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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Sep 03.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50

@ Hanoi, Vietnam (City Tour)

머리가 아프다. 어제 그렇게 신나게 달렸으니 숙취가 없는 게 이상한 거겠지. 숙취가 좀 업어지길 바라면서 잠을 더 청해 본다. 에어컨과 푹신한 침대는 다행히 아늑한 잠자리를 제공해준다.

8시가 지나니 두통이 좀 없어진다. 오늘 원대한 계획을 잡았는데 다행이다. 그렇다면 슬슬 오늘 하루를 시작해볼까?

일단 오전에는 그렇게 먹고 싶었던 반미를 드디어 맛보고 어제 지나가면서 본 한인 여행사에서 수금을 받은 후 시원한 카페에서 밀린 글을 쓸 생각이다. 그 이후에 록과 라셸, 데이브네 호텔에 가서 하롱베이 투어를 예약하면 오전 일과는 끝이다. 오후에는 어제부터 생각해놓은 나만의 하노이 버스투어를 갈 거다. 대중 교통만을 이용해서 그 곳이 어디든 한번 하노이를 제대로 둘러보고 싶다. 혼자만의 모험을 즐기고, 혹시라도 길을 잃는다 해도 택시를 타면 금방이니 위험할 것도 없다.

일단 나와서 한인 여행사에 들려본다. 근데 송금을 흔쾌히 해주실까? 막상 들어가보니 한국인이 없다. 흠 일이 좀 꼬이는데...


근데 스태프 한 명이 한국말을 유창하게 한다. 비정상회담에 나가도 될 수준이다. 외국인한테 한국말을 하는 거는 항상 어색하다. 나 같이 송금을 부탁하는 상황이 종종 있는지 설명하니 바로 이해한다. 그러더니 잠시만 기다리라며 사장님을 전화해서 연결해준다. 사장님한테 상황을 설명드리며 선처를 호소해보는데 금방 해주시겠다고 한다. 6만 동에 맞춰서 오늘 시세로 308,000원을 드리기로 한다. 역시 따로 수수료는 안받으신다. 여행 다닐 때 이렇게 도와주시는 분들이 다들 너무 고맙다.

일단 노여사에게 입금을 부탁해야 하기에 밥을 먹으러 나온다. 계속 맛보고 싶었던 반미를 찾으러 골목을 누빈다. 이거 진짜 신기하다.  어제 저녁에는 그리 많이 보였던 반미 판매소가 막상 지금 찾으니 또 하나도 안 보인다. 반미는 정말 나와 인연이 없는 걸까? 어디에 이렇게 꼭꼭 숨은 거니. 이게 찾기 힘든 음식이 절대 아닐 텐데 나와 연이 지지리도 안 닿는다.


찾아 헤매다 보니 사람이 가득 찬 식당이 하나 보인다. 국수에 이것저것 들어간 게 무척 맛있어 보여 물어보니 3만 5천동이다. 그래 이걸 먹자. 음식도 연이라는 게 있으니 반미도 때가 되면 내 앞에 모습을 나타날 거다.

작은 목욕탕 의자에 앉아서 이름 모를 국수를 먹는다. 완자 같은 거와 우엉 같은 야채가 들어가 있는 게 꽤나 맛있다. 베트남에서는 진짜 아무거나 정말 아무거나 먹어도 다 맛있다. 실패를 한적이 없다. 음식 이름을 굳이 이름을 외울 필요도 없는 게 그냥 눈에 띄는 사람 많은 곳에 들어가면 그게 맛집이다.


밥을 먹으면서 노여사에게 부탁해서 입금을 한다. 그럼 노여사한테 빚진 게 총 얼마지? 정산은 한국 가서 생각하자. 아침으로 배룰 채우고 일어나서 계산하고 나온다.

다시 여행사로 간다. 한국말 잘하는 스태프가 6만 동을 미리 준비해놨다. 혹시나 싶어서 하롱베이 투어를 물어보니 제일 저렴한 게 70달러가 넘는다. 어제 록이 말한 게 혹시 17달러가 아닌 70달러였나? 너무 차이가 난다. 뭐 조금 있다 가보면 알겠지. 드디어 베트남에서 쓸 마지막 돈을 수금하고 나니 마음이 안정된다. 마지막 100달러는 비상금으로 일단 놔둘 생각이다.


이제 밀린 글을 써야 한다. 글이 밀려있으면 계속 찝찝하다. 이걸 끝마쳐야 다음 일정을 마음 편히 할 수 있다. 카페를 찾아다니는데 다들 베트남식으로 길에 쪼그리고 앉는 식이지 안쪽에 테이블이 있는 일반적인 카페가 잘 안 보인다. 글을 쓰려면 그런 곳이 필요하다. 그러다가 적절한 곳을 발견한다.

