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I Aug 23.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49

Sapa, Vietnam to Hanoi, Vietnam

오늘도 역시 안개와 함께 시작하는 하루다. 새벽 5시쯤 일어나지만 신호가 올 때까지 누워서 기다린다. 오늘 하노이를 넘어가게 되면 본국에서 마지막으로 송금을 한번 더 받아야 한다. 찾아보니 하노이에는 한인 게스트하우스는 없어 보여서 한인 여행사를 검색해본다. 사실 검색해봐야 어디가 어딘지 모른다. 지명은 그곳에 가서 발로 느껴야 실질적인 의미가 부여된다.

누워서 보니 이 호텔에서 운영하는 투어 리스트가 벽에 보인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의미가 없던 문자의 나열이었던 지명들이 오늘 보니 색다르게 느껴진다. 내가 결국 찾지 못하고 어디선가 지나쳤던 Y Linh Ho, 오아시스를 발견하듯 찾게 된 마을이며 점심을 먹었던 Lao Chai, 그리고 사람들과 이별하고 홀로 귀읍길에 올랐던 Ta Van까지, 이름을 바라 보지만 추억을 느낀다.

오늘 속보를 보니 한국은 메르스로 난리다. 이전에 바이러스로 지구 멸망시키는 게임을 했을 때 보였던 감염자의 상승곡선이 지금 한국에서 그대로 보이고 있다. 별일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속보를 보니 진짜 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부모님한테 카톡을 보내서 웬만하면 집 밖에 나오지 말고 마스크 꼭 쓰고 다니시라고 당부드린다. 어떻게 여행 온 나보다 집에 있는 부모님이 더 위험한 거 같다냐.

근심을 생각보다 빨리 해결해서 7시가 좀 못되서 내려온다. 스태프가 나와 있기에 일단 정산부터 마무리한다. 근데 이 친구 기침을 한다. 사파는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하기에 감기 걸리기 최적이다. 하지만 괜히 메르스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된다. 감기 걸리면 귀국할 때 왠지 매우 매우 귀찮아질 거 같다.

안개 속 사파의 아침은 아직 한밤중이다. 시골 마을을 가면 6시부터 좌판대에 아침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많이 보이는데 유독 큰 도시에서는 그런 모습이 없다. 아침을 어디서 먹지. 문을 연 곳이 안 보인다.

결국 헤매다가 어제 아침을 먹었던 그 Lotus식당의 조식 뷔페로 온다. 여기 가성비가 좋다. 오늘 11시 버스여서 점심 식사 시간이 애매하다. 미리 많이 먹어두는 게 좋다.

역시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오픈했냐고 물으니 들어오라고 해서 어제 앉았던 그 자리에 다시 가서 앉는다. 내가 앉으니 다른 사람들도 한두 명 들어온다. 역시 첫 개시가 중요하다.

이곳에 앉아서 사파를 정리해본다. 여기서는 3박을 했다. 시포에서 6박, 방비엥에서 4박을 했으니 상대적으로 길게 있었던 곳은 아니다. 내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여행자들이 그리 칭송할 곳인가 싶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력이 없는 곳은 아니다. 이곳은 주위에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소수부족 마을들을 탐방하는 기점이 되는 곳이다. 그런만큼 트레킹은 좋아하지만 사람 구경은 그다지 흥미 없는 나여서 별로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잠시 가이드가 하는걸 보니 소수민족을 하나 하나 다 소개하여주고 사진도 찍고 하는 게 그런 쪽에 관심이 많으면 괜찮을 거 같다. 나에게 시포는 트레킹이 아름다웠던 안개 속에 신비한 도시, 이렇게 기억될 거다. 물론 인물은 역사가 판단하고 여행지는 추억이 판단하는 거니 시간이 지나 봐야 알겠지.

그나저나 너무 많이 먹었나. 살짝 눈치가 보이지만, 뷔페라고 쓰여 있으니 괜찮은 거겠지? 호박죽, 닭죽, 빵에 베이컨과 햄, 퍼가, 과일과 디저트, 주스 2잔, 커피 한잔이면 양호한 거잖아. 이 정도 안 먹으면 바보인거지. 뷔페인데.

