대적인 퀄리티가 중요하다는 생각이긴 하지만 심리적 한계선인 20만 동이 넘어가는 건 먹기가 쉽지 않다.

사파에서 연어는 왜 유명한 걸까? 요리는 구이가 있고 탕이 있다. 탕이 더 비싸다. 일단 구이를 시키지만 곧 후회한다. 왠지 탕이 더 사파의 오리지널 음식일 듯하다.

여기 지역 맥주인 Lao Cai도 주문한다. 음식과 같이 달라고 한다. 여기 레스토랑은 숙소 근처에 있지만 한번도 와보지 않았다. 너무 외진 곳에 있어서 심지어 이 근처에 숙박을 해도 안 오게 된다.

조금 기다리니 음식과 맥주가 나온다. 연어구이는 사실 조금 실망이다. 그냥 연어 구이다. 알았다면 절대 이 가격으로 주문하지 않았을 거다. 역시 탕이 진리였나 보다. 반면 맥주는 아주 마음에 든다. 2만 동짜리 저렴한 Lao Cai 맥주인데 넘김이 부드럽고 시원하다. 이걸 알았으면 진작 이것만 먹을걸 그랬다.

8시임에도 이곳 식당에는 나 혼자 앉아 있다. 여기 여사장님은 임신한 상태라 구석에 조용히 앉아계신다. 앉았다 일어섰다 힘드신 듯하여 내가 냉장고까지 가서 직접 두 번째 맥주를 가지고 오니 굳이 또 따라오셔서 병을 따주신다. 이러면 내가 직접 가져올 이유가 없는데...

다시 한쪽 구석으로 가셔서 조용히 앉아계신다. 슬쩍 쳐다보니 앉아계신 얼굴에 쓸씀한 피곤함이 묻어있다. 앉아계시던 여사장님이 갑자기 조용히 노래를 부르시며 배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지신다. 애한테 불러주나 보다. 왜 난 이런 거에 마음이 갈까? 이 넓은 식당에 나 하나뿐인 게 너무나도 안타깝다.

노여사와 나는 둘 다 구세주 콤플렉스가 있다. 우린 자신이 주위 다른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과 의미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한다. 좋게 생각하면 휴머니즘이고 나쁘게 생각하면 심각한 오만이다. 연애 초기에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둘 다 상대방이 없어도 큰 문제가 없다는 거였다. 그러니 서로에게 각자의 필요성을 못 느꼈고, 우리 성향으로서는 서로를 만날 당위성을 찾기 힘들었다. 보통 '사랑'을 '우정'과 혼돈 많이 하지만 우리는 '사랑'을 '필요'와 많이 겹쳐 생각했었다.


물론 6년이라는 만병통치약 앞에서 이런 부분은 지금 사라졌지만 난 아직도 가끔 혼란스럽다. 내가 사람을 돕고 싶은 것이 과연 박애적인 행동인지, 그냥 내 자신을 만족스럽게 하는 건지. 뭐 사실, 이건 꽤 옛날 결론을 내렸었지. 사람의 행동은 모두 이기적이다. 그렇다면 그 이기적인 행동이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편이 좋겠지.

여사장님이 앉아서 공허한 표정으로 바깥을 보고 있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된다. 쓸쓸히 앉아계시던 여사장님은 여행자들이 가게 앞에 나타나면 순식간에 얼굴에 친절이라는 가면을 쓰고 밖으로 나가 온갖 홍보를 하신다. 들어올 듯 말듯 하던 여행자들은 조금 고민하는 척 하더니 그냥 등을 보이며 떠나간다. 그런 뒷모습을 뒤로 하고 가게로 들어오는 여사장님의 얼굴에서는 순식간에 그 가면이 다시 사라진다. 왜 저 여행자들의 냉정한 뒷모습이 나에게도 이리 야속하게 느껴지는 걸까. 나도 저 뒷모습을 몇 번이나 보여준 주제에.

생뚱맞지만 내가 서양 여행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최고의 마케팅은 손님이라고 내가 멋진 모습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좀 더 많은 손님이 들어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나도 손님이 없을 때의 그 심정을 아는지라 별의별 생각을 다한다. 세월호 사건 이후 많이 안 좋을 때 가게에서 하루에 손님을 단 한명만 받은 적도 있다. 그럴 때면 정말 병이 안 걸리는 게 이상할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게다가 그런 침체의 원인이 된 사건이 너무나도 안타깝던 재난이었기 때문에 우는 소리를 하기도 힘들었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지금이 차라리 훨씬 행복하다.

조금 있으니 여기 다른 직원이신듯한 분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서양 손님 4명을 데리고 온다. 어디서 데리고 온 거지? 여기 직원이 아니라 계약을 맺은 여행사인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여사장님 얼굴에 가면이 아닌 진짜 웃음이 나타난다. 희한하게도 그 4명의 손님이 들어온 이후 3명의 서양인이 더 들어오고, 2명의 서양 커플이 또 들어온다. 여사장님 입 찢어지신다. 그 모습을 보는 나까지 즐겁다. 정말 사람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연어는 별로였지만 사파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연어가 맛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기대에 못 미친 것뿐이다. 그런 면에서 사파도 마찬가지다. 미얀마부터 하도 들어왔던 사파이기에 엄청난 기대를 하고 왔는데 대도시여서 실망했고 그다지 특별할게 없어서 다시 한번 실망했었다. 하지만 마지막 떠나는 날, 나름 이곳의 매력을 느낀 것도 같다. 나는 다른 여행자들한테 사파를 어찌 설명하게 될까?

26만 동을 지불하고 나온다. 맥주를 3병이나 마셨다. 돌아오는 길에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는 한 가게를 마주친다. 또 누군가 하나의 인생이 끝나고, 또 누군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나 보다. 오늘따라 이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슬퍼 보인다. 행복이라는 커다란 집을 짓기 위한 수많은 벽돌 중에 하나가 돈이어여 하는데, 지금 세상은 돈이 그 집의 전부가 되어버린 것 같다. 해결책도 없으면서 계속 이런 고민을 하는 것도 슬프다. 진정 제도적인, 이데올로기적인 진화는 여기서 끝난 걸까? 행복이란, 이런 상황에서 오로지 개인의 득도와 만족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걸까.

에잇, 맥주 3병 마시고 취해버렸다. 그래도 오늘은 행복한 하루다. 행복한 하루가 모여 행복한 한 달이 되고, 그렇게 행복한 인생이 되는 거겠지. 헛소리 그만하고 오늘 하루를, 그리고 현재를 사는 거나 제대로 해보자. 오늘은 이대로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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