카페가 꽤나 빈티지하게 잘 꾸며져 있고 안쪽에는 에어컨도 있다. 자리를 잡고 코코넛 밀크가 들어간 커피를 시킨다. 나온 걸 보니 꽤나 맛있어 보인다.

이제 자리를 잡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어제 버스 내린 이후 글을 못 썼으니 한참을 밀렸다. 그래도 이런 좋은 조건에서 글을 쓰다 보면 어제 여행을 다시 한번 경험하고 복기도 하게 되서 즐겁다. 글을 씀으로써 나는 여행을 두 번 하게 된다.


2시간을 앉아서 글을 쓰고 사진을 첨부한다. 와이파이가 되면 아예 올려버릴까 했는데 아쉽게도 와이파이는 고장 났단다. 일단 나중에 클릭 한 번으로 올릴 수 있게 저장해둔다. 올리지 않고 이렇게 저장만 해둬도 마음은 안정된다.


어제 글을 다 썼으니 이제는 오늘 글을 쓴다. 이제 살짝 힘이 들고 손가락도 아프지만, 할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해놓아야 한다. 글이 밀려있는데 여행을 다니면 계속 더 밀리는 기분이라 짐을 안고 가는 거 같다.


11시 반이 되어서야 모두 완료한다. 아 이제 좀 속이 시원하다. 이제 록의 호텔에 들려서 예약을 하고, 점심을 먹은 후 진짜 하노이 탐방을 시작한다. 근데 점심은 어디서 먹을까? 이곳에 맛집이 꽤 있던 거 같은데 오랜만에 검색해서 가볼까 싶다.

일단 록의 호텔을 찾아간다. 지도를 참조하고 주소를 보고 찾아가니 생각보다 금방 찾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말이 지금도 많지만 확실히 초행길에는 도로명을 기반으로 한 주소 체계가 찾아가기 쉽다.


록이 안에서 나를 보고 엄청 반가워하며 활짝 웃는 얼굴로 나와서 맞이해준다. 하루 만에 뭘 이리 반가워하냐. 길을 쉽게 찾았냐고 묻길래 주소만 있으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다고 당당하게 얘기해준다. 록은 아침에 숙취로 두통이 좀 있었다고 호소한다. 나만 그런 거 아니었다. 하긴 꽤 마시긴 했다.


다른 얘기하기 전에 일단 하롱베이 투어부터 확정한다. 역시 70달러였다. 하긴 17달러는 말이 안되긴 했다. 아, 이러면 돈 찾은 게 좀 부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상금 100달러가 있으니 그걸로 충당이 되긴 하겠지만 간당간당해진다. 게다가 라셸과 데이브가 이미 한 단계 높은 80달러로 예약을 끝냈단다. 확실히 부담이 좀 되긴 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런 돈은 아끼는 거 아니다. 예약을 한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앉아서 이런 저런 수다를 떨면서 록에게 궁금한 것도 다 물어본다. 다음 목적지인 Phang Nha 국립공원에 대해서 물어보니 매우 아름다운 곳이라며 꼭 가보라고 한다. 자기가 슬리핑 버스도 예약 해주겠다고 한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18달러다. 생각보다 비싸다. 하지만 그 버스는 외국인 대상이라 자리도 넓고 안에 화장실도 있단다. 올 때 고생한 거 생각하면 무척 땡기는 얘기다.


다음 목적지를 Phang Nha로 가는 건 맞는데 돌아온 당일에 떠날지 하루 더 자고 갈지 그게 문제다. 록이 자기 호텔 방도 12달러에 할인해 주겠다고 하는데 이건 저렴한 건지 비싼 건지 감이 안 잡힌다. 에어컨 방이니까 객관적으로 나쁘지는 않다. 하롱베이에서 돌아온 당일에 떠나는 것도 시간상 가능하고, 호텔에서 샤워도 할 수 있게 해준단다. 결국 그냥 다 해준단다. 나만 정하면 된다.


시내버스를 타고 오늘 하루 도시내 모험을 한다고 하니 스텝들이 극구 말린다. 하노이의 버스들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자기들도 잘 안 탄단다. 게다가 버스 한 번에 7000동인데 4달러면 하루 종일 스쿠터를 빌리니 가격적으로도 메리트가 없다고 한다. 이러면 안되는데. 귀가 얇아진다.


일단 밥을 먹어야겠다. 여기 근처 식당 중 괜찮은 곳을 추천해달라고 하니 바로 옆에 분차를 잘하는 집을 얘기한다. 그러고 보니 이 근처에 분차 유명한 집 있지 않았었나? 찾아보니 Dac Kim이라고 나와서 물어본다. 유명한 집인지 스탭들도 모두 아는 집이고 맛있긴 하단다. 하지만 분차 맛만 보면 옆 집과 큰 차이가 없다고 강조한다. 대신 닥킴은 이름값 때문에 좀 더 비싸고 메뉴 종류가 좀 다양하다고 한다. 뭐 그럼 굳이 멀리 갈 필요 있나. 언제부터 검색해서 다녔다고. 그냥 옆에 집에 가기로 한다. 괜찮다는데 록이 굳이 또 식당까지 데려다 준다. 이래서 술접대가 무서운가 보다. 하룻밤 술자리를 같이 하고 나니 무척 친밀해졌다.