숙소로 돌아와 10시까지 잠시 쉰다. 요즘 '얼음과 불의 노래' 책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뭔가 서양판 무협지 같아서 여행과 안 어울리는 듯 하지만 그래도 집중이 잘돼서 오랜 시간 이동하거나 할 때는 이만한 게 없다.

10시가 되어 빨래를 찾아온다. 오랜만에 모든 옷이 깨끗하다!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어제 저녁에만 한번 입은 거니 새 거와 매한가지다.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드디어 대망의 하노이로 떠난다.

시간이 되어 짐을 모두 챙겨 들고 일층 로비로 내려온다. 내 기준에서 저렴한 숙소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그만한 가치의 안락함을 제공했다. 여행지에서 룸서비스를 시켜먹는 럭셔리까지 누릴 수 있었다. 이번 여행 숙소 중 가장 기억에 남을 정도의 숙소는 아니긴 했지만 친절한 스태프들과 더불어 매력있던 곳이었다. 어찌 보면 사파에 느끼는 감정과도 비슷하다.

10시 반에 픽업해준다던 여행사 사장님은 40분이 돼도 안 온다. 버스가 11시 출발이니 좀 불안하다. 영수증에 번호가 적혀 있어서 스태프한테 전화를 좀 해서 확인해 달라고 부탁해본다. 스태프가 전화를 하고 끊더니 곧 올 거라며 조금만 더 기다려보란다.

픽업은 48분이 되어서 온다. 어제 표 살때는 뭐 일찍 가서 먹을 것도 사고 그러라더니 역시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가 제일 난감하다. 이 사람들과는 앞으로 다시 만날 일이 없을테니 뭐라 인사할지가 항상 어렵다. Have a safe life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나. 그냥 깔끔한 굿바이가 좋다. 문득 만달레이에서 쪼우마와 헤어질 때 안으려고 했다가 거부당한 생각이 나면서 민망해진다. 그때 왜 이리 오버하였을까.

오토바이 뒤에 타고 가면서 사파의 마지막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4일 전에는 생소했던 거리들이 지금은 모두 익숙하다. 광장, 성당을 지나 오른쪽 길로 들어선다. 버스 터미널 가는 길도 이미 잘 알고 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55분이다. 뭘 사고할 시간이 없다. 일러주는 버스 밑에 짐을 싣고 작은 가방만 든 체 올라탄다. 그리고 버스 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짓는다.

인도에서 슬리핑 버스를 타 본 적은 있지만 이런 버스는 처음이다. 모든 자리가 침대식으로 되어 있다. 이런 신세계가 있다니. 베트남에서는 버스가 좋다더니 정말 그렇다. 아마 나라가 크고 위 아래로 길게 뻗어 있어서 이동수단이 발달된 거겠지.

버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장판 같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신발을 손에 들고 내 자리 '9번'을 찾아간다. 앉아보니 앞쪽에 발을 뻗는 공간이 있다. 근데 나한테도 약간 길이가 짧다. 서양인들, 이거 탈 수 있을까? 아마 베트남인들 체형에 맞췄나 보다.

옆에 아저씨가 왠 뉴스를 소리 빵빵하게 듣고 계신다. 한국에서 가끔 지하철에서 보이던 비매너가 여기서도 보인다. 한국에서는 어르신들이 몰라서 그러신 걸까 봐 그런 경우 살짝 알려드리고는 했다. 하지만 여기는 문화를 모르고 언어는 더 모르니 얘기하기가 껄끄럽다. 원래 베트남 문화가 이런 걸 묵인하는 건가. 글을 쓰려고 키보드를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는다. 이런 환경에서 쓰는 글은 나중에 보면 마음에 안 든다. 너무 산만하다.

내 앞에는 3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누워있다. 그 앞에는 젊은 부부가 앉아서 아들이 어떤지 수시로 돌아보며 확인한다. 그런 모습에서 가족의 사랑이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을 짓게 된다.

나는 근본적으로 '결혼'도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는 생각을 하지 않지만 설사한다 하더라도 아이는 또 다른 문제다. 출산을 당연시하기에는 여자가 아이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게 너무 많다. 우리나라는 특히 더 심하다. 나는 그 여성이 좋아서 사랑을 하고 인생을 같이 나누고 싶은 거지 아이를 위해 내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시키고 싶지는 않다. 물론 그 사람이 아이를 원한다면 당연히 반대할 이유는 없다. 나 또한 아이들을 좋아하긴 하니까.