분차와 넴을  하나시킨다. 분차는 3만 동, 넴은 6 천동이다. 바로 옆에서 숯불로 고기를 굽고 있다. 저 고기가 분차 안에 들어가는 거다. 바로 옆에서 굽고 있으니 뭔가 더 맛있어 보인다. 조금 기다리니 면과 국물, 그리고 야채도 준다.

사파에서 먹은 분차는 분차가 아니었다. 이게 진정한 분차다. 차이가 뭐냐고 물어보면 사실 딱히 답할 건 없다. 그냥 더 맛있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에서 먹는 숯불 돼지가 올라가는 냉면과 살짝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진짜로, 베트남 음식은 그냥 다 맛있다. 미쳐버리겠다.


밥을 먹고 있는데 멀리서 익숙한 커플이 보인다. "데이브!"라며 내 두배 나이 되는 어르신의 이름을 크게 부른다. 둘 다 나를 보더니 엄청 반가워한다. 정말 사람이 친해지는 건 시간보다 마음을 얼마나 나눴냐가 중요하다.


데이브와 라셸은 시장에 갔다 온단다. 피곤한지 오후는 호텔에서 쉴 거 같다. 어제 버스 모험 얘기를 내가 했어서 라셸이 어떻게 재미있었냐고 물어본다. 사람들이 말려서 고민 중이라고 하니까 뭘 고민하냐고, 길을 잃는 것도 여행의 한 부분 아니냐고 반문한다.


둘이 돌아가고 혼자 앉아서 결정을 한다. 그래, 여행은 효율적인 것보다 경험이 중요하다. 목적지를 저렴하게 최적의 방법으로 가는 방법이야 많지만 나는 말 그대로 도시를 경험하고 싶은 거다. 나한테 경험은 항상 다리가 아픈 만큼 전달되었었다. 걷자. 버스를 타자.


다시 록의 호텔로 가니 라셸과 데이브가 로비에 있다가 날 보고 방긋 웃는다. 이 분들도 다음 일정에 대해 록과 대화중이었다. 원래 사파는 안 가려고 했는데 내가 어제 하는 얘기를 듣고 사파를 다음 여행지로 잡았단다. 사파 좋지. 트레킹은 꼭, 반드시, 가이드와  함께하라고 전해준다.


록한테 일단 오토바이는 안 빌린다고 한다. 그리고 하노이의 두 군데를 집어달라고 한다. 그 두군데를 목적지로 잡고 한번 가봐야겠다. 사실 목적지가 중요한 건 아니기에 어디든 상관없다.


록이 문묘사원과 하노이깃발타워를 추천해준다. 라셸이 호찌민 묘소도 한번 가보라고 한다. 오케이, 어디든 가보자.


이때 라셸이 자기도 같이 가자고 한다. 데이브는 피곤해서 쉰다며 혼자 있으니 할것도 없고 나를 따라오고 싶단다. 어, 이게 아닌데. 내일 같이 투어를 하는 건 좋지만 오늘은 혼자서 천천히 돌아다니고 싶다. 하지만 혼자 있고 싶다는 얘기를 차마 하지 못하고 많이 걸어 다니고 헤맬 거라서 같이 다니기 힘들 거라고 얼버무린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자기 잘 걷는다던 라셸이 문득 내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그럼 괜찮다고 혼자 가라고 얘기해준다.


록에게 하롱베이 투어 후에 하루 머물지 바로 떠날지는 내일 오전에 얘기해주기로 하고 일단 길을 나선다. 구글 지도에 목적지를 넣으니 버스 어디서 타고 내리고가 다 상세하게 나온다. 일단 버스를 타러 가볼까. 하노이 모험이 이제 시작된다!

버스를 타러 걸어가는데 아까 라셸한테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돌려서 얘기한 게 못내 걸린다. 그냥 내가 혼자 다니고 싶다고 하면 될걸 괜히 라셸 핑계를 대며 무책임하게 거절했다. 솔직함이 제일 좋은 건데, 항상 중요한 순간에 이리 도망가는 버릇이 있다. 내일 봐서 사과하고 싶다. 하지만 이건 사과하기도 좀 애매한 얘기긴 하다.

구석진 곳을 지나서 20분 정도 걷는다. 버스 정거장은 생각보다 쉽게 발견한다. 버스 노선을 읽는 게 조금 어렵긴 하지만 유심히 처다보니 금방 깨닫는다. 어차피 사람들이 타게 하려고 만든 시스템이니 어렵게 만들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22번 버스에 오른다. 큰 돈 밖에 없어서 7 천동을 어찌 내지 고민하고 있는데 타니 버스 안에 한 명이 받아서 잔돈을 챙겨준다. 자리에 앉으니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온다. 생각보다 버스는 한가하다. 아마 모두 스쿠터를 타고 다녀서 그런 거 아닌가 싶다.