나는 매우 이기적이다. 내 생애에서는 내 주변 사람들과 나 또한 행복하고 싶지만 내가 떠난 이후의 세상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러기에는 내 생애 자체도 버겁다. 그러므로 인류의 발전을 위해 출산이 필요하다라는 얘기는 나한테 아무 의미가 없다. 임신과 출산이 순리라는 말에는 코웃음까지 치게 한다. 인간이 언제부터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존재였던가. 게다가 극단적으로 인류가 100명만 남는다 하더라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인구가 경제와 기술의 발전을 촉진시킬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한 인류의 정신적인 진화는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발전이 행복과 무조건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최근 저출산이 문제가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다, 혹시 내가 그런 걱정을 해야 할 상황이면 생각이 바뀔지도.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선택을 강요하는 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집단과 개인도 동등한 차원에서 관계 형성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개인의 선택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하고 싶으면 그럴 마음이 들게 해야지 강요하거나 인정에 호소하는 건 너무 안일한 태도다. 반대 상황에서 개인을 위하여 과연 집단이 희생을 해줄까.

버스는 11시 정각에 출발한다. 산을 내려가는 거라 그런지 매우 느리게 간다. 이런 편안한 버스라면 사실 20시간도 무리 없이 탈 수 있을 거 같다. 책 보고, 졸리면 자고, 글도 쓰고 모든 것이 최적화되어 있다. 생각해보니 숙박비도 아낄 겸 다음 이동은 야간 이동을 해야겠다 싶다.

버스에 대한 찬양은 딱 한시간만 유지된다. 라오카이로 추정되는 곳에 정차할 때까지 한 시간을 체험해본 결과 생각만큼 훌륭하지는 않다. 일단 앞의 공간이 짧아서 다리를 제대로 필 수가 없다. 딱 10센티만 더 길었어도 좋았겠다. 그러니 계속 다리 간수가 힘들어지고 답답함이 느껴진다. 양 옆으로도 움직이기 힘드니 그 답답함은 배가 된다. 어찌 보면 인도 슬리핑 버스가 나았던 거 같기도 하다. 거기서는 일층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가고 좀 더 비싼 슬리핑은 이 층에 매트리스 하나 놓인 상태로 있었다. 나름 좌우에 대한 이동도 자유로왔고 다리도 쭉 펼 수 있었다. 노여사와 만난 지 삼일째에 10시간을 그리 이동하게 되면서, 풋풋하면서도 로맨틱한 기억으로 남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근데 여기서 얼마나 멈추는 거지? 모르니 밥을 먹을 수가 없다. 뭐 아침을 든든히 먹어서 그런지 아직 배가 고프지는 않다. 이동이니 점심 하루쯤 굶고 다음 식사는 음식의 천국 하노이에서 즐기는 것도 괜찮다.

이 버스 덩치만 크지 동남아 다른 여타 작은 미니버스와 다를게 없다. 길을 다니면서 하노이 갈 사람들을 탐색하다 가능성이 있어 보이면 멈추고 죄다 태운다. 심지어 고속도로를 진입해서도 그렇다. 제대로 된 정거장 없이 이런 수요와 공급이 어떻게 맞춰지는지 그 자체가 신기하다. 어디 가고 싶으면 그냥 큰 길에 나와서 하염없이 서 있는 건가? 그래도 어느 정도 태우고 본격적으로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드디어 속도를 조금 올린다.

그래도 어느 정도 적응되니 좀 끼여 잘만하다. 자다 일어나도 하다 보니 어느새 오후 2시다. 근데 큰 일이다. 왜 화장실이 가고 싶지? 이거 멈추긴 하나?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기사님한테 내 텔레파시가 전달됐나 보다. 그 생각을 하고 5분도 안돼서 한 곳에 멈추더니 승객들한테 뭐라 뭐라 얘기를 한다. 쉰다는 말이겠지?

일단 급한 일부터 처리한다. 그리고 나와서 보니 이곳은 휴게소 보다는 식당 같기도 하다. 여기서 밥을 먹는 건가? 기사님과 보조직원이 테이블에 앉아있는 게 보이길래 여기서 혹시 얼마나 쉬냐고 물어보니 5분이란다. 밥 먹으라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냥 돌어갈까 하는데 사탕수수 음료의 유혹이 다가온다. 이리 된 거 도착할 때까지 밥을 못 먹을 건 뻔하고 뭐라도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지 않을까? 가서 물어보니 1만 동이란다. 비싸지도 않고 사람들도 다 마시고 있길래 하나를 주문해서 받는다.

지나다니면서 꽤 봤지만 한번도 직접 마셔본 적은 없는데 이거 꽤나 달달하니 맛있다. 원래 장기 이동 시에는 화장실 문제 때문에 물도 잘 안 마시려 하지만 보아하니 중간에 자주 쉴 거 같아서 그냥 마신다.

5분이 뭐 이리 길지. 이 시간이면 퍼보 한 그릇 정도는 뚝딱 했겠다. 먼저 자리에 돌아와 있지만 그 이후에도 10분은 지나서야 사람들이 돌아온다. 별 수 있나, 언어가 안 통하면 한발 먼저 움직이고 조금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다시 출발이다.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뭔가 슬슬 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아까 갔다 왔잖아. 너 나한테 왜 이러는 거니. 아직 4시 밖에 안됐는데 매우 불안하다. 불안함을 떠나 초조함이 내 속에 울려 퍼진다.

지도를 펴보니 근처까지 온게 아무래도 이제는 중간에 더 안 멈출 듯하다. 스태프가 지나갈 때 슬그머니 건드리고 작은 목소리로 혹시 화장실을 위해 멈출 수 없냐고 묻는다. 정말 절박했다. 스태프가 뭔가를 생각하는듯 하더니 "20분"이라고 얘기한다. 그래, 20분은 참을 수 있지. 이게 다 아까 그 사탕수수 주스 때문이다. 원래 그렇듯이 아무것도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다리를 비비 꼬으면서 생각을 다른 것으로 돌리고자 책에 집중해본다. 20분은 그래도 인간적으로 참아보자. 그리고 못 참으면 어쩔 건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도시에 가까워지며 차가 중간에 많이 서기 시작한다. 휴식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을 내려주기 위함이다. 이제는 사람들도 엄청 내려서 몇 명 안 남았다. 그리고 하노이 시내에 진입한다. 딱히 얘기를 안 해줘도 바깥 풍경에서 하노이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비아호이가 수도 없이 보이고, 고층건물들이 즐비하다. 차도 많아지고 무엇보다 오토바이 천국이다.

 이제 곧 도착인가? 한 터미널 같은 곳에서 또 다시 우루루 내린다. 아까 나한테 20분이라고 알려준 그 스태프마저 내린다. 야, 난 어떻게 하라고. 근데 그 스태프가 얘기한 20분은 휴게실에 들리는 시간이 아니라 하노이에 곧 들어간다는 얘기였던 거 같다.

소심하게 앞으로 가서 운전수한테 물어본다. 오늘따라 왜 이리 소심해지지. 호안끼엠 호수로 가려고 하는데 여기서 내려야 하냐고 물으니 좀 생각하더니 일단 다시 돌아가서 앉으란다. 나 내리고 싶은데... 근데 좀 참다 보니 이제 또 참을만하다. 이것도 몸이 적응하는 건가? 별걸 다 적응하네. 좋게 생각하자. 이게 만약 작은 일이 아닌 큰일이였으면 난 죽었을 거다.

외곽 순환 도로 비슷한 큰 길을 달리던 버스는 중간에 어딘가로 방향을 튼다. 지도를 보니 내가 가려는 구시가지 방향이다. 조금 참아서 목적지에 조금 더 가깝게 내린다면 남는 장사다.

혹시 구시가지까지 갈려나 싶었지만 큰 길 어디쯤에서 차는 이제 완전히 멈춘다. 그러더니 모두 내리라고 한다. 종점인가 보다. 살았다. 일단 짐을 챙기고 후다닥 내린다. 그리고 화장실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여기 화장실이 있을 턱이 있나. 화장실 때문이라도 밥을 지금 먹을까 싶다가 다시 돌아오니 타고 온 버스의 사무실이 보인다. 들어가서 물어보니 다행히 화장실이 있다.