5 정거장을 가야 한다. 키보드를 피고 글을 쓰면서 정거장 수를 센다. 그러면서 지도도 확인해본다. GPS가 상태가 안 좋긴 하지만 도로명을 참조하면 대충 위치 파악이 된다. 꽤 먼 줄 알았는데 30분도 안되니 도착이다.


버스에서 내린다. 이거 뭐 이리 쉽다냐. 구글 지도 이거 사기템이다. 이거 있으면 모험이 아니라 그냥 내비게이션 따라가는 게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있는걸 안 쓰기도 그렇고 좀 김이 센다.


길을 가는데 한 외국인이 같이 간다. 눈이 마치고 자연스레 인사를 나눈다. 얘기를 나눠보니 칠레 사람이다. 지도가 없어서 헤매고 있기에 내가 길을 알려주며 같이 걷는다.


근데 길이 반대인 거 같다...? 물어보니 이 사람은 호찌민 묘지를 간단다. 나는 문묘사원을 간다고 하니 같이 가고 싶어 하는 눈치다. 여행 혼자 다니기 정말 어렵다. 이번에는 말이 나오기 전에 그냥 혼자 가고 싶다고 얘기해버린다. 대신 가는 길을 같이 찾아주고 방향을 알려준다. 어차피 나도 호찌민 묘지로 가긴 갈거니 또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제 다시 홀로 문묘 사원을 찾아 나선다. 호찌민 묘지와 문묘 사원은 생각보다 가깝다. 걸어서 30분이 안 걸리는 거리다. 이따 다시 걸어서 와야겠다. 한번 정도 길을 잘못 들고 해메지만 역시 지도가 있으니 너무나도 쉽게 찾는다. 이게 무슨 모험이야!

3만 동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다. 이곳의 느낌이 우리나라 경복궁 같은 것이, 어느 도시에나 있는 그런 유적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설명을 읽어보니 여기는 차라리 경복궁보다는 성균관과 비교해야 맞을듯 싶다. 예전에 유교를 가르친 학교이다. 건축 양식과 동상들을 보니 중국의 영향이 매우 크게 느껴진다. 베트남도 중국 영향권이었나. 하긴 육로로 이어지니 그렇겠다.

들어가서 벤치에 앉아서 글을 쓴다. 오늘 글 참 많이 쓴다. 어제 글을 안 쓰고 자서 그렇다. 이게 조금씩 밀리면 나중에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진다. 그때그때 써야 한다. 근데 여기 정말 덥다. 절대적인 더위는 만달레이나 캄보디아에 비할바가 아니지만 습기가 많아서 체감적으로는 더 덥게 느껴진다. 땀으로 목욕을 하지만 이건 익숙해져야 한다.

그런데 유교가 종교라고 봐야 하나? 유학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학문이지 종교는 아니지 않나? 사람들이 공자로 추정되는 동상에서 기도를 하고 비는 게 보인다. 뭔가 이상하다. 개인적으로 종교는 사후 세계가 아닌 현 세상에 대한 가르침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보상이든 깨달음이든 지금 세상에 있어야지 사후를 위하여 현재를 희생한다는 것은 사기일 뿐이다. 그런 식의 개념은 극단적으로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같이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뿐이다. 유교도 결국에는 그런 집권세력의 정당화를 위해 활용되었겠지만 가르침의 방향성은 마음에 든다. 어떻게 세상을 효율적으로 살지가 아닌, 어떻게 해야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가가 지금 세상에 부족한 거 아닐런지.


사원 내에서 물을 좀 사먹을까 하다 그냥 나온다. 노상카페의 목욕탕 의자 첫 경험을 해야겠다. 호찌민 묘지 방향으로 가면서 노상카페를 찾아본다. 보통 한 골목에 두어 개씩 있다. 역시나 바로 옆에 하나 보인다. 자그마한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서 음료를 하나 고른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15,000동이다. 800원 정도다. 하나 달라고 하니 컵에 얼음을 넣어서 준다. 그 컵에에 미지근한 음료수를 담아 차갑게해서 마신다.

하노이에서는 비아호이처럼 이런 노상카페도 하나의 문화다. 서로 낯설어 보이는 사람들이 그냥 모여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다. 합석문화, 부킹문화라고 불러야 할까. 낮에는 이렇게 음료를 마시고 저녁에는 맥주를 마시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베트남인들의 삶인 듯 싶다. 옆의 청년은 물담배를 피우면서 어른들의 대화에 낀다. 나는 키보드를 피고 글을 쓴다. 언어를 모르니 대화에 낄 수는 없지만 이 분위기에는 살짝 합류해본다.