급한걸 처리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이제 드디어 하노이에 온 느낌이 난다. 아까까지는 눈앞에 닥친 상황만 신경 쓰였는데 이제는 좀 찬찬히 둘러본다. 하노이의  첫인상은 오토바이판이다. 개미떼처럼 오토바이가 도로를 점령해서 위험천만한 곡예운전을 하고 있다. 그에 비례하여 수많은 경적들이 도시의 소음을 장식한다.

지도를 보니 일단 길을 건너야 한다. 여기  미얀마처럼 그렇게 눈치 보며 건너야 하는 걸까?  다행히 한편에 횡단보도가 보인다. 이런 오토바이 난장판에서는 그냥 건널 자신이 없었는데 살았다. 그 앞에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10분을 기다렸다. 이거 폼인가 보다. 저 신호등은 도대체 왜 놔둔 걸까? 예술 작품인가? 그나저나 이거 어찌 건너지? 여긴 미얀마와 차원이 다르다.

눈치 보고 있을 때 현지인 한 명이 구세주처럼 나타나서 길을 건너기 시작한다. 이때다. 바로 옆에 딱 붙어서 간다. 건너는걸 보니 이거 혼자 건너려면 목숨을 내놔야 하지 싶다. 무슨 매트릭스에서 니오가 총알을 피하듯한 순발력으로 길을 건너야 한다. 더 웃긴 건 한쪽에서는 사람이 아닌 오토바이가 그런 식으로 이 미로를 파헤치며 길을 가로질러 건너고 있다. 여기 사람들 생활의 달인에 전부 다 나와야 한다.

길을 건너오니 어떤 오토바이 기사님이 익숙한 "모토바이크?"라며 나에게 묻는다. 이건 어디 가나 똑같군. 나도 어차피 걸어갈 수는 없는 거리기에 흥정을 해본다. 살짝 여기서 한번 걸어가 볼까 하는 욕심도 생겼지만 이런 트레킹은 지금으로서는 무리다.

이 기사님이 영어를 너무 못해서 설명이 힘들다. 이때 옆에 왠 깔끔하게 옷을 챙겨 입은 청년 하나가 오더니 영어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본다. 상황을 설명하니 중간에 중재를 해준다. 7만 동이라길래 적절한 가격이냐고 물으니 적절하다고까지 알려준다. 아 너무 고맙다. 나도 한국에서 외국인이 헤매고 있는 거 보면 이제 진짜 무조건 도와줄 거다.

오토바이 뒤에 타고 하노이 시내를 누빈다. 20분의 짧은 라이딩을 하면서 하나 결심한다. 이 동네에서는 스쿠터를 렌트 안 할 거다. 여기는 나 같은 아마추어들이 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게 딱 내 꼴일 거다. 중앙선 침범은 예사에 신호등도 거의 없이 눈치로 파고들어야 한다. 눈치 백 단 베트남인들이다.

호안끼엠 호수를 지나 구시가지에 접어드니 영어 표지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양 여행자들이 커다란 가방을 메고 걸어 다니는 익숙한 모습도 보인다. 이런 광경을 보니 좀 마음이 놓인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와서 이태원으로 직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거긴 진짜 한국이 아니라고 무시했었는데 이제 그런 모습이 이해가 된다. 영어가 안 통하는 대도시에서 여행자 거리는 하나의 오아시스이다. 

내가 목적지로 삼은 Ma May 거리로 들어온다. 기사님도 여기서는 길을 잘 모르시는지 두리번 두리번 거리신다. Sports Backpakers Hostel이 오늘의 목적지다. 이유는 딱 하나, 제일 저렴하다. 도미토리 5달러에 시설도 훌륭하다는 리뷰를 보고 찾아가는 중이다.

결국 그냥 내린다. 어차피 좀 걷고 싶었다. 기사님한테 7만 동을 드리고 배낭을 짊어진다. 역시 배낭여행은 배낭을 메고 걸어 다녀야 완성된다.

여기 거리는 에너지로 넘친다. 카오산처럼 여행객들만을 위한 곳도 아니고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작은 목욕탕 의자에 앉은체 여기저기서 젊음을 즐기고 있다. 5분 걷자마자 이 거리와, 그리고 하노이와 사랑에 빠진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행자 거리다.