여기 앉아서 잠시 더위를 피하다 보니 하노이 체험은 노상카페와 비아호이가 핵심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버스 모험보다는 그냥 이렇게 작은 목욕탕 의자에서 앉아 사람들을 보는 거에서 더 하노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느낌이다. 역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머물러야 한다.


쉬었으니 이제 다시 가보자. 스마트폰을 가방에 집어넣고 아까 한인 여행사에서 받은 지도를 손에 든다. 약간 억지긴 하지만 여행에 약간의 조미료를 가미해보자. 스마트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종이 지도 하나만 들고 길을 찾아가본다. 목표는 호찌민 박물관이다!

이래도 사실 어려울게 없다. 각 사거리마다 도로명이 잘 표시되어 있어서 지도만 가지고도 너무 쉽다. 그래도 스마트폰 없이 다니니 좀 길 찾는 느낌이라도 난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어려운 건 길을 건너는 거다. 이것도 근데 금방 마스터한다. 비밀은 내가 피하는 게 아니라 오토바이들이 나를 피하게 하는 거다. 오토바이가 날파리 때가 오듯이 지나가는걸 보면 한 발을 내딛을 용기를 잃지만 첫발을 내딛고 한쪽을 보면서 살살 걸어가면 오토바이들이 알아서 잘 피해준다. 뛰지만 않으면 된다.

호찌민 박물관까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온다. 여행이 너무 쉽다고 투덜거리지는 말자. 꼭 어렵고 고생하고 헤매야만 기억나는 여행은 아니다.


호찌민 박물관의 입장료는 25,000동이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간다. 그리고 수많은 호찌민 동상들을 마주친다.

사실 박물관에 온 이유는 호찌민이라는 사람과 그 사상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이곳은 내가 생각했던 그런 곳은 아니다. 사상보다는 호찌민이라는 인물의 동상과 그림, 그리고 업적들로 도배가 되어 있다. 이곳은 마치... 신전을 온 느낌이다.


지금 정권에서 호찌민 우상화가 이득이 되니 이런 걸 만들어놓은 거겠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이건 옳지 않다. 후세에 남는 건 그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이어야지 그 사람 자체가 되어서는 의미 없다. 나라면 내 가치관이 영원이 남기를 바라지 나를 숭배하는걸 원하지는 않을거 같다. 나는 죽으면 없어지지만 사상은 영원하다.

한바퀴를 쭉 둘러본다. 그래도 에어컨도 나오는 곳이라 시원하니 좋다.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쉰다. 그리고 버릇처럼 키보드를 꺼낸다.


잠시 앉아서 글을 쓰는데 갑자기 이곳 직원들이 뭐라 하면서 나에게 손짓한다. 나 잘못한 거 없는데, 왜요? 나가란다. 문 닫을 시간이란다. 아니 4시 반밖에 안됐는데 무슨 벌써 문을 닫냐. 박물관이라 그런가. 몰아내듯이 나를 바깥으로 인도하는 직원들을 따라 거리로 나선다.


뭐 땀도 좀 식혔으니 됐다. 그런데 이러면 호찌민 묘소도 문을 닫으려나? 인간을 박제 처리한 그 몰상식한 장면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아니 도대체 왜 사람을 박제 처리하는 걸까. 이거 누가 먼저 시작한 거였지? 레닌이었나, 스탈린이었나. 본인들이 원했다면 변태고 후손들이 그냥 그리 했다면 망자에 대한 모독이다. 자연에서 태어났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가장 편안한 방법이다. 특히나 호찌민은 유언으로 자신을 화장해서 베트남 북부, 중부, 남부에 나눠서 뿌려달라고 했다는데 왜 그랬을까. 내부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필시 우상화가 향후 정권 유지에 유리하다는 판단하에 진행된 정치적인 결정이라고 확신한다.


하늘이 어둡다. 먹구름이 멀리서부터 번져 있는 게 소나기가 아닌 진짜 비가 올 태세다. 어쩌지? 일단 동네로 가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구글 지도를 피고 위치를 보니 의외로 걸어서 30분 밖에 안 걸리는 거리에 있다. 나는 결국 하노이 구시가지에서 걸어서 30분 반경 안에서만 돌아다닌 셈이다. 처음에 버스 탄 것도 다 부질없었다. 허무하군.

슬슬 걸어가다 빗방울이 떨어지기에 속도를 좀 올린다. 이거 불안하다. 그런데 가는 길에 호찌민 묘지가 나타난다. 어쩌지? 혹시 열었을지 모르니 가볼까? 비가 밤새 내리는 게 아니라면 묘지에서 비를 피하고 다시 천천히 이동하는 게 최선이긴 하다.


앞에까지 가보니 문이 잠겼다. 역시 여기도 4시 반에 문 닫나 보다. 아 게으른 사람들 같으니라고. 하긴 이런 여유 있는 문화가 좀 필요하긴 하다. 전체 사람들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이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면 감수하는 게 맞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토요일 택배는 금지해야 한다. 생뚱맞군.


다시 길로 나온다. 빗방울이 더 굵어졌다. 걸음을 좀 빨리한다. 하지만 구시가지까지 절대 못 갈 거 같다. 어쩌지. 고민하다 근처 카페를 가기로 마음 먹는다. 잠시 비도 피하고 땀도 식히고 글도 쓴 후 어쩌면 마지막이 될 하노이에서의 저녁을 즐겨야겠다.


대충 보이는 아무 카페에 간다. 종업원이 쉬고 있다가 내가 들어가니 화들짝 놀란다. 그래 손님이 없다가 오면 깜짝 놀라기도 하지. 내가 이해한다. 당황하는 종업원을 뒤로 하고 2층에 자리를 잡는다. 여기 무려 에어컨도 있다.

인테리어나 청소 상태는 딱 우리나라 70년대 다방 같지만 에어컨이 있어서 그런지 음료 가격은 꽤나 비싸다. 헌데 물어보면 다 안된단다. 그나마 된다는 수박 주스를 35,000동에 주문한다.

주스는 나오자마 원샷 해버린다. 길거리 주스가 백배 낫겠다. 그래도 비를 피할 수 있으니 됐다...라고 하기에는 막상 비가 안 온다. 아까 몇 방울 이후에 멈춰버렸다. 여행 중 이런 상황이 태국 방콕에서 이후 두 번째다. 분명히 엄청 올 거 같은 먹구름이었는데... 한 달을 넘게 여행해도 동남아 날씨는 정말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내가 나가면 분명히 다시 비가 올 테지. 들어온 김에 6시까지 있다가 저녁을 먹으러 가야겠다. 오늘 저녁은 그래도 좀 근처 맛집을 찾아가볼까? 트립어드바이저 하노이 맛집을 찾아 보니 3위의 반미집이 보인다. 하, 반미가 이렇게 찾아가서 먹는 음식은 아닌 거 같지만 한번 가볼까? 어차피 호안끼엠 호수 쪽이니 숙소와도 가깝다. 애증의 반미다. 왠지 하노이를 뜨면 더 먹기 힘들 거 같아서 한번 찾아가보기로 한다. 길거리 음식을 검색해서 찾아가서 먹다니... 그래도 무려 3위의 반미니 뭔가 있겠지. 난 반미에 아무런 감정이 없는데 왜 이리 나한테서 꼭꼭 숨는 거니. 난 친일만 아니면 반미, 친미 다 좋아한다. 친미는 쿵후보이가 진리... 너무 나갔다.


그래, 반미의 맛집이라는 Banh Mi 25를 찾아가보자. 이런 거 찾아가는 건 내 스타일 아니긴 하지만 진짜 한번 먹어보고 싶다. 바깥은 비가 안 오는 정도가 아니라 5시 반이 지났는데 해마저 아직 살짝 떠 있다. 아주 나를 조롱하는구나.


헌데 막상 나오니 비가 오고 있었다. 이건 그냥 맞아야 하는 비다. 사실 많이 오지는 않는다. 지도를 보며 다시 길을 나선다.

Dien Bien Phu 길을 따라 걷는다. 호찌민 박물관과 묘지 앞의 길을 디엔비엔푸라고 부르는 것은 나름 센스 있다. 눈치를 봐가며 길을 수차례 건넌다. 한번 경미한 접촉사고(?)가 있긴 하지만 큰 무리 없이 잘 걸어간다. 역시 오늘 하루 좀 돌아다녔더니 하노이를 좀 이해하게 된것 같다.

지도를 보며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다 보니 이상한 곳이 나타난다. 구글 지도도 맹신하면 안된다. 도로명 주소를 다시 한번 찾은 후 수동으로 찾아본다. 길만 찾으면 금방이다. 여기서 또 10분 거리다.

가는 길에 수많은 반미 가게와 마주친다. 그리 찾아도 없더니 아무 생각 없이 가니 또 엄청나게 많이 보인다. 그 유명하다는 Dac Kim 분차집도 지나친다. 뭐 이리 다 나온다냐. 수많은 유혹을 이겨내고 반미 맛집이라는 그 집을 찾아간다. 너 얼마나 맛있는지 한번 보자.

어렵게 찾은 반미집은 거리에 생뚱맞게 나타난다. 길거리에 통 하나가 놓여있고 테이블이 몇 개 놓여있는 게 보통 베트남의 노상카페와 똑같다. 다만 테이블이 좀 더 예쁘고 인테리어를 좀 아기자기하게 해놓았다. 근데 아무도 없다. 이거 맛집 맞나? 트립어드바이저 3위면 엄청난 건데.

모든 것이 다 들어간 25,000원짜리 반미와 콜라 하나를 주문한다. 합쳐서 35,000원이다. 아까 수박주스와 같다. 그 주스가 얼마나 비쌌는지 체감이 된다. 뭐 사실 그래 봐야 2천 원도 안된다.