가는 길에 두어 군데 거쳐보지만 역시 6달러 밑으로는 없다. 목적지인 Sports 호스텔에 가서 물어보니 7달러란다. 또 왜 이런데. 부킹닷컴에서 보고 왔다니까 조식 없이 5달러에 해주겠단다. 조식 2달러면 밖에서 먹는 게 훨씬 낫다. 당연히 5달러에 계약한다.

4층까지 올라가야 하는 게 좀 힘들긴 하지만 방은 훌륭하다. 현대식 시설에 에어컨도 빵빵하고 침대도 푹신푹신하다. 어차피 잠만 잘 곳에 이것보다 좋은 건 필요 없다. 딱이다.

짐을 놔두고 바로 내려온다. 오늘 점심도 스킵했으니 저녁을 빨리 먹고 싶다. 오면서 만난 수많은 멋진 가게들이 내 식욕을 한껏 올려놨다. 특히 중간에 곱창처럼 구이를 먹는 곳이 완전히 좋아 보였다.

내려가서 바로 그 구이집을 찾아간다. 호텔 바로 앞이다. 다시 봐도 여기는 대박이다. 사람들이 먹는 걸 보니 비주얼로는 딱 곱창 느낌이다. 작은 목욕탕 의자에 앉아서 메뉴를 본다. 소고기 12만동, 돼지고기, 닭고기 80만동이다. 역시 고기는 돼지고기지. 8만 동, 약 4천 원에 돼지고기 1인분을 주문한다.

이게 4천 원이란 말인가. 진심으로 감탄한다. 하얀 초 같이 생긴 고체연료를 밑에 넣고 불을 붙이니 확하고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 위에 철판을 올리고 은박지를 깔아서 고기를 구울 수 있게 해준다. 고기와 야채가 너무 많아서 한번에 다 올라가지도 않는다. 이 거리가 더욱 더 마음에 든다.

옆에 한국말이 들린다. 한 커플이 먼저 앉아 있었는데 한국인이었나 보다. 자연스럽게 인사를 한다. 남자분은 이곳에서 지금 일을 잠시 하고 있고, 부인이 놀러 왔단다. 여행자는 아니기에 대화하기가 좀 애매하다. 한번 얘기를 나눈 후에 따로 각자 먹는다. 이거 뭔가 어색하다. 괜히 말 걸었나.

다행히 빨리 드시고 일어난다. 이제 좀 여유 있게 혼자 이 풍성한 만찬을 즐겨봐야겠다. 맥주도 2만 동이다. 사파에서 3만 동이었으니 훨씬 저렴하다. 아까 살짝 보니 비아호이는 무려 5천동이다. 사파에서 15,000동에 팔길래 싼 줄 알았더니 3배를 받는 거였다. 이 사기꾼들. 진정한 비아호이는 한잔에 250원, 천원에 4잔이다. 

앉아서 홀로 먹고 있는데 옆에 어느 서양 노부부 한 커플과 현지인이 앉는다. 좀 신기한 조합이다. 현지인이 가이드인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모두 하나씩 푸짐하게도 주문한다. 또 자연스레 눈인사를 나눈다. 근데 이분들은 여행자 느낌이다. 나이를 떠나서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

자연스레 합류해서 대화를 시작한다. 뉴질랜드 분들이다. 여자분은 나를 보고 자기의 옛날 생각이 나신단다. 젊을때 배낭 여행을 5년 동안 했단다. 고수다. 일 하면서 여비를 벌면 떠나고 또 돈 떨어지면 일하고 이런 생활을 계속 했다고 한다.

남자분은 무려 70세다. 하지만 무척 정정하시고, 무엇보다 마인드가 너무 젊다. 어른하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친구와 대화하는 것 같다. 여자분도 50세가 다 되어가시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서 언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낀다. 우리나라 말로 얘기해서는 나이 차이가 이리 많이 나는 사람들끼리 친구가 된다는 건 쉽지 않다. 호칭과 예의가 세대간 친구화를 용납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어는 다르다. 그냥 이름을 부르면서 대화를 하다 보니 친구가 되어버렸다.

한참 대화를 하는데 갑자기 주인이 나타나더니 호들갑스럽게 우리 판을 들고 서둘러 안으로 옮긴다. 뭐지? 어리둥절하고 있으니 노부부와 함께 온 현지인이 경찰이 떴다고 알려준다. 테라스 영업이 불법인가 보다. 갑자기 모두 판을 들고 가게 안 좁은 곳으로 옮긴다. 이건 진짜 '웃픈'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행자이기에 이 모든 경험도 다 즐겁다.