자리에 앉아있으니 금방 만들어서 건네준다. 포장도 깔끔하게 되어 있는 것이 길거리 음식 같지 않다. 기대를 하며 일단 한입 베어 먹어본다. 고수향이 지긋이 퍼지는 게 샌드위치지만 독특한 느낌을 준다.


너무 기대를 많이 한 걸까? 이래서 검색해서 찾아오면 안되는데. 나쁘진 않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한다. 원래 만족감이란 절대적인 현실에서 기대치를 뺀 만큼이다. 절대적인 현실이 아주 높거나, 기대치가 낮아야 만족이 된다. 반미는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었나 보다. 그냥 지나가다 먹었으면 괜찮고 감탄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냥 그렇다. 아쉽다.

앉아있으니 서양 애들이 주루룩 온다. 여기는 현지인들 보다는 여행자들 사이에 유명한 가게인가 보다. 트립어드바이저 순위에 있으니 뭐 당연하다. 다들 극찬하면서 먹는데 난 잘 모르겠다. 나중에 그냥 길거리 반미를 한번 먹어봐야겠다. 대신 양은 많지 않아서 저녁으로는 조금 부족한 게 역설적으로 마음에 든다. 다른 음식을 하나 더 먹어야지. 뭐 먹을까? 이 생각에 또 신이 난다. 이번에는 계획없이 그냥 땡기는 데로 가야겠다.


오늘 꽤 걸었나 보다. 도시 트레킹이다. 다리와 발바닥이 아프다. 하지만 역시 그만큼 도시를 알게 되었다. 여행지는 정말로 다리가 아픈 만큼만 자기 자신을 보여준다. 등가교환이다.

숙소 근처로 접근하니 슬슬 비아호이의 영향권이 느껴진다. 벌써부터 취한 사람들이 보인다. 한잔만 마셔볼까? 안된다. 이놈의 비아호이는 한잔으로 멈출 수 있는 애가 아니다. 크레이지 한 저녁은 어제 하루로 됐다. 내일은 투어가 예정되어 있으니 오늘은 간도 좀 쉬게 해주자.


돌아다니는데 마땅히 먹을만한 게 없다. 뭘 먹을까. 어제는 현지인과 여행자들이 섞여서 먹는 걸로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구분이 된다. 왠지 서양인들만 우글우글 거리는 곳은 오늘따라 들어가고 싶지 않다.

길거리 한쪽에 오토바이가 잔뜩 세워진 뒤에 간이식으로 만들어진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현지인들이 꽤나 많이 자리를 잡고 있다. 볶음 국수 종류 같은데 양도 적당해 보인다. 가격은 6만 동이니 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또 그렇다고 비싼 것도 아니다. 뭔가 기분이 끌려서 그쪽으로 간다.


작은 의자 두개를 편다. 하나는 자리 삼아 앉고 다른 하나는 테이블 삼아 위에 쟁반을 올린다. 다른 사람들이 먹는 거와 같은 것을 달라고 하고, 음료는 뭐 있냐고 물으니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맥주를 줄려고 한다. 뭔 맥주의 유혹이 이리 사방에 많다냐. 잠시 고민하지만 단호히 거절하고 다른 사람들이 많이 먹고 있는 차를 달라고 한다. 베트남에서는 사람들이 녹차 비슷한 이 음료를 많이 마신다. 이거 근데 카페인이 좀 들어간 건지 먹으면 목이 오히려 마르던데, 왜 이리 많이 마시는 건지.

조금 기다리니 볶음 국수도 나온다. 맛이 팟타이와 흡사한 면도 있지만 굉장히 담백하다. 개인적으로 담백한 거는 취향이 아니라서 조금 실망스럽지만 꾸준히 먹어본다. 맵고 강한 음식만 좋아하는 것도 문제다. 이런 담백한 음식도 즐겨보도록 노력해보자.


먹다 보니 나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을 유심히 쳐다보니 또 무슨 흰색 음료를 많이들 마신다. 저건 뭘까? 또 호기심에 사장님 남편으로 추정되는 남자분에게 나도 저거 한잔 달라고 한다.

이거 아침햇살이다. 사파에서부터 편의점에서 아침햇살이 자주 보여서 궁금했는데 이렇게들 마시나보다. 쌀을 좋아하는 나라니 쌀음료도 대중화된 걸까.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잘 안 보이는 아침햇살이 이곳에서는 국민음료가 되어 있다.


다 먹고 일어난다. 75,000동이 나온다. 아마도 녹차가 5000동, 아침햇살이 1만 동인 듯 싶다. 뭐 그래 봤자 사실 얼마 안된다. 라오스에서는 한 끼에 10달러까지 썼지만 베트남에서는 뭘 먹어도 5달러를 넘기는 건 쉽지 않다. 아주 마음에 든다.