안으로 옮겨서 대화를 이어간다. 이번에는 옆에 다른 팀까지 합류를 한다. 아까 그 현지인은 가이드가 아니라 호텔 스태프인데 그냥 같이 밥을 먹으러 왔단다. 가이드 이름이 케빈이라길래 네 원래 이름을 알려달라고 한다. Loc이란다. 훨씬 낫다. 왜 굳이 영어 이름을 쓰니. 아인슈타인을 닮은 70세 노인분은 Dave, 여성분은 Rachael이다. 나는 이름에 마법적인 힘이 있다고 믿는다. 이름을 불러야 진짜 친구가 되는 법이다.

뭔가 모르게 이분들과 코드가 너무 잘 맞는다. 행복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내 인도 여행 얘기를 하다 라셸이 부탄을 가봤냐고 물으면서 거기가 행복지수가 1위라고 꼭 가보고 싶다고 한다. 헌데 그런 행복이 과연 좋은 걸까? 한때 많이 고민했던 내용을 풀어놓는다. 인도, 미얀마, 부탄 이런 곳의 사람들을 보면 행복해 보이지만 그 행복은 무지에서 오는 게 크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교육 수준과 행복은 반비례한다. 알면 알수록 자신의 현재 위치를 깨닫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걸까 지식을 추구해야 하는 걸까? 나는 개인적으로는 무지에서 오는 행복은 거짓 행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행복이란 게 절대적인 가치는 아니기에 거짓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 있지만 최소한 나는 그런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지식을 동반한 행복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 대화를 필두로 자본주의, 행복, 인생 등에 대한 다양한 대화를 나눈다. 나는 원래 누나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형님들을 좋아한다. 친구긴 하지만 확실히 연륜에서 오는 내공이 있어서 오래간만에 정말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거기에 현지 스태프인 록도 가끔 자기의 얘기를 한다. 옆에 테이블의 여행자들과도 얘기를 나눈다. 인도 사람이 있기에 갠지스강을 헤엄쳐 건너갔다 왔다고 하니 진짜 소스라치게 놀라면서도 반가워한다.

이분들과 의기 투합해서 하롱베이 투어를 같이 가기로 한다. 내일은 하루 하노이 탐방을 하려 했는데 이분들도 그리 하려고 했다니 모레 같이 가면 스케줄도 딱 맞아 떨어진다. 거기에 록이 현지 지식을 이용해서 저렴하게 예약을 해주겠단다. 17달러에 선상 숙박 투어가 가능하단다. 이게 가능한 건가? 23달러 까지는 봤지만 17달러는 정말 저렴하다. 물론 최하위 옵션도 나는 괜찮지만 두 노부부는 어떨지 걱정됐는데 이분들도 전혀 상관없단다. 또 한번 어머니 생각이 난다. 이분들도 이리 다니는데 어머니는 왜 안될까.

록이 2차로 비아호이를 가자고 제안한다. 다들 환영이다. 앉아 대화를 나누면서 이분들의 술을 내가 몇 잔 먹었기에 같이 먹은 술 하나를 내가 내려고 하는데 한사코 마다하신다. 난 내 것만 계산하고 록도 자기 거를 계산하고 나머지는 데이브와 라셸이 계산한다.

 

록을 따라 비아호이를 찾아 나선다. 한쪽 골목에 들어서니 수 많은 사람들이 작은 목욕탕 의자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 광경이 나타난다. 나도 모르게 하하 웃음이 나면서 기분이 한껏 들떠오른다. 하노이! 정말 사랑스럽다. 외국인만 있는 게 아니고 현지인들과 외국인이 정말 아무런 구분 없이 섞여서 신나게 이 밤을 즐기고 있다. 비아호이는 단순히 술이 아닌 문화라는 것을 이곳에서 느낀다.

자리가 없어 보이지만 가까이 가니 여기저기 비켜주면서 자리를 만들고 한켠에서 목욕탕 의자를 4개 가지고 와서 앉는다. 250원짜리 비아호이를 4잔 주문한다. 자리가 비좁으니 앉는 순간 근처 사람들은 모두 자연스레 대화 일행이 된다. 왼쪽에는 영국인 두 명이 따로 먹고 있다가 같이 합류해서 얘기를 나눈다. 이 친구들은 또 무척 어려 보인다. 여기서는 나이, 국적, 성별 다 무의미하다. 그냥 다 친구다.

좀 대화를 나누는데 또 경찰이 떴단다. 경찰들 이거 퍼포먼스 차원에서 나오는 거 아냐? 또 다시 자기 잔을 각자 들고 우루루 안으로 옮긴다. 경찰차가 지나가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쫙 물러나는 것이 흡사 모세의 기적을 보는 것 같다. 이게 그런데 단속도 안 하고 그냥 지나간다. 들어보니 그래도 안 옮기면 별도로 벌금을 매긴 다는 것 같다. 어찌 보면 공권력의 남용이지만 이런 스펙타클한 상황이 우리는 그냥 마냥 즐겁다.

컵을 들고 피해 있는데 옆에 한국인 커플이 눈에 띈다. 또 인사를 나눈다. 역시나 나를 보더니 한국인이었냐며 깜짝 놀란다. 이젠 뭐 익숙하다.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경찰이 지나가서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한국인 커플은 내가 정말 자유로운 영혼 같다면서 멋있다며 부러워한다. 멋있다는 말, 진짜 오랜만에 듣는다. 오늘은 나도 좀 많이 신나 있어서 모든 얘기가 좋다. 그 두분도 우리 대화하는데 합류하라고 제의를 해 드리니 영어를 못하신다며 겸연쩍어하신다. 이때 라셸이 그냥 무조건 같이 얘기하자며 이들을 끌어들인다.

오늘은 정말 잊지 못할 밤이다. '비아호이'가 뜻하는 매력을 이제야 진정 알게 된 거 같다. 여행자들끼리 술 한잔 하며 나누는 대화는 진실되다. 특히나 행복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누게 된다. 영국인 총각들은 자기 나라에 대판 비판 의식이 무척 강렬하다. 라셸은 한국 정치와 남북한 역사에 관심이 많다. 이건 하롱베이를 가면서 내가 설명해주기로 한다. 대신 한글에 대한 얘기를 살짝 껴넣으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자랑도 해본다. 하지만 역시 한국은 강남스타일의 나라로 모두 인식하고 있다. 슬프다.

중간에 통역을 해주려 최대한 노력하지만 한국인 커플은 아무래도 대화가 안 통하니 힘들어한다. 두 분이 먼저 일어난다. 남은 사람들끼리는 술을 계속 마신다. 비아호이는 이제 우리가 다 먹어서 떨어졌고, 병맥주를 이어 마신다. 오늘 좀 과음한다.

10시쯤 돼서 일어난다. 나 너무 신나 있었나 보다. 끊임없이 마시고 있는데 다른 분들이 일어나기에 아 이제 갈 때가 됐구나 싶으면서 같이 일어선다. 두 분은 나이도 있으셔서 좀 피곤하실 거 같다. 계산은 자기가 먹은 만큼 알아서 할머니 사장님한테 건네드린다. 난 비아호이 3잔과 병맥주 하나해서 35,000동을 낸다. 2천 원이 안 되는 돈으로 저녁을 불태웠다.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록과 데이브, 라셸에게는 내일 내가 그쪽 호텔로 한번 찾아가기로 한다. 이들과 함께 하는 하롱베이 투어도 기대된다. 나보고 괜찮냐고 묻는다. 술을 은근 많이 마시긴 했지만 즐겁게 마셔서 그런지 많이 취하지는 않는다.

도미토리로 돌아오니 옆 침대에 한 명이 이미 자고 있다. 최대한 소리를 안 내면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는다. 잊기 전에 글을 쓰고 싶어서 키보드를 꺼내지만 타이핑하는 소리에 옆에 사람이 깨는 듯해서 접는다. 글은 기다릴 수 있다.

하노이에서의 첫 번째 밤은 상상 이상이다. 하노이 자체가 내 생각 이상의 매력을 보여줬다. 내일 하루는 하노이를 돌아다니며 그 매력을 더 파헤쳐볼 생각이다. 베트남, 기억에 오래 남을 나라일거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4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