오늘은 좀 일찍 귀가해야겠다. 8시면 들어가서 책을 보다 잠드는 패턴을 다시 찾아야겠다.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서 모기 억제 로션을 하나 산다. 여기도 아침햇살이 보인다. 원래 세제도 하나 사려 했지만 안 보인다. 오늘 땀을 정말 많이 흘려서 저 옷 빨긴 빨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내일 선상에서 빨아볼까나. 근데 세제를 안 판다. 모아서 맡기는 게 낫겠다 싶다. 맡기려면 1키로를 모아야 하고 그 말은 모든 옷을 다 맡겨야 한다는 말이다.

숙소 앞에 오니 왠 싸움이 났다. 뭐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 구경이라고 사람들이 모여서 웃으면서 보고 있다. 나도 슬쩍 합류해서 뭔지 한번 봐본다. 대충 보아하니 오늘도 경찰들이 단속을 뜬 거 같은데 그러다가 어떤 여사장님과 충돌이 난 거 같다. 베트남 경찰 무섭다지만 아줌마 파워가 더 무섭다. 뭐라 뭐라 큰소리로 막 소리 지르고 집어던지고 하니 경찰들이 슬그머니 뒤로 가더니 차를 타고 도망간다. 아줌마 파이팅!


내일 일찍 떠나야 하니 숙소에서 올라오기 전에 정산을 미리 다 해버린다. 올라오니 아무도 없다. 또 보나 마나 다 취해서 들어올 거다. 어제 나도 취해서 잠결에 듣긴 했지만 새벽 서너 시에 한두 명씩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근데 12시 이후에도 마실 곳이 있긴 한 건가. 맥주의 도시 하노이다.

씻고 침대에 누워서 글을 쓰고 있는데 문이 열리면서 새로운 사람이 큰 가방을 들고 들어온다. 인사를 먼저 걸기에 같이 얘기를 좀 나눈다. 칠레에서 온 젊은 여자다. 중국 여행을 하고 왔단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베트남은 오늘 왔다기에 여기 몇 군데 추천을 해준다. 그랬더니 나보고 같이 가서 먹잔다. 미안한데 나 저녁 두 번이나 먹었다고 거절한다. 자기 혼자 먹는 거 너무 싫다고 자꾸 같이 가자고 한다. 아니 혼자서 두 달이나 여행했으면서 혼자 먹는 게 싫으면 어떡하니. 그리고 미안하지만 노여사에 대한 충심(?)으로 여자와 단둘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내 철칙이다. 여행지에서 눈 맞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그런 상황은 미리 방지해야 한다.


이 친구 내가 안 나간다고 하니 자기도 그럼 저녁을 건너뛰겠단다. 혼자 여행 다니면서 외로움이 극을 친 느낌이다. 미안하다. 하지만 난 반 유부남이기도 하고 누구랑 같이 다니는 거 싫어해서 안돼. 오늘 라셸도 거절했구먼. 칠레 소녀는 그러면서 물을 사러 간다고 나간다. 등 뒤로 그래도 밥은 먹고 오라고 소리쳐준다.


여행 혼자 다니는 사람은 두 부류다. 정말 혼자의 고독함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고 비록 혼자 다니지만 일행을 만들어서 같이 다니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도 여행 때만 해도 나도 혼자서는 외롭고 무서워했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혼자가 편하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하고 싶은데로 하면서 혼자 생각할 시간은 넘쳐 나고,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아, 나는 혼자 다니는 게 아니라 글과 함께 여행 다니는 거지. 글이 내 일행이다.


벌써 9시다. 오늘 여행기를 올리고 자려고 했지만 여기 와이파이가 정말 느려 터진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내일 조식을 록네 호텔에서 먹기로 했으니 거기서 올려야겠다. 그나저나 록, 이 친구 엄청 싸게 해주는 듯이 얘기했지만 돌아다녀보니 기본 75달러, 조금 싼 곳은 70달러로 비슷하다. 그래도 더 비싼 건 아니니 넘어가 주자. 버스는 좀 저렴하게 해준 게 맞는 거 같다. 덕분에 비아호이를 비롯해서 좋은 경험과 대화를 많이 나눴고, 오늘 정보도 많이 얻었으니 괜찮다. 하지만 어제 라셸과 데이브 일행을 만나지 않았으면 80달러라는 거금을 주고 투어를 하지는 않았을 듯하다. 그래도 기대는 된다.


내일은 6시에 일어나야 한다. 내 입장에서는 정말 큰 돈을 들여 가는 투어인 만큼 제대로 즐길 거다. 선상에서 자는 거는 중학교 때 그리스에 살던 시절, 가족하고 다 같이 일주일 크루즈를 하며 산토리니 섬 등을 돌았던 때가 유일하다. 내일의 크루즈가 비록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고 고급 패키지도 아니지만 어떤 추억들이 생길지 기대된다. 설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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